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파이퍼의 거듭남
존 파이퍼 지음, 전의우 옮김 / 두란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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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듭남'

 

 그것은 영적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남을 뜻한다. 그것과 관련된 성경 구절은 여러 개가 있지만 그 중 대표적으로 요한복음 3장에 나온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들 수 있다. 밤에 바리새인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다. 그는 예수님께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분이 행하시는 표적을 아무도 할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짤막한 대화에서 거듭남의 본질을 알 수 있다.

 

 '존 파이퍼의 거듭남'

 

 이 책에서 존 파이퍼는 자신의 통찰과 지혜로 성경이 말하는 거듭남에 대해 설파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 거듭남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엇보다 거듭났다고 하면서도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생생히 느껴진다. 저자인 존 파이퍼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듭남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유익이 무엇인지 알려 주기 위해 이 책을 쓰지 않았다. 거듭남을 온전히 누리게 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듭남의 본질을 알리고 그 본질에 맞게 살도록 하기 위해,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존재로서 주님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거듭난 자로서 주님을 전하는 인생, 존 파이퍼는 그것을 주장한다. 그것이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이다. 몇몇 부분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지만 어쨌든 거듭남, 바꿔 말하면 중생에 대해 어렵지 않게 잘 설명하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 중생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을 읽고 단지 거듭남에 대해 이해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책을 읽고 난 후 저자의 의도대로 거듭남의 통로로써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리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그것에 대해 하나하나 상세히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알지 못하면 이단에 빠지기 쉽다. 이단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진리에 대해 잘 아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리에 대해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이해는 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앎을 게을리 하면 잘못된 사상에 빠질 뿐만이 아니라 본질에 다가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사는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온전히 살기 위해 진리를 알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알게 된 대로 살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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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유혹을 극복하는 내적 전쟁 - 현대인을 위한 내 안의 죄죽이기
제이 E. 아담스 지음, 유재덕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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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죄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사는 그들을 동안 끊이 없이 공격하고, 유혹한다. 죄는 날마다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좇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에 대항하게 만들기 위하여 온 힘을 기울인다. 그리스도인들의 저항이 완강하면 할수록 더욱 교묘한 방법 - 때론 너무나 달콤하고, 또 때론 견디기 고통스러운 방법을 동원하여 - 을 사용하여 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애를 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죄에 맞서 사는 동안 끝을 알 수 없는 내적 전쟁을 치룬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내적 전쟁을 위한 책이다. 죄의 유혹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기독교 상담심리학자가 쓴 책이다. 이 책에서 그리스도인이 자신 안에서 치루어지는 내적 전쟁, 곧 죄의 유혹으로부터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그리스도인 안에서 어떠한 형태의 내적 전쟁이 벌어지는지, 적의 능력과,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무기, 싸움을 방해하는 장애물 등 내적 전쟁과 관련된 중요한 이야기들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제공한다. 전쟁의 시작과 근원부터 시작해서 전쟁의 결과까지 체계 있게 설명한다. 이 책을 통해 내적 전쟁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것을 왜 치루어야 하는지, 그것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등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이 제공하는 정보를 잘 이용한다면 내적 전쟁에서 잠시 후퇴는 할지언정 결코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수많은 내적 전쟁을 치룬다.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때론 백기를 휘날리고 싶어 하기도 한다. - 그것은 적의 가장 강력한 유혹이자 치명적인 유혹이다. - 그러한 연약함의 결과는 자신의 패배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 하나님의 군대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기에 이를 악문다. 하나님이 주신 전신갑주를 다시 고쳐 입는다.

 내적 전쟁에서의 승리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고 그것에 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전쟁을 치루어야 하는지 제대로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은 것은 분명하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적다. 모두가 막연하게 전쟁에 임한다. 대부분은 아무 준비 없이 전쟁에 임하여 경험을 통해 그것에 대해 알아간다. 전쟁을 치루는 방법을 분명히 알고, 또한 적과 나를 제대로 알면 전쟁을 치루기가 훨씬 수월 할 것이다. 전쟁은 나 혼자 치루는 것이 아니라 함께 치루는 것이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도움과 협력으로 전쟁을 치루면 패배와 후퇴의 횟수는 적어지고, 조금씩 그러나 더 많이 전진하게 될 것이다.

 자! 이제 그만 기를 빼앗기자! 도리어 적 진영에 승리의 기를 더 많이 꽂자! 주님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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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열두 명의 현자
윌리엄 글래드스톤 지음, 이영래 옮김 / 황소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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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2012년에 지구가 멸망 할 것이라는 종말론이 한창 화자 되고 있다. 지구 종말론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가장 최근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종말론은 1999년에 있었던, 2000년이 되면 세계가 멸망 할 것이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따른 종말론이었다. 그로 인해 사이비 종교에서는 사람들이 집단 자살하고, 많은 이들이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는 등 사회 곳곳에 불안이 가득하였다. 그런데 막상 2000년이 되고 보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1999 종말론은 역사에 하나의 해프닝으로 기록 되었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종말론이 완전히 잊혀지는가 싶더니 또 다시 종말론이 대두 되고 있다.

 수학과 천문학, 그리고 점성술 등이 고도로 발달한 고대 마야인들은 달력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만든 달력은 2012년 12월 21일로 끝이 난다. 이것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이것은 지구가 그 날에 끝이 나는 것을 예견하는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야의 달력을 바탕으로 2012년 12울 21일에 행성 X 와 태양풍 등의 영향으로 지구가 멸망 할 것이라는 신빙성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과연 사실일까?

 

 '2012 : 열두 명의 현자'

 

 이 책은 위에서 이야기한 고대 마야인들의 예언을 바탕으로 한 2012년 지구 멸망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소설로 엮은 것이다. 2012년 12월 21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책은 그것을 가상으로 설정하고, 그 날을 향해 점차 접근해 나간다. 주인공 맥스의 탄생에서부터 2012년 까지를 배경으로 맥스에게 주어진 운명과 운명의 날을 그리고 있다.

 죽음의 체험을 계기로 맥스의 운명의 여행이 시작된다. 열두 명의 현자들을 찾기 위한 그 여행은 맥스 자신도 모르게 시작되고, 진행 된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여행을 하는 동안 점차 운명의 날과 가까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맥스의 운명의 여행은 2012년 12월 21일에 끝을 맺는다.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열두 명의 현자들은 누구이고, 그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과연 정해진 그 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소설 속에는 놀라운 결말이 담겨 있다. 이 소설에는 2012년 12월 21일에 벌어질 것이 예상하는 일들보다 더 놀라운 일이 담겨 있다. 독자는 그 놀라운 사건을 향해 맥스와 함께 나아가는 동안 커지는 궁금증과 기대로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읽는 것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의 아쉬운 점은 모든 이야기의 초점이 지나치게 맥스에게만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모든 이야기가 맥스의 직업과 관련된 일에만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스케일이 꽤 큼에도 불구하고, 스팩타클이 떨어진다. 자연 경관이나 사건의 묘사가 좀 더 섬세하고, 다른 상황 가정이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 날에 대해 불안에 떠는 군중들을 그리는 등 다른 상황이 더 있었으면 다가오는 2012년에 대한 불안과 궁금증, 긴장이 더욱 커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섬세함이 떨어지기에 긴장감이 적었다. 또 다른 아쉬움은 대화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맥스의 직업과 관련된 이야기나 운명의 날을 찾아가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만 계속 나열된다. 인물들의 대화는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 벌어질 사건에 대한 불안과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전체 이야기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대화가 상당히 적다. 계속 설명만 이어진다. -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바이고, 스타일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 그로 인해 내용이 꽤 지루했고, 딱딱 했다. 마치 설명문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끝으로 운명의 날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주인공 맥스가 마주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들이 너무나 뻔하게 예상 되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아니다. 단지 필연으로만 느껴져 ‘아차’ 싶은 놀라움을 전혀 맛볼 수 없었다. 내용 구성이 조금 더 치밀했다면 그런 아쉬움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 외에 아쉬움이 더 있지만 각설하고, 이 소설을 읽고 2012년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름대로 그려 보았다. 다른 종말론과 같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이 날까? 아니면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날이 오기 전에 답을 알 수는 없지만 소설 속의 한 구절이 가슴에 남는다.

 

 "예언의 실현이란 결국 그것을 믿는 사람들 혹은 믿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주관적인 경험에 달려 있는 것이다." p170.



 

 왜 사람들은 종말론에 열광할까? 왜 그것이 거짓임이 드러나도 사람들은 진실이라 믿을까? 왜 하나의 종말론이 잊혀 지면 또 다른 종말론이 생겨나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할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그러한 이야기를 이용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불안을 조장하여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비하게 한다. 사람들에게 필수품이라는 명목 하에 여러 물건을 판매한다. 그것을 통해 자기 주머니를 채운다. 또 어떤 이들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그럴싸한 근거를 제시하는 책을 쓴다. 그것을 통해 자기 이름을 알린다. 분명한 것은 정말 2012년에 종말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을 통해, 사람들의 불안을 조장하여 파렴치하게 자기 잇속을 챙기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운명의 날이 지나고 나면 두둑한 주머니에 흐뭇해 할 것이고, 그들의 말에 현혹 되었던 사람들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내쉴 것이다. 자신이 속았다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다만 근심과 불안이 일소된 것에 만족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불안은 자신도 감지할 수 없는 심연의 깊은 곳에 잠시 되돌려 놓은 것일 뿐이다. 언젠가 누구에 의해 또 다른 종말론이 대두되면 다시 불안해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주머니를 채울 것이다.

 2012년 지구 종말. 과연 사실일까?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게 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단 한 가지이다. 오늘에 충실하며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하는 것이다.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운명의 날은 언젠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것이 중요하다. 벌벌 떨면서 그것을 맞이 할 것인가? 아니면 당당히 맞이 할 것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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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성경적 성령론
에드윈 H. 팔마 지음, 최낙재 옮김 / 개혁주의신행협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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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의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한 분으로서 이것을 신학 용어로 '삼위일체'라 칭한다. 그런데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있다. 모두들 성부, 성자 하나님은 예의를 갖춰 공손히 부른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을 부를 때는 단지 호칭만 부르며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 성령 하나님도 성부, 성자 하나님과 동격이신데 이 무슨 일일까? 이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성부, 성자 두 하나님에 대한 연구와 가르침은 꾸준히 있어 왔지만 성령 하나님에 대한 것은 많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그분에 대한 성도들의 지식은 매우 얕고, 오해가 많다. 성령 하나님과 그분의 사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성도 자신이 겪는 일에 대해 혼란을 느끼기 일쑤이다. 삼위 하나님 중 우리 곁에서 우리의 일을 직접 주관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분만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역사하신다. - 직접이라는 말에 유의하여 성자, 성부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는 오해를 하지 않길 바란다. - 이것을 알지 못하고, 이것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분을 계속 홀대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성령님에 대한 성도들의 지식이 풍성해지도록 돕는다. 그분은 어떠한 분이신지, 그분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지 성경적으로 명확히 가르쳐준다. 은사 체험 등을 통해 알게된 성령님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님은 어떠한 분이신지 알려준다. 그렇기에 성령님에 대해 바른 지식을 배울 수 있다. 신학 책이기에 평신도들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 있겠지만 성령님에 대한 바른 앎을 위해서 그 정도의 어려움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성령론에 대한 총체적 지식을 담고 있기에 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는 성령론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습득하도록 도와 줄 것이다. 따라서 성령론에 대한 입문서로 적격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성도들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에 대해서는 잘 안다. 하지만 우리와 날마다 함께하시는,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분이신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러한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쪼록 성자 하나님과 성부 하나님에 대한 앎만을 추구 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계신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 앎아 그분과 더욱 가까워지고, 그분의 역사에 대해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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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마틴 로이드 존스 지음, 전의우 옮김 / 복있는사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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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갈망한다. 그곳에 들어가기를 소망한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은 분명히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 나을 것이라 기대하며 모든 고난을 견디어낸다. 그곳에 들어가면 여기서 견딘 모든 아픔과 고난에 대한 보상 받을 것이라 확신하며 말이다. 성도가 갈망하는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너머 어딘가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거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에도 하나님 나라는 존재한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설교는 탄탄한 신학을 기반으로 하여 참으로 건전하고, 깊이 있기로 유명하다. 그의 설교는 다소 어렵지만 복음의 본질을 명확히 꿰뚫기에 그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본질로부터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그것을 향하여 똑바로 나아가도록 한다.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그의 설교를 찾는다. 

 이 책 '하나님 나라' 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설교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의 설교에 익숙하지 않은 이라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설교 중에서는 비교적 쉽기에 집중하여 읽는다면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역시 그의 설교답게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명확히 꿰뚫고 있다.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면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고, 그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초대된 손님이 아니라 그 나라의 주권을 가진 백성으로서의 자긍심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성도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흔히 저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세계 즉 천국을 가리킨다. 그것도 맞지만 그렇게만 알고 있다면 반만 알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어떠한 영역인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미치는 모든 영역 혹은 그분의 임재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 의미에서 성도 안에 이미 임해 있다. 성도 또한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성도가 가는 곳은 어디나 하나님 나라이다. - 성도가 거하는 곳은 물리적으로 하나님 나라화 된다는 뜻이 아니다. -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성도가 할 일은 미래적 의미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만을 갈망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더욱 확장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더디게 하고, 자신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 한다면 때가 되면 그곳에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의 큰 칭찬은 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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