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같은 곳을 왕복하는 인생. 그 인생은 지금까지 성실한 인간의 척도로 여겨졌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면에서 수행과 비슷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불행을 겪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 엄청난 질문에 대해 단 한마디의 조언을 해준다면 어떻게 답하겠는가? 사람에 따라 다양한 조언이 나오겠지만,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나를 공격하는 상대방과 얽히지 말 것.’
오히려 ‘이렇게 평생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도 살 수 있구나’라는 깊은 감격에 젖었다. 어찌 보면 이런 인생도 평범한 것일 텐데 왜 그렇게 직장 생활에 목을 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날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생은 나에게 완벽하게 잘 맞았다. 물론 프리랜서가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방식은 아니다. 단지 나처럼 ‘인생 최대의 불행은 대부분 인간관계 속에서 생겼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딱 어울린다. 게다가 재택근무가 당연해지는 요즘,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는 삶은 더 이상 특별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확실히 어떤 면에서는 지금 세상에서도 머릿수가 많을수록 강하다고 할 수 있다. SNS에서 누군가와 언쟁이 벌어졌을 때는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많을수록 힘은 점차 강해진다. 게다가 SNS에서는 팔로우 숫자나 친구 숫자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팔로워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은 야생의 세계가 아니다. 친구 수가 많다고 무조건 강한 것도 아니다. 시끌벅적한 무리를 보면 알 수 없는 패배감이 드는 건, 단지 우리 뇌의 오랜 본성이 그렇게 외치기 때문이다.
요즘 아무리 재택근무로 일하는 사람이라도 나이 지긋한 남자가 인기척 없는 평일 낮 주택가에서 매일 어슬렁거린다면 여전히 주변에서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 소속 없는 인생을 선택하기란 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소속이 있는 인간들의 세계에 지친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다른 삶을 선택할’ 기회가 절실하다.
특별활동의 목표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취지’라는 말이 몇 번이나 나와서 그야말로 진절머리가 났다. 우리는 학교에서 ‘인간관계 훈련’을 당한 셈이다.
대부분의 공격은 범죄 수준까지는 아니라서 그만두게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앞으로도 영역을 좁혀가면서 계속 마주칠 수 있다. 이 사회에서는 아직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다른 사람을 공격해서 어느 정도 피해를 줄 수 있다. 모두가 위험한 정글 속을 어슬렁거리는 듯하다. 따라서 위험을 감지했다면 적극적으로 벗어나 다른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속’이란 것에서 벗어났을 때, 나는 과거에 내가 했던 생각대로 마치 우주 공간에 내던져진 듯한 기분에 빠졌다. 당시는 아무런 소속이 없는 사람이 드문 시대였다. 내가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그렇게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상태는 처음이었다.
단지 사이좋게 잘 지내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겉으로만 친하게 지낼 뿐이고 본성을 들키면 모든 게 끝나버릴 관계도 적지 않다. 그런 인간관계 속에서 조마조마한 상태라면 더더욱 혼자가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SNS상에서도 잘못된 세상으로 빠져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인 척 연기하면 그 가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좋아요’와 ‘팔로워’만 염두에 둔 SNS 활동은 위험하다. 만약 그 가면만을 좋아하는 팔로워로 주변 인간관계가 굳어버린다면, 원하든 원치 않든 평생 ‘가면 쓴 나’를 연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게 바로 요즘 흔하게 보이는 ‘자기를 잃어가는 과정’이다. 스스로 그 가면처럼 바뀌고 싶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정한 내 모습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만약 원치 않는 이유로 당신이 아닌 당신을 억지로 연기하고 있다면, 나는 뜯어말리고 싶다. 나답게 있을 수 없는 집단에서 살아간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괴로운 일이다.
회사나 학교와는 다르게,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인간관계를 찾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쉽게 그런 세상이 될 수 있다면 프리랜서도 재택근무도 좀 더 널리 퍼질 것이다.
그렇다면 소속이 없는 생활의 가장 큰 단점은 무엇일까? 우선 떠오르는 것은 정신적으로 좋지 않은 상태에 빠졌을 때, 그 상황을 끊어줄 계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나쁜 상태에 빠졌을 때 좀처럼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나는 프리랜서가 되고 곧바로 생활 습관을 바꿔 나쁜 상태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여기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라는 말은 곧 ‘이곳에 있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라는 의미다. 어떤 집단이 ‘내가 있을 자리’가 되려면 조건이 있다. 단순히 사람과의 관계가 있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곳이라면 ‘내 자리’라고 부를 수 없다.
시끌벅적한 단체의 세상에서 도망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시끌벅적한 단체 사진을 보고 부러워하는 마음 역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나이가 되고도, 게다가 직접 꽤 큰 모임을 운영하면서도 역시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단체 생활의 중요성이 얼마나 뿌리 깊이 세뇌된 건가 싶어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친구 수를 늘리려고 하거나, 나 역시 모임에서 단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관계의 미학은 떠벌리고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소통하는 데 있다. 진짜 우정은 과시하지 않는다.
그래도 공격이 계속되면 다음은 반격할 수밖에 없다. 반격은 공격과는 완전히 다르며, 나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권리다. 한쪽만 계속 괴로움을 감당하는 것은 부당하다. 직장으로 치면 직장 내 인사팀의 힘을 빌릴 수도 있다.
무리는 강하다. 우리는 이것을 학교에서 확실히 체험했다.
애초에 타인을 쉽게 공격하는 사람 가까이에 있으면 그 화살이 자신에게 올까 봐 은연중에 신경을 쓰게 된다.
평범한 인간관계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고, 왠지 자신은 상대적으로 인간관계가 좁은 사람이라는 비교의식을 갖게 되기도 한다. 애초에 관계를 맺는 스타일이 다를 뿐인데 말이다.
온라인 미팅의 특징은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도중에 가볍게 쓱 끼어들거나 빠져나가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리를 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그렇게 되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잡담의 묘미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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