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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는 교회 ㅣ 부족한 기독교 옥성호의 세상 & 교회 읽기 시리즈 2
옥성호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기독출판시장에 불현듯 나타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아마추어 작가 옥성호. 그는 세 권의 책,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이하 심부기)’,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이하 마부기)’,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이하 방언)’를 통해 한국 기독교의 매우 예민한 문제를 다루었고, 그것은 곧 알레르기 반응과 환호 등 다양한 반응을 유발했다. 그가 이번에 출간한 ‘내가 꿈꾸는 교회 - 부족한 기독교 옥성호의 세상 & 교회 읽기 시리즈 2’는 그것들보다는 가벼운 주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내가 꿈꾸는 교회’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이전의 세 책과 같이 신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에세이 형식으로 ‘세상과 신비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내가 꿈꾸는 교회’, ‘열정 그리고 진리’라는 세 챕터에서 기독교, 교회, 개인이라는 세 주제를 그의 시각에서 자유롭게 다루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부흥과 개혁사’ 홈페이지에 ‘옥성호의 교회&세상읽기’라는 공간을 통해 그가 올린 글들을 수정, 보완하여 각 주제에 맞게 모아놓았다.
이 책은 심부기, 마부기, 방언과 달리 내용과 형식이 자유롭지만 그것들과 동일하게 논란을 일으킬 만한 요소를 다분히 가지고 있다. 세 책의 내용과 같이 기독교가 간지러워 할 만한, 아파할 만한 부분들을 건드리는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몇몇 내용들은 앞서 언급한 공간에서 이미 수차례 공방이 오고간 상태이기도 하다.
‘내가 꿈꾸는 교회’를 책 그자체로 읽고, 즐기기 위해서는 앞선 책들을 읽을 때와 같이 무언가를 얻겠다는 특별한 기대나 내용을 반박하겠다는 비판적 시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책의 내용도 옳다구나 하거나 곱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책을 즐기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다. 그렇다고 비판적 시각을 완전히 버려서는 안 된다. - 출판사의 카테고리로 본다면 - 이 책은 ‘영적성장’에 도움을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신학적 깊이는 없지만 그것과 관련된 내용과 기독교 사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멀리서 관망하는 자세만으로는 볼 수 없다. 따라서 편하게 읽고 싶지만 그럴 수만은 없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아쉬운 부분은 내용이 아니다. 내용은 내 스스로 잘 소화하면 된다. 그러나 추천사에 등장하여 책 마무리에 또다시 보이는 발행인의 이름은 곱게 보이지 않는다. 책이란 무엇인가? 사견을 담고 있긴 하지만 결코 사적인 것이 아니다. 배포 이전에는 사적인 것이지만 배포되는 그 순간 많은 사람의 손과 입과 눈, 그리고 머리를 거치기에 더 이상 사적인 것이 될 수 없다. 그러한 공적 것에 결론부인, 책에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 마지막 장에 가장 사적인 내용을 담은 것은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장 마지막 부분에 감사의 말을 담은 것은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감사의 말이 서두에 ‘감사의 말’이라는 별도의 공간이나 해당 챕터의 처음이나 중간부분에서 나왔으면 그리 게의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첫 부분에서 발행인이 책을 추천하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부분에서 그에게 감사하는 것은 형식에도 어긋나고, 두 사람이 자화자찬하는 격이니 자신들만을 위한 책이 아님에도 자신들만의 책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러한 행동은 참으로 온당하지 못한 행동이라 생각한다.
옥성호. 그의 등장은 갑작스럽지만 그가 들고 온 내용들은 그리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가 제기한 주장들은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 중에는 이미 터져서 싸매고 있는 상처도 있고, 누구도 그것을 터뜨리려하지 않는 상처도 있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비판 혹은 동의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의 그런 과감하고, 무모한 행동에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이왕 하는 김에 신학적 지식과 체계를 제대로 갖출 것을 요구한다. 그가 가장 비판, 비난 받는 부분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유명한 목사나 신학자였어도 그러한 반응이 일었을까? 아니면 사회적으로 이름난 이였어도 그랬을까? 그러나 갑작스럽게 등장한데다 신학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이가 그것을 이야기하니 많은 이들이 좋게 보지 않는다. 권위와 신뢰성이 부족한데다 뜨거운 감자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 물론 이것만이 원인은 아니지만 - 어쨌든 그의 주장을 보면 한국 기독교에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기에 부디 멈추지 말고, 끝까지 달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자극이 되어 우리 교회가 올바른 곳으로 나아가고, 더욱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