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사건/관동대학살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벌어진 대학살 사건. 8천 명에서 3만 명의 조선인들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동대학살은 조선인뿐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을 향한 탄압도 병행됐다. 1920년대로 들어오면서 일본에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아나키즘, 사회주의 같은 급진 사조가 유행했기 때문에 사회 혼란을 이용하여 진보 세력을 무력화하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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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명문장/어우동 사건

조선 성종 때는 유교 윤리가 확립돼가는 중요한 시점이었다. 그런데 양반댁 규수였던 어우동이 신분을 따지지 않고 여러 남성과 어울리고 심지어 관리나 유학자들과 문란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당시 심각한 사회적 풍파를 일으켰다. 유교 국가에서 부도덕의 상징이었던 어우동은 1980년대 성해방의 상징처럼 다루어지는 등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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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일의 출발점은
바로 가정이다

오늘날 우리는 아주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이념적 편 가르기가 일상이 됐고, 국지전이 끊이지 않으며, 핵과 방사능의 위협이 사라지지 않고,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을 헤치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따뜻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서로 돕고, 헌신과 조화를 바탕으로 하는 삶이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만 같다.

건전한 정신과 인간다움이라는 희망의 싹에 양분을 주고 잘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에게는 환상적인 기술 개발 노하우와 검증된 지적 능력이 있다. 실질적으로 모든 것을 대상으로 탐구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방법도 알고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런 능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인류에게 도덕적·윤리적·인본주의적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에 동참할수록 이 멋진 지구와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삶을 진정으로 만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이제 그 멋진 여정을 시작해보자.

버지니아 사티어

가족 간에 존재하는 힘의 관계, 친밀감, 자율과 신뢰, 소통 방식 등이 그대로 세상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가정을 바꿔야 한다.

〈 평온을 비는 기도 〉
주여, 우리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 라인홀트 니부어Reinhold Niebu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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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이룰 수 있는 무언가보다 더 큰(그리고 더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무언가가 안에 자리 잡으면 기분이 좋다.퀴팅은 그 안락함을 놓아버린다는 뜻이다. 퀴팅을 통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외롭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과학에서 퀴팅은 매우 중요하다. 과거의 잘못된 개념에 집착하면 옳은 개념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퀴팅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단 하나의 행동강령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퀴팅이 즉각 거부당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리고 끈기의 힘을 비판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는 세상의 부당함에 점점 무감각해질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을 끔찍한 운명이라며 수긍할 수 있고,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여 그것을 적대시하며 거부하고 끊어내고 물리치고 억눌러야 하는 대상으로 대할 수 있다.
아니면 그것과 화해하고 그것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고 삶의 일부로 마주할 수도 있다.
여러분은 퀴팅을 받아들일 수 있다.
퀴팅과 함께 춤을 출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필요한 만큼 자주 그만두지 않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퀴팅은 부당한 오명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기하기로 정한 뒤 그 결정이 뇌리를 떠나지 않고 괴롭힐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늘 의문을 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점점 공개적인 그만두기에 빠져드는 상황에서, 유명인들 역시 그러한 관행을 포기하지 않았다. 생방송 인터뷰 도중에 과하게 화를 내며 나가버리는 전통은 여전했고 그 어느 때보다 불쾌해졌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 사실은 해를 입히는 게 분명한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망설이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됐든 그만두겠다는 결정은 익숙하고 예측할 수 있는 곳에서 벗어나 새롭고 낯설고 아주 위험할 수도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아주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성공적인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정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에 관한 결정, 언제까지 머물다 언제 떠나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온라인 세계에서 느끼는 자유에 다소 과할 정도로 반응하는지도 모른다.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에서 마침내 해방되어 더 큰 세계의 일부라는 개념에 아직 적응 중인 우리는 지나치게 경계하기보다 너무 개방하고, 지나치게 신중하기보다 너무 솔직하기 쉽다.

퀴팅은 무엇을 포기하느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만둔 이후에 처하게 될 황무지 같은 상황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주변 환경이나 관계에서 받는 위로는 더 이상 없다. 그리고 다른 환경에 속하려고 하는 동안에도 처음 얼마간은 방황할 수 있다. 심지어 붕 뜬 느낌 때문에 불안할 수도 있다. 더 이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퀴팅은 마지막 수단이자 최후의 노력이다.

하지만 상사가 썩을 놈이라거나 배우자나 연인이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면, 그런 다음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다면 공개적인 그만두기에 적용될 만한 몇 가지 원칙을 고려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첫째, 리처드 말고 에드워드처럼 하라.
둘째, 공개적으로 그만둘 때를 구분하라.

퀴팅이 완벽한 해결책처럼 보일 수 있다. 미래라는 요인, 정서적이고 실용적인 자양분을 제공하는 동료들이 없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미래를 고려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공개적으로 그만두는 것이 모든 상황에서 가장 나은 선택은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건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퀴팅은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할 자원이다. 패배가 아니라 결정이고 전환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막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방식으로 퀴팅을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우리는 남들이 그만두는 것을 지켜보든 내가 직접 그만두든, 공개적으로 끈을 잘라내는 생동감 넘치는 결말에 자꾸 끌린다.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힘든 기억과 어려운 상황에 대응하는 법을 개발하여 자신을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 우리는 자기 행동의 효능을 평가하며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애당초 옳은 길에 접어들었는가?

퀴팅은 보나노가 ‘유연성 배열’이라고 부르는 기법의 마지막 단계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정 상황을 평가하고 그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현재 사용하는 방법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한 다음, 효과가 없으면 적절한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상황 때문에 해를 입어서도 안 되지만 그에 대처하는 메커니즘 때문에 피해를 보아서도 안 된다. 현재의 조치가 효과 없는 것으로 입증되면 그것을 바꿔야 한다. 그만두거나 다른 것을 시도해야 한다.

퀴팅을 고려할 때 작용하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그만두면 공동체를 떠나야 한다는 문제다.
공동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삶에 맥락이 생기고 자신을 단순히 우주를 떠도는 개별적인 인류가 아닌 그 이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공동체는 서로를 묶어주는 접착제이자 연결고리, 끈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단일 개체로서 우리는 너무 가볍고 하찮아서 지표면에서 당장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그만두겠다고 결심함으로써 자신에게 자유를 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꼭 필요한 무언가를 빼앗을 수도 있다. 그 안정감은 때로 발목을 잡기도 하고 때로는 편안함을 주기도 한다. ‘어딘가에 속하지 않는 것’ 역시 장단점이 있다.

두 번째 조언은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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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학문•철학/인권

인류 가족 모두의 존엄성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다. 인권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만행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했던가를 기억해보라. 인류의 양심을 분노케 했던 야만적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 유엔총회는 ( ・・・) 지속적인 국내적 국제적 조치를 통해 회원국 국민들의 보편적 자유와 권리신장을 위해 노력하도록 모든 인류가 ‘다함께 달성해야 할 하나의 공통기준‘으로서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한다.

1948년 유엔총회가 제정한 ‘세계인권선언‘ 서문 중 일부다. 인권에 대한 인식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난 100년간의 한국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인권에 대한 인식은커녕 인권 유린의 역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일제 강점기 때는 징용, 위안부 같은 강제 동원이 인권 유린의 전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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