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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실종 ㅣ 데이비드 웰스 4부작 시리즈
데이비드 웰스 지음, 윤석인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현 시대의 교회와 세상을 나 나름대로 각각 분석해 본다면 이렇다. 교회는 웰스의 주장과 같이 '신학이 실종' 되었다. 교리, 즉 진리가 외면 받고 있다. 단적인 예로 예배에서의 말씀을 들 수 있다. 오늘날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언약과 구원, 그분의 거룩하심, 인간의 타락 등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 축복, 평안, 화평, 수준 낮은 사랑 등 개인의 안녕과 만족을 위한 내용만 담겨 있다. 설교의 중심이 하나님과 교회에서 개인과 그 자아로 옮겨졌다. 가히 '신학 실종'이라는 표현이 꼭 맞다. 설교는 물론 교회의 교육 프로그램도 진리를 가르치는 대신 인간적인 열심을 부추기는 질 낮은 교육을 제공한다.
세상은 '윤리가 실종' 되었다. 이전 시대에는 인간의 행동과 삶의 방식의 기준이 공동체에 있었다면 지금은 개인에게 있다. 개인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된다. 모든 것은 내 자아의 만족을 위한 부속물이다. 남들보다 나의 만족이 더 중요하다. 내가 남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만족하느냐로 행동이 결정된다. 따라서 나만 만족한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든 상관이 없다. 남이 어떤 피해를 입든 상관없다. 내 자아만 만족한다면 남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든 부도덕한 게 아니다. 모든 행동은 만족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향해 있다.
교회와 세상은 모두 이전의 기준을 버린 채 표류하고 있다.
'윤리실종'
본서는 데이비드 웰스의 4부작(신학실종, 거룩하신 하나님, 윤리실종, 위대하신 그리스도)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웰스는 미국 사회에서 윤리가 어떻게 무너지게 되었는지 살핀다. 그 원인과 과정 및 현상들을 분석하여 밝힌다. 동시에 그러한 일들이 기독교와 어떠한 연관성이 있고, 기독교는 어떠한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지 논한다.
웰스는 말한다.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지속적인 효력을 갖는 해법을 결코 찾지 못할 것이다. 또한 사회에서 효력을 갖는 기독교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는, 사회의 현상은 물론이고 기독교 자신의 현상과 당면 과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또한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기독교는 지금 엉뚱한데 정신이 가 있어 자신의 몸 추스르기에도 벅차 보인다. 따라서 사회에서의 효력을 갖는 것은 요원한 일로 보인다.
"세상성은 특정 시대의 가치 체계로서, 타락한 인간의 사고방식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세계에서 내쫓고 죄를 정상으로 보이게 하고 정의를 비정상으로 보이게 한다.
더욱이 기독교는 지금 세상성에 물들어 있다. 기독교 고유의 가치를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의 사고방식을 수용하고 있다. 세상성의 공격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진리를 기독교에서 내쫓고 죄를 정상으로 여기며 정의를 비정상으로 보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가치 체계에 왜곡이 발생하여 혼란을 겪고 있다.
윤리가 중심성을 잃은 현대 사회의 모습을 분석하며 웰스는 "우리가 현대 생활의 많은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어디서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를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을까?
현대 사회는 포스트모더니즘 영성을 바탕으로 하여 삶을 위한 기준점을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에게로 옮겨 놓았다. 세상의 기준은 자기만족에 있다. 자신의 자아가 모든 것의 중심이다. 따라서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격보다 개성"을 중시하고, "본성보다 자의식"에 관심을 갖는다. 삶의 중심이 자아로 옮겨지자 "죄의식은 사라지고, 수치심만 남"았다. 모두가 자아에 집중하는 까닭에 사회 공통의 "윤리가 사라"지고, "방종이 난무"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향한 윤리적 책임에는 둔감"하다. 이에 대해 웰스는 "하나님의 노여움은 사회의 타락을 통해 그 속에 새겨진다. 그와 같은 윤리적인 무질서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진행 중이다."라고 경종을 울린다. 이러한 "현대인의 도덕적 모순"에 기독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죄가 망각"되고 있는 이 시대에 교회가 "지속적인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웰스는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한다.
"... 교회가 이 시기를 성공적으로 붙잡으려면, 두 가지 중요한 방식에서 윤리적인 비전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첫째, 교회는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가 규범으로 받아들이는 많은 것이 실제로는 죄악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해져야 하고, 죄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세대에 죄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배우는 일에 새로운 독창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 둘째, 복음의 위대성이 삶에서 완전히 사소하고 시시하다고 여겨지는 요즘 같은 현실에서, 교회 스스로가 윤리적으로 한결 더 신뢰할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용감해져야 한다. 진리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에 만연한 죄를 죄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와 목사의 부도덕성이 벌어지고, 적나라하게 고발되는 오늘의 현실에서 교회는 윤리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본서는 미국 사회와 교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정도에 차이가 있지 우리나라도 거의 동일한 현상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즉 이 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고, 그 적용점은 우리가 대안으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따라서 웰스가 제시한 해법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한국 교회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진리의 회복이 아닐까 싶다.
진리와 너무나 멀어진 오늘의 한국 교회는 어서 진리 위에 온전히 서도록 해야 한다. 진리가 아니라 세상성을 추구하고, 그것이 교회 내에 만연되어 있는 지금, 강단에서 온전한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 진리 교육이 시급하다. 그동안 진리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성도들은 죄 등 진리의 내용을 명확히 모른다. 이것은 성도들이 세상에 진리를 선포 할 수 없는 한 가지 이유다. 그리고 교회 내에 만연한 세상의 때를 다 벗겨 내야 한다. 교회가 세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하나님 앞에서 짓고 있는 죄를 회개하고 거룩함을 회복해야 한다. 이 또한 진리에 대한 무지 혹은 왜곡된 이해가 그 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진리에 대한 앎과 진리에로의 돌아섬이 선결되지 않고서는 세상의 죄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복음의 위대성을 스스로 훼손시킨 교회는 진리를 온전히 붙들지 않는 이상 사회에 아무런 효력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