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물론 우리는 죽은 자들을 기리지만 그렇게 기리면서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을 훨씬 더 죽어 있게 만든다. 하지만 죽은 자들을 기쁘게 하면 그들이 다시 살아난다. 그게 말이 될까? 내가 EF를 기쁘게 하고 싶다는 것은 옳았고 나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건 옳았다. 그리고 나는 약속을 지켰다. 다음이 내가 쓴 것이다.

율리아누스는 공개적으로 폭력적 방법에 반대했다. "나는 갈릴리인들을 인도적으로 부드럽게 상대하기로 결심했다. 어떤 식으로든 폭력에 의존하는 것은 금한다……. 사람을 설득하고 가르치는 일은 주먹질이나 모욕이나 고문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이성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그렇게 중요한 문제에서 잘못을 범하는 불운한 사람들에게는 증오보다는 연민을 느껴야 한다".
이것은 원칙인 동시에 실용주의이기도 했다. 기적과 순교는 초대 기독교가 잘 팔리게 한 두 가지 중요한 장점이었다. 종교를 위해 죽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향력 있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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