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인물/전두환

전두환(1931년~)은 12.12 군사반란의 주모자이자 제5공화국 대통령이다. 5.16 군사쿠데타 당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군사 혁명 지지 행진을 주도하면서 박정희의 눈에 띄었다. 육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만들었는데, 이들이 주도하는 세력을 통상 신군부라고 부른다. 육사 11기생이 주축으로, 기존 박정희 세력과 구분하기 위해 신군부라는 말을 사용한다.
전두환은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할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다. 12.12 군사반란을 통해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체포하면서 권력자로 부상했고, 1980년에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직하면서 정보기관을 완벽하게 장악한다.

전두환은 집권 기간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경제 관료 김재익 등을 등용하여 박정희 정권기 경제 시스템의 모순을 일정 정도 수정했고, 3저 호황이라는 좋은 경제 여건 가운데 물가 안정, 높은 경제 성장, 88 서울올림픽 유치 등의 업적을 일구기도 했다. 또 35 정책, 교복 자율화, 두발 자율화, 학원 자율화 조치 등 유화 정책을 통해 민심을 달래고자 했으며 이러한 정책은 이후 한국 사회의 문화 변동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이 억압적인 문화 정책으로 일관했던 것과는 다른 면이다.

하지만 군사반란, 5.18 무력 진압, 대통령 간선제 등 민주화에 역행하는 조치로 일관했기 때문에 집권 기간 내내 대학생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고문, 용공조작 등 수많은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 또 일해재단을 만드는 등 퇴임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각종 사전 작업을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6월 항쟁 이후 상상을 초월하는 각종 비리가 세간에 폭로돼 공분의 대상이 됐고 백담사에 은신하기도 했다. 결국 1995년 군사반란 주도, 광주민주화운동 강경 진압, 각종 비리 문제 등으로 구속돼 사형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2심 때감형, 3심 확정 얼마 후 사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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