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 - 그의 삶, 그의 세계 ㅣ 세계 영성의 거장 시리즈 3
더글라스 길버트 & 클라이드 S. 킬비 엮음, 정성묵 옮김 / 가치창조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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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회심한 후 처음 접한 기독교 서적은 바로 C. S. 루이스의 전기였다. - 아직도 내 책장에 꽂혀 있다. - 어떻게 그 책을 접하게 되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 아마 인터넷 광고를 통해서였던 것 같다. - 그 책에서 만난 루이스는 참으로 동경 할 만한 인물이었다. 나는 그의 삶과 사상에 매료 되었다. 자신의 삶과 기독교에 열성을 보이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특히나 그때 나는 막 회심한 상태였기에 열정이 타오르고 있었다. 때문에 또한 타오르는 열성을 가진 루이스에게 깊이 빠져 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읽은 루이스 전기는 글자만 있었다. 표지에 루이스의 얼굴이 있긴 하였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었다. 사진도 몇 장 있었으면 루이스를 알고, 마음으로 느끼기에 좋았을텐데 싶었다.

 

 'C. S. 루이스 - 그의 삶, 그의 세계'

 

 이 책은 그로부터 8년이 지난 뒤 만나게 된 루이스의 또다른 전기이다. 루이스의 첫 전기를 만난 이후 국내에 출간된 루이스의 책을 모조리 구입하여 그와 즐거운 교제를 나누었다. 그런데 왠지 모를 아쉬움이 있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루이스의 책들에 실린 동일한 초상 외에 그의 모습에 대해서는 전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루이스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매번 본 얼굴 외에 다른 모습은 보지 못했으니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이 책에는 루이스의 다양한 사진이 실려 있다. 물론 루이스에 관해, 그의 어린 시절과 교수 시절 등에 대해서도 담겨 있다. 사진과 글이 어우러져 루이스에 대해 더 생생히, 그리고 감각적으로 느끼고 알 수 있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루이스 외에 주변 인물이나 풍경 사진은 많은데 정작 루이스의 자신의 사진은 적다는 것이다. 또한 내용적으로는 그의 신앙에 대한 언급이 적다는 점이다. 루이스의 평소의 삶의 모습은 담겨 있지만 어떻게 신앙 생활 했는지는 담겨 있지 않기에 아쉬움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단점이 크게 느껴지는 책이긴 하지만 어쨌든 루이스와 그의 삶을 다시 만나게 되니 무척 반가움이 든다.

 

 나는 루이스로 인해 결심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가장 먼저 앞으로 나 또한 그와 같이 책을 열심히 읽겠다는 것이었다. 그 전부터도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개인적인 형편상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떻게든 책을 내 영의 양식으로 삶고, 닥치는 대로 읽겠다고 결심 했다. 또한 나도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 했다. 기독교를 열심히 변증하는 루이스의 모습은 큰 도전이 되었다. 그 모습으로 인해 나도 하나님을 전하는데 열심을 보여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반은 잘 실행하고 있고, 나머지 반은 신통치 않다. 그래도 내 삶은 계속 진행 중이기에, - 사고 없이 아프지 않고 살다 하나님께 간다면 - 산 날보다 살 날이 몇 배는 더 많기에 남은 시간 동안 두 가지 결심을 더욱 충실히 이루어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보면 나는 루이스에게 빚진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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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과 자유의지 - 예정과 자유의지에 대한 4가지 관점 ㅣ 비교신학 시리즈 8
존 파인버그 외 3인 지음, 이미선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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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할 때가 있다.

 "내 인생 내 맘대로 되지 않더라."

 물론 우리 인생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리고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즉 내 인생은 많은 경우 나의 의지와 힘에 따라 방향이 결정된다. 하지만 내 힘과 능력으로 방향을 정해도 그리 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되지 않는 부분을 운 혹은 운명이라 부른다. 정말 우리 인생에는 운이나 운명이라는 게 있을까? 나의 힘과 의지로는 어찌 할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그 부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신을 믿지 않는 이들은 인간의 인생에 작용하는 또 다른 힘을 운이나 운명이라고 부른다. 기독교 식으로 보면 그것은 (완전히 일맥상통하지는 않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인생에 작용하는 또 다른 힘을 하나님의 예지와 예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들의 골머리를 무척 썩힌다.

 '예정과 지유의지'

 이 책은 예정과 자유의지, 즉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그것에 관한 네 가지 상반된 관점, '하나님 결정설', '하나님 전지설', '하나님 능력제한설', '하나님 지식제한설'을 정리하고 있다. 비록 네 가지 관점 이외에 빠진 관점이 있어서 아쉽긴 하지만 이 책에 실린 네 관점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 양립과 균형에 대해 숙고 할 수 있으므로 그것으로 만족한다.

 독자는 이 책에 담긴 네 관점을 통해 예정과 자유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네 관점을 통해 더욱 심도 있게 생각 할 수 있다. 각 관점의 내용을 읽다보면 이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저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모두 인간의 지식과 논리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헛점이 있다. 그렇기에 독자는 무엇이 맞는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생각 해야 할 부분이 많아서 내용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용을 꼼꼼하게 읽으면 자신의 생각을 정리, 보완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신 분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사항이 담겨 있다. 먼저, 하나님이 전지하시다는 말은, 그분은 이 세상의 과거, 현재, 미래 모두를 알고 계심을 가리킨다. 그분은 세상에 대한,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말은, 그분은 모든 것이 가능하심을 뜻한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신 분이다. 그분은 자연을 움직이실 수 있다. 인간의 인생을 좌지우지 하실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인간의 자유이다.
 하나님의 예지와 예정,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는 서로 상치 된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지하시고, 예정하셨다면 인간은 결코 무언가를 자유롭게 생각하고, 결정 할 수 없다. 그 경우 인간의 모든 의사와 행동은 이미 하나님 손바닥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니다. 반대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하나님의 주권이 제한된다. 인간이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면 하나님이 그것을 미리 정해 두어서도 안 되고, 아셔도 안 된다. 진정한 자유는 예지와 예정 밖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예지와 예정이 잘못된 것이란 말인가? 아니면 인간에게 자유가 없다는 말인가? 성경에서는 그 두 가지 모두를 이야기 하는데 이 상호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수많은 지식인들이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다른 쪽에서 막히고, 저렇게 생각하면 또 다른 방향에서 막힌다. 최소한 지금으로써는 그 두 가지를 완벽히 해결할 수 없다. 아직은 그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섭리라고 이해 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그저 신앙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이상히 여기거나 (혹시나) 거짓이라고 생각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단지 인간의 지식과 논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앙으로 받아들이되 그것을 이해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나님께 지식과 지혜의 빛을 구하고, 그 빛을 계속 비추어야 할 것이다.

 예정과 자유의지는 아직 완벽히 해명 할  수 없지만 그것들을 깊이 숙고하고, 동시에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돌아본다면 이 세상에 대한, 우리 인생에서의 하나님의 손길과 세밀하심이 얼마나 놀라운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큰 은혜를 풍성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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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 ㅣ Coram Deo 코람데오 시리즈 4
싱클레어 퍼거슨 지음, 장호준 옮김 / 복있는사람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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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많은 성도들이 교리는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되거나 혹은 배워야 한다면 그 내용을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 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 교리는 신학생이나 목회자 혹은 신학자만 배워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족교회의 백금산 목사는 '교리 공부가 즐거운 4가지 이유와 3단계 방법'에서 교리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 하였다.
 
 하나, 교리는 성경 해석의 열쇠다.
 둘, 교리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인생관의 안경이다.
 셋, 교리는 교회 공동체의 신분증이다.
 넷, 교리는 삶의 지도다.
 
 위에 내용 모두가 맞는 말이고, 다 중요하다. 그 중 특히 몇 가지에 강조를 주어야 한다면, 교리는 '성경 이해를 위한 참고서요, 성도의 삶의 안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교리는 성경의 이해를 도와주며 (성경을 보조하여) 성도의 삶의 실천을 이끌어 주는 무척 중요한 도구이다. 교리는 결코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성도에게 큰 도움을 주고, 무척 이로운  보조식품과 같다. 문제는 교리를 딱딱하고,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다.
 교리가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접근이 어렵다면 소용이 없다. 교리는 성경의 핵심 내용을 신학적으로 정리를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딱딱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교리를 표기해서야 되겠는가? 교리에 대해 깊이 배우면 어렵지만 주요 내용을 개론적으로 배우면 많이 어렵지 않다. 좋은 교리서의 도움을 받는다면 누구라도 충분히 익힐 수 있다. 그렇다면 교리를 배우기 위해 무슨 책을 보면 좋을까?
 
 '성도의 삶' 
 
 이 책의 저자는 싱클레어 퍼거슨이라는 개혁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소명, 중생, 회심, 칭의, 양자, 성화, 견인, 영화 등 주요 교리를 설명하고 있다. 어려운 그 내용들을 상당히 쉽게 해설하고 있다. 복잡하고 여러운 신학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교리를 쉽게 잘 다루고 있다. 단순히 교리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성도의 삶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그 안내를 적절히 하고 있다. 각 주제를 장황하지 않고 매우 명료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은 교리에 대해, 성도의 삶에 대해 처음 접하는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목회자, 성경 교사 등이 성도나 학생들에게 교리 및 성도의 믿음과 삶의 내용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반대로 성도의 삶과 믿음에 대해 궁금한 초신자나 성도가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교리에 대해 비교적 쉽게 알고 싶거나 성도의 믿음과 삶에 대해 알고 싶은 누구에게든지 이 책은 매우 유용 할 것이다.
 
 교리는 왜 배워야 하는가? 물론 이 글의 서두에서 말한 이유 때문이다. 그 외에 교리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믿음과 실천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이다. 교리는 성도의 삶 중 믿음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의 내용을 모른다면 올바른 실천이 불가능하다. 바꾸어 말해서 실천을 하긴 하지만 믿음의 내용은 모른다면 잘못된 실천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내용을 반드시 알 필요가 있다.
 그러한 교리를 배우기 위해 무슨 책을 보면 좋을까? 이 책을 개론서로 삼고,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교리 강좌 시리즈를 그 다음 교재로 하면 좋다. 그리고 심화 학습이 필요하다면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보면 좋다. 물론 어떠한 책을 보든 가장 기본이자 필수는 성경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책들로 교리를 공부하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교리가 어렵다는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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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머징 교회 바로 알기 ㅣ 잘못된 기독교 분별 시리즈 1
D. A. 카슨 지음, 이용중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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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한 사상은 이전 시대의 사상에 대한 반동으로 탄생한다. 이전 사상의 부조리나 모순 등을 지적하며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대안으로 새 사상이 제시 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따라서 그러한 불완전성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제시하는 사상 또한 불완전성을 내포한다. 더욱이 인간은 정형화된 틀에 꼭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한 사상은 모든 것을 설명 할 수 없고, 제한 할 수 조차 없기 때문에 항상 참일 수 없다. 그렇기에 그것은 또 다른 사상에 의해 뒤집어지게 마련이다. 즉 지난 시대의 사상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오늘의 사상이 다음 시대에도 존속 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 할 수 없다.

 교회는 변할 수 없는 존재이다. 교회는 사상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시대 정신으로 움직였다면 시대마다 변하는 사상을 따라 그 모습이 수 없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 모습이 바뀔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바뀌지 않는 교회의 모습이란 그 외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해서 세상에 대한 인식, 즉 세계관을 말한다. 

 교회의 세계관은 진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결코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의 내적 양식과 행동 양식은, 이것 또한 진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시대 양식의 영향을 받는다. 어제나 오늘이나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시대의 문화 양식에 따라 예배당의 건축 양식, 교회를 구성하고, 가동시키는 시스템 등은 변한다. 전통에 의해 이것들이 일정부분 제한되긴 하지만 시대 양식의 영향을 다량으로 받아 조금씩 변화한다.

 오늘날 교회의 양식은 불과 한 두 세대와 비교하여도 크게 변화 했음을 알 수 있다. 내적으로는 찬양과 예배가 변하였다. 록으로 대표되는 오늘날 세상의 음악의 영향을 받아 교회의 찬양 스타일과 내용이 바뀌었다. 예배를 하나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맞춤으로 열린 예배, 구도자 예배 등 예배의 형태가 다양하게 바뀌었다. 특히 교회는 뉴에이지의 영향으로 관상기도, 각종 신비주의 예언 등 다양한 영성 훈련을 통해 개인의 영적 능력을 고양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다. 교회는 이렇게 시대 양식을 적극 도입하여 내외 양면으로 바뀌고 있다. 좋게 본다면 발전이지만, 전통에 비추어 본다면 변질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급격한 변화 중 가장 주목 할 만 한 최근의 변화는 아마 이머징 운동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아직 명확한 형태를 띠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정확히 말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의 중심 기조가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전통적 시각에서는 그것을 무척 우려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의 주창자들이 교회의 1차적 관심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두도록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들은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인간에게 집중하는 교묘한 눈가림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걱정스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조직신학이 시사하는 바처럼 기독교의 1차적 관심, 기독교의 중심은 신론, 즉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없다면 인간도 없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기 때문에 사실 인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존재이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이 필요하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이와 같은 인간의 관심을 하나님으로부터 떼어 놓는 이머징 운동은, 그 추이를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일단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대해 간략히 평을 하고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 이 책은 국내에 몇 안 되는 이머징 운동 관련 서적이다. 이머징 운동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돋보인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머징 운동과 이머징 교회는 아직 명확한 형태를 띠고 있지 않다. 그것의 성향과 그것이 추구하는 바를 현재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지금까지 드러난 이머징 운동의 모습을 놓고 더욱 철저하고, 심도있게 분석한다. 그만큼 이 책은 어렵다. 이머징 교회에 대한 뚜렷한 형태와 이해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면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좀더 수월 할 것이다. 하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머징 교회의 윤곽을 서서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예비적 고찰로써 머리를 싸매고서라도 이 책을 살펴볼 필요와 그 가치가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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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예정론
R.C.스프룰 / 생명의말씀사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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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의 예정론은 기독교 교리에서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이다. 예정론은 칼빈의 매우 훌륭한 저서인 '기독교강요'에 잘 담겨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정론을 칼빈이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정론' 하면 칼빈을 떠올리고, '칼빈' 하면 '예정론'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성 어거스틴이 이야기 했다. 더욱이 그것은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다. 예정론은 엄연히 성경적 내용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예정론에 의혹과 비난을 제기한다.
 칼빈주의 5대 강령인 'TULIP' 은 예정론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특히 TULIPU 에서 U 에 해당하는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예정론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원 받을 자를 미리 예정하셨다는 교리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어떤 조건을 참고하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출처 : http://blog.daum.net/londonhorace/15813522)"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구원에 있어 인간의 조건과 노력은 배제된다. 한 영혼의 구원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의 그 어떤 조건과 노력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교리이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예정론에 관한 많은 반발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알기 쉬운 예정론'

 

 이 책은 이해하기 어려운 예정론 교리를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을 읽는다하여 그것을 바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다른 책들에 비해 예정론에 대해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으니 그것에 관한 입문서(?)로 삼을만 하다. 이 책을 통해 예정론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기독교강요를 통해 심화 학습하면 좋을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성경을 들여다 보아야 할 것이다.

 

 예정론은 전도의 문제와도 연결이 된다. 간혹 칼빈의 예정론을 이야기하며 전도의 무익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택함 받은 사람은 어차피 구원 받을텐데 뭐하러 전도하냐고 말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다. 아무리 택함 받은 자라도 복음을 듣지 못하면 무엇을 믿어야 할지 스스로 알 수 없다. 아무 것도 듣지 못해서 믿음을 갖지 못한다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주위에 복음의 소식을 전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는 택함 받은 자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구분없이 모두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특히나 전도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이다. 그것은 신자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다. 내 생각에 따라 하고 말고 할 것이 아니다. 이것만으로도 전도의 이유는 충분하다. 예정론은 비록 쉽게 수긍 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이 반전도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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