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는 휴식처이자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다. 한가할 때 홀로 거기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마음을 정리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여럿이 오붓하게 모여 정서를 교감하고 흥을 돋우던 장소다.
마치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유행가를 부르듯이 그들의 시작(詩作)은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옛 정자는 문학의 산실이기도 했다. 이것이 곧 우리 정자 문화의 내용이다. 이러한 정자를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사항은 말할 것도 없이 위치 설정이었다. 마을 어귀 사람들이 편안히 모일 수 있는 한쪽 켠, 전망이 좋은 언덕, 강변의 한쪽…… 우리가 지나가다 잠시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곳에는 어김없이 정자가 세워져 있다.
정원이 일반적으로 도심 속의 주택에서 인위적인 조경 작업을 통하여 동산〔園〕의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라면, 원림은 교외?옛날에는 성 밖〔城外〕?에서 동산〔園〕과 숲〔林〕의 자연 상태를 그대로 조경으로 삼으면서 적절한 위치에 집칸과 정자를 배치한 것이다. 그러니까 정원과 원림에서 자연과 인공의 관계는 정반대다. 우리가 찾아갈 소쇄원과 명옥헌은 정원이 아닌 원림이다.
인간은 사물을 통하여 언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반대로 언어를 통하여 사물을 인식한다. 그리하여 어휘력은 인간 정신의 고양과 정서의 함양에 크게 기여한다. 이뿐만 아니라 풍부한 어휘력은 사물에 대한 관찰과 인식이 남다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양산보가 원림의 이름을 소쇄원이라 하고 사랑채와 서재가 붙은 집을 ‘제월당(霽月堂)’, 계곡 가까이 세운 누정을 ‘광풍각(光風閣)’이라고 한 것은,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이 주무숙의 인물됨을 "흉회쇄락 여광풍제월(胸懷灑落如光風霽月)," 뜻을 풀자면 "가슴에 품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밝은 날의 달빛과도 같네"라고 한 데에서 따왔다. 그리고 「처사공실기」에는, 양산보가 어렸을 때 이곳 계곡에서 놀다가 물오리가 헤엄치는 대로 따라 올라가게 되었는데 지금 소쇄원 자리에 이르자 작은 폭포와 못을 이루며 계곡이 깊어지고 주위의 풍광이 너무도 수려하여 거기에서 미역도 감고 이리저리 뛰놀며 언젠가는 여기에 와서 살 뜻을 세웠다고 전한다.
소쇄원 원림은 결국 자연의 풍치를 그대로 살리면서 곳곳에 인공을 가하여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 공간을 창출한 점에 그 미덕이 있다.
소쇄원에 처음 가보는 사람들은 우선 길이가 50미터나 되는 기와 지붕을 얹은 긴 흙돌담의 아이디어에 놀라게 된다. 가지런하게 잘 쌓은 이 흙돌담은 소쇄원과 지석마을을 갈라놓는 경계 구실을 하고 있지만, 안에서 바라볼 때는 소쇄원을 더없이 아늑한 공간으로 감싸주는 기능을 한다. 본래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는 것은 두려움 내지 무서움을 유발한다. 그러나 인간의 손길이 적절히 닿아 있을 때 우리의 정서는 안정을 찾는다. 그러니까 담장은 외부 공간과의 차단, 온화한 내부 공간의 조성, 자연에 가한 인간의 손길이라는 3중 효과를 갖고 있다.
그런데 담장에는 필연적으로 폐쇄감이 있기 마련이니 자연과 인공의 조화로움을 파괴할 소지가 거기에 도사리고 있다. 그 문제를 소쇄원은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하였다. 하나는 대문이 없는 개방 공간, 이른바 오픈 스페이스로 풀어버린 것이다. 또 하나는, ㄱ자로 둘러친 담장의 북쪽 편은 계곡을 가로지르게 되어 있는데 마치 돌다리를 놓듯이 받침돌이 담장을 고이고 있어서 담장 밑으로 냇물이 자연 그대로 흐르게 해놓은 것이다. 절묘한 개방성이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인공의 겸손이 바로 이런 곳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나는 이것을 조선시대 사대부 문화의 위대한 강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대부는 군자로서 살아가는 길을 끊임없이 반성하면서 삶을 영위하는 확고한 도덕률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이 지향한 바는 전문인·기능인이 아니라 총체적 지식인으로서 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한 사람이었으며, 그리하여 그 지식으로 세상을 경륜하고, 그 안목으로 시를 짓고 거문고를 뜯고 글씨를 쓰고 집을 짓고 사랑방을 디자인하였던 것이다. 심지어는 전쟁조차도 전문성보다는 총체성에 입각하여 대처했다. 우리 시대의 전문인들이 잃어버린 바로 그 총체성을 우리는 이곳 소쇄원에서 배워야 마땅할 것이다.
명옥헌의 호수와 배롱나무 | 고목이 된 배롱나무가 늘어선 명옥헌은 한여름 꽃이 필 때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한다.
명옥헌은 가운데 섬이 있는 네모난 연못을 파고 그 위쪽에 정자와 서재를 겸한 건물을 지은 간단한 구성이지만 연못 주위에 소나무와 배롱나무를 장엄하고 넓게 심어놓고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시야를 끌어들임으로써 더없이 시원한 공간을 창출한 뛰어난 조경 설계를 보여주는 원림이다.
한국의 정원미는 중국 정원처럼 인공에 의하여 창조하는 것도 아니고, 일본 정원처럼 자연을 주택의 마당에 끌어들여서 주인 행세를 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 정원의 이상은 소박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2021년 9월 2일, 문화재청은 명승으로 지정된 별서정원 22개소 중 11개소 정원의 만든 이와 소유자, 변화과정 등을 고증한 결과를 발표하며 소쇄원의 ‘소쇄(瀟灑)’라는 이름이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으로 송순이 지어준 이름임을 밝혔다. 이는 양산보와 교유했던 하서 김인후의 『하서전집(河西全集)』에서 "소쇄원의 이름을 하서가 지었다고 하기에 송신평(宋新平, 송순)에게서 나온 것임을 밝힌다"라는 새로이 발견된 구절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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