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인 순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다. 다반사가 매순간 펼쳐지면서 사람은 누구나 시한부(時限附)인생을 산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사람은 누구도 자신에게 남은 세월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 중 하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직선주로를 전속력으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목표를 달성하는 여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마주침을 귀히 여기기보다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느끼는 만족감이나 성취감 중심으로 살기 때문이다. 지금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질주야말로 목숨까지 앗아가는 원흉이 된다. 목표 자체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목표를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디딤돌로 생각하지 않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목표달성 자체만을 강조하고 그 결과에 몰두하다 보니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한 마주침이나 부산물이 지니는 소중한 의미를 간과하거나 무시해버린다. 목표를 달성하는 일 말고도 일상다반사는 엄청 많다. 사소한 하루 일과에서도 무불경의 자세로 살아가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존재하는 모든 게 경이로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다 결정적으로 의미심장한 순간이다.
목표는 보여주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목표달성은 나의 존재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행복’의 원천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지금 그 일을 하는 과정에 애정과 관심이 없는 사람이 결과중심으로 일을 하면 쉽게 지치고 중도에 포기하거나 사는 것 자체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실이 큰 실패나 좌절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도전하면서 그 일을 즐기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서 생기는 우연한 부산물이 산물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능가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올라가는 기술이 아니라,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더 원대하고 심장 뛰는 숭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려가는 기술이다. 잘 내려가지 못하면 다시 올라갈 수도 없다. 올라가는 속도보다 내려가는 밀도가 행복감과 직결되어 있다. 내려가는 연습은 지금까지 배운 게 더 이상 통용되지 않으니 새로운 생각(rethinking)과 새로운 기술(reskill)로 무장하는?연습이다.
지금은 얼마나 빨리 올라가서 목표를 달성하느냐보다 얼마나 더 오랫동안 힘든 상황을 이겨내면서 다시 올라갈 힘을 바닥에서 기르느냐가 중요하다.
행복은 ‘속도’에서 오지 않고 ‘각도’와 ‘밀도’에서 온다. 그런데 지금껏 목표달성 속도가 빨라지면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각도는 좁아지고 매순간 삶의 충만감을 느끼는 밀도감 역시 떨어져왔다.
속도를 높이면 주님을 빨리 영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각도가 좁아지는 이유는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달리다 주변의 다양한 행복을 즐길 수 없다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속도를 줄이고 각도를 넓혀야 한다. 각도를 넓혀야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는 다른 삶의 가능성도 볼 수 있다.
행복은 속도가 아니라 밀도에서 나온다. 밀도는 우리가 매순간 느끼는 삶의 행복감이다. 전속력으로 달려서 목표를 달성하면 행복해야 하지만, 다른 목표가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가기를 요구한다. 목표는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마지막 골인 지점이 아니다. 또 다른 목표를 향해 지나가야 할 간이역에 불과하다. 목적지를 향한 질주야말로 행복이 널려 있는 수많은 간이역을 지나치게 만드는 원흉이다.
나는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목표를 달성하다 목숨이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핵심가치(열정, 혁신, 신뢰, 도전, 행복)대로 매일 생각하고 행동하며 작은 스토리를 만드는 데 전력투구한다.?5가지 핵심가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만든 스토리를 근간으로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행복한 인생을 사는 데 주력한다. 사람은 목표가 주는 숫자보다 숫자에 담긴 의미에 목숨을 걸 때 행복해진다.?5가지 핵심가치는 내가 사람을 판단하거나 어떤 일을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기준이자 규범이다. 물건을 사는 욕망에 끌려다니기보다 핵심가치 관련 경험을 사서 어제와 다른 감각적 각성체험의 얼룩과 무늬를 만들어나가는 삶을 사는 게 행복한 삶이다. 목표달성하다 목숨 끊기지 말고 목표달성하는 과정에서 행복하게 사는 한 가지 방법이 바로 핵심가치 중심 경험을 사는 것이다.
예전과는 달리, 지금 밥을 굶는 사람은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밥 한 그릇 먹는 일이 대수롭지 않게 됐다. 누구에게든 사줄 수 있고, 얻어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절박한 사정에 몰렸을 때의 따뜻한 밥 한 그릇은 전혀 다른 얘기다. 그것은 강력한 상징이다. 생존의 확인이며 위안이자 희망이다.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희망을 발견한다. 희망의 불씨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다시 일어나 걸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싹튼다. 밥 한 그릇이 때로는 우리들의 운명을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이럴 때의 밥은 ‘단순한 밥 한 그릇’을 뛰어넘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의 성취와 실패는 평범하거나 비범한 어느 날의 양적 축적이 낳은 질적 반전이다.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의 역경이 인생 파란을 일으키는 경력으로 모습을 바꿔 나타난다. 지금 여기서 겪는 곤경이 어느 날 갑자기 맞이하는 풍경의 배경이 되는 셈이다. 지금 인생이 막막하다는 이야기는 당신 삶에 또 다른 서막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조(前兆)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낱말. 신뢰. 서로 믿어야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렇게 단순한 진리를, 왜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범망경(梵網經)》에서는 인연을 맺은 사람끼리의 만남을 ‘겁(劫)’이라는 단위로 설명한다. 겁은 천지가 한 번 개벽하고 다음 개벽이 시작될 때까지의 시간을 뜻한다고 한다. 1,000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집채 크기의 바위를 뚫는 시간이며, 100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옷자락에 사방 40리 크기 바위가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다. 사람끼리 옷깃이 한번 스치려면 500겁, 부부가 되려면 7,000겁, 부모 자식 인연이 되려면 8,000겁, 형제자매 인연에는 9,000겁이 각각 필요하다고 한다.
오랜 세월 산을 탔다는 사람들도 정상에 오른 것을 ‘산을 다 왔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 온 것’이 아니다. 정상에서 머물러 살 수는 없다. 따라서 꼭대기에 올랐다는 것은 ‘절반에 이르렀다’에 가깝다. 그만큼을 다시 내려가야 함이다. 아무리 높고 귀한 자리라도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 대통령도 임기가 지나면 물러나야 하고 기업의 최고경영자도 내려가야 한다. 정상은 종착점이 아닌 반환점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정상에 머물러서 살 수는 없다. 언젠가는 내려가야만 한다. 내려가기를 끝끝내 거부하고 떼를 쓴들 비참해질 뿐이다. 악착같은 사람들의 말로가 좋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인만큼 자존심 강한 사람들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데 익숙한 사람이 많다. 낯선 대상을 발견하면 경계하다가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되면 깔보기 시작한다. 높은 곳을 지향하니까, 눈높이도 높은 곳에 올라 있는 것이다.
내려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사회적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고 내려가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려가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겨진다. 기업들은 오로지 성장을 예측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었다. 어쨌든 지금은 내려가는 길. 자존심이 상한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더 이상 오르막길이 없기 때문에 내려가는 것뿐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