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모든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없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 삶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면 인생 자체가 해피엔딩일 수 없을 테니까.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젠가는 끝이 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결혼 생활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까? 많은 동화책이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살았습니다"로 끝나기 때문에, 당연히 결혼하면 행복하게 사는 결말만 있는 줄 알았겠지. 하지만 부부가 마지막까지 같이 살다가 같이 죽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더 큰 불행을 원하는 것과 같다.

사실은 남자 종족과 여자 종족은 전혀 다른 종이라고 본다. 그런데 외형이 같은 인간 형태라고 이 둘을 한집에 몰아넣고 같이 살아라 하는 것이 문제다. 이 문제를 인식 하고 상호 간에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를 가지고 미리미리 교육을 받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아무도 이런 인식이 없다. 학교 교육 커리큘럼에 부부간의 예의나 남녀 간 생각의 차이 등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정황을 묘사하느냐 하면 누군가 이 지구상에서 소멸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거다. 한 죽음에 따른 수많은 일들이 있고, 그것을 부부 중 남은 쪽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러니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게 인생이다. 끝에 별게 없다. 심오한 깨달음이 오거나 50년 가까이 같이 살았던 사람과 마지막 인사라도 살갑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은 허망하게 끝이 나버린다.

그러면 사는 것이 헛되기만 했는가? 어차피 태어났으니 삶은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 남자가 내게로 와서 같이 살면서 진객珍客인 아이들도 낳고, 살아가는 터전도 만들고, 사회의 일원으로 주눅들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필요 부분도 남편 덕분에 마련되어 있다.

결혼 생활에는 해피엔딩이 없지만, 인생의 끝이라고 해서 그것이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노쇠하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변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왔을 때 인생의 끝지점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우리 어머니 세대는 우리가 보기에 지나치게 아끼고 절약하는 게 몸에 배어서 답답하게 느껴지는데, 우리를 보면 아이들은 또 답답한 부분들이 있겠지. 그래도 어머니가 그렇게 아껴 모아서 목돈을 만들었다가 자식들이 필요한 때 쓰라고 주면 답답해한 건 잊어버리고 좋아하기만 한다.

비싼 거라도 지금 나에게 많이 쌓여 있으면 자연히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앞으로 살아갈 날과 모아둔 재산을 가늠해서 재산이 너무 많은 사람은 각티슈처럼 쓰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볼 만하다.

침대 옆에 둘 협탁을 살 때는 비싸고 번듯한 것을 살 뻔하다가 이제부터 사는 살림살이는 내가 죽고 난 후 아이들이 망설임 없이 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싸고 가벼운 것을 선택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자랑이었던 자개장롱을 버릴 수밖에 없었을 때 마음이 오래 안 좋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노인이 되면 구매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겠구나 싶다.

살다보면 아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국가에 내는 세금(어머니는 친구분이 국가에서 주는 노령생계비를 지원받는 걸 시샘하더니 나중에는 세금을 내는 처지가 훨씬 떳떳하다고 말씀하셨다)과 병원비라고. 그러니 아낄 수 있는 곳에서는 아껴야 한다 하셨다.

사우나나 온탕에서 몸을 데우고 냉탕에 들어가면 어디서도 대체할 수가 없는 상쾌한 기분이 든다. 반신욕을 하면서 목을 돌리고,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정도에서 스트레칭도 하고, 냉탕에서는 짧지만 수영도 한다. 어쨌든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기대로 매일 목욕탕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러다보니 목욕탕에서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감지하고, 세상의 민심이 변하는 것도 목욕탕 사우나에서 더 잘 느낀다.

외모를 가꾸고 살기도 참 힘들구나. 대책이 없던 시대에는 늙으면 늙는 대로 사는 줄 알았는데, 늙어도 대책을 잘 세우고 돈을 들이면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시대가 되고 보니 선택하기도 간단치가 않다.

세태라는 게 어찌나 빨리 변하는지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 서울서 직장생활하는 아들 부부가 다가오는 명절에 못 올 일이 생겼다고 연락하면 못 보게 돼서 섭섭하다고 말은 하지만, 속으로 잘됐다 싶단다. 가족이어도 항상 같이 살지 않는 이상 완벽한 손님이고, 손님 접대에는 부담이 많이 생긴다.

얼마 전만 해도 며느리들의 명절증후군이 어쩌고 하는 말들이 많았는데, 한해 한해 가면서 양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한편 60대쯤 되어 보이는 어떤 엄마는 자기는 남편에게 음식물쓰레기는 절대 버리지 못하게 하고 자기가 직접 한다며,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이 아주 현모양처 같아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자기는 딸과 며느리에게도 음식물쓰레기는 남자들에게 맡기지 말라고 했다는 거다. 내가 그러면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것은 지저분하고 천한 일이라 귀한 남자들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조금 망설이다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러니 지금은 모든 가치가 혼재되어 있고 오히려 여자들이 더 살기 어려워져가고 있는 것 같다.

목욕의 마지막 코스로 어떤 사람들은 얼굴에다 팩을 하는데, 오이, 들깻가루, 우유, 요구르트, 녹차 가루, 레몬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러고 보면 여자들이 자신의 피부에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지, 전국 목욕탕에서 흘러나가는 물에 먹어도 좋을 음식물 성분으로 범벅된 오수가 얼마나 될지 심히 우려스럽다.

목욕탕에 가서 씻고 약간의 운동도 하고 사람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개운해진다.

두세 시간 동안 핸드폰이나 다른 매체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게 해준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다.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과 말을 주고받고 사람들 안에서 사는 이 시간이 내겐 소중하다. 다양한 세대를 관찰할 기회를 준다. 무엇보다 건강에 좋다.

생각해보면 운동은 고통이고 목욕은 일종의 쾌락이었다. 온탕이나 사우나에서 몸을 데우고 찬물탕에 들어가는 시원함을 어디다 비하겠는가. 이후에 이곳의 헬스장이 폐쇄됐는데도 나는 목욕탕을 계속 다녔다. 기초대사량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목욕탕을 이용하는 게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본다.

어느 의사가 말하기를 자세를 항상 긴장 상태로 오래 유지하다보니까 기혈 순환이 원활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했단다. 그러니 지나치게 유난을 떨 필요는 없겠다. 다만 우리는 자세에 신경쓰지 않으면 그냥 편한 자세로 돌아가고 싶어지니까 마음속에서 한 번씩 ‘자세를 꼿꼿하게 한다’라는 주문을 외워두는 게 좋다. 나이는 얼굴의 주름이 아니라 자세에서 드러난다.

나이가 70대 중반을 넘으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살이 찌고 싶어도 잘 안 찌고, 물론 할머니도 살이 찌고 싶은데도 안 찌는 경우가 있어서 너무 왜소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신경을 안 쓰면 살이 찐다. 조물주가 생애주기를 잘못 짰다고 불평해봐야 소용없고 적게 먹든지 더 많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세월이 지나고 아무도 널을 뛰지 않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대문을 허물고, 그곳에 새 이층 양옥집을 지어서 이사를 했다. 아버지가 그 집에서 70세 무렵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84세가 될 때까지 지내시다가 자식들이 많은 서울로 옮기셨는데, 우리가 새집이라고 인식하던 그 집도 거의 50년 구옥이 되어갔던 것이다.

그런 날들이 있었다,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좋았던 날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날들이지만, 그런 날들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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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유익한 방송이 차고 넘친다. TV처럼 일방적으로 나오는 방송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볼 수 있는 이런 방송들이 있다는 게 너무 맘에 든다. 문제는 이렇게 유익하고 정성 가득한 채널에는 사람들이 별로 접속하지 않고 별 시답잖은 일회성 연예인 뉴스 같은 데는 조회 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가 살던 시대로부터 너무 멀리 와서 새로운 것들을 다 수용하기는 불가할 것 같다. 앞으로는 더 빠른 속도로 기계문명이 발전할 테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해 불가의 상황까지 가게 될 것이다.

제대로 못 먹고 살던 시대에야 부모의 임종 전 병원에 가서 비싼 주사라도 한 대 맞혀 보내드려야 마지막 효도를 다 한 것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죽음은 이미 병원에서 맞닥뜨리는 일이다. 나는 죽을 때가 되면 집에서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그러려면 이제 아무도 안 볼 때 갑자기 죽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아무튼 나는 요즘 유튜브로 세상을 보고 배우고 같이 놀기도 한다.

비단 부부간의 신의만이 의리가 아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라 할지라도 인간관계에서는 의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왔다면 내 부모의 안부를 묻고, 같은 공간에서 생활까지는 안 하더라도 근황을 파악하고, 필요시에는 마땅한 조처를 취하는 게 사람됨의 근본일 터이다.

의리를 잘 지킬 수 있는 것도 유능해야 할 수 있다. 인간관계를 잘 이어나가고 서로를 돌보는 면에서도 여자들이 유능하다. 알고 보면 의리라면 여자인 것이다.

내가 살아온 동안이 바로 우리나라가 발전되어온 적나라한 세월이어서, 돌아보면 어린 시절이 아득하고 마치 후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으로 이민 온 사람처럼 정체성에 혼란이 올 정도라 요즘 젊은이들의 행동들이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지금 나는 선진국에 살고 있다는 주문을 외우며 어쨌든 이해하고 수용해보려고 적극 노력하고 있다.

요새는 뭐 궁금한 게 있으면 유튜브부터 켜본다. 온갖 게 다 있다. 참 무슨 이런 시대가 도래했나 싶다.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 간에도 의리가 중요하다면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은 결국 의리에 있다 하겠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배움과 방법이 유튜브에 다 있다고 해서 배워지는 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이러니 옛날만큼 책이 안 읽힌다. 다 늙은 나도 그런데 요즘 젊은 아이들이 책을 잘 읽겠나 싶다. 단순히 책을 읽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관심을 끄는 게 너무 많아서 남들도 하는 것은 어쨌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현대인들이니 조용히 책을 읽고 있을 환경이 못 된다.

나는 꿈을 꾸다 잠에서 깨고 나면 거의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 그만큼 인상 깊은 꿈을 꾼 적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나는 내가 그쪽에 별 관심이 없고 복채를 자주 갖다주지 않으며 이 나이까지 살아온 것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별 탈 없이 살던 사람도 아이들이 진학할 때나 남편의 진급이나 개업을 앞두고 마음이 불안해져서 점집에 가서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니, 불확실한 시대의 불안이 우리를 이런 곳으로 이끄나보다. 사람이 살면서 왜 앞날이 궁금하지 않겠는가? 우리 어머니 세대는 신년이 되면 당연한 수순으로 신년 운수나 토정비결 등을 보러 갔고, 점집들은 이때가 제일 손님이 많아 운수가 대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옛날 사주 봐준 사람들(어머니가 한 곳에만 간 것이 아닐 거라는 뜻)이 했던 말이 틀리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 방비를 단단히 한다 하더라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올 일은 오고야 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 그렇다면 미리 알고 전전긍긍할 것도 못 되니 차라리 맘 편하게 내 꿈은 개꿈이려니 생각하는 것이 속 편하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거침없고 씩씩하고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또한 남녀 불평등의 산 증거인 남편을 쳐부술 수 있는 용감한 전사였다. 그러나 엄마가 되고 나니 사회정의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한없이 비겁해져서 남편의 부당한 처신도 감싸안고 내 바운더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만 강해져갔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다.

인생살이에서 보통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선량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제일 좋지 않나 싶다. 젊은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금수저로 태어나면 거기에 상응하는 뭔가가 되어 보여야 하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해진다. 그렇게 좋은 환경과 뒷받침에도 별 볼 일 없는 존재에 머무른다면 그 또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누구나 자기가 짊어져야 할 생의 무게가 있는 법이다.

살아보니 인생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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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했듯이 가족이라 다 좋아 사는 건 아니고, 타인은 어차피 견디어주는 거라고 했다.

글을 쓰면서 나이를 먹어야 알 수 있는 것들도 있고, 또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젊은 사람을 대변하는 글들이야 차고도 넘치지만, 그냥 보통의 주부 노릇을 오랫동안 해온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도 뭔가 할말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입으로 두말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고 변명합니다.
선처 부탁드립니다.

결국 이 모든 전통이니 가풍이니 하는 것들이 남의 집 딸들 데려다가 자기네 조상 섬긴 것밖에 안 된다는 걸 너무나 실감나게 느낀 덕분이다.

그러니 새로운 판을 짜야 옳다. 한국의 여자들은 너무 똑똑하고 교육도 다 잘 받았다. 사태 파악이 빨라 비혼자도 늘었다(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단다). 더러 남자들도 비혼을 선호하고, 결혼하고도 아이 없이 사는 풍조도 늘어간다.

시간이 한정 없이 많을 것 같지만 나는 항상 바쁘다. 저녁에 어떻게 하다보면 그냥 자정이 넘어 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니까 하루가 짧고 밥도 두 끼밖에 못 먹는데도 배는 여전히 나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이를 많이 먹고 나면 밥을 먹어도 살이 안 찐다는데, 젊어서는 그렇게 빼빼하던 나도 지금은 먹는 것을 조절해야 하니 인체라는 게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는 아끼지 않기로 작정을 한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할머니가 되면 하루종일 책만 읽고 있어도 좋겠다 싶어 이 시기가 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그래도 사람 사는 게 언제나 기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가기 마련인지라 나의 독서 생활 역시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젊었을 때는 지지부진한 일상을 유지하면서 인생에서 중대한 뭔가를 빠뜨렸거나 어딘가에 더 중요한 인생의 알갱이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갈등한 시기도 있었다. 하나 중대한 것은 바로 그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일상이 깨어져봐야 아무 일 없이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된다.

우리는 지금 나로서 사는 일보다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나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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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남의 평가가 자신의 기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자기계발 서적, 관계를 다루는 심리학 서적들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눈에 띈다. ‘매력적인 여자’란 결국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여자라는 것.

유럽에서 1년 가까이 살아보며 확신한 것이 있다. 이곳 여성들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그녀들은 언제나 자연스럽다’. 모르는 이가 다가와 말을 걸어도 당황하지 않고,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을 받았을 때도 자신이 원치 않는다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예의 바르면서도 분명하게 선을 그을 줄 안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다.

다칠 것 같아 망설이기보다는 한 번쯤은 넘어져도 괜찮다는 마음.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거절이 두려우면 부탁도, 관계도, 변화도 어렵다. 그러니 넘어지는 연습부터 시작하면 된다. 오히려 한 번도 가볍게 넘어져본 적이 없어서 더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할 말은 하자. 단, 두 가지 원칙을 전제로. 첫째, 그렇게 말할 이유와 논리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내 말을 들은 상대가 나를 싫어할까 봐 걱정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무언가를 베푸는 것과, 그 사람이 떠날까 봐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내 존엄을 희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필요하다면 논쟁도 마다하지 말자.

자신과 다른 생각을 두려워하지 않고, 남의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여자들이 결국 자신의 인생을 가장 자신 있게 살아간다. 이것이 전 세계의 여자들이 프렌치 시크를 동경하는 이유가 아닐까?

배경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에티켓’이다. 취향, 매너, 예의범절이라고도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구분할 줄 아는 선택적 안목, 때와 장소에 맞는 적절한 말과 행동이 가능한 상태, 나를 존중하고 스스로를 차별화하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공동체적 이타심까지. 이것들이 곧 에티켓의 핵심이다.

가정교육을 잘 받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상류층이 되자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일상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쓰고 노력하면 남다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배워보자는 것이다.

자신의 취향이 분명하다면,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정보를 찾고 비교하는 데 쓰이는 시간과 에너지가 줄어들 것이다. 그만큼 시행착오의 가능성도 낮아진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 익숙한 환경에 머무르면 굳이 자신의 행동을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생각을 털어놓을 때에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불편함이 줄어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물건과 서비스와 경험이 나에게 가장 큰 만족을 주는지를 알고 그에 맞는 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그 선택의 과정 자체가 이미 ‘아름다운 삶’의 한 방식이다.

‘끼리끼리는 사이언스’라는 말이 한때 유행이었다. 표현만 조금 달라졌을 뿐, 결국은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온 진리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한자어, ‘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라는 영어 속담을 떠올려보면, 나와 비슷한 생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것은 전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취향이란 것은 누군가와는 친밀해지는 역할이 될 수 있지만, 누군가와는 차별화될 수 있는 기제로서의 가치를 갖게 될 수도 있다.

결국 취향은 꾸미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방식이다. 의도하지 않아도 드러나고, 감추려 해도 엿보이며, 침묵 속에서도 말하는 언어다.

좋은 취향을 갖는다는 건 곧 좋은 삶의 태도를 갖는 것이며, 매너는 그 취향을 타인과 나누는 세련된 방식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누군가가 나를 평가하기 전에, 내가 나를 존중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알고 있다면, 그에 어울리는 태도를 선택하라. 그것이야말로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우아한 전략이며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내 안에서는 점점 피로감이 쌓였다. 그래서 한국에 가는 것이 싫어질 때도 있다. 다시 그 세계에 물들어버릴까 봐. 그런데 내가 사는 도시 제네바에는 생각보다 명품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자동차 역시 실용성을 중시해 경차들이 훨씬 자주 보인다. 프랑스의 중산층의 기준이 한국과 다르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여기는 묻지 않는다. 어떤 브랜드의 가방을 드는지보다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는지’, ‘손님이 집에 놀러 왔을 때 선보일 수 있는 요리 레퍼토리가 있는지’, ‘언어를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요즘 멋있다고 생각하는 여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이 아니다. 영어와 불어를 자유자재로 섞어 사용하며 적절한 유머와 매너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끄는 여성. 세련되고 품위 있지만 결코 과시적이지 않은 사람. 명품은 분명 취향과 이미지를 선택적으로 표현해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사람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를 지탱해주는 것들은 무엇일까? 건강한 정신과 신체, 명확하고 창의적인 사고력, 호기심 있는 포용적 태도. 그리고 그걸 드러낼 수 있는 언어 구사 능력, 유머, 센스, 매너. 행동 하나하나에서 배어나오는 절제된 품위. 설령 언젠가 돈을 모아 사고 싶은 명품을 산다 해도, 그건 남들과 비교해 더 잘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의미를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조용한 선택이길 바라는 마음이고 싶다.

물론 여전히 나는 반짝이고 예쁜 물건들을 좋아한다. 값비싸고 화려한 가방을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내 삶을, 나라는 사람을 완전히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나를 증명하는 건 가방이 아니라 그 가방을 들고 어디로 향하는지일 테니까. 명품 가방은 언젠가 닳아 낡을 수 있지만 내가 살아낸 순간과 배운 태도 그리고 품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쌓이면서 알게 되었다. 한 발짝 물러서는 태도는 때때로 자신을 위한 신중함이라는 것을. 특정한 날짜를 굳이 콕 집어 말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는 그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아쉬울 것 없는, 스쳐 지나가도 무방한 관계였다는 것을.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나이가 채워질수록 오히려 느슨하고 얇고 긴 태도가 나를 지켜주는 방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은 그것을 일찍이 현명하게, 조용히 실천하고 있던 것이다.

프랑스 친구들과 함께하다 보면 가장 자주 들려오는 말들이다. 그들의 대화는 늘 여지를 남긴다. 어릴 적의 나라면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바라본다. 그것은 답변을 미루는 습관이 아니라, 오히려 열린 태도라는 것을 알기에. 흑과 백으로 단번에 잘라내지 않고 그 사이에 무수히 존재하는 회색의 스펙트럼을 인정하는 방식. 그래서 대화는 더 풍성해지고, 서로에 대한 이해는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애매하다는 건 하나의 확실한 한 가지의 답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완벽하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이기도 하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도 비슷하지 않을까? 너무 딱 부러지고 확실한, 그러나 단조로운 이미지를 가진 사람보다, 불완전함을 지닌 사람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시선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불완전함은 방치가 아니라 자유로움이고, 그 자유로움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을 지켜내는 방식이 된다.

나는 한국에서도 나이에 따라 말투와 발언권이 정해지는 연령주의적 문화가 늘 불편한 사람이었다.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윗사람에게 반대 입장을 내세우면 말대꾸가 되고, 부당하고 불편해도 침묵하면 ‘예의가 바르다’는 칭찬을 듣는 이상한 분위기. 한국어의 존댓말은 관계를 위로 쌓아 올리는 방식이지만, 프랑스어의 존댓말은 관계를 옆으로 넓히는 방식이다.

비슷한 일들을 몇 번 겪고 나니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정해진 틀에 따라야 하는 조직에서 나는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그건 나를 위한 결정이기도 했지만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일찌감치 ‘취업’이라는 선택지를 내려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위계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 문화와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는 프랑스 문화의 차이는 언어뿐 아니라 비언어적인 제스처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한국의 존댓말 문화가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럽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은 한국 여행 때 경험한 ‘두 손 문화’나 ‘깊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모습’ 등 한국의 세심한 예의범절에 깊은 인상을 받고 놀랐다고 했다. 두 문화 모두 존중받아 마땅한 각자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어느 한쪽이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무리 예의를 차려 포장해도 상식적이지 않고 무례한 내용이 담겼다면 그 말은 상처를 남기는 흉기가 된다. 반대로 조금 투박하고 거칠더라도 상대를 향한 충분한 이해와 배려가 담긴 말이라면 그 말은 누군가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향기를 품을 수 있다. 나이를 초월해 내게 진심을 보인 프랑스의 노교수와 내가

당신의 품격은 말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으로 결정된다. 반말이 무조건 나쁘고 존댓말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사회가 규정한 관습을 초월해 사람 대 사람으로 상대를 상식적으로 대하는 태도. 그리고 반대로 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경력이 낮은 사람이 조금 불친절하게 말해도 그 표현에 휘둘리지 않고 그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경청할 수 있는 태도.

서울. 이 도시는 ‘눈치’라는 단어 하나로 많은 게 설명된다. 말하지 않아도 읽어야 하고, 말하는 대신 둘러 말해야 하며,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되기도 한다. 나를 너무 드러내지 않고, 분위기에 맞게 조율할 줄 아는 사람이 환영받는 도시. 혼자보다 함께, 튀기보단 묻히는 미덕. 그 안에서 우리는 사회가 정한 기준에 ‘예쁘게’ 맞춰진다. 유행하는 스타일에 나를 적당히 맞추고, 다듬고, 눌러낸다. 그 어딘가에는 조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유교의 그림자가 서려 있다. 조용히, 부드럽게, 배려하는 척하며 나를 드러내지 않는다.

파리. 여긴 시작부터 다르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않는다. 아니, 알아도 굳이 챙겨주지 않는다. 파리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명확하게 꺼내야 살아남는 도시다. 처음엔 조금 버거웠다. 침묵과 경청이 호감 가는 사람이었던 한국과 달리 여기서는 자기 색깔이 없는 연약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거리감이 오히려 편해지기 시작했다. 감정은 명확히 표현되고, 논리는 예의의 다른 말이 된다.

느림은 나를 훈련시켰다. 즉각적인 반응이 없어도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음을, 조금 늦어도 인생이 망가지지 않음을, 기다림이 때로는 신뢰가 될 수 있음을. 서울에서는 숨이 막혀 도망치고 싶었던 그 침묵이 여기서는 안정감이 되기도 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두 가지 서로 다른 길을 모두 걸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빠른 길, 느린 길. 곧게 펼쳐진 도로, 구불구불 굽어진 도로. 어릴수록 시공간이 자주 바뀌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세계를 열어나가는 일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 감각이, ‘당연한 것’이 되어야 한다.

다 경험해 보자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선택지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리움의 대상은 도시가 아니라, 그 도시가 나에게 허락했던 여유롭고 가벼운 마음결이었다는 것을. 결국 내가 어디에 살든, 그 결들은 내 삶의 리듬이 되어 따라올 것이다. 제네바에서 배운 느긋함, 파리에서 배운 단단함, 서울에서 배운 예민한 감각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품은 채, 앞으로도 나만의 속도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나갈 것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 나만의 삶의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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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를 보지 않는 자연스러움 속에는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나는 감당할 수 있다’는 여유와 자신감이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농담 하나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태도의 총합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한마디 농담으로 분위기를 단숨에 바꾸는 힘은 부드럽게 상황을 주도하는 리더십으로 드러나고, 맥락에 맞는 언어를 택할 줄 아는 감각은 지성의 매력으로 이어진다.

내가 불편했지만 그냥 웃고 넘긴 일들. 그리고 다음에 그런 일이 또 온다면, 조금 더 내 마음이 편해지는 쪽으로 반응해보기로 하자. 처음에는 서툴러도 괜찮다. 마음이 기억할 것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친절보다, 당신 마음이 원하는 온도에 맞춰 살아도 괜찮다. 너무 착해 보이지 않아도 된다.

서유럽의 공기는 한국보다 한결 느슨하다. 그 느슨함 속에는 농담처럼 가볍고, 재치처럼 날렵한 결이 깃들어 있다. 사람들은 낯선 이를 경계하기보다 순간을 함께 웃어넘길 여유를 더 소중히 여긴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니 낯섦이 곧 부담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작은 농담 하나가 관계의 문을 열어준다.

그 가방을 쓸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오늘도 그 가방 안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 작은 가방 하나를 채우기 위해서 필요한 건 예상외로 많았다. 물건이 아니라, 오히려 물건을 넘어선 것들. 어디를 향하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체력. 혼자서도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는 강한 마음가짐과 독립심. 마지막으로 나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돈.

개인들의 크고 작은 배려의 순간들은 제네바라는 도시의 풍경과도 맞닿아 있다. 제네바의 시스템은 이미 배려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트램의 문이 열리면 바닥과 선로가 매끄럽게 이어져, 유모차를 밀던 사람이나 휠체어를 탄 사람 모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곧장 오르내릴 수 있다. 망설임 없이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의 리듬은 한결 가벼워졌다. 카페와 레스토랑 어디에서도 ‘노키즈존’을 찾아볼 수 없다. 아이가 울고 유모차 바퀴가 드르륵 지나가고 작은 아이가 의자에 올라 잠시 소란을 피워도 별다른 제재는 없다. 오히려 옆자리에 앉은 이가 장난감을 건네주거나 카페 주인이 아이에게 미소를 건네는 장면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그렇게 작은 따스함이 겹겹이 쌓인 풍경은 이 도시의 공기를 한결 더 여유롭게 만들어준다.

서울의 카페에 앉아 있으면 사정은 다르다. 유리창 너머로만 계절이 흘러가고 바람은 차단된 채 스쳐 지나간다. 의자 배치 또한 대부분 정면으로 마주 앉아야 하니, 눈길을 피할 수도, 아무 말 없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지나칠 수도 없다. 그래서일까? 그 부재 속에서 더욱 짙은 아쉬움이 피어오른다. 제네바의 사람들 속에 묻어나는 여유로움은 어쩌면 이런 테라스의 공기와 나란히 앉은 시선에서 배어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Art de vivre’, 삶을 예술처럼 살아내는 방식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런 풍경 속에서 나는 오늘도 조금은 힘을 빼고 살아도 괜찮다는 용기를 얻는다.

이때 다시 한번 확신했다. 우아함은 값비싼 장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세심한 태도 속에서 가장 깊게 드러난다는 것을. 그런 순간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누군가에게 내어줄 담백한 여유만 있다면 그 순간 이미 우리는 가장 우아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알고리즘이 골라주는 익숙한 관심사 대신, 가끔은 로그아웃한 채로 낯선 영상들을 눌러본다. 혹은 전혀 다른 취향을 가진 또 다른 계정을 만들어, 내가 평소라면 지나쳤을 분야를 기어이 마주하도록 한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좁아진 시야를 흔들어 보는 일, 어쩌면 그것이 한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다양성의 연습’일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불쑥 건네는 한마디 농담에는 단순한 웃음 그 이상이 담겨 있다. 삶이 늘 빡빡하고, 어깨가 잔뜩 굳어 있고, 미간이 날카롭게 접혀 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태도다.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상황에 맞는 농담을 스르르 흘려보낼 수 있다는 건 긴장이 풀려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긴장이 풀렸다는 건 더 이상 상대의 표정이나 반응을 지나치게 계산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시간이 쌓이면 이상하게도 무거워진다. 몇 년밖에 살지 않을 곳이라 생각했던 제네바에서 어느새 짐이 늘어나 있었던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도 처음엔 가벼웠던 마음이 점점 무게를 더해간다. 버리고 또 버려도 자꾸만 쌓이는 물건처럼, 언제 놓아야 할지 모른 채 기약 없이 붙잡고 있는 감정들이 마음 어딘가를 차지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필요한 건 무엇일까. 언젠가 모든 걸 정리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들고, 어떤 마음으로 떠날 수 있을까.

언젠가 닥칠지 모르는 이별이나 변화를 무섭게 여기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가방 하나로 끝낼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건 생각보다 많았다. 언젠가 내가 홀로 서야 할 날이 오더라도 그저 조금 쓸쓸한 한숨 정도만 내뱉고 일어설 수 있기를.

제네바의 분위기가 풍요롭게 느껴지는 건 단지 다양한 언어가 공존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민족적 뿌리를 가진 이들이 함께 살아가며 만들어내는 다층적인 배경도 한몫할 것이다. 자연스레 우리나라와 비교가 되었다. 한국어 하나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회 속에서, 우리의 다양성이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는 말처럼, 단일한 언어가 우리 사회의 감각과 취향, 심지어 소비의 패턴까지도 닮아가게 한 것은 아닐까?

이곳은 ‘대다수가 공감하는 단 하나의 우상’을 세우는 것보다, 여러 조각의 퍼즐로 구성되어 누구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풍경을 보여주는 편이 더 설득력 있는 곳이다. 이방인을 ‘틀린 사람’으로 불편하게 쳐다보지 않고 그저 ‘다른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였다. 그 점이 참 편안했다. 제네바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들은 언제나 ‘너는 왜 나와 다르지?’라는 경계심 섞인 태도가 아니라 ‘너는 어떤 사람이지?’라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줬다. 그 이후로 나는 광고판을 볼 때마다 그 속에 담긴 ‘다름의 일상’을 읽게 되었다.

적절한 농담은 단순한 말의 장식이 아니라, 에티켓의 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침묵하거나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것은 무례로 해석될 수 있고, 이와 반대로 적당한 유머와 재치 있는 말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이자 세련된 태도로 간주된다.

프렌치 문화가 중심인 이곳에서는 ‘시간을 지킨다’는 것이 칼같이 맞추는 정시 개념이 아니라, 상대의 사정과 상황을 배려하는 일종의 유연함에 더 가깝다는 것을.

진정한 우아함은 자신의 여유로움으로 다른 이의 하루를 조금이나마 편안하고 따듯하게 만들어주는 순간에 드러난다고 말이다.

‘무례함’을 경계하느라 정작 나 자신에게는 예의 없게 굴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사과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는, 결국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드러낸다. 모든 감정을 내보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불편했다면, 그 감정을 잠시라도 정면으로 마주해보자는 말이다.

정말 아끼고 싶은 것, 욕심내도 괜찮은 것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시간을 들일 만큼, 돈을 쓸 만큼 내 마음이 가는 것. 그런 걸 마음속에서 꺼내 조용히 다듬어본다.

사람을 가볍게 대한다는 건, 적당히 선을 긋고 마음을 덜 쓰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 나름대로의 삶의 무게를 인정하고, 괜히 내가 더 얹지 않겠다는 마음에 가깝다. 우리는 각자 이미 충분히 많은 것들을 짊어지고 있으니까. 굳이 더 무겁게 만들지 않아도 될 이유는 충분하다. 나 역시 누군가의 어깨 위에 또 다른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 괜히 서로를 짓누르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것. 그렇게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조금 더 따뜻한 거리에서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다.

괜히 눈치 보지 않고, 내 선택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배짱 하나쯤은 있다고. 이 정도 배짱은 부릴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된 삶, 나는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짜 자유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제는 그 빛의 방향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나 자신을 환하게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면, 요즘은 그 빛을 옆으로 돌려 타인을 비추고 있다.

이곳 제네바의 테라스 카페 문화는 프랑스를 닮아 있다. 인도와 구분이 어려울 만큼 도로변에 길게 늘어선 테이블들은, 천장의 답답함 대신 하늘과 바람, 계절의 공기를 대화의 배경으로 삼는다. 자연과 함께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의 태도는 한결 가벼워진다. 테이블의 구조 또한 두 사람이 정면으로 마주하는 대신, 나란히 앉아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 이 배치는 대화에 긴장을 덜어내고 침묵마저도 편안하게 만든다. 길을 오가는 행인과 도시의 풍경이 마치 대화에 초대된 듯한 개방감까지 더해진다.

프랑스는 이와 다르다. 공식적인 자리, 이를테면 회사 면접이나 회의와 같은 상황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시간 준수가 필수지만, 사적인 모임에서는 오히려 5~10분 늦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너무 일찍 도착하는 것은 준비 중인 호스트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로 여겨져, 약간의 지연이 일종의 ‘에티켓’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면서도 스위스에서는 그 감각이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스위스 사람들은 언어만큼은 프랑스와 공유하지만, 시간에 대한 태도는 오히려 독일식에 가깝다. 약속에 늦는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신뢰를 깨뜨리는 행위로 여겨지고, 실제로 ‘정확함’은 이 나라의 미덕처럼 작동한다.

실제로 프랑스 사람들은 식사 예절에서 ‘농담을 할 줄 아는 능력’을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꼽는다. 그들의 식탁은 단순히 허기를 달래는 자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확인하고 교양을 드러내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새로운 사회에 스며든다는 것은 언어 시험 점수로만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공유하는 매너와 태도를 몸에 새기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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