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이룰 수 있는 무언가보다 더 큰(그리고 더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무언가가 안에 자리 잡으면 기분이 좋다.퀴팅은 그 안락함을 놓아버린다는 뜻이다. 퀴팅을 통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외롭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과학에서 퀴팅은 매우 중요하다. 과거의 잘못된 개념에 집착하면 옳은 개념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퀴팅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단 하나의 행동강령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퀴팅이 즉각 거부당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리고 끈기의 힘을 비판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는 세상의 부당함에 점점 무감각해질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을 끔찍한 운명이라며 수긍할 수 있고,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여 그것을 적대시하며 거부하고 끊어내고 물리치고 억눌러야 하는 대상으로 대할 수 있다.
아니면 그것과 화해하고 그것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고 삶의 일부로 마주할 수도 있다.
여러분은 퀴팅을 받아들일 수 있다.
퀴팅과 함께 춤을 출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필요한 만큼 자주 그만두지 않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퀴팅은 부당한 오명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기하기로 정한 뒤 그 결정이 뇌리를 떠나지 않고 괴롭힐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늘 의문을 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점점 공개적인 그만두기에 빠져드는 상황에서, 유명인들 역시 그러한 관행을 포기하지 않았다. 생방송 인터뷰 도중에 과하게 화를 내며 나가버리는 전통은 여전했고 그 어느 때보다 불쾌해졌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 사실은 해를 입히는 게 분명한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망설이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됐든 그만두겠다는 결정은 익숙하고 예측할 수 있는 곳에서 벗어나 새롭고 낯설고 아주 위험할 수도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아주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성공적인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정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에 관한 결정, 언제까지 머물다 언제 떠나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온라인 세계에서 느끼는 자유에 다소 과할 정도로 반응하는지도 모른다.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에서 마침내 해방되어 더 큰 세계의 일부라는 개념에 아직 적응 중인 우리는 지나치게 경계하기보다 너무 개방하고, 지나치게 신중하기보다 너무 솔직하기 쉽다.

퀴팅은 무엇을 포기하느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만둔 이후에 처하게 될 황무지 같은 상황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주변 환경이나 관계에서 받는 위로는 더 이상 없다. 그리고 다른 환경에 속하려고 하는 동안에도 처음 얼마간은 방황할 수 있다. 심지어 붕 뜬 느낌 때문에 불안할 수도 있다. 더 이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퀴팅은 마지막 수단이자 최후의 노력이다.

하지만 상사가 썩을 놈이라거나 배우자나 연인이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면, 그런 다음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다면 공개적인 그만두기에 적용될 만한 몇 가지 원칙을 고려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첫째, 리처드 말고 에드워드처럼 하라.
둘째, 공개적으로 그만둘 때를 구분하라.

퀴팅이 완벽한 해결책처럼 보일 수 있다. 미래라는 요인, 정서적이고 실용적인 자양분을 제공하는 동료들이 없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미래를 고려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공개적으로 그만두는 것이 모든 상황에서 가장 나은 선택은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건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퀴팅은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할 자원이다. 패배가 아니라 결정이고 전환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막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방식으로 퀴팅을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우리는 남들이 그만두는 것을 지켜보든 내가 직접 그만두든, 공개적으로 끈을 잘라내는 생동감 넘치는 결말에 자꾸 끌린다.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힘든 기억과 어려운 상황에 대응하는 법을 개발하여 자신을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 우리는 자기 행동의 효능을 평가하며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애당초 옳은 길에 접어들었는가?

퀴팅은 보나노가 ‘유연성 배열’이라고 부르는 기법의 마지막 단계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정 상황을 평가하고 그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현재 사용하는 방법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한 다음, 효과가 없으면 적절한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상황 때문에 해를 입어서도 안 되지만 그에 대처하는 메커니즘 때문에 피해를 보아서도 안 된다. 현재의 조치가 효과 없는 것으로 입증되면 그것을 바꿔야 한다. 그만두거나 다른 것을 시도해야 한다.

퀴팅을 고려할 때 작용하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그만두면 공동체를 떠나야 한다는 문제다.
공동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삶에 맥락이 생기고 자신을 단순히 우주를 떠도는 개별적인 인류가 아닌 그 이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공동체는 서로를 묶어주는 접착제이자 연결고리, 끈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단일 개체로서 우리는 너무 가볍고 하찮아서 지표면에서 당장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그만두겠다고 결심함으로써 자신에게 자유를 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꼭 필요한 무언가를 빼앗을 수도 있다. 그 안정감은 때로 발목을 잡기도 하고 때로는 편안함을 주기도 한다. ‘어딘가에 속하지 않는 것’ 역시 장단점이 있다.

두 번째 조언은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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