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학의 특성들 - 간결하게 풀어 쓴 개혁주의 신학
신복윤 지음 / 합신대학원출판부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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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한국 교회가 말이 아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무척 불안해 보인다. 외부에서는 이단이 계속적으로 교회를 흔들어 놓고 있다. 교회는 이단들의 강력한 도전을 지속적으로, 점점 더 거세게 받고 있다. 교회 내부에서는 각양 미혹이 판을 치고 있다. 거짓된 진리와 잘못된 경건이 성도들을 바른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 만인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가장 거룩해야 할 목사들의 일부가 누구보다 타락하여 대내외적으로 파란을 일으키며 앞장서서 교회를 더럽히고 있다. 한국 교회는 현재 총체적 난국과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위기와 어려움의 때를 이겨내고, 벗어나려면 교회는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까? 당연히 거룩을 회복해야 한다. 목사들은 물론 성도들의 삶이 거룩해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성령님의 은사로 교회를 온전히 섬기는 한편 성령의 열매를 자신의 모습과 그 삶에서 맺을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진정한 신학을 되찾아야 한다. 바른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거룩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적인, 바른 앎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교회는 지금 신학, 교리의 부재에 빠져있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따르는지는 대충 알고 있으나 어떻게 믿고,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는 전혀 모른다. 그래서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 이러한 무지와 오류로부터 벗어나려면 바른 신학을 교회의 주춧돌로 심어야 한다. 그렇다면 바른 신학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성경을 바로 해석하고, 그 가르침을 성도들에게 온전히 전하며 성도들로 하여금 성경을 따라 흠 없이 살게 하는 신학일 것이다. 과연 그러한 신학이 있을까? 본인은 그것을 감히 개혁주의 신학이라 말하고 싶다.

 ’개혁주의 신학의 특성들’

 본서는 개혁주의 신학의 특성들을 가르치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 다시 말해서 칼빈주의 신학의 대표적 특성은 보통 칼빈주의 5대 교리(TULIP)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교리라는 한정된 부분에서의 특성일 뿐 그 신학 전체를 드러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칼빈주의 신학,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개혁주의 신학의 전체적인 특성들을 정리 한다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 본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개혁주의 신학의 특성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들고 있다. 성경의 권위, 하나님의 주권, 구원의 전적 은혜성, 성례, 교회의 의회 정치. 이러한 특성들은 가히 개혁주의 신학의 대표라고 할 만하다. 그러면 각각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성경의 권위. 이것은 근본주의자들을 통해 오용되고, 세대주의자들에 의해 남용되며 자유주의자들에게 거부되는 특성이다. 성경은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유기적 영감으로 각 저자들을 통해 씌어졌다. 이것은 66권 중 어느 한 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66권 전 권에 해당하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경은 어떠한 오류도 없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분은 이신론자들의 주장과 같이 단지 창조만 하시고 당신의 피조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계신 분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와 의, 그리고 인간의 운명과 자연의 법칙" 등으로 자신의 창조물, 피조물을 다스리신다. 그분은 "모든 영역과 모든 관계에서 당신의 통치권을 행사"하신다. 그러한 통치권을 바탕으로 한 작정과 섭리로 피조물들을 이끄시고, 특히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셨고, 구원으로 이끄신다.
 인간의 구원은 성부 하나님의 단독 사역이 아니다. 그것은 성부 하나님의 계획과 성자 하나님의 십자가에 달리심과 부활,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확증(엡 1:3~14)이라는 성삼위 하나님의 공동 사역이자 합작품이다. 택자들은 자신의 어떠한 노력도 없이 삼위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사역으로 속죄를 받았다. 그리고 영원한 아들 됨을 보장 받았다.
 거룩한 예식인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이 성례는 말씀과 더불어 그리스도를 깊게 체험 할 수 있는 은혜의 방편이다. 중생한 성도들은 세례와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약속을 보증 받는다. 거듭난 성도들은 성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혜택과 은혜를 체험하고, 적용 받는다.
 개혁파는 대의 정치라는 장로교 고유의, 그러나 성경에 근거한 정치 형태를 갖고 있다. 이 정치 체제는 "신자들이 선거한 모든 직원들은 권위에서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이 정체는 치리 장로를 대표자로 선택하여 그들과 목사가 함께 대의 정치를 행하게 한다." 이러한 정치 체제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정치 조직을 통하여 순종의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셨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한다. 또한 "신학은 그것이 표현하는 형식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교회의 성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서 교회는 "존재 자체를 위해서 교회 생활의 규칙"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사실들에 연유하여 개혁파 정체는 중요성을 갖는다.

 한국의 개혁주의 신학은 교회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국내에 들어온 선교사 중 많은 이들이 장로교에 속해 있었다. 그들을 통해 전파된 개혁주의 신학은 장로교회의 토양이 된다. 그렇게 교회의 밑거름이 된 개혁주의 신학은 20세기 초 중반에 첫 위기를 맞이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도전과 신사참배의 강요로 교회는 무너진다. 역사적 상황 속에서 개혁주의 신학은 교회의 분열이라는 뼈아픈 시련을 막지 못했다. 이후 개혁주의 신학은 해방과 6.25 전란, 그리고 경제 성장 등 여러 차례의 극적인 상황에서 명맥을 잘 유지한다. 하지만 70~80년 대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잘못된 경건주의와 신비주의, 그리고 세대주의 및 자유주의 신학 등의 계속 되는 공격과 교회의 분열로 성장에 제동이 걸린다. 그 도전과 위기를 방어하는데 온 집중을 쏟은 까닭에 개혁주의 신학은 지속적인 발전을 하지 못한다. 여기에 한국 개혁주의 신학의 과제가 담겨 있다.
 바른 신학이 사라지고, 다른 신학과 잘못된 신학이 교회를 장악하여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는 지금. 개혁주의 신학이 바른 대안과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본인은 감히 그렇다고 확언한다. 물론 개혁주의 신학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일한 대안은 오직 성경이고, 가장 바른 대안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해석과 가르침이 각각 다르고, 매우 혼탁한 작금의 현실에서 개혁주의 신학은 가장 성경적이고, 따라서 가장 바른 길이라 확신한다.
 개혁주의 신학이 바른 대안이라고 확신하는 까닭은, 그것은 초대 교회와 교부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 및 청교도들로 이어지는 정통신학, 성경에 대한 바른 초점과 해석 및 적용의 맥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신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한다고 하여 다 바른 것은 아니다. 개혁주의자들 중에도 개혁주의 신학을 하지 않거나 혹은 잘못되거나 편향된 개혁주의 신학을 하는 이들이 있다. 어쨌든 균형 잡힌, 그리고 정통에 갇히지 않고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힘쓰는, 바꿔 말해서 늘 개혁에 힘쓰는 온전한 개혁주의 신학에 국한하여 이것이야 말로 현재 한국 교회에 최선의 대안, 유일한 희망이라 확신하며 개혁주의 신학이 빛과 소망을 잃은 한국 교회에 진리의 밝은 빛을 다시금 비춰주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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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자의 생활
김홍전 지음 / 성약출판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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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거듭남, 다시 말해서 중생 혹은 신생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중요한 표지이다. 중생은 불신자에서 신자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이것은 집을 나간 탕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품에 안겼다는 것을 뜻한다.

 ’중생자의 생활’

 이 책은 고(故) 김홍전 목사의 강설을 담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총 10개의 강설을 통해 독자는 중생자의 상태와 중생에 대한 여러 정보 및 사실 등을 얻을 수 있다. 1강에서 4강장까지는 중상 전의 상태와 중생 후의 생활 등을 알려준다. 그리고 나머지 5강부터 10강까지는 중생자의 구체적인 생활 방법 등을 가르친다.
 중생이란 무엇인가? 중생과 관련하여 김홍전 목사의 말을 들어보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지만 사람은 범죄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한 자가 당연히 받을 죄의 형벌이 있고, 죄로 말미암은 우리의 본질상 타락의 상태가 있습니다(15-16p)."

 사람은 하나님께 지음 받은 존재이지만 그분께 범죄하여 타락하고, 벌을 받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속죄하셨다는 사실은 첫째, 죄로 말미암아 받을 형별의 값을 대신 치르심으로 우리는 형벌에서 제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 둘째는 나에게 자유를 얻게 하셨다는 사실인데, ...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범죄의 결과만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30P)."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속죄로 형벌을 면제 받고, 새생명을 얻게 되었다. 한 마디로 중생은 죄사함 받고, 새생명을 얻은 것을 뜻한다. 하지만 중생자라 하더라도 여전히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흐려 놓는다. 따라서 중생자는 말로만 중생했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중생의 중요성을 깨닫고, 중생한 자의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속죄가 헛되지 않도록 중생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과 도리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성령을 더욱 붙들어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자극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 범죄한 인간은 그분의 크신 은혜와 그리스도의 극적인 대속으로 죄를 사함 받았다. 마침내 새생명을 얻게 된 택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특권, 다시 말해서 중생은 또 다른 말로 성령님을 날마다 의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생은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거기에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것(39p)" 을 통해 드러난다. 결국 중생자의 삶은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주님만 부여잡고, 자기는 전적으로 무능한 것을 알고 나아가는 생활(55P)"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삶이다. 이러한 중생자의 삶을 통해 택자들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한편, 성령님의 도움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마땅히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분께 세세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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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로 신앙을 개혁하라
김민호 지음 / 아이디얼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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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틴 루터에 의해 촉발된 종교개혁의 핵심에는 칭의 교리가 있다. 구원에 있어 인간의 공로를 강조한 로마 카톨릭의 잘못된 칭의 교리와 뚜렷이 구별되는 개신교의 칭의 교리는 보통 '이신칭의'라고 부른다.
 오직 믿음으로 의인이라 칭함 받는다는 이신칭의 혹은 이신득의 교리는 개신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교리이다. 그것은 개신교에는 없어서는 안 될 무척 중요한 교리이다. 한 마디로 개신교의 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감리교는 인간의 중생을 강조하고, 루터교는 이신칭의를 강조하며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는 등 각 개신교 교파마다 강조하는 바가 다르다. 하지만 모두 이신칭의를 핵심에 두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이러한 이신칭의 교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성도들이 얼마나 될까? 과연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 교리,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 복된 소식을 올바로 알고 있는 성도들이 몇이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칭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평신도들은 한국 교회 전체를 놓고 봤을 때 3분의 1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 추측된다.
 칭의에 대해 주일 대예배 설교에서 1년 동안 한 두 번 들으면 많이 듣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게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칭의에 대한 무지를 배가 시키고 있다. 달리 말하면 지금의 한국 교회는 성도들을 반펠리기안주의(Semi-Pelagian)에 빠지도록 방치하고 있다.


 '칭의로 신앙을 개혁하라'


 이 책은 70여 페이지의 작은 책이다. 작은 책이지만 알찬 내용이 담겨 있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칭의 및 칭의와 관련된 여러 사항을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믿음, 구원, 구원의 확신, 기도, 성화, 로마 카톨릭과의 연합 문제, 그리스도인의 자유 등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 꼭 알아야 할 문제(물론 로마 카톨릭과의 문제는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들을 다루고 있다.
 각 장의 분량은 적다. 하지만 내용은 좋다. 간명하다. 이 책은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어렵지 않다. 이해하기 쉽다. 내용이 깊고 넓지 않은 대신 핵심을 잘 짚고 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 책을 통해 칭의를 이해하는데 적절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칭의와 관련된 책 자체가 그리 많지 않은 한국 기독교 출판계의 현실에서, 성도들의 칭의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이만한 책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안타까운 현실로 초판본이 그리 많이 인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여 칭의에 대한 기초를 다지고, 간명한 이해가 필요한 이는 어떻게든 구해서 읽어볼 것을 권한다.


 칭의를 잘못 이해하면 로마 카톨릭과 같이 반펠라기안주의에 빠질 수 있다. 칭의를 오해하면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고 발버둥 치게 된다. 잘못된 신앙에 빠져 구원을 얻기 위해 괴로워하며 자칫 평생을 몸부림 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잘못을 범하는 개신교인들이 가끔 눈에 띈다는 사실이다. 무지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구원과 믿음에 행위를 첨가시키는 개신교인들이 있다.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 외에 다른 것은 필요 없다. 물론 믿음도 우리의 의지로 얻는 것은 아니다. 성부 하나님의 창세 전부터의 계획하심으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게 된다. 택자들은 그 믿음으로 단번에 구원을 얻는다. 여기에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는 자리할 데가 전혀 없다.
 성도들은 이러한 칭의를 바르게, 제대로 이해하여 구원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길 바란다. 이미 구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얻기 위해 헛된 노력을 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무의미한 몸부림을 치는 그 시간에 점진적 성화에 매진하여 자신의 예배와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리기 위해 힘쓸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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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실종 ㅣ 데이비드 웰스 4부작 시리즈
데이비드 웰스 지음, 윤석인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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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시대의 교회와 세상을 나 나름대로 각각 분석해 본다면 이렇다. 교회는 웰스의 주장과 같이 '신학이 실종' 되었다. 교리, 즉 진리가 외면 받고 있다. 단적인 예로 예배에서의 말씀을 들 수 있다. 오늘날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언약과 구원, 그분의 거룩하심, 인간의 타락 등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 축복, 평안, 화평, 수준 낮은 사랑 등 개인의 안녕과 만족을 위한 내용만 담겨 있다. 설교의 중심이 하나님과 교회에서 개인과 그 자아로 옮겨졌다. 가히 '신학 실종'이라는 표현이 꼭 맞다. 설교는 물론 교회의 교육 프로그램도 진리를 가르치는 대신 인간적인 열심을 부추기는 질 낮은 교육을 제공한다.

 세상은 '윤리가 실종' 되었다. 이전 시대에는 인간의 행동과 삶의 방식의 기준이 공동체에 있었다면 지금은 개인에게 있다. 개인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된다. 모든 것은 내 자아의 만족을 위한 부속물이다. 남들보다 나의 만족이 더 중요하다. 내가 남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만족하느냐로 행동이 결정된다. 따라서 나만 만족한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든 상관이 없다. 남이 어떤 피해를 입든 상관없다. 내 자아만 만족한다면 남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든 부도덕한 게 아니다. 모든 행동은 만족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향해 있다.

 교회와 세상은 모두 이전의 기준을 버린 채 표류하고 있다.

 

 

 

 '윤리실종'

 

 본서는 데이비드 웰스의 4부작(신학실종, 거룩하신 하나님, 윤리실종, 위대하신 그리스도)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웰스는 미국 사회에서 윤리가 어떻게 무너지게 되었는지 살핀다. 그 원인과 과정 및 현상들을 분석하여 밝힌다. 동시에 그러한 일들이 기독교와 어떠한 연관성이 있고, 기독교는 어떠한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지 논한다.

 

 웰스는 말한다.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지속적인 효력을 갖는 해법을 결코 찾지 못할 것이다. 또한 사회에서 효력을 갖는 기독교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는, 사회의 현상은 물론이고 기독교 자신의 현상과 당면 과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또한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기독교는 지금 엉뚱한데 정신이 가 있어 자신의 몸 추스르기에도 벅차 보인다. 따라서 사회에서의 효력을 갖는 것은 요원한 일로 보인다.

 

 "세상성은 특정 시대의 가치 체계로서, 타락한 인간의 사고방식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세계에서 내쫓고 죄를 정상으로 보이게 하고 정의를 비정상으로 보이게 한다.

 

 더욱이 기독교는 지금 세상성에 물들어 있다. 기독교 고유의 가치를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의 사고방식을 수용하고 있다. 세상성의 공격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진리를 기독교에서 내쫓고 죄를 정상으로 여기며 정의를 비정상으로 보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가치 체계에 왜곡이 발생하여 혼란을 겪고 있다.

 

 윤리가 중심성을 잃은 현대 사회의 모습을 분석하며 웰스는 "우리가 현대 생활의 많은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어디서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를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을까?

 현대 사회는 포스트모더니즘 영성을 바탕으로 하여 삶을 위한 기준점을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에게로 옮겨 놓았다. 세상의 기준은 자기만족에 있다. 자신의 자아가 모든 것의 중심이다. 따라서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격보다 개성"을 중시하고, "본성보다 자의식"에 관심을 갖는다. 삶의 중심이 자아로 옮겨지자 "죄의식은 사라지고, 수치심만 남"았다. 모두가 자아에 집중하는 까닭에 사회 공통의 "윤리가 사라"지고, "방종이 난무"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향한 윤리적 책임에는 둔감"하다. 이에 대해 웰스는 "하나님의 노여움은 사회의 타락을 통해 그 속에 새겨진다. 그와 같은 윤리적인 무질서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진행 중이다."라고 경종을 울린다. 이러한 "현대인의 도덕적 모순"에 기독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죄가 망각"되고 있는 이 시대에 교회가 "지속적인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웰스는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한다.

 

 "... 교회가 이 시기를 성공적으로 붙잡으려면, 두 가지 중요한 방식에서 윤리적인 비전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첫째, 교회는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가 규범으로 받아들이는 많은 것이 실제로는 죄악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해져야 하고, 죄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세대에 죄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배우는 일에 새로운 독창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 둘째, 복음의 위대성이 삶에서 완전히 사소하고 시시하다고 여겨지는 요즘 같은 현실에서, 교회 스스로가 윤리적으로 한결 더 신뢰할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용감해져야 한다. 진리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에 만연한 죄를 죄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와 목사의 부도덕성이 벌어지고, 적나라하게 고발되는 오늘의 현실에서 교회는 윤리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본서는 미국 사회와 교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정도에 차이가 있지 우리나라도 거의 동일한 현상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즉 이 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고, 그 적용점은 우리가 대안으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따라서 웰스가 제시한 해법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한국 교회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진리의 회복이 아닐까 싶다.

 진리와 너무나 멀어진 오늘의 한국 교회는 어서 진리 위에 온전히 서도록 해야 한다. 진리가 아니라 세상성을 추구하고, 그것이 교회 내에 만연되어 있는 지금, 강단에서 온전한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 진리 교육이 시급하다. 그동안 진리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성도들은 죄 등 진리의 내용을 명확히 모른다. 이것은 성도들이 세상에 진리를 선포 할 수 없는 한 가지 이유다. 그리고 교회 내에 만연한 세상의 때를 다 벗겨 내야 한다. 교회가 세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하나님 앞에서 짓고 있는 죄를 회개하고 거룩함을 회복해야 한다. 이 또한 진리에 대한 무지 혹은 왜곡된 이해가 그 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진리에 대한 앎과 진리에로의 돌아섬이 선결되지 않고서는 세상의 죄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복음의 위대성을 스스로 훼손시킨 교회는 진리를 온전히 붙들지 않는 이상 사회에 아무런 효력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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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상의 함정에 빠지다 ㅣ 잘못된 기독교 분별 시리즈 5
박순용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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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는 지금 세상의 함정에 빠져 있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함정에 뛰어 들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것을 더 좋게 여겨 그것을 갖기 위해 일부러 세상의 함정 속으로 뛰어 들은 건지도 모른다. 기독교가 빠진 함정은 상대주의, 세속주의, 신비주의 영성, 실용주의, 심리학, 포스트모더니즘 영성 등이다. 이러한 온갖 세상적인 잡탕 속에 빠진 기독교는 온갖 색에 물들어 있다. 잡탕 속에서 뒹굴고 있는 까닭에 깨끗한 데라고는 찾기 힘들만큼 더러워졌다. 본래의 고유한 색깔을 거의 다 읽었다.

 기독교만이 참 진리를 따르는 유일한 실체이다. 성경을 올바로 따르는, 성경적인 참 기독교에 한해서 기독교는 진리의 보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는, 작금의 교회는 그 자신의 정체성과 색깔을 상실해 가는 중이다. 유럽의 교회는 일찌감치 변절했고, 그 다음으로 미국의 교회는 현재 심하게 왜곡되고, 변질된 상태이다. 그 뒤를 이어 우리나라의 교회 또한 (미국에서 들여온) 불건전한 것들에 빠져 기독교 고유의 모습을 거의 다 잃었다. 우리나라 교회는 지금 배교와 배도를 목전에 두고 있다!

 

 '기독교, 세상의 함정에 빠지다'

 

 이 책은 하나님의 참 진리가 아니라, 세상의 거짓 진리를 추종하는 오늘날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교회에 닥친 위기와 위험으로부터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그것을 위해 먼저 배교와 그 현상은 무엇인지 가르친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진리의 왜곡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여 보여준다. 교회를 왜곡시키고 있는 유혹과 미혹에는 무엇이 있는지 세세히 알려준다. 계몽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심리학, 실용주의, 신비주의, 종교 다원주의 등 진리를 왜곡하는 현실의 문제들을 고발한다. 교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거침없이 들춰내는 동시에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혹자는 이 책을 보며 그게 뭐 그리 큰 문제냐고 볼멘소리를 낼 수도 있다. 괜한 호들갑을 떤다고 말할 수도 있다. 현재 나타나는 교회의 모습은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교회 또한 단지 옷을 갈아 입는 과정일 뿐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반대와 달리 이 책의 내용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전혀 과장된 내용이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올바른 지적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도 아무런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잘못된 변화에 심하게 물들어 있거나 아니면 아직 그것을 직시 할 안목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전자라면 그 사람은 정말 심각한 지경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교회는 이 책이 울리는 위기의 타종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부디 이 책의 경고가 자신의 현재를 점검하고, 자신이 처한 위기를 깨달아 중심을 되찾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이 책이 자극이 되어 바른 길로 나아가는 교회는 그 길로 더욱 정진하고,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교회는 방향을 틀어 다시 바른 위치로 돌아오길 바란다. 헛된 바람일 수도 있지만 부디 이 책의 진단과 예상이 틀렸으면 좋겠다.

 

 교회는 지금 심각한 문제에 처해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모르고 있다. 대부분은 문제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더 큰 문제이다.

 어쨌든 교회는 자신이 직면한 오늘의 문제와 위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배교와 배도를 목전에 둔 오늘의 한국 교회는 어떻게 대처하고, 처신해야 할까? 교회는 더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날마다 성경을 통해 자기를 점검해야 한다. 언제나 자신의 모습을 성경에 맞추어 개혁해야 한다. 교회는 할 수 있는 한 진리를 꽉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수많은 교회는 자기 점검을 하지 않고 있다. 자신의 기준이 되는 성경을 무시하고 있다. 잘못된 길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이 배교의 시대에 잘못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교회는 또 다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교회는 먼저 믿음 위에 굳게 설 수 있도록 "교리를 개혁" 해야 한다. "바른 교리를 붙들"어야 한다. "예배를 개혁"하여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생활을 개혁"하여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배교로 향하는 대세를 거슬러야 한다. 그렇지 않은 교회는 참 모습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것이다. 올바른 개혁을 추진하지 않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지 않는 교회는 자신의 열심에도 불구하고 결국 진리에서 일탈하여 장차 하나님 앞에 서거나 주님이 오셨을 때에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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