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문화/삼계탕과 치킨

닭 요리 중 대표 음식은 백숙이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 후반이 되면 백삼가루를 넣은 닭국이 시중에 팔리기 시작한다. 인삼을 갈아서 닭국에 넣어 음식의 맛과향, 영양가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이었을 텐데 자연스럽게 삼계탕의 시대를 예비한 것이다.
1960년대가 되면 비로소 삼계탕이 등장한다. 홍삼 재배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인삼을 통째로 넣은 닭국이 만들어진 것이다. 산업화가 되면서 대규모 양계 시스템이 마련되고 인삼 재배가 확대되면서 영양가가 강조된 음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1970년대가 되면 비로소 통닭구이가 나타난다. 전기 구이 시설을 마련해서 닭을 통째로 구운 것인데 아버지가 월급 받는 날, 통닭이 든 봉투를 들고 오면 가족끼리 야식으로 먹는 문화가 시작됐다. 이때부터 닭 요리의 중심은 닭국에서 프라이드치킨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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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유적•유물/움집

신석기 시대 거주지로,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는 질적으로 다르다. 구석기 시대는 통상 70만 년 전, 신석기 시대는 1만 년 전에 시작됐다고 본다. 청동기 시대가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는 기원전 1천 년 전에 시작됐다는 것을 고려하면 인류는 대부분 구석기 시대에 살았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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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장소/임진강

남북한을 가로지르는 강으로, 한강으로 흘러들어 서해로 빠져나간다. 원래는 예성강, 한탄강 사이에 위치하며 황해도와 경기도를 가로지르는 강이었으나 분단으로인해 DMZ를 넘나드는 강이 됐다. 현재는 임진강을 따라 임진각, DMZ, 판문점 등 주로 남북관계와 관련한 주요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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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한 어조로 말하지 마라"는 처세의 오랜 원칙은 자신이 말한 것의 의미를 알아내는 것을 타인의 이해력에 맡기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은 분별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그 순간이 지난 뒤에야 그것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

당신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너무나 적절하고 좋은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자화자찬에 빠져서는 안 된다. 허영심은 너무나 흔히 볼 수 있지만 공덕은 흔히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그 누구에게도 적의를 품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사람들의 특성을 잘 기억해야 한다.

인생의 후반기에는 음악 악절의 후반부와 마찬가지로 힘들게 애쓰는 일은 줄어들고 인생 전반부에 비해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젊은 시절에는 세상에서 어떤 큰 행복과 즐거움을 찾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깨닫고 이제는 그러한 생각을 완전히 초월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안정적이고 그런대로 견딜 수 있는 현재를 즐기며, 심지어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만약 우연히 듣게 되는 ‘말도 안 되는 대화’가 우리를 짜증나게 하기 시작하더라도, 그것을 두 사람의 바보가 이야기하는 코미디의 한 장면이라고 상상해야 한다.

인생 전반부의 성격이 행복이 충족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이라면, 인생 후반부의 성격은 불행에 대한 두려움이다. 인생의 후반기가 되면 ‘모든 행복은 공상과도 같지만 고통은 실제로 존재한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성적인 사람들이라면 인생 후반부의 시기에는 즐거움보다는 단지 고통이 없는 안정적인 상태를 추구한다.

사랑하지 않는 것과 미워하지 않는 것에는 세상 모든 지혜의 절반이 담겨 있다. 또한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믿지 말라는 것에 그 나머지 절반의 지혜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와 같은 규칙과 그에 따르는 규칙을 필요로 하는 세상에는 등을 돌리고 싶을 것이다.

젊음의 관점에서 보면 인생이란 무한히 긴 미래이지만, 나이가 든 사람의 관점에서 그것은 아주 짧은 과거이다. 그래서 인생이란 처음에는 사물이 오페라 망원경의 렌즈를 바로 눈앞에 댄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에는 접안렌즈를 눈앞에 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늙어봐야, 즉 오래 살아봐야 한다.

대화를 나눌 때 아무리 호의를 가진 것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고치는 말은 삼가야 한다.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다시 바로잡기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분노나 증오를 말이나 표정으로 표현하는 것은 쓸모없고, 위험하고, 현명하지 못하며, 우스꽝스럽고 비열하고 천박한 일이다. 그러므로 행동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분노나 증오를 보여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면, 믿는 척하는 편이 좋다. 그러면 그는 더욱 대담해지고 거짓말이 점점 심해져 결국에는 들키고 말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상대가 숨기고 싶어 하는 진실의 일부를 본인도 모르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을 우리가 알게 되었다면, 그것을 믿지 않는 척해야 한다. 그러면 나의 반박에 자극을 받은 상대가 모든 진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판단을 믿도록 하려 하는 사람은 흥분하지 말고 냉정하고 거침없이 말해야 한다. 격렬한 행동은 의지에서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냉정한 성격을 가진 이성이 아니라 의지에 따라 그러한 판단을 했다고 여길 것이다. 인간에게 근본적인 것은 의지이지만 지식은 부차적으로 부과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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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인물/전두환

전두환(1931년~)은 12.12 군사반란의 주모자이자 제5공화국 대통령이다. 5.16 군사쿠데타 당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군사 혁명 지지 행진을 주도하면서 박정희의 눈에 띄었다. 육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만들었는데, 이들이 주도하는 세력을 통상 신군부라고 부른다. 육사 11기생이 주축으로, 기존 박정희 세력과 구분하기 위해 신군부라는 말을 사용한다.
전두환은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할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다. 12.12 군사반란을 통해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체포하면서 권력자로 부상했고, 1980년에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직하면서 정보기관을 완벽하게 장악한다.

전두환은 집권 기간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경제 관료 김재익 등을 등용하여 박정희 정권기 경제 시스템의 모순을 일정 정도 수정했고, 3저 호황이라는 좋은 경제 여건 가운데 물가 안정, 높은 경제 성장, 88 서울올림픽 유치 등의 업적을 일구기도 했다. 또 35 정책, 교복 자율화, 두발 자율화, 학원 자율화 조치 등 유화 정책을 통해 민심을 달래고자 했으며 이러한 정책은 이후 한국 사회의 문화 변동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이 억압적인 문화 정책으로 일관했던 것과는 다른 면이다.

하지만 군사반란, 5.18 무력 진압, 대통령 간선제 등 민주화에 역행하는 조치로 일관했기 때문에 집권 기간 내내 대학생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고문, 용공조작 등 수많은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 또 일해재단을 만드는 등 퇴임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각종 사전 작업을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6월 항쟁 이후 상상을 초월하는 각종 비리가 세간에 폭로돼 공분의 대상이 됐고 백담사에 은신하기도 했다. 결국 1995년 군사반란 주도, 광주민주화운동 강경 진압, 각종 비리 문제 등으로 구속돼 사형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2심 때감형, 3심 확정 얼마 후 사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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