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개혁신앙강좌 8
유해무 지음 / 성약출판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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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방 교회는 AD 1054년 필리오케 논쟁으로 서로 결별하게 되었다. 필리오케 문제는 삼위일체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였기에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서로를 파문하는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 하였다. 이로써 둘은 서로 다른 전통과 신학을 고수하며 나아가게 된다.
 개신교회는 로마 카톨릭의 잘못된 신학과 행태에 반하여 탄생하였다. 태생적으로 개신교회는 로마 카톨릭의 신학을 이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동방 교회 교부들의 귀한 가르침과 신학은 필리오케 문제로 동서방 교회가 결별한 이후 지역적, 전통적, 신학적 문제 등으로 전수받지 못하였다.

 '신학 -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

 본서는 개신교회가 이어 받지 못한 동방 교부에 대한 연구를 요청한다. 고대 동방 교부들의 몇 가지 신학을 살펴봄으로 동서방 교회 신학의 차이점을 알아보고, 동방 교부 신학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본문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고대 동방 교부에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를 전한다. 2장에서는 교부들의 신학에 대한 이해를 설명한다. 그리고 3장에서는 삼위일체론에 대한 동서방 교회의 접근의 차이를 보여준다. 4장에서는 고대 교부들의 기도에 대한 이해를 알려준다. 그리고 마지막 5장에서는 신격화에 대한 이해를 제공한다.
 5개의 장 중에 특히 눈여겨 볼 부분은 신격화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서방 교회의 신학을 물려받은 우리는 신격화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즉 우리는 신격화를 죄인이자 하찮은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이 되겠다는 교만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고대 동방 교부들에 따르면 신격화는 성령 하나님의 구원의 핵심 사역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의 육체와 내면이 모두 삼위일체 하나님이 가득 차는 것"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개신교 신학에서 말하는 구원의 서정 중 성화에서부터 영화에 이르는 과정 및 상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둘이 일대일로 대응하지는 않기에 같은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신격화는 더 심오하기에 본문을 통해 바른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본서를 통해 독자는 동방 교부들의 사상 중 몇몇 부분을 조금 엿볼 수 있다. 비록 그들의 신학은 우리의 신학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견주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지만, 헬라 교부들의 신학을 이해함으로 우리는 보다 깊고 넓은 신학을 하고, 하나님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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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1 - 우리의 유일한 위로와 삼위 하나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1
김헌수 지음 / 성약출판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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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문답형태의 교리집, 신앙고백서를 만들어서 교인들에게 신앙의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요소들을 가르쳤다. 특별히 문답식으로 만든 이유는 문답형식이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교회는 교인들에게 신앙고백서를 통해 교리를 가르침으로 신앙의 진수를 알게 하고,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교리를 경시한다. 교리를 가르치는 신앙고백서는 박물관에나 전시 할 교회의 케케묵은 유산으로 생각한다. 아마 신앙고백서가 뭔지도 모르는 목회자 및 교인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이처럼 교회가 교리를 멀리하게 된 이유는 역사를 더듬어야겠지만, 가깝게는 교회 성장 운동이 태동하면서부터 교리를 멀리하는 풍조가 생겼다고 할 수 있겠다.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것만 선사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지루하고 어려운 교리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 교회 성장에 혈안이 된 교회는 교리 교육을 무시 했고, 교회와 교인들은 결국 신앙의 기반을 잃었다. 그 결과는 우리가 목도하는 바와 같이 교회는 교회답지 않고, 교인은 교인답지 않게 되어 버렸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1'

 본서는 개혁파 교회가 남긴 유산, 여러 신앙고백서 중 하나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서이다. 현재 국내에 판매 중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서 혹은 강해서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본 요리문답 작성자 중 한 명인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의 해설서와 이승구 교수의 반쪽 짜리 강해서, 이 두 권이 전부이다. 두 권을 제외하면 본서는 국내 유일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서라고 할 수 있다.
 본서의 특징을 꼽는다면 단연 깊이 있는 해설을 들 수 있다. 각 문항 해설은 물론 그와 관련된 신학적 문제들을 함께 가르친다. 교회의 각종 이슈를 바른 신학으로 풀어주고, 답변한다. 그리고 요리문답 자체가 따뜻한 문체로 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강해 또한 따뜻하다. 교인들을 위한 배려가 묻어 있음이 느껴진다. 글로 씌어진 것이 아니라 교인들에게 직접 말로 한 것을 글로 옮긴 만큼 읽기 편하다.
 이 책은 국내 저자에 의해 씌어지고, 출간된 최초이자 유일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서이다. 교리를 배우려는, 신앙의 진수를 배우려는 누구에게나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교리는 무척 중요하다.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째, (교리를 통해) 성경의 정수를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명확하게 배울 수 있다. 둘 째, 신앙의 규범 및 요체를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다. 셋 째, 이단을 대적하고 그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탄탄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서두에서 이야기 했듯이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교리를 경시한다.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 이유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교회 성장에 매진한데 있다. 교회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교리 교육을 멀리하고, 다양한 재미있는 활동 프로그램을 교회에 도입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교육이 까다로운 교리 교육은 버리고, 대신 유행하는 그러나 수준 낮은 제자 양육 프로그램을 가동하였다. 소위 성공한 교회라 불리는 몇몇 대형 교회가 만들어 사용한 양육 프로그램을, 대형 교회가 되길 열망하고 개별 양육 프로그램을 만들기 어려운 중소형 교회들이 적극 받아들였다. 이처럼 바른 교육을 하지 않고, 바른 교육을 받지 못한 교회와 교인들은 신앙의 본질을 잃고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하였다. 교육은 코앞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성과는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 지금 성과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먼 미래를 바라보며 차근차근 하는 것이 교육이다. 어떠한 교육을 해야 교회를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울 수 있는지는 교회 스스로가 잘 안다. 단지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행하여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한국 교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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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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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2대 종교 혹은 두 개의 문명이 출돌한 십자군 전쟁. 이 전쟁은 아마 인류사에서 가장 거대한 종교 전쟁이 아닐까 싶다. 은자 피에르가 불씨를 제공하고,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불을 댕긴 이 전쟁은 이슬람 세계에는 서구 및 기독교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촉발하고, 서유럽에는 선물이 된 전쟁이 아닐까 싶다.
 전쟁 초에 이슬람측은 단지 또다른 영토 싸움과 확장을 위한 침범인 줄로만 알았다. 따라서 이슬람 영주들은 서로 연합하지 않고, 그들 간의 영토 싸움을 계속 하였다. 이것이 십자군에 패퇴를 거듭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고, 전투가 거듭 될수록 종교 전쟁임을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서유럽 국가들이 성도(聖道) 예루살렘 탈환 혹은 해방을 기치로 하여 일으킨 전쟁임을 알게된다. 그럼에도 이슬람은 여전히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드디어 영웅 살라딘의 등장으로 십자군 전쟁은 새 국면을 맞이한다.

 '십자군 이야기 1' 

 본서는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의 새로운 작품이다. 전 4권으로 기획된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의 첫 권이다. 본서에서는 8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 중 1차 십자군 전쟁을 다루고 있다.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 전쟁과 관련된 사실과 사견을 적절하게 섞어서 이야기를 잘 풀어 나간다. 이미 필력을 입증하고, 입증 받은 시오노 나나미 답게 그림을 보는 듯 글이 살아있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과 같이 생생함이 느껴진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용 출처가 없다는 것이다. 국내에 십자군 전쟁 관련 서적이 적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군 전쟁에 대한 더 깊고, 많은 공부와 앎을 원하는 이들에게 내용 출처는 매우 요긴하다. 하지만 본서에서는 내용 출처, 참고 문헌 목록을 제공하지 않아 또 다른 기갈을 느낀다.
 아무튼 새로운 작품으로 만나는 시오노 나나미, 그리고 그녀가 제공하는 놀라운 정보는 독자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그녀가 생생히 그려내는 십자군 전쟁의 장대한 역사를 새로운 시리즈를 통해 마나보자.

 1차 십자군 전쟁을 통해 마침내 예루살렘을 해방시킨 십자군은 1187년 영웅 살라딘의 등장으로 약 90년 만에 다시 빼앗긴다. 이에 예루살렘 재탈환을 위해 조직된 3차 십자군과 이슬람과의 전투는 빗나는 무공(武功)과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3차 십자군 원정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의 십자군 원정은 그리 눈여겨 볼 점이 많지는 않다. 어쨌든 전체 200여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벌어진 이 전쟁은 여러 면에서 변화를 가져왔다.
 십자군 원정이 실패하여 교황권이 크게 약화 되었다. 이에 반하여 유럽 각국의 왕권이 강화 되었다. 원정을 위한 세금 각출로 민생은 크게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서유럽의 정치, 문화, 역사적인 면에서는 큰 진보를 이룬다. 이슬람 세계에서 약탈해온 많은 문화재, 특히 유럽에서는 잊혀지고 사라진 헬라 철학자들의 많은 책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된다.
 이처럼 서유럽에는 큰 진보의 계기를 마련해 준 십자군 전쟁이지만, 이슬람에는 증오의 불씨를 제공한다. 이 전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의 본격적인 종교 갈등과 전쟁이 시작된다. 십자군으로 인해 분노한 이슬람은 살라딘 이후 한데 뭉쳐 서유럽으로 계속 전진하여 영토와 그 세력을 넓힌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두 종교는 종교/역사적 이유로 적으로서 대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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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귀스타브 도레 그림,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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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사에서 치욕으로 기억될 만한 역사이다. 200년 이상(1096년 ~ 1270년)의 기간 동안 총 8차에 걸쳐 이루어진 이 전쟁은 성도(聖都) 예루살렘을 탈환하겠다는 신앙적 의지로 발생하였다. 그 결과 잔혹한 살육과 되새길 만한 무훈(武勳) 등 각종 비난과 이야깃거리를 낳았다. 비록 십자군에 의해 수많은 인명이 무고한 희생을 당하였고, 또 십자군의 큰 희생이 있었지만 유럽의 입장에서는 큰 이득이 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을 통해 이탈리아의 해양 도시들은 중근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무역 확장 및 독점으로 부를 획득하게 되었고, 이것은 훗날 르네상스의 토대가 된다. 서유럽은 십자군 전쟁 중에 이슬람과 비잔티움에서 약탈한 물건들로 역사, 문화적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 전쟁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서로를 적대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유럽에 있어서는 어떠한 면에서 많은 득을 본 전쟁이라 할 수 있다.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

 본서는 '로마인 이야기' 등으로 국내 외에 널리 알려진 일본의 시오노 나나미의 새 역사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정확하게는 전 4권으로 기획된 '십자군 이야기'의 서막에 해당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글이 아닌 삽화를 통해 십자군의 전 역사를 간략히 더듬어 본다. 물론 그림만 있는 것은 아니고, 그림에 대한 짤막한 해설이 그림의 이해를 돕는다.
 본서에 삽입된 그림은 19세기 프랑스의 화가이자 삽화가인 귀스타브 도레(1832. 1. 6 ~ 1883. 1. 23)의 대형 판본이다. 살아있는 듯한 약 200여 장의 그의 삽화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해를 높인다. 아쉬움이 있다면 그림을 중심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기에 설명과 묘사가 없는 이야기와 그림이 있다는 것이다. 그림이 가진 한계(그림 자체의 한계 뿐만 아니라 도레가 일부러 묘사하지 않은 사건이 있다는 사실로 인한 한계 모두를 포함해서) 십자군 전쟁의 구석구석 다룰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림을 통해 십자군 전쟁의 전황을 더욱 생생히 살펴볼 수 있다. 더불어 각 그림마다 사건이 발생한 지역의 지도도 첨부되어 있어 이해를 한층 높인다.
 시오노 나나미가 제공하는 세 요소의 조화를 통해 독자는 십자군 전쟁의 전말을 쉽고, 빠르고, 생생하게 조망할 수 있다. 이 책이 제공하는 십자군 전쟁의 장대한 파노라마, 그 참혹하고 숨막히는 전장 속으로 한 번 빠져보자.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후 유럽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세계의 중심이 유럽으로 옮겨지는데 시간이 더 걸렸을지도 모른다. 중세의 유럽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분에 있어 암흑이었다. 종교적으로는 무지에서 비롯된 미신과 비이성적인 생각 및 생활 방식들이 기독교 신앙과 혼합되어 여러 부분에 있어 혼란스러웠다. 흑사병이 덥쳤을 때 유럽 전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 할 정도로 사회 기반 시설이 낙후되어 있었다. 문화적으로도 가깝게는 이슬람 세계, 그리고 멀게는 동양에 비해 한참이나 뒤떨어져 있었다. 그런 유럽이 십자군 전쟁을 통해 많은 부분에 있어 개화(開化) 되었으니 십자군 전쟁은 (비록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야욕에서 비롯되었으나) 이슬람 세계에는 이가 갈리는 일이었겠지만 서유럽에게는 필연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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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과 21세기 칼빈 500 라이브러리 시리즈 3
전광식 엮음 / 부흥과개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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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은 위대한 종교 개혁가로 칭송 받는다. 그의 삶은 투쟁이었다. 칼빈은 반대자들과 끊임없이 싸웠다. 로마 카톨릭의 박해와 생명의 위협에도 그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바른 교회를 세우기 위해 노력 했고, 죽는 그 순간까지 헌신 했다. 그는 온 삶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데 전력 했고, 그분의 교회를 위해 열정을 다하였다.
 칼빈은 그의 열정의 크기 만큼이나 많은 반대자들을 두었다. 그들로부터 많은 모함과 비난을 받았다. 그에 대한 모함과 반대의 정점은 아마도 미카엘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 1511 ~ 1553.10.27)와 관련된 사건이 아닐까 싶다. 칼빈의 반대자들은 세르베투스 화형의 책임을 그에게 모두 돌리며 아직까지도 그를 비난한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약술한 칼빈의 노력과 모습을 본다면 그는 위대한 개혁자요, 어떠한 면에서 순교자라고 할 수 있다.

 '칼빈과 21세기'

 본서는 칼빈 탄생 500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출간된 책 중 하나이다. 2009년, 그 해 끝무렵 출간 되었으니 아마도 칼빈 탄생 500 주년이 되는 해에 마지막으로 출간된 책일 것이다.
 본서에는 13명의 교수들의 13개의 논문이 담겨 있다. 크게는 칼빈과 교회, 칼빈과 세상이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 되어 있다. 이 두 부분에 각각 칼빈과 예배, 설교, 교회교육, 선교, 경건, 신앙생활, 성령님, 그리고 칼빈과 국가, 정치, 문화, 복지, 가정교육,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주제로 한 13편의 논문이 자리하고 있다. 각 교수들은 자신들이 맡은 주제로 칼빈의 사상과 업적을 잘 정리해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7장 '칼빈과 성령님'이라는 부분에 가장 큰 아쉬움이 남는다.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는 해당 부분의 내용이 너무 빈약하기 때문이다. 킬빈의 성령론을 심도있게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칼빈의 성령론과 다른 세 명의 개혁주의자의 책을 무척 간략히 비교 비평하는 것으로 그치기에 내용 구성을 왜 그리 했는지 의아함이 든다.
 이러한 아쉬움을 제외하면 본서를 통해 칼빈의 사상을 업적을 보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서와 함께 같은 해에 같은 목적으로 출간된 '칼빈 신학 개요 1과 2'를 본다면 많은 유익이 있을 것이다.

 다시 없을 시대의 천재요, 노련한 설교자이자 뛰어난 신학자인 칼빈. 그가 이룩한 업적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남긴 학문적 유산은 그의 사후 500년이 지난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되기에 그는 누구보다 높게 칭송 받는다. 매우 위대한 칼빈이지만 그도 당연히 인간이기에 뛰어넘을 대상에 불과 할 뿐이다. 추종할 대상은 결코 아니다. 교회의 다른 사람들은 그를 너무 높인다고 볼멘 소리를 하지만 그의 진면목을 알고, 그를 좇는 사람들의 진의를 안다면 함께 칼빈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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