낮이나 밤이나 이제 우리 마음에는 빈 공간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밖에 나가 몸을 움직이는 것일 때가 있다. 일어나서 움직이기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몸을 건강하게 만들 필요를 도대체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럴 때 역시 이성으로 감정을 극복해야 한다

한없이 기분이 가라앉을 때, 내게 가장 나쁜 적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나의 친구가 되도록 해야 한다.

약해진다는 것은 아주 깊이 있고 다채로운 면에서 인간적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후회되는 일들이 있다. 달리했더라면 좋았을 일들이 있다. 마땅히 할 말을 했는데도 좀 더 잘할걸 하는 후회가 문득문득 일어난다.

아이가 혼자서 걷게 되면 손을 놓아주어야 하듯 때가 되면 슬픔도 놓아주어야 한다.

슬픔이 내게서 떠나갈 수 있도록 그것을 움켜쥔 손을 풀려고 한다. 내 곁을 떠난 사람과 나의 관계는 무엇으로도 침범당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너질 수 없다.

폭풍우를 헤쳐 나갈 수 있다면,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시원한 물, 햇살과 바람, 장미꽃 향기, 지금 내가 가진 사랑과 우정을 더 소중히 간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울음은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위안의 수단이다.

서로의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함께 얘기할 수 있으므로 이제 우리는 진정한 친구다

같은 슬픔을 겪은 당신과 있으면서 나는 위안과 휴식을 얻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 하게 되는 아주 놀랍고 뼈아픈 경험 하나는, 우리 삶은 송두리째 달라졌는데 태양이 여전히 뜨고 지고, 신문이 계속 배달되고, 신호등이 여전히 빨간색에서 녹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빨간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우리가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도 나와는 다른 감정을 느끼며, 때로는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상대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하며, 같은 사람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니 서로의 마음이 같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다가 상처를 받기도 한다.

슬픔이 내 몸을 흐르도록 놔두는 것, 바로 그것이 가장 중요할 때가 있다. 함마르셸드가 말했듯, 그것은 그저 할 수 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지금도, 아니 지금이니까 더더욱 우리 삶에는 유머가 필요하다. 잠깐의 기분 전환으로 긴장을 풀고 하루를 충만하게 보낼 수 있다.

힘겨운 변화라 해도 그 변화가 놀라운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지금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해도, 다음 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좋은 것으로 가는 문을 너무 빨리 닫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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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아직 자신의 춤추는 별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행운의 별이 하나쯤은 있다. 그행운의 별이란 자신의 꿈이나 목표, 소망 같은 것이다. 어느 정도 안정된 40대에 새로운 꿈을 갖는다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는 꿈꾸지 않고 그대로 멈추어 버린 사람도 많다.
중년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슬프다. 왜 우리는 현재의 자기자신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가? 솔직히 자신의 가치가 얼마인지 잘 모른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거리를 떠났을 때, 비로소 그 거리의 수많은 탑이 집 위로 얼마나 높이 솟아 있는가를 보게 될 것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즉 인식의 대상을 가까이에서 바라보지 말고 멀리 떨어져서 관찰하라는 의미이다.

이런 추한 것과 싸울수록 감정의 쓰레기가 내면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래서 니체는 운명을 사랑한다면 추한 것과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상태가 계속된다면 좋은 기회도 놓치게 될 뿐 아니아 창조적인 에너지와 활기마저 빼앗기게 된다.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I》에서 활동적이고 성공지향적인 사람들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자신을 원하라, 그러면 너 자신이 될 것이다"라는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고 한다. 세상에 이미 결정된 일은 없듯이 이미 정해진 나의 모습도 없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나의 모습이 변해 갈 뿐이다. 운명의 여신은 항상 자신의 바람직한 모습을 적극적으로 꿈꾸는 사람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선사한다.

지금 우리에게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이 논리적으로 맞느냐 틀리느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고통스러운 삶이 끝없이 되풀이되더라도 절망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삶을 최고로 긍정하는 태도이다. 니체는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영원 회귀 사상을 통해 우리는 주어진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니체는 우리의 삶이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삶‘이기를 바란다.
니체 철학의 핵심적인 주제가 바로 ‘자기 극복‘이다. 자기 극복은 자기 변화 또는 정신의 변화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우리의 삶이 끊임없이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할지라도 삶을 아름답게 창조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낙타, 사자, 아이로 세 번의 변화를 거쳐 우리는 초인에 이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초인이 되는 방법을 외부 세계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삶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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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스스로 허무주의에 빠졌다는 사실을 의식해야 한다. 어느 날 문득 무기력한 자신을 발견했다면 ‘왜‘ 하는 의문을 제기하며 스스로 의식해야 한다. 반복되는 삶이 주는 허무주의는 결국 의식의 변화를 일으킨다. 매너리즘에 빠져 매일매일 권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야겠다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권태기는 위기가 아니라 전환기이다.
자기 삶의 진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동력을 얻는 때이다.

인생의 중반부터는 고통스러운 삶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또한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회피하기보다는 그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남은 삶에서 우리는 더욱 열린 마음으로 기쁨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나답게 살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대들의 이웃을 언제나 자신처럼 사랑하라. 하지만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가 되도록 하라"라고 말한다. 니체는 고귀한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당신은 얼마나 자신을 존중하는가?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수시로 고민해야한다. 인생은 산에 오르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일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뿌연 안개 속에서 일어난다. 예견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은 참 막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힘에의 의지는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의지가 아니라 삶과 맞서 싸우고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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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기독교의 신이 오히려 인간을 병들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기독교에서 인간은 죄를 지은 병든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의미하고 두려운 삶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신이 결과적으로 인간을 더 나약한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더는 필요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니체가 자신을 광인에 비유하면서 우리가 신을 죽였다고 말한 이유이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그 무엇이다."
이제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익숙한 것들이란 자신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믿어 온 것들이다. 삶의 토대였던 것들을 쉽게 버리기는 힘들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했듯이 과거의 것들과 결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계기가 있어야 한다. 계기는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나 기회를 의미한다. 계기는 다른 말로 터닝 포인트 즉 전환점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전환점이 있다. 어떤 상황이 다른 방향으로 바뀌는 그 지점에 서는 날이 누구에게나 예정되어있다. 터닝 포인트는 우리의 생각과 달리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일로 인해 발생한다. 또한 터닝 포인트는 누군가가 나 대신 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 왔던 것들이 흔들릴 때 진정한 나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마흔이라면, 또는 마흔을 앞두었거나 되돌아보고 있다면 남은 인생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을 마음껏 누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것을 핑계로, 현실적인 조건과 상황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사람들 대부분은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는 것을 어려워한다. 또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볼 때면 한편으로 현실에 안주하고 싶다는 저항감이 들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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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언젠가 찾아올 위대한 정오에 우리의 마지막 의지가 되기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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