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의 심리학 - 숨겨진 욕망을 자극하는 치명적인 유혹
크레이그 네켄 지음, 오혜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중이미지보기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에 중독되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중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인 것은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이 아닐까 싶다. 그 두 가지는 너무나 강력한 중독으로 우리 가정과 인생을 다른 중독들보다 쉽게 그리고 빠르게 파멸시킨다. 그보다 아래에 있는 중독이 있다면 '게임 중독', '쇼핑 중독' 등이 아닐까? 이것들은 앞에 중독보다는 수위가 낮지만 역시 심하면 만만치 않은 악영향을 끼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중독의 정의이다. 사전에서는 중독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의한다.


 '생체가 음식물이나 약물의 독성에 의하여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일.'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

 이 책에서는 중독을 어떻게 정의할까? 그것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책의 구성을 알아보겠다.

 이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중독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중독의 원인을 간략히 말한다. 2부에서는 중독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그것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그로 말미암아 삶이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되는지 3단계로 알아본다. 3부에서는 중독의 회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설망한다. 마지막 4부에서는 가정환경이 한 사람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쳐서 중독자로 만드는지 이야기 한다.  그러면 이제 이 책에서 말하는 중독이 무엇인지 보겠다.

 이 책에서는 중독을 이렇게 말한다.

 "인력으로 어쩔 수 없이 변화되는 행복감을 통제하려는 시도...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행복에 대한 갈망을 통제하고 충족시키려는 노력이다."(17p)
 "중독은 물질이나 행동과 맺는 비정상적인 관계이다."(32p)


 그리고 중독은 정서적 논리에 근거한다고 말한다.

 "중독은 중독자가 친밀함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물질이나 행동과 맺는 정서적인 관계이다."(29p)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식, 쇼핑, 술과 같은 것들과 단순히 편의에 따라 관계를 맺는다. 그 대상과 그런관계를 맺으며 정서적인 유대를 느끼거나 친밀하다고 착각하지 않는다.(31p) 그것들을 단순히 이용하고, 가볍게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중독자는 이러한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정서적이고 친밀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노력한다.(31p) 이것이 중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중독에 빠질까? 사람들은 지원, 보살핌, 안내, 사랑, 정서적, 정적인 성장을 위해 '가족과  친구', '보다 높은 영적 존재', '자아', '공동체' 등에 의존한다.(51~53p) 그런데 이 네 부류의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면 다른 관계에 의지하고, 그럴 때 중독이 개입된다고 한다.(53p)

 

 이 책은 중독에 대해 아주 쉽게 설명한다. 그것이 왜 발생하고, 어떻게 진행되며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말이다. 여느 심리학 서적처럼 혹은 전문 서적처럼 딱딱하지 않다. 내용과 단어가 복잡하고, 어렵지도 않다. 쭉쭉 훑으며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이해가 쉽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바가 만고불편의 진리는 아니고, 전부가 아니겠지만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중독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다. 중독의 개관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때문에 중독에 대해 간단히 살펴 볼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반면 중독에 대해 더 깊이 알기 원하는 이들에게는 많이 부족 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중독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파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과 관계된 사람의 인생까지 파괴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독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중독의 선을 어디까지 긋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가벼운 중독은 인생에 활력소가 되고, 부스터(booster), 즉 보조 추진 장치가 된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역시 중독은 중독이다. 일 중독 등과 같이 처음엔 좋아보이는 중독일지라도 중독은 결국 가장 먼저 자신을 파괴하는 독약이 된다. 

 중독은 아편이다. 좋지 않은 것인 줄 알면서도 한 번 손을 대면 끊기 힘든 아편 말이다. 처음에는 인생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지만 결국에는 인생의 전부가 되어 버리는 아편. 인생을 송두리 채 앗아가는 그것 말이다. 그렇기에 아예 처음부터 막는 것이 좋다. 그것의 자각 증상을 발견하면 즉시 차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 중독, 인터넷 중독 등과 같이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접근 했지만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 깊이 빠져 한시라도 멀리하면 참을 수 없는 답답함과 괴로움을 느끼는,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중독 상태에 처하게 될 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믿음으로 사는 즐거움 - 흔들리는 그리스도인의 안전한 피난처
존 파이퍼 지음, 차성구 옮김 / 좋은씨앗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성경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이 아주 많다. 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로 시작되는 시편 18편 1, 2, 3절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믿음의 고백을 한다. 그러나 그 고백대로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전한 피난처에 있으면서도 항상 불안 해 하고, 힘들어 한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런가 보다' 라고 위로하면서 '왜 그렇게 될까' 라는 고민 해 본다. '어떻게 해야 믿음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도 고민 해 본다. 

 인간을 사로잡는 잘못된 감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나를 가장 크게 사로잡는 것은 염려와 두려움이다. 그리고 역시나 교만이 추가 된다. 그 세 가지는 인간을 사로잡는 보편적인 그릇된 감정이다. 그것이 우리를 얼마나 심하게 사로잡으면 성경에 세 가지에 대한 말씀이 언급될까? 그만큼 인간과는 항상 붙어다니는, 어쩌면 믿음의 성장에 아주 약간의 도움이 되는 필요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그것을 두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임에도 믿음의 성장에 때론 요긴하게 쓰이는 아이러니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믿음의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된 것을 포함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그릇된 감정들을 우리 안에서 모두 몰아내야 한다. 추상적일지 모르나 믿음만 바라보고, 의지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그것을 약간 다르게 표현하는 데 "'장래의 은혜'를 믿으라"고 한다. 

 '장래의 은혜'란 뭘까? 우리에게 장래에 주어질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래에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들이다. 이 책의 저자 존 파이퍼는 우리가 그것을 믿으며, 그것을 붙들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약속하신 모든 것에 만족하는 것이 바로 장래의 은혜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본잘이다." (14p)

 장래의 은혜를 믿는 것이 믿음의 삶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또한 장래의 은혜를 믿으며 불신에 맞불을 놓을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결정적 승리를 쟁취한 우리는 불신과 맞서 싸울 것을 종용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다른 저서인 '존 파이퍼의 장래의 은혜'의 주요 내용이 담겨져 있다. 그 책에서 언급된 여덞 가지의 사항들을 보충하며 실천할 수 있도록 이야기 하고 있다. 때문에 앞서 소개한 책을 읽은 이에게는 어쩌면 특별한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믿음을 공격하는 '염려', '교만', '그릇된 수치심', '조급함', '탐심', '비통함', '낙심', '정욕' 이 여덞 가지에 맞서는 실천적 방안을 제시했다고 했는데 솔직히 내용이 상당히 추상적이다. 일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다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불신앙과 싸워야 한다. 불신앙은 수많은 죄를 유발시키는 염려의 뿌리다. 와이퍼를 작동시키고 워셔액을 사용하자. 그리고 하나님의 소중하고 위대한 약속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자. 성경을 잡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에 기록된 약속들을 당신의 마음에 쌓아두라. 그런 후에 장래의 은혜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 미듬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39p)

 내용이 전부 이런 식인데 어떻게 보면 멋지게 표현한 것 같지만 또 어떻게 보면 상당히 막연하게 표현 되어 있다. 때문에 믿음의 생활을 성실하게 꽤 오래 한 사람이라면 저 말만 보고도 어떻게 해야할지 알겠지만 믿음의 연수가 짧거나 신앙생활을 우직하게 하지 못한 이라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어려움을 느껴질 것이다. 이것은 흠이라면 흠이지만 대부분의 신앙서적이 이렇기에 이 책만의 특별한 흠이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압충하면 "장래의 은혜를 믿으라."이다. 그것이 책에서 말하는 모든 공격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법이다. 그것 하나로 언급된 여닮 가지 사항이 모두 해결된다. 그래서 그런지 그와 비슷하거나 관련된 말이 계속 반복된다. 덕분에 내용이 장황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한 마디면 더 할 말이 필요없을 것을 뭐하러 복잡하고, 길게 이야기 하나 괜한 심통이 들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고, 내 안에 교만이 작용한 탓이리라. 

 어쨌든 주옥같은 말이 많으니 충분히 묵상하고, 실행에 옮긴다면 어려움에서 벗어나 제목과 같이 '믿음으로 사는 즐거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작은 교회
루스 A. 터커 지음, 최요한 옮김 / 스텝스톤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교회 관련 신조어가 있다.

  '메가처치(Mega-church)'

 지금 막 생겨난 말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없던 말이다.

 메가처치란, 주일예배 참석인원이 2천명 이상인 대형교회를 뜻한다. 많은 교회들이 이들을 부러움과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분다.

 메가처치는 담임목사의 강력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놀랍도록 급성장하여 교회 문화를 주도한다. 때문에 많은 - 절대 '모든'이 아니다. -교회가 그의 뒤를 숨가쁘게 쫓는다. 그와 같은 교회가 되고자 그의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실시한다. 그러나 이내 고배를 마시고, 왜 자신들은 그와 같이 되지 않는지 한탄한다.

 메가처치를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과연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일까? 외양적, 양적 성장만 추구하는 그러한 교회가 진정한 교회일까?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철저한 자본주의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 그를 일각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나님은 어떠한 교회를 기뻐하실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실천하는 교회일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당연히 성경 말씀이다. 교회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처럼 그 중심이 중요하다. 그러나 교회가 조직화 되고, 거대화 될수록 하나님이 보시는 중심이 성경 말씀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수천, 수만이나 되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하나로 잇는 강력한 사슬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여러 프로그램의 개발, 실시에 치중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말씀의 실천은 뒷전이 된다. 덩치 유지만도 벅차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제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개화기를 전후하여 여러 나라의 선교사가 우리 땅을 밟았다. 그러나 그 생명력을 끝까지 유지 했던 것은 미국 선교사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교회는 미국 교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 물론 교회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 어쩌면 교회 또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 그러나 그것은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다.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이 앞선 신학 -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 모두를 포함한 '앞선 신학'이다. - 을 공부하기 위하여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배운 것과 습득한 것을 국내로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신학과 그 교회의 문화, 시스템 등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우리 교회와 신학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유명 목회자들과 신학자들 거의 대부분이 - 전부라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 유학파니 더 할 말이 있을까?

 아무리 메가처치가 교회 문화를 주도한다 해도 그들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전체 교회를 놓고 보면 그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 만큼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이 아무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해도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교회가 있다. 바로 작은 교회이다.

 대형 교회가 여유있게 자신의 덩치를 키우고, 유지하는 반면 대부분의 작은 교회는 힘겹게 자신을 지킨다. 그리고 큰 교회의 영향으로 사라지는 교회도 허다하다.

 대형 교회를 마냥 비판, 비난 할 수는 없다. 그들도 악의를 가지고 자신을 키운 것은 아니다. 잘 되겠다고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 영향력 - 긍정적, 부정적 영향력 모두를 포함한 - 이 워낙 크다보니 그로 인해 많은 교회들이 신음한다.



 이 책은 '작은 교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뒤쳐져 있는 - 부정적인 의미에서 뒤쳐짐이 아니다. 긍정적인 의미의 뒤쳐짐이다. - 교회'를 돌아본다. 그들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말한다. 비록 작지만 소중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작은 교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저자 - 그녀는 작은 교회를 다녔고, 작은 교회의 사모였다. - 자신이 겪은 작은 교회에서의 추억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지난날과 오늘날 이름이 널리 알려진 성직자들 - 릭 워렌, 빈센트 반 고흐, 빌 하이벨스, 유진 피터슨, 조엘 오스틴, 헨리 나우웬 등 -  과 알려지지 않은 성직자들의 간략한 사례를 통해 대형 교회와 작은 교회를 엿보고 이야기 한다. 

 이 책은 해외 작가의 저작물이기 때문에 등장하는 사례들이 낯설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감안이 된다. 그러나 가장 큰 아쉬움은 미시적 결론은 있으나 거시적 결론이 없다는 것이다.

 총 14장에서 각각의 장마다 그 주제에 맞게 작은 교회의 역할이나 중요성이 언급된다. 그러나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작은 교회는 이렇다라는 상황 제시나 분석만 있지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한다는 등의 분명한 메시지가 없어서 읽고 난 후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라는 강한 의문 갖고,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들었다.



 예수님께서는 낮아지라고 말씀하시는데 교회는 점점 커지고 있다. 교회의 목이 점점 곧아지고 있다. 사회의 낮은 곳으로 들어가 섬기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 좋겠다고 쿵짝쿵짝이다. 진정한 섬김과 사랑이 심각하게 부재 되어 있다.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이 아니다. 많은 교회가 낮은 곳에서 사람들을 섬기고 있다"

라는 진부한 말은 설득력이 없다. 교회와 사회, 안밖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형 교회가 섬김의 본이 되지 않는다면 점점 떨어져가는 교회의 신용도가 높아지기는 커녕 적정 수준의 유지도 어려울 것이다.

 작은 교회의 묵묵한 사명 감당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애절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힘겨운 싸움이 부디 언젠가는 꼭 귀한 결실을 맺길 간절히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량샤오민, 중국 경제를 말하다
량샤오민 지음, 황보경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제'란 무엇일까? 사전적으로는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모든 활동. 또는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 - 네이버 국어사전

라고 정의한다. 그 외에 여러 정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경제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우리 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의 한 부분.'

 경제라는 단어는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그것의 전문가들이나 사용하는 단어 같다. 실제로 일상에서 잘 쓰일 것 같으면서도 별로 쓰이지 않는다. 시국이 불안정하여 생활이 어렵지 않은 이상 입밖으로 자주 나오는 말이 아니다. 

 지난 정권부터 이어지는 정권까지 '경제를 살리자.' 말이 많다. 그만큼 경제라는 단어 자체는 많은 국민에게 친숙한 용어는 아니지만, 그것을 이루는 구성 요소는 그들과 뗼레야 뗼 수 없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국민의 모든 행위가 경제의 테두리 안에서 일루어지기 떄문이다.

 그렇다면 '경제학'이란 무엇일까?

  '경제 현상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학문.' - 네이버 국어사전

이라고 사전은 말한다. 그것의 일반적인 목적은 '경제를 분석하여 그것의 정치적 입안자들을 돕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생활을 더 낫고, 안정되게, 그리고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이나 예전이나 경제학은 누군가의 사리사욕을 위해 악용되어 왔다.

 이 책에서는는 '경제학'을 뭐고 말할까? 이 책의 저자 '량샤오민'은 경제학을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정의한다.

  "경제학은 돈을 벌거나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삶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하는 학문이다." (p5)

  "경제학은 선택에 관한 학문이다." (p14)

  "본질적으로 경제학은 비용과 수익으로 효용성을 따지는 학문이 아니라,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연구하는 인생철학이라 할 수 있다. 즉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이지, 어떻게 하면 계산적으로 살 수 있는지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43p)

 한 마디로 경제학는 본질적인 면에서 우리 인생을 위한 학문, 즉 우리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고 한다. 



 '량샤오민, 중국 경제를 말하다.' 
 처음에 제목만 봤을 떄는 중국의 경제를 분석하거나 최소한 그에 준하는 내용의 책일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저자는 이 책을 '경제 에세이'라고 말한다.  뭐, 분류야 어떻든 기대를 하며 첫 장을 넘겼다.

 이 책은 총 네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중국인의 경제학', '중국 기업의 경제학', '중국의 경제학', '중국과 세계에 대한 시각을 넓혀주는 경제학 양서들' 이다.

 첫 장에서는 프라이버시가 어떻게 돈벌이로 이용되는지, 최고와 완벽의 차이점과 최고 지상주의의 위험성, 지식인들의 부조리와 역할 혼미 등을 다룬다. 중국 사회에 만연된 여러 문제와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정제학과 관련지어 이야기 한다. 

 두 번쨰 장에서는 기업에 대해 다루는데 기업가(현대가 아니라 진상과 휘상 같은 예전의 기업인들)들에 대한 이야기 - 이를테면 어떻게 성공을 하였는지 등과 같은 - 와 졍제 예측과 점쾌의 비교, 노동력 착취의 폐해 등을 말한다.

 '중국의 경제학'에서는 최대화와 균형 중 어느 것이 행복을 주는지, 그리고 설문조사의 엉터리성을 고발하며 도덕의 타락, 그것의 회복 등에 대해 다룬다. 

 마지막 장에서는 저자가 읽어본 책 중 경제학과 관련된 좋은 책을 소개한다.

 책의 내용은 개인 -> 기업 -> 국가의 순으로 영역을 점점 넓힌다. 세부 내용들은 경제학과 관련지어 그 현상과 주제를 분석하고 설명하여 자기 주장을 펼친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주제를 바라보거나 경제학과 주제를 비교하기도 한다. 그런데 모든 내용을 경제학과 연관짓지는 않는다. 각 장의 제목에 '경제학'이라는 말이 붙어 있을 뿐이지 모든 내용이 경제학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물론 넓게 바라본다면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거부감이 드는 내용은 없었다. 읽기에 무난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지루했던 내용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5~6 페이지 정도의 짧은 내용들을 담고 있기에 읽는데도 부담이 없었다. 골치 아프게 경제학 용어를 들먹이며 - 살짝 몇 개가 나오긴 하지만 - 구구절절 복잡한 말을 하지 않는다. 에세이 답게 사회 현상과 모습을 소신껏 진솔하게 이야기 한다. 덕분에 머리 아파하지 않으며 편히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중국은 가깝고도 먼나라, 우리와는 민족, 경제, 사회가 다른 나라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의 여러 글을 읽으니 비록 다른 나라지만 우리와 비슷한 면이 많아서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사회도 소신 있고, 진실한 식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그러한 이들이 별로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있는 이들 마저도 자기 목소리를 마음껏 내지 못하니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우리나라 사람은 튀는 사람을 싫어한다. 앞서가는 사람은 밟아 버린다. 그래서 내세울 만한 위인이 등장하지 못하나 보다. 경제를 말하고, 사회를 말하며 문화를 말하면 수많은 비난이 쇄도한다.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다. 사회, 경제,문화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 생각한다.

 우리도 건전한 비판 문화가 이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음주에 개강입니다! ㅠㅠ

오늘은 하루 종일 책을 단 한 줄도 읽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침에 수강 할 과목
추가하고, 마치고나서 지금까지 계속 영문법 강의 들었습니다!!! 우아~!!!! 제가
공부를 하다니!!!!!!!!!! >.<;;;;;;;

방학 내내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계속 책만 읽었었는데 개강 일주일 남겨 놓
고 갑자기 공부에 불이 붙어서 총 60강 완강, 각 강의 당 30여분 짜리를 무려
15강이나 들었습니다! 헉... 시간으로 환산하면 대략 7시간 반... 스스로 감격
스런 생각이 듭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공부해 본적이 없는데!!! ^^;;;;;

아무튼 이번 학기에는 신학과 복수전공 할 예정이어서 기대가 됩니다!!! 수강
과목 중 복수전공 과목 수가 주전공 과목수보다 많네요! ^^;;; 


초급영작문
LAB TOEIC 2미국문학과문화
영미드라마의이해

신학영어2
실천신학개론
하나님과 창조세계
종교개혁및근대교회사


공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무엇을 배울지 너무 기대되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