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주의를 경계하라 - 타락한 세상의 유혹에 대항하기
C. J. 매허니 외 지음, 소행선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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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속화는 이 세상 풍속에 물드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주로 종교적 입장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기독교 입장에서 이 말을 사용하면 세속화는 성경에 담긴 진리대로 사는 게 아니라 세상의 이치대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가 세상에 너무나 많은 것을 양보하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하기 시작하자 갖가지 병폐가 발생하게 되었다. 기독교의 본질이 왜곡 되었다. 점차 진리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기준이 불명확해지자 무엇이 기독교인지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혼란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동화되어 갔다. 기존에 진리라 여겼던 것들을 멀리하고, 새로운 기준을 척도로 삼기 시작했다.

 

 '세속주의를 경계하라'

 

 이 책은 기독교와 세속주의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속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저자는 모두 5명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주제로 세속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주요 주제를 살펴보면 '텔레비전/인터넷/영화, 음악, 물질주의, 패션감각 등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직접적으로 맞딱뜨리고 있는 사항들을 다루고 있다. 첫 장에서는 세속주의의 문제를 이야기 한다. 세속주의와 관련하여 주의 할 것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등을 이야기 한다. 그 외에 다른 장에서는 앞서 열거한 주제들로 이야기를 한다. 몇 가지 사항에서는 그것들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전제하여 각각의 사항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마지막 장에서는 세상을 즐기고, 참여 할 것을 독려한다. 언뜻 보면 마지막 장은 첫 장, 그리고 다른 장들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발을 딛고 있는 곳, 십자가를 전해야 할 곳은 세상임을 생각한다면 마지막 장의 기본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여러 명이라서 내용의 연속성은 떨어진다. 그러나 기본적인 관점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읽는데 부딪히는 점은 없을 것이다. 내용이 깊지 않고, 글이 설교체이기 때문에 편하게 - 가볍게가 아니다. -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수시로 변하는 세상 풍조에 기독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기독교인은 계속 기독교의 진리를 따르며 뒤쳐지는 사람들로 각인 되어야 할까? 답답한 이들로 평가 받아야 할까? 흔히 믿지 않는 이들은 기독교에 양보와 타협을 촉구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양보와 타협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불변하는 진리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는 진리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양보와 타협이 불가능하다. 양보와 타협은 곧 진리의 파괴와 부인을 의미하기 때문에 결코 물러설 수 없다. 다만 영속하는 진리 안에서 바른 삶 -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바탕으로하여 그분과 이웃을 사랑하는, 그에 마땅한 구체적인 행동이 있는 삶 - 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세상과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좇는 삶을 거부하고, 앞에서 이야기 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행동이고, 추구해야 할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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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돌보심에도 우리는 왜 불안해 하는가
한나 W. 스미스 지음, 김진선 옮김 / 두란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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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을 갖고 신앙생활을 시작 하면 평안이 가득하고,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막상 신앙생활을 하자 그전과 달라진 것은 없고, 도리어 전보다 마음이 더 어려워 졌다고 느끼는 이들 - 이 글에서 언급되는 모든 인칭 대명사는 눈에 띄는 명시와 구분이 없는 한 모두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 이 있다. 이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신앙생활을 하면 평안하고,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그것은 '믿음 안에 온전히 거했을 경우'에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만 누릴 수 있다. 어떠한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내게 발생한 일이 남들이 보기에 좋은 일로 보이지 않아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좋은 일이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만 바라본 채 불평하고, 불안해 한다.

 

 변화무쌍한 세상을 살다보면 수많은 일을 겪게 된다. 나의 마음과 가정 경제를 어렵게 하고, 또는 즐겁게 하는 일들을 숱하게 겪는다. 그러한 경험들로 인해 우리는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닥칠 것이라 예상하며 그것을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 한다. 물론 어떠한 일은 분명히 닥칠 일이지만 대부분의 일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이 상정한 상황에 불안해 하고, 두려움에 떤다. 전혀 불필요한 그 일을 자처한다.

 

 '하나님의 돌보심에도 우리는 왜 불안해하는가'

 

 이 책은 '19세기의 잔느 귀용'이라 불리는 한나 휘톨 스미스의 책이다. 그녀는 다른 책을 통해 위로의 말을 전한 바 있다. 이 책을 통해서도 그녀는 우리에게 귀한 말을 전해 준다. 오늘의 불안 가운데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 할 수 있도록 평안과 위로를 전한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과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이 책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녀는 퀘이커교도라는 점이다. 퀘이커교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열정은 본받을만 하나 몇 가지 사항에 있어 분명한 이견이 있기 때문에 지지 할 수는 없다. 더욱이 퀘이커교는 신비주의적 색체를 띄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는 한나 스미스의 말은 점검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특히 9장과 같이 맞는 말인 것 같으면서도 의심이 가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왜곡된 생각과 신앙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의 모든 내용이 이상한 것은 아니니 이 책을 읽는다면 모든 내용을 아무 생각 없이 읽지 말기를 당부한다. 기독교 교리에 분명히 입각하여 읽는다면,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하는 성경 내용을 들쳐 보면서 읽는다면 믿음생활에 더욱 집중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교리와 성경에 대한 공부가 선행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며 불안에 떠는 이유는 온전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분명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신뢰가 있다면 불안에 떠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더 이상 불안해 하고, 힘들어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각자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을 때를 떠올리면 문제의 해결은 간단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처음 했을 때는 감사와 기쁨, 그리고 평안이 넘쳤을 것이다. 왜 그럴까? 그때는 온전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그리스도께 콩깍지가 씌어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온 초점이 그리스도께만 향해 있었던 까닭이다. 우리는 이것을 회복 할 필요가 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오직 주님만 신뢰하며 그분만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더 이상 불안에 떨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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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비평학은 과학인가 조작인가
에타 린네만 지음, 송 다니엘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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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성경비평학 관련 수업을 듣고, 신학책을 읽으며 여러 고민과 의문을 품었습니다. 신구약의 내용과 저자 등에 - 성경의 권위를 침범하면서까지 - 의문을 제기하는 신학적 주제와 내용들을 보며 신학이라는 명목하에 성경을 그렇게 대해도 되는지 나름 우려를 느꼈습니다. 인간인 우리가 성경을 그렇게 난도질 하는게 잘못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신학적 작업의 합당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강의와 책의 내용이 너무도 당연시 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저의 의문이 잘못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괜한 생각을 한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제 의문이 꼭 잘못된 것만은 아니라는 위로와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성경비평의 문제와 잘못된 점을 꼬집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 그 뿌리를 찾기 위해 철학의 역사를 더듬어 봅니다. 신학이 철학적 방법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질 되었는지 신학의 잘못된 역사를 폭로 합니다. 특히 성경비평 - 역사비평, 그것의 지주인 문학비평, 양식사, 편집사 - 을 부정합니다. 한 마디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복음서와 관련된 두 자료설, 이사야서의 본문과 저자의 설정 등 소위 성경비평 - 그 안에 포함 되어 있는, 앞서 언급한 다양한 역사비평 방법들 - 이라는 신학 연구방법이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과학적 근거가 희박 하고, 터무니 없는지 다양한 예를 들며 비판합니다.  

 

 이 책과 같이 성경비평을 비판하는 책은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 저의 짧은 정보력으로는 - 첫 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내용을 지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지식과 생각이 무척 짧기 때문에 함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먼저 기존의 신학 연구방법에 대해 - 가진 지식이 미천하지만 가능한한 깊이 - 생각해 보고, 이 책을 몇번은 더 읽어보아야 저만의 생각과 입장이 정립 되고, 추천 여부가 가려질 것 같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본인은 기존의 의문에 대한 답변을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얻었기 때문에 이 책이 참 반갑게 느껴집니다. 마음껏 추천 할 수는 없지만 혹시 본인과 같이 신학 연구방법에 의문을 품은 이가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씀 드립니다. 향후 다시 신학 연구방법들과 마주하게 될텐데 그때 또 당황하지 않도록 그 방법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지금 미리 생각해 두어야 겠습니다. 

 

 어쨌든 본인은 신학 연구방법에 의문을 품고 있기 때문에 신학자들이 그 방법 - 역사비평 신학 - 에 따라 성경을 마구 오리고, 붙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연구방법에 문제는 없는지 돌아 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듭니다. 이 책에서 비판하는 내용을 더 깊이 연구하고, 논의하여 올바른 신학 연구방법을 마련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을 통해 성경을 보다 제대로(?) 연구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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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와 오순절 성령 강림
리처드 개핀 지음, 김귀탁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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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을 쓰기에 앞서 한 가지 사실을 당부 드립니다. 이 책과 '기독교 문서선교회'의 '성령 은사론'이라는 책은 동일한 책이니 혹시 이중 구입이나 혼란을 겪는 분들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리처드 개핀의 책을 구입 하실 때 이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저자인 리처드 개핀의 말을 빌리면

 

 "1974년 12월부터 1975년 1월까지 개최된 복음주의 개혁파 콘퍼런스의 후원 아래 뉴질랜드 전역을 다니며 행한 일련의 강좌에서 시작되었다. 이후에 이 강좌의 자료는 1976년 8월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개최된 개혁주의 연합 대회에서 실시한 성령 사역에 대한 콘퍼런스에서 발표하기 위한 자료의 기초로 사용되었다. 이어서 이 자료는 1977년 1월 겨울 학기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12번에 걸친 강의의 자료로 확대 되었다." (출처 : 서언에서)

 

 이상과 같은 과정을 통해 출간된 책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 책은 은사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위한 심도 있는 논문이나 단행본이 아닙니다. 본래 강좌에서 확대된 책이기 때문에 시야가 넓지 않습니다. 본문의 양이 200 여 페이지가 조금 안 되는, 비교적 적은 양을 담고 있습니다. 시야가 넓지는 않지만 은사 문제에 대한 상당히 깊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결코 내용이 적다고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본다면 큰 코를 다칩니다. 내용이 많지 않지만 꽤 깊고,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정신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합니다. 은사 문제와 관련해서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읽는다면 논지를 놓치기 쉬우니 그 문제에 대해 배경지식을 쌓고 읽으시길 당부 드립니다. 무엇보다 은사 문제에 대해 아무런 고민 없이 이 책을 읽는다면 입장 정리에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이 책은 은사와 관련해서, 특히 예언과 방언과 관련해서 리차드 개핀의 입장이 분명히 담긴 책입니다. 개핀은 은사 중지의 입장에서 두 문제에 관해 서술합니다. 그렇기에 은사 지속론의 입장에 있는 이가 이 책을 읽는다면 기분이 다소 언짢을 수 있으니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은사 중지를 지지하는 이라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견지하고,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반대로 은사 지속을 지지한다면 이 책의 내용에 기분 나빠하고, 비판하기보다 담긴 내용을 기초로 자신의 논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정리 하면 좋을 것입니다.

 

 이 책만으로 예언과 방언 문제에 대해 은사 중지 입장에 대한 정리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추가적으로 동 출판사에서 나온 '오늘날의 예언과 방언, 과연 성경적인가?' 라는 책도 읽으면 무척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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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예언과 방언, 과연 성경적인가?
팔머 로버트슨 지음, 이심주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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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가끔 하나님께 직통 계시를 받았다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직접 무언가를 말씀해 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말씀에 권위를 주장한다. 특히 은사 집회에서 그런 일이 잦다. 과연 하나님께서 정말 그들에게 계시를 주신 것일까?

 

 19세기 말, 20세기 초 은사 문제가 크게 대두된 이래로 그것과 관련된 문제는 지금까지 온갖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 중심에는 주로 예언, 계시, 방언이 자리잡고 있다. 이 세 문제는 은사지속론과 은사중지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단골 메뉴이다. 그들은 그 문제들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반박하며 서로 팽팽히 맞선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하여 우리 각자에게 각양 좋은 은사를 주신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세 은사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성경이 완성과 관련이 있다.

 

 이 책의 결론을 먼저 이야기 한다면 은사중지론을 대변한다. 저자는 성경의 완성과 함께 예언과 계시, 그리고 방언은 중지 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러한 주장을 골자로 그 세 가지의 문제를 각각 면밀히 살펴본다. 은사지속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단호하게 그러나 공격적이지 않게 반박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차분히 펼친다. 이 책을 읽으면 세 문제에 대해 입장이 분명히 정리 될 것이다. 이 책 한 권으로 그 문제들에 대한 정리는 충분하다. 물론 은사중지론을 따르는 사람에 한해서 그렇다. 은사지속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큰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두 입장에 있는 모두가 한 번쯤은 꼭 보면 좋을 책이다.

 

 예언과 계시, 방언의 문제는 성경의 완전성과 충분성을 생각하면 답이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오늘날 그 문제들로 인해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인가?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에게 성경이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한 이해에 있어 더 이상의 의문은 필요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꾸만 의문을 갖고, 문제를 만들어 낸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바른 분별력을 갖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더 깊이 상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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