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구두
헤닝 만켈 지음, 전은경 옮김 / 뮤진트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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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완독

첫문장,
추우면 외로움도 깊어진다.


글의 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책도 마음에 들지 않기 마련인데
이 책은 주인공은 마음에 들지 않고 책은 마음에 들어
작가가 마음에 쏙 들어온 책이다.
외로움과 황망함이 어느 바보 인생의 결과물이라니
작가도 싫어한 주인공...
근데 그럴 수도 있을 주인공 ...

7p
예전에는 그 엄청난 재난으로 인한 절망과 분노가 너무 고통스러워 이제 그만 끝낼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비겁은 나를 따르는 충직한 동반자다.


이런 사람이다.


115p
간결하고 직선적인 진실은 없었다.진술에는 언제나 망설임이 넘쳐났고 젊은 남자들은 자기가 아니라고 우겼다.

122p
˝무서워한다는 게 그걸 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지.˝

130p
죽어가는 사람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위해 필요한 양 이상은 먹지 않는다.

166p
˝우리 아버지예요.˝
내 딸이 말했다.
˝긴긴 세월이 흐른 뒤에 돌아왔지요.˝
˝선한 사람은 언제나 돌아오지.˝

167p
˝남자는 자기에게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언제나 알고 있지요.어쨌든 당신은 돌아왔어요.루이제가 기뻐하는군요. 내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사실 뿐이라오.루이제는 당신이 숲을 지나서 와주기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어요.어쩌면 당신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동안 내내 이곳으로 오는 중이었는지도 모르지요.숲의 오솔길이나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자기 안에서도 길을 잃기 쉬운 법이라오.˝

399p
˝(중략) 다른 사람을 너무 깊이 파고 들어가면 우정을 잃을 위험이 있어요.˝



집에 개미집을 이고 사는 섬의 노인은
자신의 모든 삶에서 도망다니다
끝무렵에 다다라 도망쳤던 것들과 마주한다.
마주한 용기야 가상하지만
그 젊은 시절. 애초에. 마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그가 외면한 부모. 직업. 실수. 사랑들을 향한 나의 아쉬움.
작가는 그를 향해 애정도 슬픔도 아쉬움도 없다.
이런 인간이 있었어...
그래서 작가는 좋아지고 주인공은 싫어진다.
개미집을 떼어내며 노인은 도망쳤던 모든 것으로부터의 직시를 결심한다.

작가는 2010년에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로 가던 국제 구호선 안에서 이스라엘 해병특공대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이게 더 소설같아서 몇 번을 다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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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인송
켄트 하루프 지음, 김민혜 옮김 / 한겨레출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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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4월 29일 완독

플레인 송
‘ 고대부터 기독교 교회에서 쓰인 단선율의 성가
단수낳고 꾸밈없는 멜로디 혹은 분위기 ‘

첫문장,
톰 거스리는 홀트의 자기 집 부엌 창문 앞에 서서 해가 막 떠오르는 뒤뜰을 내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느 독자의 리뷰에
이런 일이 설마 진짜로 있을까 ?
라는 글이 있었다.

좀 비겁하기도 하고 비열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그 문장에 대고
아닛. 이 정도의 삶도 생각하지 못하고 살다니.
라고. 생각했다.
삶이 치열하고 삶이 꾸질거려도
이 정도는 보고 살아야하지 않겠나 독자여.
그래야 세상이 뭐가 어떻게 됐든 좀 낫겠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작지가 않다네.

이 정도가 인간의 삶이지 뭐 다를 바가 있나.
열일곱의 임신한 소녀는 자신의 엄마에게선 버림받았고
학교에선 힘들고
그나마 믿을만한 교사는
그 믿을만한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맥퍼런 형제에게 그 소녀를 맡긴다.
다 늙은 아저씨 2명과 소녀의 삶은
그 자체로 안정적이다.
그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난 빅토리아가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길 바래.
맥퍼런 형제가 주고 있는 사랑이
모든 어른들은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하는 사랑이라 생각한다.
나도 가끔 빅토리아의 어떤 문장에 대고선,
이년이...
라고 생각했다.
아마 난 맥퍼런 형제만큼 늙지도 않았고 좋은 어른도 아니겠지.

좋은 책이었다.
4월 중 꼭 다 읽고 싶었는데
정말 4월 거의 마지막에 다 했다.

바비와 아이크도 꼭 좋은 어른으로 크길.
농장의 어른으로 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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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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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완독


첫문장,
제 2차 지각 변동은 내 열한 번째 생애의 1996년에 시작되었다.



이렇게 잘 쓸 수 있다니 !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니 !



69P
시간은 지혜가 아니다. 지혜는 지성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제압당할 수 있는 존재다.
그는 나를 위압했다.

많이 살고 많이 알고 있다면
위압당할 일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안 본척하거나 말을 덜 하거나 무시하는 일들은 상대를 무용하게 만드는 방법이고
그 방법을 몸에 익히는 건 많이 살고 많이 아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니라 한다.
계속 사는 자가 아니라 하니
그런 줄 안다.

356P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요.˝ 라고 말했다. 익숙지 않은 말을 조심조심 말했고 씩 웃으며 다시 한 번 연습해보려 했다.
˝흘러가는 대로 살아요. 점잖은 사람들이 점잖은 인생을 살아 가는 게 마치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말씀하시 잖아요. 하지만 좀 들어보세요. 이 ‘점잖다.‘ 는 것, 그게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거예요. 과학자 아저씨, 아저씨가 모든 남자들을 친절하게 만들고 모든 여자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기계를 이론화하려 한대도 난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할 거예요. 기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발을 멈추고 할머니가 길을 건너는 걸 도와주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노화를 치료하거나 기근을 없애거나 핵전쟁을 끝낸다 해도, 여기(하더니 손등 뼈로 내 이마를 짚었다)하고 여기(라고 말하면서 가슴에 손바닥을 꼭 대었다.)를 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사람은 먼저 점잖아져야 하고, 그 다음에 천재가 되어야 해요. 안 그러면 사람들을 돕는 게 아니라 기계의 노예가 될 뿐이에요.˝
˝ 그건 별로 공산당원 같은 생각이 아닌데.˝
˝ 아뇨, 그게 가장 공산당원다운 생각이에요.공산주의에는 선한 사람들이 필요해요.˝

어디에는 안 그렇겠어요.

483p
콘스턴스를 빤히 쳐다보면서,이 여자도 참, 자기 나름대로,완전히,완전히 돌았구나 생각했다.신경학적으로 미쳤다는 게 아니라, 정신병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문학적인 광기였다.

가끔 그런 인간들이 있다.
완전히 돌았구나... 하는 사람들.
근데 정말 우습게도 가끔도 아니다..
꽤나 자주. 그런 돌아버린 인간들을 마주할 수 있다.



너무 빠르게 일이 처리되니까 그 많고 긴 생들이 한꺼번에 처리가 되니까. 어떤 일은 내가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가 버리는 것 같아서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어보고 감탄하고. 읽어보고 감탄한다.

나와 동갑인 여자 작가의 이 천재적인 글들에 신이 난다.
이 사람이 제발 이런 책들을 수도없이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내가 너의 직접적 친구가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잔인한 말이겠지만.
니가 꼭 죽기전까지 수백권의 멋진 책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길 바란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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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머클라비어
야스미나 레자 지음, 김남주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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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완독

글쎄 나는.
번뜩이지 않는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어떤 화자를 만난 것 같았는데
더 다른게 있다니. 그게 무얼까.
이게 문제다.
내가 친구를 못 사귀는 건, 그 다름을 보지 못해서다.
간신히 그 반짝이는 다름을 갖고 있는 자 몇을 추려
내 장례식에 초대할 계획을 세운다.
아니, 그거면 됐지.
내가 이 여자의 반짝임을 모르겠는 건
우리는 영원히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싸우는게 좋다는 이와 친구가 되지 않으면 싸울 일밖에 남지 않고
난 알고 있다.
자신의 찌질함을 인정하지 않는 자와의 싸움은
나의 패 로 끝남을.
어차피 그럴것임을.
에이씨.
이 책은 에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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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 밀리언셀러 클럽 73
P.D. 제임스 지음, 이옥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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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3월 27일

첫문장,
버니 프라이드가 죽은 아침 (아니면 그 이전이었는지도 모른다.어쩄거나 버니는 자기 형편대로 죽었지, 떠날 시각을 어림해서 기록해 둘 만 하다 여기진 않았으니까) 코딜리아는 베이커루 지하철 노선이 고장을 일으킨 탓에 람베스 노스 역에 발이 묶여 사무실에 삼십분 늦게 도착했다.

82p
˝당신은 보나마나 내가 젊음을 질투하고 있다고 말할 거야.노인네들의 당연하기 그지 없는 증상이라고.˝
˝그러진 않을 겁니다.노인들이 질투를 느껴야 할 이유를 저로선 이해하지 못하니까요.젊은이란 누군가의 특권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공평하게 가졌던 거니까.어떤 사람들은 남들보다 수월한 시절에 태어날 수도,더 부유하거나 특권을 더 많이 지니고 태어날 수도 있겟지만,그건 젊다는 것과는 하등 관련이 없잖아요.게다가 젊다는 건 때때로 끔찍한 일이고요.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지 깅억 못하시나요?˝
˝암, 기억하지.하지만 나는 다른 것들도 기억해.˝

162p
˝여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구요?˝
˝전혀요. 상상해 보면 무한한 호기심과 무한한 고통에다 다른 사람들 일에 끼어드는 취미가 필요해 오히려 전적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225p
˝어쩌면 누군가를 얼마나 아끼는지 안전하게 보여 주는 길은 그들이 죽은 후겠죠.무엇을 하든 그들에겐 이미 늦었다는 걸 알지만요.˝

233p
유서에는 남은 자산 항목도 있었는데,각각의 수혜자의 사망시 그 사람의 몫은 생존자들에게 분배될 예정이었다.
유언자는 이런 장치가 유산 수혜자들 사이에 서로의 건강과 생존 여부에 대한 강렬한 관심을 북돋울 것이며, 각자가 다른 면에서 출중하진 못하다 하더라도 수명이나마 비범하게 누릴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결과가 되리라 자신했던 모양이었다.

290p
영리하기 그지없는 살인자들은 결정적인 거짓말을 한 번 해서 잡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해도 아무 해될 것이 없을 사소한 세부사항에 대해 계속해서 거짓말을 늘어놓다가 꼬리를 밟히는 거야.

324p
˝만약 범죄의 유혹을 받는다면, 첫 번째 진술에 머물러야 해. 일관성보다 배심원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건 없어.가장 형편없는 자기 방어가 성공하는 경우를 봐 왔는데, 그건 피고인이 오로지 첫 진술에 매달렸기 때문이었지. 결국 당신 말에 반대하는 누군가의 말일 뿐 이니까. 유능한 변호사와 함께라면 그것들은 으레 제기될 법한 의심에 지나지 않아.˝




그닥 여탐정이 환영받지 못한 순간이 없는 책이다.
어느 탐정이나 어느 장소에서나 그닥 환영받지 못하는 직업인것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이 소설 속의 코딜리아는 그 뻔한 미모로 여기저기서 환영받고 증거를 그러 모을 수 있다.
이 책을 선택했던건 ˝ 내가 의뢰인이었다면, 이 탐정을 선택할 것이다.˝ 라는 어떤 리뷰때문이었다.
좋은 말이지 않은가. 코딜리아가 자신의 사무실 앞에 자신의 사업 캐치프라이즈로 현수막으로 걸어 두어야 할만큼 좋은 말이다.
난 그냥 마냥...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탐정을 바라본다.
파트너는 운이 없던 남자였고,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그가 이끌던 사무실을 혼자 이끌어나가야 하고.
수임료는 애매하고. 간신히 한 달치는 벌었고.
응원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리고 다른 말은 보태지 않는다.
다른 말을 할 만큼 이 탐정이 이 책 안에서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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