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아직 자신의 춤추는 별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행운의 별이 하나쯤은 있다. 그행운의 별이란 자신의 꿈이나 목표, 소망 같은 것이다. 어느 정도 안정된 40대에 새로운 꿈을 갖는다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는 꿈꾸지 않고 그대로 멈추어 버린 사람도 많다. 중년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슬프다. 왜 우리는 현재의 자기자신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가? 솔직히 자신의 가치가 얼마인지 잘 모른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거리를 떠났을 때, 비로소 그 거리의 수많은 탑이 집 위로 얼마나 높이 솟아 있는가를 보게 될 것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즉 인식의 대상을 가까이에서 바라보지 말고 멀리 떨어져서 관찰하라는 의미이다.
이런 추한 것과 싸울수록 감정의 쓰레기가 내면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래서 니체는 운명을 사랑한다면 추한 것과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상태가 계속된다면 좋은 기회도 놓치게 될 뿐 아니아 창조적인 에너지와 활기마저 빼앗기게 된다.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I》에서 활동적이고 성공지향적인 사람들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자신을 원하라, 그러면 너 자신이 될 것이다"라는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고 한다. 세상에 이미 결정된 일은 없듯이 이미 정해진 나의 모습도 없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나의 모습이 변해 갈 뿐이다. 운명의 여신은 항상 자신의 바람직한 모습을 적극적으로 꿈꾸는 사람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선사한다.
지금 우리에게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이 논리적으로 맞느냐 틀리느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고통스러운 삶이 끝없이 되풀이되더라도 절망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삶을 최고로 긍정하는 태도이다. 니체는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영원 회귀 사상을 통해 우리는 주어진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니체는 우리의 삶이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삶‘이기를 바란다. 니체 철학의 핵심적인 주제가 바로 ‘자기 극복‘이다. 자기 극복은 자기 변화 또는 정신의 변화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우리의 삶이 끊임없이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할지라도 삶을 아름답게 창조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낙타, 사자, 아이로 세 번의 변화를 거쳐 우리는 초인에 이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초인이 되는 방법을 외부 세계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삶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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