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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왜곡의 역사 - 성서비평학자 바트 어만이 추적한
바트 D. 에르만 지음, 강주헌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학자들은 성경을 보다 더 깊고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외적으로는 고고학, 역사학, 문학 등 여러 방법으로 성경의 증명과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내적으로는 비평학적 접근에 따라 문학비평, 본문비평, 양식비평, 역사비평, 자료비평, 편집비평 등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성경을 들여다보고,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방법들은 취지는 좋지만 여러 문제점을 낳았다. 이 방법들로 인해 성경 텍스트의 맥락이 해체 되어 본래의 메시지를 잃게 되었다. 특히 성경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그것에 의문이 제기 되기도 한다.
'예수 왜곡의 역사'
이 책은 한국에 소개된 바트 어만의 두 번째 책이다. 바트 어만은 성서비평학자로 이 책에서 역사적 관점으로 성경에 접근한다. 예수에 대한 비평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성경에 대한 이 접근법은 이제 국내의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해석이 아닌 복음 중심의 설교만 들어온 평신도들은 매우 낯설고, 충격적인 접근법으로 느껴질 것이다. - 바트는 이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책에서 바트는 예수에 대한 해석 과정에서 실수가 빚어졌다고 주장한다. 성서비평을 통해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먼저 성경 속에 나타난 예수와 관련된 모순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네 복음서와 신약 사이에 나타나는 충돌을 증거 한다. 이어 예수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보고, 성경의 완성 과정 등을 추적한다. 이상의 과정을 통해 - 저자 자신의 입장에서 - 그동안 역사적 예수가 어떻게 왜곡 되었는지 밝히고, 예수에게 입혀진 옷을 하나하나 걷어낸다.
성서비평을 처음 접해본 믿는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동안의 자신의 믿음에 대해 회의에 빠지고,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거나 경우에 따라 믿음을 버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믿지 않는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기독교를 비판하던 이들은 쾌재를 부를 것이다. 따라서 믿는 독자들, 특히 신학적 지식과 고민이 전무한 독자에게는 이 책의 일독을 권하지 않는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말이다. 어설픈 지식으로 혼란에 빠져 믿음을 버릴 것이라면 말이다. 물론 그러한 결과에 자신도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대신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쉽게 동조하지 않고, 객관적 사고를 견지 할 수 있는 믿음의 독자라면 지식과 믿음의 확장을 위해 한 번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한국 교회의 교육 상황을 생각 했을 때 그럴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들지만 말이다.
바트는 말한다. 이 책의 목적은 성경을 공격하거나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저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그러나 이러한 소신에도 불구하고 성서비평을 가르치고, 전하는 그의 저의가 의심이 된다. 그가 말하는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에필로그의 그의 저의가 드러나 있다. - 특히 그가 불가지론자라는 사실로 인해 의심은 가중된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자신은 근본주의자였다고. 그러나 이제는 불가지론자라고 말이다. 하지만 성서비평을 공부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성경을 연구하여 불가지론가 된 것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 단지 그것을 공부한 이후에 별도로 하나님에 대한 물음과 회의로 자신의 믿음을 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솔직한 말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성서비평에 대한 옹호와 그것을 가르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아무튼 객관적 신학 지식과 - '객관적'이라는 말의 분명하지 않은 한계 설정에 문제가 있지만 - 견고한 믿음이 - '견고한'이라고 하면 상당히 보수적이고,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 있다면 이 책을 읽어도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이 책을 통해 지식의 깊이를 더하고, 믿음의 더 넓고, 큰 확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을 다각도로 연구하기 위한 여러 방법과 그 성과는 존중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의 단점은 분명히 지적 되어야 한다. 다양한 연구 방법을 통해 예수와 제자들의 생존 당시의 사회상과 역사적 배경 등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성경 이해의 바탕을 튼튼히 쌓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논리적, 이성적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비평학으로 인한 믿음의 손실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러한 연구 방법으로 하나님의 본래 메시지를 잃게 되고, 믿음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점은 우려 할 만 한 일이다.
성서비평, 특히 역사비평은 성경에 담긴 역사적 사건과 나아가 성경의 순수성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이다. 성경의 실재성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변별한다는 점에서는 그 시도를 높이 평가 할 만 하다. 그러나 그것을 변별 할 자료가 부족하거나 없을 경우 그 실재성을 입증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더욱이 이성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성적이지 못한 성경적 내용과 증거는 거짓으로 평가한다는 점에 맹점이 있다.
바트는 역사학자의 역할을 "어떤 사건이 과거에 일어났을 확률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 속 대부분의 사건들은 역사에 비추어 봤을 때 일어날 확률이 적거나 혹은 제로이다. 따라서 그 사건들은 모두 부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신앙, 곧 믿음은 이성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믿음은 객관적 자료와 일어날 확률로 입증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으로 믿음을 입증 할 수 있다면 믿음의 순수성은 사라진다. 그때에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이해'에 불과하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과 같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그렇다고 성서비평이 반대되고, 증단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것은 성경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계속 시도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믿음을 변별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단지 믿음의 보조적 도구로써 사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