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왜곡의 역사 - 성서비평학자 바트 어만이 추적한
바트 D. 에르만 지음, 강주헌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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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자들은 성경을 보다 더 깊고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외적으로는 고고학, 역사학, 문학 등 여러 방법으로 성경의 증명과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내적으로는 비평학적 접근에 따라 문학비평, 본문비평, 양식비평, 역사비평, 자료비평, 편집비평 등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성경을 들여다보고,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방법들은 취지는 좋지만 여러 문제점을 낳았다. 이 방법들로 인해 성경 텍스트의 맥락이 해체 되어 본래의 메시지를 잃게 되었다. 특히 성경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그것에 의문이 제기 되기도 한다.



 '예수 왜곡의 역사'



 이 책은 한국에 소개된 바트 어만의 두 번째 책이다. 바트 어만은 성서비평학자로 이 책에서 역사적 관점으로 성경에 접근한다. 예수에 대한 비평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성경에 대한 이 접근법은 이제 국내의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해석이 아닌 복음 중심의 설교만 들어온 평신도들은 매우 낯설고, 충격적인 접근법으로 느껴질 것이다. - 바트는 이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책에서 바트는 예수에 대한 해석 과정에서 실수가 빚어졌다고 주장한다. 성서비평을 통해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먼저 성경 속에 나타난 예수와 관련된 모순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네 복음서와 신약 사이에 나타나는 충돌을 증거 한다. 이어 예수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보고, 성경의 완성 과정 등을 추적한다. 이상의 과정을 통해 - 저자 자신의 입장에서 - 그동안 역사적 예수가 어떻게 왜곡 되었는지 밝히고, 예수에게 입혀진 옷을 하나하나 걷어낸다.

 성서비평을 처음 접해본 믿는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동안의 자신의 믿음에 대해 회의에 빠지고,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거나 경우에 따라 믿음을 버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믿지 않는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기독교를 비판하던 이들은 쾌재를 부를 것이다. 따라서 믿는 독자들, 특히 신학적 지식과 고민이 전무한 독자에게는 이 책의 일독을 권하지 않는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말이다. 어설픈 지식으로 혼란에 빠져 믿음을 버릴 것이라면 말이다. 물론 그러한 결과에 자신도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대신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쉽게 동조하지 않고, 객관적 사고를 견지 할 수 있는 믿음의 독자라면 지식과 믿음의 확장을 위해 한 번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한국 교회의 교육 상황을 생각 했을 때 그럴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들지만 말이다.

 바트는 말한다. 이 책의 목적은 성경을 공격하거나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저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그러나 이러한 소신에도 불구하고 성서비평을 가르치고, 전하는 그의 저의가 의심이 된다. 그가 말하는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에필로그의 그의 저의가 드러나 있다. - 특히 그가 불가지론자라는 사실로 인해 의심은 가중된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자신은 근본주의자였다고. 그러나 이제는 불가지론자라고 말이다. 하지만 성서비평을 공부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성경을 연구하여 불가지론가 된 것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 단지 그것을 공부한 이후에 별도로 하나님에 대한 물음과 회의로 자신의 믿음을 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솔직한 말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성서비평에 대한 옹호와 그것을 가르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아무튼 객관적 신학 지식과 - '객관적'이라는 말의 분명하지 않은 한계 설정에 문제가 있지만 - 견고한 믿음이 - '견고한'이라고 하면 상당히 보수적이고,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 있다면 이 책을 읽어도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이 책을 통해 지식의 깊이를 더하고, 믿음의 더 넓고, 큰 확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을 다각도로 연구하기 위한 여러 방법과 그 성과는 존중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의 단점은 분명히 지적 되어야 한다. 다양한 연구 방법을 통해 예수와 제자들의 생존 당시의 사회상과 역사적 배경 등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성경 이해의 바탕을 튼튼히 쌓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논리적, 이성적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비평학으로 인한 믿음의 손실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러한 연구 방법으로 하나님의 본래 메시지를 잃게 되고, 믿음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점은 우려 할 만 한 일이다.

 성서비평, 특히 역사비평은 성경에 담긴 역사적 사건과 나아가 성경의 순수성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이다. 성경의 실재성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변별한다는 점에서는 그 시도를 높이 평가 할 만 하다. 그러나 그것을 변별 할 자료가 부족하거나 없을 경우 그 실재성을 입증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더욱이 이성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성적이지 못한 성경적 내용과 증거는 거짓으로 평가한다는 점에 맹점이 있다.

 바트는 역사학자의 역할을 "어떤 사건이 과거에 일어났을 확률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 속 대부분의 사건들은 역사에 비추어 봤을 때 일어날 확률이 적거나 혹은 제로이다. 따라서 그 사건들은 모두 부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신앙, 곧 믿음은 이성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믿음은 객관적 자료와 일어날 확률로 입증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으로 믿음을 입증 할 수 있다면 믿음의 순수성은 사라진다. 그때에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이해'에 불과하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과 같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그렇다고 성서비평이 반대되고, 증단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것은 성경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계속 시도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믿음을 변별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단지 믿음의 보조적 도구로써 사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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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 오스왈드 챔버스의 성령론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11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스데반 황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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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2천년 역사 동안 무수한 논쟁이 있어왔다. 그 논쟁들을 중심으로 각 시기를 살펴보면 오늘날은 성령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오늘의 주요 화두는 성령이다.

 초대교회에는 아직 교회의 기틀이 마련되지 않은 까닭에 외부로부터 교회를 지키고, 바른 교리의 확립을 통해 교회의 정체성을 세우는데 주력했다. 중세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쌓는데 힘썼다. 그리고 근대에 이르러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일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가운데서 성령에 대한 조명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다른 지식들이 체계를 잡은 오늘, 드디어 성령에게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 했다.

 2천년 동안 수많은 논쟁과 대립을 통해 성부, 성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쌓여 그에 대한 이해의 양분은 이제 보기 힘들다. 하지만 근자에 성령론이 화두가 되면서, 다시 말해서 성령에 대한 지식이 이제 막 쌓이기 시작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성령에 대한 바른 이해와 지식이 적다보니 성령을 오해하는 일이 잦았다. 검증되지 않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부터 집중되기 시작한 성령에 대한 관심은 다른 관심사항들과 마찬가지로 무수한 논쟁을 가져왔다. 특히 성령에 대한 이해에 있어 중요한 문제는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 그리고 은사(주로 방언)였다. 이에 대한 논쟁은 오순절 은사주의로 인해 더욱 뜨거워졌다. 그들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의 결정적 증거로 방언을 제시 했다. 그들로 말미암아 방언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전 세계적으로 확산 되었다. 따라서 성령 세례와 방언의 은사는 성령론에 있어서 논쟁의 핵심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이 책의 저자인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는 짧은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는 최장기 베스트셀러 등을 남겨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는 챔버스 목사의 성령론을 담고 있다. 요한복음 16장 13, 14절을 중심으로 제목과 같이 성령님이 우리를 어떻게 영화롭게 하시고,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말해주고 있다.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챔버스 목사의 이해와 가르침이 돋보인다. 이 책을 통해 그분이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알고, 우리가 그분의 역사에 어떻게 동참하면 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분과 어떻게 관계를 쌓고, 예수의 증인이 될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성령론을 다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성령에 대한 언급은 초반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넓게 본다면 성령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고, 그에 대한 집중을 보인다. 이 책의 주 제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그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따라서 말 그대로 '성령론'에 대한 챔버스 목사의 가르침을 원한다면 별 소득이 없어 실망하게 될 것이다. 대신 주님이 우리에게 무얼 원하시는지, 무얼 말씀하시는지 등을 성경적으로 알고 싶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책 초반에 성령 세례에 대한 챔버스 목사의 언급은 앞서 그것이 성령론의 주요 화두라고 말했듯이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에 대한 - 신학 논쟁을 위한 책이 아니기 때문에 - 명확한 설명 없이 단지 언급만 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성경에서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비해 상당히 적게 언급 되고 있다. 따라서 그분이 역사 하시는 방법과 현재 우리에게 나타나는 일들과의 연관성을 찾는 일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그렇지만 현재 숱하게 일어나고 있는 논쟁은 계속 되어야 하고, 그것은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지난날 성부, 성자 하나님에 대한 논쟁이 보여 주듯이 그것을 통해 성령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분별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역사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지식으로 인해 많은 혼란이 있었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명확한 분별이 생긴 것처럼 성령에 대한 지금의 논쟁과 혼란은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더욱 분명한 지식과 섬김을 제공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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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포도주와 바벨론 포도나무 배도와 미혹 시리즈 1
로저 오클랜드 지음, 스데반 황 옮김 / 밴드오브퓨리탄스(BandOfPuritans)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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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세기 초반, 오순절 은사주의가 등장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은사에 대한 관심이 집중 되었다. 그리고 동세기 후반을 향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은사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방언, 치유, 블레싱, 기름부음 등 실로 놀라운 역사가 연이어 일어났다. 누구는 새 시대를 향한 성령님의 새 역사라며 감격하며 기대하고 있다. 반면 다른 누구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성령의 역사의 중심에 있는 이들은 그분의 역사에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다. 머지않아 하나님 나라가 완성 될 것이고, 그 나라 건설에 자신들이 크게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성경에서 경고하는 배교와 미혹의 역사라며 매우 큰 걱정을 하고 있다.

 '새 포도주와 바벨론 포도나무'

 이 책은 오늘날 개신교와 로마 카톨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령의 다양한 역사(라고 믿어지는)와 두 기독교 교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심스러운 운동들을 점검한다. 카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를 교리화 하려는 움직임 즉, 그녀를 동구속주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반열에 올리려는 실로 기가 막힌 움직임의 문제점을 고발한다. 그리고 개신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은사주의 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또한 개신교와 카톨릭의 연합 운동의 문제점 등을 비판한다. 더불어 하늘의 여왕, 만유의 여왕인 마리아를 중심으로 개신교, 이슬람교, 카톨릭 등이 어떻게 연합하려는지 그 움직임을 분석하고, 고발한다.
 이 책을 통해 현재 개신교와 카톨릭 등 세계 종교의 영적 흐름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그 둘을 통해 은사주의 운동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그 모습과 문제점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단순히 음모론으로 치부하겠지만 작금에 벌어지는 종교적 현상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코 그리 생각 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이상한 영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성령의 역사라며 믿을 수 없는 현상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그 현상들은 성경에 엄중히 비춰 보았을 때 배교와 미혹의 역사라고 심각하게 의심된다. 이렇게 말하면 진정성을 의심받은 당사자들은 반발 할 것이다. 성령님을 의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성경에 성령님의 모든 역사가 기록 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지금 일어나는 현상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성령님의 새 역사라며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성경에 다른 역사가 기록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성령님은 그렇게 역사하시지 않고, 성경이 증거 하는 대로만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경에 나온 대로 역사하시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증거 하고, 그분의 나라를 건설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시지 않는 이유는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할 수 있는(고후 11:14-15) 까닭이다. 사탄도 성경에서 증거 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능력을 흉내 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능력으로는 성령님의 역사와 사탄의 거짓 역사를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분 계획을 알고, 그 역사를 분별 할 수 있도록 성경을 주신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현상은 성경에 비추어 보아야 하고, 성경에 반한다면 심각하게 의심해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기독교에서 벌이지는 작금의 현상들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라 다른 신비종교에서 나타는 것과 같이 사탄의 속임수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진실한 마음으로 그것들을 좇는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성경의 진리에서 멀어진다면 그것은 분명히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성경에 비추어 보아야 하고, 그 진리에서 벗어난 것은 당장 멀리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가 완성 되는 현장에 있을지라도 그 영광을 함께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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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탄 2010-06-12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을 정확히 잘 읽으셨습니다,
 
성화란 무엇인가 비교신학 시리즈 4
게르하르트 포드 외 지음, 이미선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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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나라의 이미와 아직이라는 긴장 관계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 문제로 끊임없이 고민한다. 하나님 나라가 시작 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 세상에서 죄에 노출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날마다 회개의 삶을 산다. 그리스도를 점진적으로 닮아가는 삶을 살며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린다.

 '성화란 무엇인가'

 이 책은 기독교 구원에 있어 중요한 교리인 성화를 다루고 있다. 그것에 대한 5가지의 관점을 제공하여 성화에 대한 넓고, 깊은 이해를 돕는다. 루터주의, 개혁주의, 웨슬리주의, 오순절주의, 신비주의를 대표하는 5명의 저자가 각 교파의 성화론을 설명한다. 그리고 상대의 주장을 자신의 입장에서 논평한다.
 그동안 첨예한 신학적 대립을 통해 분열을 낳았던 교리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 책은 상당히 건전하고, 발전적인 논쟁을 벌인다. 이 책은 각각의 신학적 입장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점과 저자들의 상호 비판을 통해 성화에 대해 숙고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5가지 관점 중 특히 오순절주의와 신비주의 입장에서의 성화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 둘을 대표하는 저자의 강조점의 문제인지 아니면 두 입장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아서 신학적 체계가 잡히지 않아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성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 어쨌든 이 책과 같이 건전한 신학적 논의를 이루는 책이 더 많이 출간되어 서로 간에 합일점을 찾고, 그로 말미암아 신자들의 혼란을 줄이며 그 영적 성숙을 도와주길 바란다.

 이 책에서 오순절주의를 대표하는 러셀 스피틀러가 5가지 입장에서의 성화를 잘 정리해 준다.

 "웨슬리주의는 성결을 추구한다. 오순절주의는 성령 세례를 간구한다. 개혁주의 전통은 성화를 일종의 구원적 점진주의로 설명한다. 루터주의 전통은 사실상 성화를 칭의와는 반대로 생각하는 반면 신비주의적 관점은 소수의 사람에게 나타나는 신비한 내면성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인의 성품과 가치관에 있어서의 성장을 주장한다." p192

 성화를 바라보는 각각의 입장은 다르지만 이들 사이에 최소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곧 성화를 이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양식이라고 보는 것이다.
 성화는 단지 이해해야 할 이론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며 과정이다. 따라서 성화가 없는 신자는 생각 할 수 없다. 비록 그 과정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평생에 걸쳐 지나야 할 갈이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이어질 이것을 그분 안에서 진보를 이루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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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 - 진화론에 가로막힌 과학
제임스 르 파누 지음, 안종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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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인 2009년은 참으로 재미있는 해이다. 왜냐하면 2009년은 과학계에서 매우 중요하고, 큰 획을 그은 찰스 다윈이 탄생한 200 주년이 되는 해이자, 동시에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설명하여 세상을 변화시킨 그의 책인 '종의 기원'이 출간 된지 150 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또한 종교계에서도 역시 매우 중요하고, 큰 획을 그은 종교개혁가 존 칼빈이 탄생한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 한 해는 과학과 종교를 대표하는 두 인물을 크게 기념하는 해이니 무척 재미있다.
 작년 한 해에 세계 곳곳에서 두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가 있었다. 특히 다른 때보다 두 인물에 관련된 책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진화론이 허구적인 이론임을 밝히는 수많은 증거들의 발표가 있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발표와 동시에 숱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찰스 다윈의 한 마디 말로 인해 "신이 인간을 창조 했다"고 믿어온 기독교 중심의 서구 사회는 발칵 뒤집어 졌고, 그로 인한 논쟁은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을 반박하는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옹호하는 책도 아니다. 그저 인간의 발달과 신비를 과학적으로 살펴보고, 인간을 설명하는 과학의 한계를 지적한다. 어찌 보면 진화론에 맞서는 책이 될 수도 있고, 동시에 그것을 옹호하는 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지극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진화론을 조망한다. 다만 말미에 다윈의 쇠퇴에 살짝 무게를 더한다. 과학적 지식이 없다면 조금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하지만 지식이 없더라도 관심이 있다면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인간의 발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과학에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그 설명의 한계는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그것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진화론이 논쟁의 대상이 될지는 다윈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세상을 크게 놀래킬 것이라고 그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을 완전히 엎고, 막강한 영향력을 오래도록 발휘할지는 그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으로 인해 세상은 150년 동안 엄청난 갈등과 변화를 겪었다. 과학적으로 상당한 진보를 이루었지만 종교적으로는 매우 큰 쇠퇴를 겪도록 만들었다. 그로 인해 반목과 대립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진화론이 발표된 지는 불과 150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 미래를 정확하게 점칠 수는 없다. 하지만 예상하기로 앞으로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지금 당장 종말이 오거나 진화론을 반박 할 만 한 결정적인 또 다른 과학적 이론이나 신학적 근거가 발표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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