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입문 ㅣ 개혁주의 신앙고백과 교리문답 시리즈 3
라일 비어마 외 지음, 신지철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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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마 가톨릭의 부패와 잘못된 교리에 맞서 바른 신학과 신앙을 세우고 지키기 위한 종교개혁자들의 노력과 투쟁은 신앙고백이라는 유산을 만들어 냈다. 종교개혁자들이 작성한 신앙고백서들은 교회에 제공된 귀한 유산들이다. 그 유산들은 비록 신학적 내용들을 담고 있으나 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교회로 하여금 성도들을 가르치고, 교훈하여 그들의 신앙을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한 목적으로 씌어졌다. 그 유산들은 지금도 우리에게 전해져 동일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유산을 활용하는 교회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유산들의 존재를 아예 모르거나, 혹 알더라도 그것들은 낡고 우리에게는 맞지 않은 것으로 여겨 그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그 값지고 풍부한 유산들을 외면한채 잘못된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교육하고 있다. 잘못된 교육으로 말미암아 발생하고 있는 신앙적 무지와 혼란은 구원 받은 자의 삶의 이유와 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입문'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16세기에 작성된 신앙고백서들 중 으뜸을 차지하는 신앙고백서이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성경공부와 신앙교육을 위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본서는 그러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한 안내서이다.

 본서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한다. 그것의 기원을 상세히 다룬다. 그리고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인, 주요 저자를 밝힌다. 또한 그 교리문답의 작성 목적과 내용의 특징을 살핀다. 주요 저자 중 한 명인 우르시누스의 소교리문답 및 대교리문답과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관계를 논한다. 본서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작성은 주로 두 명이 주측이 된 것으로 여겨졌다.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우르시누스가 교리적인 부분을 작성하고, 올레비아누스는 신앙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다듬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본서는 그러한 분석을 비판한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여러 학자들의 공동 작업의 결과인 것은 맞지만 기존에 알려진 바와는 달리 올레비아누스의 역할은 크지 않다고 본다. 대신 우르시누스가 주요 작성자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일각에서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칼빈주의, 멜란히톤파, 츠빙글리파, 불링거파 등의 신학적 입장을 지지하는 신앙고백서라 주장한다. 하지만 분서에서는 그러한 꼬리표에 주의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성로마제국의 정치적 상황과 압박의 상황에서 탄생하였기에 교회일치를 위한 의도가 반영되어 있음을 주지시킨다. 다시 말해서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자신의 영토 안에서 신학적 입장으로 나뉘어져 논쟁을 벌이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 신앙의 일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작성케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의 신학적 입장의 근거를 제공한 신학사상 또는 자료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본다. 그럼에도 굳이 신학적 이름표를 붙여야 한다면 아우굿부르크 신앙교백(수정본)에 멜란히톤파와 개혁파의 주해를 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덧붙여서, 그럼에도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개신교의 다양한 입자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뜻을 요구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우르시누스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이전에 대소교리문답의 저자로 알려져 왔다. 본서에서 밝히는 바에 따르면 우르시누스는 소교리문답을 먼저 작성하고 대교리문답을 후에 작성한 것으로 본다. 전자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성인과 청소년을 위해서, 대교리문답은 대학생을 위한 중급 신학 교재를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더하여 소교리문답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초안 작성에 활용된 반면, 대교리문답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작성되던 과정의 후기에 참고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본서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한 심도 있는 정보와 다양한 자료를 제공한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목적, 저자, 역사적 기원, 그리고 그 신학적 기초와 입장 등 그것의 전반에 대한 귀한 지식과 목록을 제공하여 그것을 연구하는데 있어 귀중한 입문서 역할을 한다. 본서를 통해 독자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보다 정확히 이해함으로 그에 대한 연구에 깊이를 더하고, 교리문답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후반부에서 제공하는 우르시누스의 대소교리문답고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사이의 일치와 차이를 분석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해 알기 원하고 그것을 연구하며 개인과 교회에 더욱 효과적으로 적용하고자 하는 이라면 본서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신앙고백서를 통한 교리 교육은 신앙의 기초를 다지고, 체질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신앙고백서는 신앙을 바르게 하며 그것을 보다 완숙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지만, 훈련되지 않은 이는 혼자서 그것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성경으로부터 체계적인 지식과 교훈을 이끌어낼 수 없다. 이때 매우 유용한 것이 신앙고백서이다.

 신앙고백서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신앙의 선배들이 그들에게 주신 바른 지식과 분별력으로 성경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교육서이다. 신앙고백서만으로 성경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신앙고백서를 통해 성경의 주요 내용, 필수적인 가르침들을 손쉽게 습득할 수 있다. 성도를 바르게 하는데 있어 최상의 교육 자료로 신앙고백서 만한 것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활용 할 필요가 있다.

 신앙 교육을 위해 다른 방법을 사용 할 필요가 없다. 성경을 정리하는 수고를 또다시 할 필요가 없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선배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활용하면 된다. 그분들이 전해준 유산은 성도들을 가장 바르고 안전하게 교육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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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와 사랑에 빠진 젊은이에게 보내는 편지
제임스 K. A. 스미스 지음, 장호준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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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분은 오직 한 분이요, 믿는 바도 오직 하나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삼위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사하시어 구원에 이르게 하셨음을 믿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하나님을 섬기며 믿는 바를 함께 공유한다. 그러나 인간의 이해는 불완전하여 믿는 내용에 있어 차이가 발생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라는 사실은 동일하게 인정하지만 누구를 구원하시는지,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지, 그리고 그분을 어떻게 섬기는지 등에 대한 이해는 서로 다르다. 하나님은 한 가지로 말씀하셨지만 인간의 죄성으로 인하여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과 내용이 달라진다. 따라서 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믿음의 내용이 다르게 나타난다.


 '칼빈주의와 사랑에 빠진 젊은이에게 보내는 편지'


 본서는 한 복음주의 신학자가 가상의 젊은이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칼빈주의에 대한 이해를 돕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본문은 편지 형식이다. 편지글의 특성을 그대로 받았기에 내용이 쉽다. 각 주제들을 간결하게 다루기 때문에 저자의 입장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읽는데 부담이 없다. 어떠한 부분에서는 분명히 귀담아 들을 지적들이 담겨 있다. 칼빈주의자들이 종종 저지르는 잘못된 태도를 지적하는 부분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대부분의 내용이 칼빈주의에 대한 이해를 잘 돕고 있다. 하지만 본서에는 칼빈주의에 대한 잘못된 평가 혹은 불분명한 입장이 있어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1.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과는 달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부정적으로 묘사.

 2. 여성 직분자에 대한 편향적 이해와 적용.

 3. 톰 라이트와 관련된 칭의 문제를 가볍게 여김.


등 저자는 어떠한 문제들에 대해 가볍게 여기거나 칼빈주의의 몇몇 입장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 오도하고 있어 이점들은 분명히 주의 할 만하다. 따라서 입문자보다는 - 제목만 보면 칼빈주의 입문자가 읽기에 적합한 책처럼 보이지만 몇몇 사안으로 인해 - 칼빈주의에 대해 알고 있는 이가 읽는게 적합 할 것이다. 어쨌든 본서에는 칼빈주의자들이 귀담아 들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지적 사항에 잘 유의한다면 칼빈주의자들이 한 번 읽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믿을지, 무엇을 믿느냐는 참으로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신앙고백의 내용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좌우하는 지표이기 때문에 어떻게 신앙을 고백하는지는 무척 중요하다. 신앙고백이 잘못 되면 구원은 받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믿는 바대로 행동하며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바른 신앙고백을 하며 그것의 안내를 받을 필요가 있다.

 바른 신앙고백은 물론 성경이 가르쳐 준다. 하지만 인간의 이해력은 각기 달라서 어느 누구는 혼자서도 성경 말씀을 잘 이해하지만 또 누구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선배들은 성경을 잘 요약하고, 그것으로부터 전혀 어긋나지 않은 신앙고백서드을 작성하였다. 그 신앙고백서들을 통해 이해가 부족한 자를 도왔다.

 우리는 선배들의 섬김과 노력의 결실인 귀중한 유산들을 잘 간직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 그 유산들을 통해 우리는 바른 신앙의 토대를 쌓고, 그것을 굳건히 유지하며 그로 말미암아 더욱 풍성한 은혜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신앙고백들이 아무리 귀하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성경보다 앞세우거나 높여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 귀중한 유산들을 존중하는 선에서 잘 습득하고 간직하며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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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바르게 받아야 하는가 ㅣ 케빈 드영 시리즈 3
케빈 드영 지음, 김수미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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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살기 위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뜻을 구한다. 많은 이들이 그분의 뜻에 합당한 결정을 내리고자 매순간 그분께 뜻을 구한다. 이렇게 할까요? 저렇게 할까요?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 해 주실 때까지 무작정 그분의 뜻을 기다린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한다.

 우리 삶에 대한 책임은 각자에게 있다. 우리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일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무언가를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다. 물론 우리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뜻을 구함이 면피의 목적이나 수동적 태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구하되, 우리의 의지로 결정하고 나아가야 한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바르게 받아야 하는가'


 이 책은 '왜 우리는 이머징 교회를 반대하는가', '왜 우리는 지역교회를 사랑하는가'로 알려진 개혁주의의 젊은 기수 케빈 드영의 책이다. 국내에 소개된 몇 권의 책을 통해 좋은 인상을 남긴 저자는 본서를 통해 간결하면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본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책으로 그와 관련된 우리의 잘못된 이해와 방식을 교정 해 준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바른 방법을 알려준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 성경은 뭐라 말하는지 살펴본다. 기드온이 했던 양털 시험과 같은 기적의 요구, 성경 구절을 무작위로 뽑아 그대로 하려는 운에 맡기는 방식, 주관적 느낌에 의존하는 태도 등의 잘못을 지적한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성경과 상담, 기도와 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책의 주 대상이라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맞딱뜨리는 문제인 직업과 결혼 선택에 있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 등을 알려준다.

 

 저자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하나님의 뜻을 찾지만 말고 결정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우리의 미래를 말씀해 주시길, 그것을 알아내길 기대하지 말고 그저 그분을 신뢰하고 나아갈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 우리의 미래를 드러내거나 우리 삶에 대한 계획을 보여 달라고 간구할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별 있고 훈련된 삶을 살 것을 말한다.

 본서의 내용은 참으로 간결하다. 명확하다. 충동과 환상과 느낌을 쫓는 우리의 잘못된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성경적인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본서를 통해 무엇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인지 화실히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기적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이끄시지 않는다. 물론 구약과 신약 시대는 그러한 경우가 있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이끌어 주셨다. 예수님은 놀라운 방식으로 바울을 찾으시어 그의 삶을 변화시키셨다. 그러나 그것은 특수한 경우였다. 그러한 기적적인 인도하심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하나님은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온전히 거하고 있다면, 우리의 나아가는 발걸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염려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나아갈 때, 훗날 뒤돌아 보면 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일들이 사실은 생각도 못했던 기적적인 일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저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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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계신 성령
변종길 지음 / 말씀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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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에서(외국의 상황은 조사 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성령론 논쟁은 계속 진행 중이다. 물론 그것은 주로 목회자나 신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논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조용히 그에 관한 논쟁이 일었다 사그라 들기를 반복하고 있다. 특히 성령 세례와 은사와 관련해서 말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본다면 중생과 성령 세례의 관계, 그리고 방언의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이 두 문제는 오순절주의자들과 치유 집회 등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최근에 논쟁이 일었고, 여전히 그 견해 차가 전혀 좁혀지지 않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견해가 성경에 보다 근접한 것인지 현재로써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본서는 고신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는 변종길 교수의 책이다. 저자는 본서에서 성령론을 가르치고 있다. '성령의 인격', '성령의 내주와 충만', '성령의 은사', '성령의 열매', '성령 세례와 중생' 등 조직신학 분과에서 다루고 있는 성령에 관한 연구의 주요 부분을 다루고 있다.

 본서의 장점은 읽기 쉽다는 것이다. 신학책은 어떠한 내용을 다루던 관련 지식이 없으면 읽고 이해하는데 곤란을 느낀다. 본서는 다루는 내용을 보면 신학책으로 분류 할 수 있다. 하지만 표현 방식을 보면 신앙서적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성령론에 대해 처음 접하는 성도도 크게 막힘 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하게 기술되어 있다. 신학적 용어가 사용되기는 하지만, 최대한 절제하는 가운데 각 주제들을 누구나 읽기 쉽도록 배려한 흔적이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아마도 머리말에서 저자가 이야기 했듯이, 본서는 "여러 곳에서 목회자들과 신학생들, 그리고 교회의 성도들에게 강이한 권고들이 기초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의 장점 외에 본서에는 특기 할 만한 점이 있다. 기존의 보수적인 관점에서는 곱지 않게 느껴질 만한, 그 반대의 입장에서는 반길 만한 내용이 있다. 개혁교회의 성령론을 비판한 부분이다.

 

 성령론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 되는 견해는 아마도 성령 세례와 방언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저자의 성령 세례에 관한 견해는 그리 특이한 부분은 없다. 굳이 특이하다고 볼 만한 부분이 있다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전에 제자들은 이미 중생을 했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 강림 사건 때에 성령 세례를 받았다. 개혁신학은 중생 시 성령 세례를 받는다고 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문제가 발생한다. 저자는 이 문제애 대해 '시초적 사건'이라는 견해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압축하여 설명하면, "오순절 성령 강림은 신약 시대의 교회 탄생을 가져온 사건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교회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성격을 가진다." 이러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서의 성령 세례는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한 단회적 사건이다. 따라서 앞서 지적한 문제가 해결된다. - 여기서는 저자의 견해를 매우 간단히 기술하였기에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를 직접 참고하길 바란다. 

 이상의 내용은 수긍할 만 하다. 문제는 다른데 있다. 저자는 개혁주의자들의 은사에 대한 견해를 비판한다. 예컨대 저자는 개혁주의 신학자들 중에 '치유 은사'가 초대교회에 한정된 은사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아브라함 카이퍼의 예를 든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육체의 병 치유, 능력 행함, 예언, 그리고 방언과 방언 통역 은사는 사라졌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은사들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지적한다. 각각의 은사가 어떻게 유효한지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줄곧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물론 그 지적은 옳다. 그러나 저자의 지적에 일말의 아쉬움을 느낀다. 성경에 그 은사들이 그쳤다는 말이 없다는 것은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은사들이 지속 될 것이라는 말도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그것을 어떻게 해석 할 것인지는 해석자의 입장과 선택에 달려 있다. 여기서 기민하게 반응해야 할 부분이 있다. 성경을 해석 할 때는 물론 그 내적 증거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은사 문제와 같이 내적 증거가 명확하지 않은 문제는 교회 역사를 일정 부분 '참고'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성경 말씀을 교회 역사로 증거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답을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 교회 역사를 근거로 제시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선교 상황에 대한 짤막한 언급이 있다. 하지만 설명에 무척 단촐하여 근거가 너무나 빈약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언급된 은사들의 제한에 대한 견해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한 이해와 66권 성경의 완성과 완전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이 부분을 언급하고 견해를 제시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 책의 성격과 지면의 한계상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느껴지긴 한다.

 

 이 외에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소위 '상수도 이론'이라 불리는 성령에 관한 견해에 대한 비판, 헤르만 리덜보스의 '바울 신학'에 나타난 그의 주요 사상에 대한 비판, 그리고 리처드 개핀의 고린도전서 12장 13절 해석에 대한 비판이다. 카이퍼의 견해에 대한 비판은 이미 있어 왔기에 별다를 것이 없지만, 리덜보스와 개핀에 대한 비판은 꽤 흥미롭게 느껴진다. 

 위에서 지적한 눈여겨 볼 부분들에 잘 유의해서 본다면 본서는 상당히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목회자와 신학자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성도들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씌어졌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성령론에 대한 올바른 정립이 필요한 한국 교회에 본서는 일조 할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당신이 말씀하신대로 일하시는 분이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말씀인 성경과 다르게 일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성경으로 제한 될 정도로 작은 분이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극히 한정된 이해와 작은 존재성을 생각하시어 당신의 뜻과 일하시는 바법과 내용을 성경을 통해 표현하셨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고,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우리는 성경을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규범으로 삼는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이해와 지식의 불완전성에 있다. 성경은 완전하지만 우리의 이해는 불완전하다.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잘못 해석하곤 한다. 그 잘못된 해석을 옳은 해석이라 여기며 잘못된 신앙 생활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잘못된 길로 끝도 없이 나아간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행동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 성경을 오용하면 안 된다. 거꾸로, 성경대로 우리의 행동을 교정 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 신앙과 생활에 열심을 다한다 할지라도 그분께 결코 칭찬 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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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구원의 길을 아십니까?
한국청교도연구소 제작 / 부흥과개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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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이것은 기독교의 핵심 진리이다. 그런데 여기에 꼭 따라 붙는 전제가 있다. 그 믿음은 택함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성령님의 역사로 얻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되 믿음과 구원에 있어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믿음도 구원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때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또 한 가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택함 받은 자와 그가 구원 받는 때를 알 수 없으므로 주위에 꾸준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기독교 구원관은 우리에게 전도의 열심을 독려하고, 그 방법을 안내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전도 시에 이상의 사항을 크게 간과한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방법을 취한다. 즉 많은 이들이 전도 시에 복음 제시와 영접기도라는 일회적이고 속성적인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 이것은 잘못된 전도 방법이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그 마음은 존중 받아 마땅하지만, 잘못된 방법은 고쳐야 한다. 그렇다면 옳은 전도 방법이란 무엇일까?

 

 '참 구원의 길을 아십니까'

 

 이 책자는 작은 크기로 된 전도지이다. 페이지는 24페이지로 다른 전도지와 마찬가지로 분량이 적다. 적은 대신 핵심적인 사항을 담고 있다.

 본 책자는 크게 1장 신론, 2장 인간론, 3장 기독론, 4장 구원론, 5장 종말론으로 구성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각각의 내용은 인위적인 설명은 전혀 없고, 성경의 내용만 온전히 담고 있다. 따라서 본 책자는 참 구원의 길에 대한 핵심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전도지로 사용하기에 무척 좋다는 말이다.

 이 책자가 다른 전도지와 다른 점은 앞서 언급한 내용들 말고도 하나 더 있다. 다른 전도지들은 마지막에 영접기도를 하게 하는 반면 본 책자는 복음제시 이후에 마지막으로 가까운 '복음적인 교회'에 방문할 것을 권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도자는 이 책자를 사용하기 전에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 말고도 근처에 있는 복음적인 교회를 알아두는게 좋을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구원의 길에 대해 가르쳐 주는 책으로 소개한 참고 서적의 목록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다. 본 책자는 한 권만 제시하고 있는데 구도자나 새신자를 위해 좀더 많은 책을 제시해 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여기서 지적한 아쉬움은 전도지의 역할 상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 그리 문제 되지는 않는다. 어쨌든 본 전도지는 복음의 핵심을 잘 담고 있어 전도에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옳은 전도 방법은 복음의 핵심을 온전히 전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함이란,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를 전하는 것을 뜻한다. 전도자는 전도 할 때에 성경의 내용에 인간적인 해설을 덧붙이지 말고 성경의 핵심만 전해야 한다. 피전도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성경을 풀어 설명한다면 설령 감동을 주어 관심을 끌 수는 있을지라도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심어 줄 수 있다.

 전도자의 할 일은 복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믿지 않는 이를 이해시키거나 감동시키는게 아니다. 전도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을 이해시키고, 말로써 믿게 하는게 아니다. 전도자는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선한 의도와 열심으로 그런 것이라하더라도 자신의 역할을 넘어선다면 그는 전도자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럴 의도가 전혀 없다고 할지라도 구원자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전도자는 전도 전에 자신의 역할을 명심하고, 전도의 방법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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