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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신학의 특성들 - 간결하게 풀어 쓴 개혁주의 신학
신복윤 지음 / 합신대학원출판부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요즘 한국 교회가 말이 아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무척 불안해 보인다. 외부에서는 이단이 계속적으로 교회를 흔들어 놓고 있다. 교회는 이단들의 강력한 도전을 지속적으로, 점점 더 거세게 받고 있다. 교회 내부에서는 각양 미혹이 판을 치고 있다. 거짓된 진리와 잘못된 경건이 성도들을 바른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 만인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가장 거룩해야 할 목사들의 일부가 누구보다 타락하여 대내외적으로 파란을 일으키며 앞장서서 교회를 더럽히고 있다. 한국 교회는 현재 총체적 난국과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위기와 어려움의 때를 이겨내고, 벗어나려면 교회는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까? 당연히 거룩을 회복해야 한다. 목사들은 물론 성도들의 삶이 거룩해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성령님의 은사로 교회를 온전히 섬기는 한편 성령의 열매를 자신의 모습과 그 삶에서 맺을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진정한 신학을 되찾아야 한다. 바른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거룩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적인, 바른 앎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교회는 지금 신학, 교리의 부재에 빠져있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따르는지는 대충 알고 있으나 어떻게 믿고,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는 전혀 모른다. 그래서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 이러한 무지와 오류로부터 벗어나려면 바른 신학을 교회의 주춧돌로 심어야 한다. 그렇다면 바른 신학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성경을 바로 해석하고, 그 가르침을 성도들에게 온전히 전하며 성도들로 하여금 성경을 따라 흠 없이 살게 하는 신학일 것이다. 과연 그러한 신학이 있을까? 본인은 그것을 감히 개혁주의 신학이라 말하고 싶다.
’개혁주의 신학의 특성들’
본서는 개혁주의 신학의 특성들을 가르치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 다시 말해서 칼빈주의 신학의 대표적 특성은 보통 칼빈주의 5대 교리(TULIP)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교리라는 한정된 부분에서의 특성일 뿐 그 신학 전체를 드러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칼빈주의 신학,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개혁주의 신학의 전체적인 특성들을 정리 한다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 본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개혁주의 신학의 특성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들고 있다. 성경의 권위, 하나님의 주권, 구원의 전적 은혜성, 성례, 교회의 의회 정치. 이러한 특성들은 가히 개혁주의 신학의 대표라고 할 만하다. 그러면 각각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성경의 권위. 이것은 근본주의자들을 통해 오용되고, 세대주의자들에 의해 남용되며 자유주의자들에게 거부되는 특성이다. 성경은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유기적 영감으로 각 저자들을 통해 씌어졌다. 이것은 66권 중 어느 한 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66권 전 권에 해당하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경은 어떠한 오류도 없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분은 이신론자들의 주장과 같이 단지 창조만 하시고 당신의 피조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계신 분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와 의, 그리고 인간의 운명과 자연의 법칙" 등으로 자신의 창조물, 피조물을 다스리신다. 그분은 "모든 영역과 모든 관계에서 당신의 통치권을 행사"하신다. 그러한 통치권을 바탕으로 한 작정과 섭리로 피조물들을 이끄시고, 특히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셨고, 구원으로 이끄신다.
인간의 구원은 성부 하나님의 단독 사역이 아니다. 그것은 성부 하나님의 계획과 성자 하나님의 십자가에 달리심과 부활,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확증(엡 1:3~14)이라는 성삼위 하나님의 공동 사역이자 합작품이다. 택자들은 자신의 어떠한 노력도 없이 삼위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사역으로 속죄를 받았다. 그리고 영원한 아들 됨을 보장 받았다.
거룩한 예식인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이 성례는 말씀과 더불어 그리스도를 깊게 체험 할 수 있는 은혜의 방편이다. 중생한 성도들은 세례와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약속을 보증 받는다. 거듭난 성도들은 성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혜택과 은혜를 체험하고, 적용 받는다.
개혁파는 대의 정치라는 장로교 고유의, 그러나 성경에 근거한 정치 형태를 갖고 있다. 이 정치 체제는 "신자들이 선거한 모든 직원들은 권위에서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이 정체는 치리 장로를 대표자로 선택하여 그들과 목사가 함께 대의 정치를 행하게 한다." 이러한 정치 체제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정치 조직을 통하여 순종의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셨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한다. 또한 "신학은 그것이 표현하는 형식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교회의 성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서 교회는 "존재 자체를 위해서 교회 생활의 규칙"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사실들에 연유하여 개혁파 정체는 중요성을 갖는다.
한국의 개혁주의 신학은 교회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국내에 들어온 선교사 중 많은 이들이 장로교에 속해 있었다. 그들을 통해 전파된 개혁주의 신학은 장로교회의 토양이 된다. 그렇게 교회의 밑거름이 된 개혁주의 신학은 20세기 초 중반에 첫 위기를 맞이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도전과 신사참배의 강요로 교회는 무너진다. 역사적 상황 속에서 개혁주의 신학은 교회의 분열이라는 뼈아픈 시련을 막지 못했다. 이후 개혁주의 신학은 해방과 6.25 전란, 그리고 경제 성장 등 여러 차례의 극적인 상황에서 명맥을 잘 유지한다. 하지만 70~80년 대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잘못된 경건주의와 신비주의, 그리고 세대주의 및 자유주의 신학 등의 계속 되는 공격과 교회의 분열로 성장에 제동이 걸린다. 그 도전과 위기를 방어하는데 온 집중을 쏟은 까닭에 개혁주의 신학은 지속적인 발전을 하지 못한다. 여기에 한국 개혁주의 신학의 과제가 담겨 있다.
바른 신학이 사라지고, 다른 신학과 잘못된 신학이 교회를 장악하여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는 지금. 개혁주의 신학이 바른 대안과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본인은 감히 그렇다고 확언한다. 물론 개혁주의 신학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일한 대안은 오직 성경이고, 가장 바른 대안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해석과 가르침이 각각 다르고, 매우 혼탁한 작금의 현실에서 개혁주의 신학은 가장 성경적이고, 따라서 가장 바른 길이라 확신한다.
개혁주의 신학이 바른 대안이라고 확신하는 까닭은, 그것은 초대 교회와 교부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 및 청교도들로 이어지는 정통신학, 성경에 대한 바른 초점과 해석 및 적용의 맥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신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한다고 하여 다 바른 것은 아니다. 개혁주의자들 중에도 개혁주의 신학을 하지 않거나 혹은 잘못되거나 편향된 개혁주의 신학을 하는 이들이 있다. 어쨌든 균형 잡힌, 그리고 정통에 갇히지 않고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힘쓰는, 바꿔 말해서 늘 개혁에 힘쓰는 온전한 개혁주의 신학에 국한하여 이것이야 말로 현재 한국 교회에 최선의 대안, 유일한 희망이라 확신하며 개혁주의 신학이 빛과 소망을 잃은 한국 교회에 진리의 밝은 빛을 다시금 비춰주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