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애도의 끝을 애도해야 하는 날들

프랭클린 씨 스타일 알지? 말투가 항상 지루하게 들려서 정말 공격적으로 말해도 괜찮은 거. 아무도 그건 못 배기지. 드디어 남자의 기세가 꺾였는데, 그가 전시실을 나서다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어. 자기 아들을 보고는 ‘작은사람들한테는 작은 힘이 어울리지... 인생이 그래."
기대했던 것만큼 사람들은 웃지 않는다. 이야기의 마지막이 무겁게 끝나자 사람들은 엄숙하게 고개를 젓고 "빌어먹을.."이라고 중얼거리며 이런 차원의 도덕적 부패에 대해 곱씹어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신발 바닥에 붙은 껌 같은 취급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 한 번씩 당신은 경비원 따위일 뿐이라는 걸 아주 확실하게 상기시켜주는 녀석들을 겪지 않고는 경비원으로 일할 수 없다. 기분이 괜찮을 때는 이런 건 모욕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기분이 바닥일 때는 때때로 이 불량배들이 의도하는 것처럼 작고 힘이 없다고 느끼고 만다. 그래도, 적어도 이런 날에는 그들을 우리가 술집에서 늘어놓는 무용담에 등장하는 악당으로 만들 수는 있다.

나는 시끄럽고 눅눅한 바 안의 작은 친밀함의 보금자리인 그곳으로 가 친구들과 합류한다. 오랫동안 뿌리쳤지만, 나는 결국 혼자가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비슷한 결의 젊은 무리를 발견했다. 우리는 모두 서른 전후로 친구들에게 하는 잘난 척은 그만두고 서로에게 기대어 격려를 받기 시작하는 나이다. 어쩌면 어려운 나이이기도 하다. 어른이 되기 위한 견습기간이 끝나가고 진정한 의미의 성인기가 다가오고 있다. 다시 한번, 그리고 아마 이번에는 진짜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우리 넷 중 일부러 미술관 경비원이 된 괴짜는 나뿐이다.

밤이 깊어지고 취기가 오르면서 우리는 덜 어리석고, 더 진지해지며, 덜 조심스럽고, 더 연약해진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우리끼리는 훌륭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늘과 그 후의 수많은 일요일에 벌어진 술자리에서 우리는 부모님의 죽음이나 건강 같은 주제들로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우리는 문예지에 루시의 시가 실린 것을 기념하며 축배를 들 것이다. 우리는 블레이크가 오픈 마이크의 밤 공연에 출연하기 전에 미리 흥에 취할 것이다. 사이먼과 루시는 바로 이런 자리에서 사랑에 빠질 것이고, 그들은 친구 사이로 돌아간 후에도 여전히 서로를 사랑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먼은 자기가 한 여자를 만났고 그녀와 함께 유타로 이사할 거라는 소식을 전할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결국 우체부 일자리를 찾고 개 몇 마리와 함께 산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이게 진짜 인생이다. 프라이버시라고는 없는 이 왁자지껄한 바에서 우리는 진짜 인생을 논하고 있다.

이런 다락방 느낌이 나는 곳에서라면 물건들의 수집 과정이 궁금해지는 건 당연지사다. 어느 날 나는 메트가 처음으로 취득한 그림 몇 점을 발견했다. 그림들의 취득 번호, 작품의 캡션 라벨 하단에 나오는 일련 번호 같은 것을 보고 눈치를 챈 것이다.
취득 번호는 대개 ‘2008.11.413‘처럼 길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743‘으로 이건 메트가 영구적으로 터를 잡기 6년 전인 1874년에 컬렉션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림들은 미술관의 설립자중 한 명인 존 프레더릭 켄셋ohn Frederick Kenset이 그린 사랑스럽고 절제된 느낌의 풍경화다. 풍경화가가 아직 제대로 된 직업이아니었던 초창기 미국에서 자란 그는 동판공 훈련을 받아 지폐를 찍어내는 판을 새기며 생계를 이어갔다. 켄셋의 일생 동안 뉴욕은 급속도로 성장했고 그는 허드슨 리버 스쿨의 예술가들과 함께하며 미국 최초의 위대한 미술관을 세우기 위한 노력에 동참했다.

하지만 시작은 그렇게 위대하지 않았다. 루브르 같은 박물관은 왕실 소장품을 기반으로 설립되었지만 메트는 일반 시민들, 즉 첫 번째 이사회의 구성원인 상인, 금융가, 개혁운동가, 예술가들의 수집품을 기반으로 삼아야 했다. 상당 기간 동안 메트는 전시할 가치가 큰 유물들을 소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계획보다는 우연에 더 가까운, 기증이나 유증과 같은 뜻밖의 횡재에 의존했다.

어쨌든 이 전시관을 사랑할 이유는 충분하다. 운 좋게도 이곳은 바로 이웃인 아메리카 전시관의 컬렉션에서 빠진 부분들을 메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악기 중 하나는 나이아가라 폭포근처에서 만들어진 이로쿼이troquisite 부족의 늑대거북 등딱지 셰이커다. 손잡이 부분에 달린 뼈가 드러난 머리와 야구 글러브 정도 크기의 등딱지가 훌륭하다. 그러나 이 셰이커에서 중요한 것은 악기 자체의 특징보다도, 신성한 의식을 행하는 동안 무용수와 하나가 되어 때로는 점점 빠르게, 때로는 점점 느리게, 때로는 시간 자체를 뒤틀기도 하면서 박자를 조절하던 악기의 기능이다. 나에게 그 악기는 장난스러운 동시에 극도로 진지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실제로는 아기들의 딸랑이와 다를 바 없이 체리씨로 속을 채운 것일 뿐이지만, 그런 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기타도 진동하는 줄이 달린 나무 상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 악기에는 유명한 라틴어 경구인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가 잘 어울리는 듯하다. 악기의 제작자가 거북의 부드러운 살을 잘라내고 파내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기묘하게도 이 두 가지 측면은 서로 연관된 것처럼 느껴진다. 당신의 죽음이 곧 도착할 것이다. 모든 것을 잊고 맘껏 흔들어라.

이 일을 거의 5년 동안 하다 보니 몇 가지 습관이 생겼다. 친한친구들이 생겼고, 내가 일하기 좋아하는 전시실과 별로 선호하지 않는 전시실을 구별하게 됐다. "인상파 그림은 왜 항상 그렇게 흐릿해 보이는 거 같아?"처럼 익숙한 대화를 엿듣게 되면 언제, 어떻게 내 의견을 말해야 하는지 안다. 달리 말하면 나는 이제 베테랑이 됐고이 일이 익숙하고 편안해졌다. 나에게 맞는 리듬에 따라 움직이며 그것을 유지하는 데는 큰 노력이 들지 않는다. 대부분의 날에 내가 맡은 일은 그저... 여느 직장의 일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이 상태가 나를 그리움과 후회로 가득 채운다.

이제 이런 순간들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슬퍼진다. 위대한 그림은 경외감, 사랑 그리고 고통 같은 잠들어 있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메자닌의 골동품들에 대한 호기심과는 다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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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인물/나혜석

나혜석(1896년~1949년)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며 특별히 글쓰기에서 발군의 재능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나혜석은 신여성의 전형이다. 일본 도쿄사립여자미술학교 서양학부에 진학했고 이곳에서 여권 사상에 눈을 뜬다. 대부분의 여성 유학생들이 자수, 조화, 수예 같은 것을 전공했는데 나혜석은 서양화를 전공했고 여성 최초로 서양화 개인전을 서울에서 열기도 했다. 1921년 <경성일보>사 내청각에서 열린 개인전은 이틀간 5천여 명이 몰렸고 70점 중 20점의 작품이 팔렸다. 하지만 이때부터 아버지와의 갈등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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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이해하려고 할 때

기둥 받침대에서 묻어난 둥그런 녹 자국들이 남은 바닥을 보면서 이 기둥들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러다 근처 하얀 벽에 구름처럼 희미하게 번져 있는 푸른색 무늬를알아본다. 이것은 소위 "경비원 자국"이라고 불리는데 값싼 폴리에스테르 근무복을 입은 수백 명의 경비원들이 아픈 발을 쉬기 위해 벽에 기대면서 탄생한 작품이다.

이 전시실의 유명 인사가 ‘뉴욕‘ 쿠로스Kouros(그리스어로 ‘청년‘을 뜻하며, 청년의 나체를 표현한 고대 그리스 조각의 장르)라고 불리는 <쿠로스 대리석 조각상 MarbleState of a Kouros>이라는 사실이 이 모든 배경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유명한 쿠로스들과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의례적인 이름일 뿐이지만 나는 내 나름의 이유로 뉴욕 쿠로스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그 이름은 마치 이 호리호리한 아테네 청년이 고국을 떠나 아스토리아의 아파트에 세 들어 살며 우리들처럼 지하철을 타고 메트로 출퇴근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나는 같은 이주자로서, 또 미술관에 매일매일을 서 있는 사람으로서 이 <쿠로스 대리석 조각상>과 동질감을 느낀다.

<쿠로스 대리석 조각상>에서는 차갑고 단단한 돌로 생명체의 형태를 빚는 작업의 대담함이 잘 드러난다. 조각가는 신과 같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동시에 풋풋하고 벌거벗은 연약한 모습을 담아내는 데에도 성공했다. 조각상 앞에 서서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쉽게 받아들였다. 이 코우로스가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나와 같은 인간의 손을 가진 예술가에 의해 조각되었다는 사실이다. 코우로스를 낳은 대리석의 시간관념으로 본다면 고대 아테네는 심장이 한 번 뛰는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30분간의 휴게 시간 동안 종이와 펜을 들고 사물함 앞에 앉아서 <쿠로스 대리석 조각상>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지 적어두려고 용을 쓰며 미친 듯이 단어들을 짜냈다. 쉽지 않다. 조각상의 완벽한 수직성에 대해 쓰면서 볼링 핀에 비유하기까지 한다.
그것은 직립보행을 하는 종들의 특별함을 자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어깨를 쫙 편 오만함... 살아 있다는 것이 제일이라는 것을 아는 생명"이라고 적는다. 이건 분명 과거의 무덤을 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유일한 사실이다. 조각상의 벌거벗은 모습도 기록한다. 어떤 화살이라도 꿰뚫을 수 있을 것처럼 연약한, 무방비 상태의 말랑함. 무덤의 주인은 어린 청년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옷을 벗기면 다 똑같은 몸뚱이를 지닌, 이 청년과 동류인 당신과 나, 우리 모두에 관해 적어두려고 애를 쓴다.

나는 16세기 수피파의 더비시를 그린 그림 앞에 앉는다. 더비시는 고행을 통해 수행하는 인물로 수도사와 다소 비슷하다. 종이에 그린 이 초상화는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그려졌다. 그림 속 주인공은 주황색 망토와 독특한 골무 모양의 모자를 쓰고 땅 위에 낮게 웅크려 있고 시선은 구부러진 코의 능선을 타고 아래를 향한다. 손에 들린 염주는 신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기 위해 매일 의식처럼 행하는 그의 노력을 상기시킨다. 쿠란은 신이 우리의 경정맥보다 우리에게 가까이 있다고 조언한다. 수피즘의 사상이란 이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 앞에 ‘앉아‘ 있다니, 너무 좋다! 그림에 적힌 아랍어 문구를 번역한 캡션을 찬찬히 읽는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내게 영혼을 준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바로 그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는 슬픔의 원천을 하늘이 내 안에 만들었는데도.

신을 향한 이 비난에 얼마나 날이 서 있는지 믿기지 않아 문장을 두세 번 반복해서 읽는다. 반대로 그림은 너무 절제되고 웅장해서 더비시의 애처로운 말투가 나의 허를 찌른다. 초상화의 얼굴에서 이제야 발견한 침울함이 내가 고민하던 몇 가지 질문들을 인간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나 뚜렷하게 느껴지는 이 남자의 번뇌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븐 아라비에게는 뭔가 아주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그는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거듭 주장하며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지식을 얻어야 한다고, 또 그에 필요한 도구도 이미 우리에게 있다고 말한다.

이븐 아라비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매우 다른 시각이 있다. 첫 번째는 현실을 인식하도록 세밀하게 조정된 의식의 일부로서 마음 한가운데 자리한 인지 능력이다. 이 거칠 것 없는 능력은 우리가 세상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깨달아 진실이 (혹은 신이) 노골적이고 가깝게 느껴지도록 한다. 이슬람 전시관의 미흐라브가 내게 일깨우는 바와 같은 시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논리적인 두뇌도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세상의 얼마나 작은 부분밖에 보지 못했는지, 그 궁극적인 또는 다면적인 현실을 해독하는 데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얼마나 제한적인지 상기시킨다. 이 관점에서 우주를 바라보면 우주의 진리는 멀리 숨겨져 있는 것처럼 보이고 진실은 불가해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븐 아라비는 위의 두 가지 시각을 조화시킬 방법은 없다고 말하며, 그것은 마치 사람의 얼굴에 두 개의 다른 눈이 있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펼친다. 우리에겐 두 가지 시각이 모두 필요하며, 심장이 뛰는 것에 맞춰 각각의 시각으로 초점을 전환할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에게는 스스로 보거나 생각하거나 느낄 것 없이 그저 기도문을 암송하는 유령 같은 기계가 되는 편이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더비시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더비시는 때로는 고통과 극도의 피로가 기다리는 극한까지 자신의 지각 능력을 밀어붙였으리라. 곧 그가 기운을 되찾고 스스로를 다시 밀어붙이기 시작할 것 같은 왠지 모를 확신이 든다.
한쪽 눈으로 그를 보며 이 신비로운 종파의 16세기 추종자와 친밀해짐을 느낀다. 다음 순간 내 심장이 한 번 뛰자, 그는 또 멀고 낯설게 느껴진다. 한 번 더 심장이 뛰고, 내 앞에 놓인 그림처럼 그는 다시 가까이 있다.

너무 많은 방문객들이 메트를 미술사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에서 배우기보다는 예술을 배우려 한다. 또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는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있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이 감히 작품을 파고들어 재량껏 의미를 찾아내는 자리가 아니라고 넘겨짚는다. 메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나는 이곳의 주된 역할이 미술사 박물관이 아니라는걸 더욱 확신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지하 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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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사건/6.15 공동선언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천명하면서 기존의 남북 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같은 해 오랫동안 금강산 관광 개발을 추진하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 떼 천여 마리를 끌고 방북하면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다. 그리고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방북하여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6.15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한다. 그동안 남한이 주장한 연합제 안과 북한이 주장한 연방제 안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 협력을 통해 통일의 기초를 만들자는 내용이다. 이로 인해 개성공단 개발, 경의선 복원, 개성관광 등 괄목할 만한 남북 경제 협력이 시작됐다. 2007년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다시 한 번 6.15 공동선언을 계승한 10.4 남북정상선언을 발표했다.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해주공단 개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건설, 백두산관광 등 다양한 형태의 교류 심화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권의 등장 이후 이러한 화해 기조는 다시 퇴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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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푸른색 근무복 아래의 비밀스러운 자아들

일을 한지 4년 차에 접어든 어느 날 아침, 출근해보니 신입 경비원들이 빈 예술품 운송 상자들이 쌓여 있는 주변에 엉거주춤 줄지어 서 있었다. 살짝 늦은 나는 서둘러 배치 사무실로 갔고 밥은 한참을 헤맨 다음 내 이름이 적힌 타일을 겨우 찾아냈다.

나는 오가는 잡담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입들을 자세히 살폈다. 푸른색 경비 근무복 위로 낯선 얼굴이 보이면 늘 이상한 기분이 든다. 물론 그것도 딱 일주일뿐이고 그 다음부터는 그 얼굴들이 사복을 입고 나타나는 게 더 이상해진다. 신입들 중 내가 보살펴야 할 사람은 누가 될지 궁금해진다.

조셉은 참을성 있고 집중력이 뛰어나며 호기심 많은 학생이었지만 마침내 낮은웃음소리로 내 말을 가로막는다. "거짓말했어요." 그가 사과한다. "월 스트리트를 잘 알아요. 거기서 오래 일했거든요."

그 정보는 대단히 흥미로운 퍼즐의 첫 조각이었다. 나는 조셉이 토고에서 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가나가 뉴욕이라면 토고는뉴저지죠." 그는 설명한다. 그곳에서 금융쪽 일을 했고 뭔가 극적인 계기로 뉴욕으로 오게 된 사연이 있었다는 사실은 행간으로 짐작할 수 있다. 뉴욕에 온 뒤에는 그가 얼버무리며 넘어가버린 또 다른 우여곡절 끝에 여기 나와 함께 서서 이 파사드를 바라보고 있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야기의 여기저기 빈 곳들을 그는 그냥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걸로 메운다.

나는 조셉을 창문 쪽으로 데리고 가서 아메리카 전시관의 중정을 내려다본다. 조셉과 나는 지금 월 스트리트 파사드를 통해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내 옆에 서 있는 이 사람과 편안한 유대감이 느껴지고 그 벅찬 마음이 내 판단력을 흐린다. 나는 평소에는 부끄러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신념들을 말하기 시작한다. 빠른 말투로 이 일에 내가 얼마나 헌신적인지를 토로한다. 영원히 경비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다른 일을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너무도 단순하고 직관적인 일이고, 뭔가를 계속 배울 수 있고, 무슨 생각이든 전적으로 자유로이 할수 있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이유를 덧붙인다.

사실 내 직업을 좋아할 뿐 아니라 내가 그 일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에 화가 난다. 이렇게 평화적이고 정직한 일에서 흠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무례하고 바보 같으며, 심지어 배신 행위라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나무 바닥과 천 년묵은 예술품에 감사하는 마음, 뭔가를 팔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구덩이를 파거나, 포스기를 두드리는 등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쪽을 택할 것이다.

포인트는 미술관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사교적인일터다. 두 명의 경비원이 일부러 좁게 만들어놓은 입구 양옆에 상당히 가까이 마주보고 서서 온종일 수다를 떨 수 있다. 물론 전혀 방해받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안내도 해야하고 상습 위반자들을 꾸짖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런 대화에서 내 몫을 다하고자 의욕을 가지고 노력한다. 그리고 서서히 대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날마다 "산타나가 요즘 꽤 괜찮죠?" 같은 말을 건네기 위해 평소보다 야구 뉴스를 더 신경 써서 확인한다. 정치, 음악, 책, 직장 이야기를 나누고 특히 다들 즐겨하는 직장에 관한 불평을 할 때면 약간 과장된 표현을 하는 것도 스스로에게 허락한다. 바로 그런 불평이야말로 유대감을 형성하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중 어느 것도 내 성격 자체를 왜곡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만의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주파수대로 들어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최고의 대화 요령은 질문, 그중에서도 기나긴 대답이 필요한 열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기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 만드는 건 아주 만족스러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받으면 처음에는 놀라지만 일단 대답하기 시작하면 할 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내 무지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몰도바요? 믿지 못하겠지만 내가 몰도바에 관해 하나도 아는 게 없다는 거 알아요?"라고 말한다. 상대방은 내가 몰도바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믿는다. 경비원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의 지식에 난 커다란 구멍들을 잘 참아낸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포인트에 서서 그들 중 어느 누구와 이야기를 나눠도 혼란스럽지 않다.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화의 물꼬는 이미 튼 셈이다.

그녀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예술과 거리가 먼 수십 명의 동료들이 잡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고, 축하하고, 웃고, 공연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 등을 툭 치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가 긍지 높은 경비원이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내가 경비원 근무복 아래 비밀스러운 자아를 숨겨오고 있었던 것일까? 흠, 물론이다. 경비원이라면 누구라도 어두운 푸른색 근무복 아래 슬쩍 숨겨둔 비밀스러운 자아 하나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다른 경비원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간다.

여기서 일하면서 나는 메트라는 웅장한 대성당과 나의 구멍을 하나로 융합시켜 일상의 리듬과는 거리가 먼 곳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상의 리듬은 다시 찾아왔고 그것은 꽤나 유혹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가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운율을 깨닫는 것은 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삶에서 마주할 대부분의 커다란 도전들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도전들과 다르지 않다.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들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과거에는 대부분 수동적인 태도로 메트와 메트의 소장품들을 일종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관찰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을 흡수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그러는 대신 예술과 씨름하고, 나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 동원해서 그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부딪쳐보면 어떨까?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덤벼볼 만한 가치가 있는 숙제 같다. 예술을 경험하기 위해 사고하는 두뇌를 잠시 멈춰뒀다면 다시 두뇌의 스위치를 켜고 자아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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