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전쟁을 허용하실까
D.M. 로이드 존스 지음, 박영옥 옮김 / 목회자료사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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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속의 책'(폴 임 저)에 따르면 인류 역사 3,500년 동안 전쟁이 없던 기간은 약 230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것을 보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될만하다. 전쟁으로 인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되어야 했다. 죽이고 또 죽여도 부족하다 느꼈는지 더 죽였고, 죽이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어야 그것이 그칠까? 

 인간의 잘못된 처사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죽기에 사람들은 과연 신은 있는가?라는 울분과 의문을 품고, 분노의 시선을 던진다. 인간을 창조한 신(이하 하나님, 특히 기독교의 하나님)이 있다면 왜 사람들이 그토록 죽어가는데, 당신이 사랑하겠다고 만든 인간이 그토록 고통을 받는데 왜 그것을 목도하는가?! 사랑한다면 당연히 전쟁, 기아 등으로 인한 죽음은 없어야 하는 게 아닌가?! 마틴 로이드 존스는 그러한 물음에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매우 저명한 지난 세기의 명 강해 설교자인 마틴 로이드 존스(이하 저자) 설교를 한데 묶은 책이다. 본문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디모데전서 2:8, 사사기 13:22, 23, 이사야 45:15, 야고보 4:1, 로마서 8:28 말씀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가장 눈여겨볼 만한 내용은 역시나 책의 제목과 같은 제 4장 '하나님은 왜 전쟁을 허용하실까?'일 것이다.

 하나님은 왜 전쟁을 허용하실까?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전쟁을 방관하고 계실까? 그분은 새디스트(Sadist)란 말인가? 사실은 악독한 분이란 말인가? 처음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두 가지로 나뉜다. 부정적인 답변과 긍정적인 답변이다. 전자는 질문에 대한 간접적인, 질문자들의 심리 혹은 입장을 분석하여 답을 찾아 나가고, 후자는 질문에 대한 직접적 답변으로 답을 찾는다. 그러면 여기서는 긍정적인 답변의 - 설명은 제외하고 - 결과만 살펴보자. 

 저자는 하나님이 전쟁을 허용하시는 이유를 세 가지로 말하는데 사람들의 죄를 징벌하시고, 죄를 통해 죄의 본질을 깨닫게 하시며 끝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려는 최종적 목적을 위함이라고 한다. 신자가 아닌 불신자가 본다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가라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명쾌한 답변이다. 그 답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세계관을 알아야만 한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서는 뜬구름 잡기식 답변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하나님은(성경에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겠다고, 전쟁을 주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렇다! 성경 어디에 전쟁을 주지 않겠다고 하셨는가? 그렇다면 평화를 주지 않는 하나님은 나쁜 하나님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아버지가 자식에게 매를 든다고 해서 나쁜 아버지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책은 과연 마틴 로이드 존스 답게 그 내용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그러니 누구든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다. 

 

 세상에는 여전히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살육 당하고 있고, 신음하고 있다. 이 세상의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부당한 일이다. 너무나 참혹하여 당연히 분노 할 일이다. 신을 조롱해도 마땅해 보인다. 그러나 영원의 관점, 신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그것은 그가 뜻한 바가 있기에 벌어지는 일이니 반드시 그에 희생 당한 사람들은 합당한 결과를 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당장에는 평화만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기에 우리가 할 일은 잠잠히 기다리는 것 뿐이다. 그것이 당황스런 결론이라 여겨지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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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합니다
저드슨 콘월 지음, 신상문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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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배, 예배, 예배...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한다면 예수님께서 남기신 말씀인 "신령과 진정으로"(개역한글, 개역개정은 "영과 진리로")라고 답할 수 있다. 신령과 진정으로 말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예배의 형태가 달라졌다. 오늘날에는 화려한 현대 문화처럼 예배 또한 화려하게 변하였다. 상대적으로 생각한다면 다윗 시대의 예배도 그 시대에 가장 화려한 예배였을 것이다. 많은 악기와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모습, 자료가 전무한 지금 정확하게 그릴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마음을 본다면 어림짐작으로 아마도 하나님을 위한 그의 예배는 매우 웅대하고, 장엄하며 하려 했을 것이다. 절대적으로 보자면 오늘의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시대마다 예배의 모습은 계속 변하였어도 그 의미와 자세는 잃지 않기 위해 말씀을 붙들었다.

 그러한 예배를 주제로 하는 책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모두 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책저책 예배를 이렇게 저렇게 설명하고, 표현한다. 나는 그 모든 책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여러 책을 읽어 본 결과 어느 책은 너무나 막연했고, 부족했다. 또 어느 책은 분명했지만 부족했다. 예배에 관한 나의 갈증을 채워 줄 책(성경 외에)을 찾을 수는 없었다.

 "예배합니다."라는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예배를 주제로하는 책 중 그것을 가장 체계적으로 잘 정리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바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은 총 19챕터로 되어 있다. 특징적인 것은 모든 챕터의 주제는 다르지만 각 챕터의 마지막 내용이 그 다음 챕터로 이어지는, 잘 짜여진 순차적 진행 방식을 따르고 있다. 개인적으로 - 나의 독서량이 적어 - 그러한 형식의 책은 본 적이 없고, 있다고 해도 많지 않기 때문에 참으로 독특하고,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또다른 특징은 성경 구절의 모음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예배를 다루는 성경의 모든 구절을 박람회같이 나열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독자들이 예배 가운데로 반응해 들어가도록 영감을 불어넣고, 방향을 제시하고, 통로를 만들어 주며 지난 몇 년간에 걸쳐 내가 체험하고 관찰한 것을 나누고자 노력했다."(서문)

 어떠한 책은 내용에 성경구절을 도배하여 성경책인지 보통 도서인지 헷갈리게 한다. 물론 특정한 주제를 갖는 신앙서적이라면 성경말씀을 인용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나친 인용은 내용과 주장에 대한 설명 부족으로 논점이 불명확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피하고 있으니 내용 이해에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누군가는 성경구절에 의한 정확한 근거 없이 자신의 체험과 관찰만으로 이야기하면 진리와는 먼 잘못된 이야기를 하지 않겠는가라는 의문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이력 - 30년간 개교회 목사, 12년간 여러 교회와 사경회 등의 강사, 예배와 찬양에 관한 45권의 책 저술 - 을 본다면 그런 의심과 불안은 기우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더욱이 성경의 모든 구절을 나열하지 않았을 뿐이지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그것을 근거로 하고 있으니 염려는 초장에 날려버릴 필요가 있다.

 이 책이 예배에 대해 다룬 다른 책들보다 월등하게 내용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책들보다 예배에 대해 더 체계적으로 잘 정리하고 있으니 읽어볼 가치는 그것으로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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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의 기도 - 불꽃같은 열정의 기도 사람
마틴 루터 지음, 유재덕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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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아 역사에 이름이 남은 사람들의 특징은? 모두 기도의 사람, 말씀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규칙적인 말씀 묵상과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여 그 심령에 말씀이 충만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뭇사람들처럼 하루에 세 번 - 식 전에 짧게하는 기도 - 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수 시간을 기도하여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큰 일을 일으키고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가장 큰 모범 되시는 주님을 보자. 그분은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하셨는지 무슨 일을 하시든지 항상 기도를 먼저 하신 후에야 할 일을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많은 사람들이 하루 세 번, 식사 전에 짧게 하는 기도 외에 하루 중 전혀 기도하지 않는다. 그마저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흔히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한다. 대화란 서로의 생각을 나눔으로써 서로에 대해 더 많이. 더 제대로 알아 보다 가까워지기 위한 수단이다. 더 가까워지면 무슨 이로움이 있을까? 언제든 거리낌 없이 서로를 도울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는 대화 - 기도를 통해 보다 더 가까워져 서로를 언제든 도울 수 있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기도가 많아지면 하나님은 우리를 더 많이 도와주시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분께 더 순종하고 헌신하게 된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우리의 겁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마음속에 확신이 가득차 보다 담대하게 된다. 그로 인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더 활발히 운행하시게 된다. 때문에 기도의 사람은 큰 일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그만큼 그 심령을 통해 활발히 역사하시는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활발히 운행하지 못하시니까. 

 

 마틴 루터는 주변 사람들에게 기도하지 않고 일에 힘쓰는 것은 뿌리를 내리지 않은 채 위로만 치솟으려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본문 5p) 하루도 거르지 않고 네 시간씩 기도 했다는 그의 말이니 그 말에 신뢰감이 더한다. 이 책은 그런 기도의 사람 마틴 루터에 관한 책이다. 아니 책 제목과 같이 마틴 루터의 기도에 관한 책이다.  

 루터는 그의 친구이자 전속 이발사인 페터 베스켄도르프에게 "어떻게 하면 제대로 기도할 수 있는지 방법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 책을 쓰게 된다.  

 총 2부로 구성 되어 있는 이 책은 전반부에서는 주기도문, 십계명, 사도신경을 통한 기도의 방법 그리고 순수한 기도의 습관을 루터가 이야기 한다. 후반부에서는 스펄전 칼리지의 학장을 지낸 레이먼드 브라운의 '네 명의 영적 거장들' 이라는 저서에 담긴 루터의 기도에 관한 내용을 발췌하였다.  

 1부에서 말하는 루터의 기도 방법은 루터가 주기도문, 십계명, 사도신경으로 어떻게 기도를 드렸는지 설명한다. 한 가지를 예를 들면 이렇다. 루터는 열 계명에서 하나하나 각 계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은 어떠한 내용으로 기도를 하는지, 각 계명을 바탕으로 무엇을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2부에는 앞서 이야기한대로 레이먼드의 루터의 기도에 관한 주석을 싣고 있는데 그 내용의 반이 1부의 내용과 겹친다. 1부의 내용을 좀더 자세한 주제에 맞게 분류 했기 떄문이다. 

 루터의 기도라고 하기에 무척이나 기대했다.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그는 어떻게 기도 드릴까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막상 그의 기도를 보고 나니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특별한 내용의 기도를 드릴 줄 알았는데 거창한 미사여구가 없고,그의 명성에 비하면 참으로 소박하고, 기본적인 내용으로 기도를 했기 떄문이다. 물론 이 책 - 편지 - 은 기도에 대해 잘 모르는 그의 친구가 이해하기 쉽게 썼기에 내용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으니 이해 할 만도 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한 수식어가 아니라, 투박 할지라도 그 안에 진심이 담겨 있느냐 담겨 있지 않느냐이기 때문에 나의 기대는 적절치 못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용이 완전히는 아니지만 꽤 만족스럽다. 다만 2부 내용의 절반이 - 2부의 내용은 1부의 내용보다 더 많다! 그러한 가운데 그 반이 1부와 겹친다! - 1부 내용과 같기 때문에 큰 실망감이 들었다. 새로운 내용이 나와도 그것에 만족할까 말까인데 상당히 많은 내용이 중복되니 실망감이 안 들 수 있겠는가!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조금이지만 루터의 기도와 정신 세계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별점으로 이 책을 평가하고,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다섯개를 만점으로 하여 세 개 반을 주고 싶다. 내용은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바로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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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크리스천 - 크리스천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실수 10가지
마크 애터베리 지음, 마영례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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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많은 말씀을 남기셨다. 사랑하라, 용서하라, 당신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라는 것 등이었다. 이 중 특징적인 것은 마지막 말씀일 것이다. 어느 종교인들 전도를 안 하겠냐만 저렇게 노골적으로 전도하라는 종교가 또 있을까? 저 말씀 이외에 특징적인 말씀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이었다.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이 되고, 제 맛을 잃은 이 세상에 소금이 되라셨다. 그러나 전체 크리스천들 중 그 말씀을 제대로 따르고 있는 이들이 몇 퍼센트나 될까? 전체를 100으로 봤을 때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잘잘못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그러한 삶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리스천들에게는 윤리, 도덕적으로 자신들보다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한다. 때문에 그 선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고, 자칫 어기기라도 하면 맹비난을 퍼붓는다. 여기서 간과한 사실은 크리스천들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따르는 신을 내적으로 결코 완벽하게 닮은 이들이 아니다. 단지 담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저지르면 관대하고, 크리스천들이 저지르는 것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나 - 죄로 인해 엄중한 재판을 받는 것은 크리스천과 그렇지 않은 이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 크리스천들이 정말로 비난 받아야 할 부분은 섬기는 심을 따르지 않는 것, 명력한 말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 비난 받아 마땅한 것이다. 

 어쨌든 크리스천들도 인간이기에 슬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으로서 저지러서는 안 되는 실수들에는 뭐가 있을까? 뒤짚어 생각해서, 크리스천들이 저지르는 실수에는 뭐가 있을까? 이 책에서 그 대표적인 10가지를 제시한다.

 1. 그리스도의 신부에게 흙탕물을 튀기는 것
 2.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대신 교회로 데려가는 것
 3. 우리의 신앙수준 이하로 살아가는 것
 4. 우리가 알고 있는 수준 그 이상으로 말하는 것
 5. 이 교회 저 교회 옮겨 다니는 것
 6. 우리끼리 서로 싸우는 것
 7.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
 8. 대충하고 마는 것
 9. 양떼 속에 이리가 살도록 허용하는 것
 10.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을 용납하는 것

 이 유형들은 저자가 목회를 해오며 관찰하고, 연구한 것들을 종합한 것이다. 이 유형들은 크리스천들이 교회 내에서 흔하게 저지르고 있는 실수들이다. 이 실수들 중 우리 각자는 과연 몇 가지나 저지르고 있을까? 아마 하나도 저지르고 있지 않다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처럼 실수나 죄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없다.

 내용은 전체적으로 무난하다. 내용이 어렵지 않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없다. 모두 공감가는 내용이다. 그래서 기신자라면 자신도 그러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지 돌아보게 하고, 초신자라면 자신은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기준이 된다. 

 가장 뒷 부분에는 10가지 실수에 해당하는 그룹 토의나 개인적인 묵상을 위한 질문이 있어 조금 더 묵상을 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 다만 그 냐용이 그리 많지 않아 깊이 있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10가지 실수는 크리스천들이 교회 내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들이다. 그러나 몇 가지 실수는 교회 외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실수들이다. 앞서 크리스천들은 사회적으로 더 높은 윤리, 도덕적 잣대로 평가 받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교회 외적으로 드러나는 실수들은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도 그러한 모든 실수는 온전한 교회가 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내외적으로, 본질적으로 주께서 바라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고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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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 신앙에서 벗어나라 - 영적 각성과 부흥을 불러오는 개혁의 외침 ㅣ 토저 대표작 시리즈 6
에이든 토저 지음, 이태복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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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생에 있어 피해야 할 행동이 몇 가지 있다. 그것은 '게으름', '습관' 등이다. 게으름이야 전적으로 부정적인 행동이지만 습관은 무엇을 어떻게 들이냐에 따라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행동이 된다. 
 
 사전에서는 습관을 '버릇'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버릇이란 '오랫동안 자꾸 반복하여 몸에 익어 버린 행동'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습관이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행하여 몸에 깊게 배어버린 행동이다. 몸에 뿌리 깊게 고착 되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나오게 되는 행동이다. 그래서 습관은 고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발현되기 때문이다. 통제 할 틈도 없이 행해지는 까닭이다.

 신앙생활에도 습관이 있다. 선데이 크리스천이라는 이들이 그 예 - 이들을 비난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순히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이기 때문에 언급한 것이다. - 이다. 모든 선데이 크리스천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일요일에 교회를 가야하기 때문에 간다. 처음에는 신앙과 교리로 인해 교회에 갔겠지만 그것들이 마음에 차지하는 면적이 줄어들게 됨에 따라 형식적으로 가게 된다. 그때부터 교회에 가야하는 분명한 목적을 잊은 채 습관적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자, 그러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은 총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문제를 진단하고, 2부에서는 해걀책을 제시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행동을 촉구한다.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본서에서 말하는 습관적 신앙이란 앞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은 개개인의 행동적 습관이 아니다. 교회의 습관을 말한다. 좀더 원론적인 부분인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습관을 말하는 것이다. 본문을 다 살펴보는 것은 무리가 따르니 한 부분만 살펴보자. 

 1부 4장 '습관적인 종교의식에 빠진 교회'를 보자. 저자인 토저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교회가 습관적인 상태에 빠지는 것은 바로 개인들이 습관적인 상태에 빠지기 때문입니다."(p56) 

 교회란 무엇인가? '구원받은 성도들의 공동체 혹은 집합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몸을 구성하는 개개인이 습관적인 상태에 빠지면 교회 또한 습관적인 상태에 빠지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습관적 상태의 문제점이 무엇일까?

  "그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적 감성이 점점 무뎌지고 한때는 아주 선명하게 들리던 하나님의 음성이 점점 더 희미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p58) 

 습관적 상태의 문제는 목자의 음성을 듣으려 하지 않는 혹은 듣지 못하는 어리석은 양들처럼 중구난방 제 갈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순종, 변화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변화는 기독교의 중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복음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p58) 

 개신교가 어떻게 탄생 했는가? 신앙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부패한 로마 교회에 대한 저항으로 생겨났다. 올바른 것으로의 변화를 꾀하여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복음의 요소이다. 핵심이다. 바로 잘못된 것에서 올바른 것으로의 회귀 말이다. 그렇다면 왜 습관적인 상태에 머무를까? 저자는 그것을 세 가지로 말한다.  

 1) 진정으로 회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훈련을 위해 사탄에게 넘겨졌기 때문이다.
 3) 죄 때문이다. 

이 습관들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죄를 자백' 하라고 말한다. 회개 만큼 강령한 자기 부인과 낮아짐은 없지 않음을 누구도 반박 못할 것이다. 

 지면 관계상 한 장만 살펴보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토저 목사답게 명료하다. 핵심을 바로 찌른다. 여느 작가들처럼 미사여구가 많지 않다. 비유나 예화를 통해 에두르지 않는다. 그래서 요점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초신자는 내용이 조금 어려울수도 있겠다. 교회의 현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신자는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교회의 이야기가 아니고, 미국 교회 이야기라는 것이 조금 걸리긴 한다. 하지만 우리 교회가 미국 교회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내용에 거리감은 들지 않는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저자인 토저 목사는 1960년 대에 소천하였음에도 그 말씀이 오늘에도 적용이 된다는 것이다. 그의 통찰력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다르게 보자면 50년이 다 되도록 교회가 전혀 변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로마 교회는 교권이 강해지면서 세속화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타락하기 시작했다. 그것에 반박하여 생겨난 것이 '개신교'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개신교도 중세의 교회와 같이 모양은 다르지만 심각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 개신교의 특징은 흐르는 물이라는 것이다. 개신교는 변혁이 생명이다. 그러나 오늘의 개신교는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습관에 젖어 점점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영적 각성과 부흥은 둑을 헐어 물이 흐르게 할 때에야 찾아온다. 개혁은 고여서 썩은 물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둑을 허물기 전에는 결코 이룰 수 없다. 개신교는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빛과 소금이 되라는 명령을 어기고, 자기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전도를 핑계 삼아 불신자를 개종시켜 함께 썩게 만들고 있다. 개신교의 사명이 무엇인가? 믿지 않는 이들에게 새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개신교는 어떠한가? 새 생명은 커녕 죽음을 주고 있다. 이것이 모두 습관적 신앙, 죽은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능력 잃은 교회. 썩어 가는 교회는 다시 능력을 회복하여 다가올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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