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로 신앙을 개혁하라
김민호 지음 / 아이디얼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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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틴 루터에 의해 촉발된 종교개혁의 핵심에는 칭의 교리가 있다. 구원에 있어 인간의 공로를 강조한 로마 카톨릭의 잘못된 칭의 교리와 뚜렷이 구별되는 개신교의 칭의 교리는 보통 '이신칭의'라고 부른다.
 오직 믿음으로 의인이라 칭함 받는다는 이신칭의 혹은 이신득의 교리는 개신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교리이다. 그것은 개신교에는 없어서는 안 될 무척 중요한 교리이다. 한 마디로 개신교의 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감리교는 인간의 중생을 강조하고, 루터교는 이신칭의를 강조하며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는 등 각 개신교 교파마다 강조하는 바가 다르다. 하지만 모두 이신칭의를 핵심에 두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이러한 이신칭의 교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성도들이 얼마나 될까? 과연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 교리,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 복된 소식을 올바로 알고 있는 성도들이 몇이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칭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평신도들은 한국 교회 전체를 놓고 봤을 때 3분의 1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 추측된다.
 칭의에 대해 주일 대예배 설교에서 1년 동안 한 두 번 들으면 많이 듣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게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칭의에 대한 무지를 배가 시키고 있다. 달리 말하면 지금의 한국 교회는 성도들을 반펠리기안주의(Semi-Pelagian)에 빠지도록 방치하고 있다.


 '칭의로 신앙을 개혁하라'


 이 책은 70여 페이지의 작은 책이다. 작은 책이지만 알찬 내용이 담겨 있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칭의 및 칭의와 관련된 여러 사항을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믿음, 구원, 구원의 확신, 기도, 성화, 로마 카톨릭과의 연합 문제, 그리스도인의 자유 등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 꼭 알아야 할 문제(물론 로마 카톨릭과의 문제는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들을 다루고 있다.
 각 장의 분량은 적다. 하지만 내용은 좋다. 간명하다. 이 책은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어렵지 않다. 이해하기 쉽다. 내용이 깊고 넓지 않은 대신 핵심을 잘 짚고 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 책을 통해 칭의를 이해하는데 적절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칭의와 관련된 책 자체가 그리 많지 않은 한국 기독교 출판계의 현실에서, 성도들의 칭의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이만한 책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안타까운 현실로 초판본이 그리 많이 인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여 칭의에 대한 기초를 다지고, 간명한 이해가 필요한 이는 어떻게든 구해서 읽어볼 것을 권한다.


 칭의를 잘못 이해하면 로마 카톨릭과 같이 반펠라기안주의에 빠질 수 있다. 칭의를 오해하면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고 발버둥 치게 된다. 잘못된 신앙에 빠져 구원을 얻기 위해 괴로워하며 자칫 평생을 몸부림 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잘못을 범하는 개신교인들이 가끔 눈에 띈다는 사실이다. 무지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구원과 믿음에 행위를 첨가시키는 개신교인들이 있다.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 외에 다른 것은 필요 없다. 물론 믿음도 우리의 의지로 얻는 것은 아니다. 성부 하나님의 창세 전부터의 계획하심으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게 된다. 택자들은 그 믿음으로 단번에 구원을 얻는다. 여기에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는 자리할 데가 전혀 없다.
 성도들은 이러한 칭의를 바르게, 제대로 이해하여 구원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길 바란다. 이미 구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얻기 위해 헛된 노력을 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무의미한 몸부림을 치는 그 시간에 점진적 성화에 매진하여 자신의 예배와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리기 위해 힘쓸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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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실종 데이비드 웰스 4부작 시리즈
데이비드 웰스 지음, 윤석인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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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현 시대의 교회와 세상을 나 나름대로 각각 분석해 본다면 이렇다. 교회는 웰스의 주장과 같이 '신학이 실종' 되었다. 교리, 즉 진리가 외면 받고 있다. 단적인 예로 예배에서의 말씀을 들 수 있다. 오늘날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언약과 구원, 그분의 거룩하심, 인간의 타락 등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 축복, 평안, 화평, 수준 낮은 사랑 등 개인의 안녕과 만족을 위한 내용만 담겨 있다. 설교의 중심이 하나님과 교회에서 개인과 그 자아로 옮겨졌다. 가히 '신학 실종'이라는 표현이 꼭 맞다. 설교는 물론 교회의 교육 프로그램도 진리를 가르치는 대신 인간적인 열심을 부추기는 질 낮은 교육을 제공한다.

 세상은 '윤리가 실종' 되었다. 이전 시대에는 인간의 행동과 삶의 방식의 기준이 공동체에 있었다면 지금은 개인에게 있다. 개인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된다. 모든 것은 내 자아의 만족을 위한 부속물이다. 남들보다 나의 만족이 더 중요하다. 내가 남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만족하느냐로 행동이 결정된다. 따라서 나만 만족한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든 상관이 없다. 남이 어떤 피해를 입든 상관없다. 내 자아만 만족한다면 남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든 부도덕한 게 아니다. 모든 행동은 만족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향해 있다.

 교회와 세상은 모두 이전의 기준을 버린 채 표류하고 있다.

 

 

 

 '윤리실종'

 

 본서는 데이비드 웰스의 4부작(신학실종, 거룩하신 하나님, 윤리실종, 위대하신 그리스도)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웰스는 미국 사회에서 윤리가 어떻게 무너지게 되었는지 살핀다. 그 원인과 과정 및 현상들을 분석하여 밝힌다. 동시에 그러한 일들이 기독교와 어떠한 연관성이 있고, 기독교는 어떠한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지 논한다.

 

 웰스는 말한다.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지속적인 효력을 갖는 해법을 결코 찾지 못할 것이다. 또한 사회에서 효력을 갖는 기독교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는, 사회의 현상은 물론이고 기독교 자신의 현상과 당면 과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또한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기독교는 지금 엉뚱한데 정신이 가 있어 자신의 몸 추스르기에도 벅차 보인다. 따라서 사회에서의 효력을 갖는 것은 요원한 일로 보인다.

 

 "세상성은 특정 시대의 가치 체계로서, 타락한 인간의 사고방식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세계에서 내쫓고 죄를 정상으로 보이게 하고 정의를 비정상으로 보이게 한다.

 

 더욱이 기독교는 지금 세상성에 물들어 있다. 기독교 고유의 가치를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의 사고방식을 수용하고 있다. 세상성의 공격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진리를 기독교에서 내쫓고 죄를 정상으로 여기며 정의를 비정상으로 보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가치 체계에 왜곡이 발생하여 혼란을 겪고 있다.

 

 윤리가 중심성을 잃은 현대 사회의 모습을 분석하며 웰스는 "우리가 현대 생활의 많은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어디서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를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을까?

 현대 사회는 포스트모더니즘 영성을 바탕으로 하여 삶을 위한 기준점을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에게로 옮겨 놓았다. 세상의 기준은 자기만족에 있다. 자신의 자아가 모든 것의 중심이다. 따라서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격보다 개성"을 중시하고, "본성보다 자의식"에 관심을 갖는다. 삶의 중심이 자아로 옮겨지자 "죄의식은 사라지고, 수치심만 남"았다. 모두가 자아에 집중하는 까닭에 사회 공통의 "윤리가 사라"지고, "방종이 난무"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향한 윤리적 책임에는 둔감"하다. 이에 대해 웰스는 "하나님의 노여움은 사회의 타락을 통해 그 속에 새겨진다. 그와 같은 윤리적인 무질서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진행 중이다."라고 경종을 울린다. 이러한 "현대인의 도덕적 모순"에 기독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죄가 망각"되고 있는 이 시대에 교회가 "지속적인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웰스는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한다.

 

 "... 교회가 이 시기를 성공적으로 붙잡으려면, 두 가지 중요한 방식에서 윤리적인 비전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첫째, 교회는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가 규범으로 받아들이는 많은 것이 실제로는 죄악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해져야 하고, 죄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세대에 죄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배우는 일에 새로운 독창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 둘째, 복음의 위대성이 삶에서 완전히 사소하고 시시하다고 여겨지는 요즘 같은 현실에서, 교회 스스로가 윤리적으로 한결 더 신뢰할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용감해져야 한다. 진리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에 만연한 죄를 죄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와 목사의 부도덕성이 벌어지고, 적나라하게 고발되는 오늘의 현실에서 교회는 윤리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본서는 미국 사회와 교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정도에 차이가 있지 우리나라도 거의 동일한 현상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즉 이 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고, 그 적용점은 우리가 대안으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따라서 웰스가 제시한 해법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한국 교회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진리의 회복이 아닐까 싶다.

 진리와 너무나 멀어진 오늘의 한국 교회는 어서 진리 위에 온전히 서도록 해야 한다. 진리가 아니라 세상성을 추구하고, 그것이 교회 내에 만연되어 있는 지금, 강단에서 온전한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 진리 교육이 시급하다. 그동안 진리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성도들은 죄 등 진리의 내용을 명확히 모른다. 이것은 성도들이 세상에 진리를 선포 할 수 없는 한 가지 이유다. 그리고 교회 내에 만연한 세상의 때를 다 벗겨 내야 한다. 교회가 세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하나님 앞에서 짓고 있는 죄를 회개하고 거룩함을 회복해야 한다. 이 또한 진리에 대한 무지 혹은 왜곡된 이해가 그 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진리에 대한 앎과 진리에로의 돌아섬이 선결되지 않고서는 세상의 죄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복음의 위대성을 스스로 훼손시킨 교회는 진리를 온전히 붙들지 않는 이상 사회에 아무런 효력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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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상의 함정에 빠지다 잘못된 기독교 분별 시리즈 5
박순용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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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는 지금 세상의 함정에 빠져 있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함정에 뛰어 들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것을 더 좋게 여겨 그것을 갖기 위해 일부러 세상의 함정 속으로 뛰어 들은 건지도 모른다. 기독교가 빠진 함정은 상대주의, 세속주의, 신비주의 영성, 실용주의, 심리학, 포스트모더니즘 영성 등이다. 이러한 온갖 세상적인 잡탕 속에 빠진 기독교는 온갖 색에 물들어 있다. 잡탕 속에서 뒹굴고 있는 까닭에 깨끗한 데라고는 찾기 힘들만큼 더러워졌다. 본래의 고유한 색깔을 거의 다 읽었다.

 기독교만이 참 진리를 따르는 유일한 실체이다. 성경을 올바로 따르는, 성경적인 참 기독교에 한해서 기독교는 진리의 보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는, 작금의 교회는 그 자신의 정체성과 색깔을 상실해 가는 중이다. 유럽의 교회는 일찌감치 변절했고, 그 다음으로 미국의 교회는 현재 심하게 왜곡되고, 변질된 상태이다. 그 뒤를 이어 우리나라의 교회 또한 (미국에서 들여온) 불건전한 것들에 빠져 기독교 고유의 모습을 거의 다 잃었다. 우리나라 교회는 지금 배교와 배도를 목전에 두고 있다!

 

 '기독교, 세상의 함정에 빠지다'

 

 이 책은 하나님의 참 진리가 아니라, 세상의 거짓 진리를 추종하는 오늘날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교회에 닥친 위기와 위험으로부터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그것을 위해 먼저 배교와 그 현상은 무엇인지 가르친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진리의 왜곡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여 보여준다. 교회를 왜곡시키고 있는 유혹과 미혹에는 무엇이 있는지 세세히 알려준다. 계몽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심리학, 실용주의, 신비주의, 종교 다원주의 등 진리를 왜곡하는 현실의 문제들을 고발한다. 교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거침없이 들춰내는 동시에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혹자는 이 책을 보며 그게 뭐 그리 큰 문제냐고 볼멘소리를 낼 수도 있다. 괜한 호들갑을 떤다고 말할 수도 있다. 현재 나타나는 교회의 모습은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교회 또한 단지 옷을 갈아 입는 과정일 뿐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반대와 달리 이 책의 내용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전혀 과장된 내용이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올바른 지적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도 아무런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잘못된 변화에 심하게 물들어 있거나 아니면 아직 그것을 직시 할 안목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전자라면 그 사람은 정말 심각한 지경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교회는 이 책이 울리는 위기의 타종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부디 이 책의 경고가 자신의 현재를 점검하고, 자신이 처한 위기를 깨달아 중심을 되찾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이 책이 자극이 되어 바른 길로 나아가는 교회는 그 길로 더욱 정진하고,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교회는 방향을 틀어 다시 바른 위치로 돌아오길 바란다. 헛된 바람일 수도 있지만 부디 이 책의 진단과 예상이 틀렸으면 좋겠다.

 

 교회는 지금 심각한 문제에 처해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모르고 있다. 대부분은 문제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더 큰 문제이다.

 어쨌든 교회는 자신이 직면한 오늘의 문제와 위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배교와 배도를 목전에 둔 오늘의 한국 교회는 어떻게 대처하고, 처신해야 할까? 교회는 더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날마다 성경을 통해 자기를 점검해야 한다. 언제나 자신의 모습을 성경에 맞추어 개혁해야 한다. 교회는 할 수 있는 한 진리를 꽉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수많은 교회는 자기 점검을 하지 않고 있다. 자신의 기준이 되는 성경을 무시하고 있다. 잘못된 길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이 배교의 시대에 잘못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교회는 또 다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교회는 먼저 믿음 위에 굳게 설 수 있도록 "교리를 개혁" 해야 한다. "바른 교리를 붙들"어야 한다. "예배를 개혁"하여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생활을 개혁"하여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배교로 향하는 대세를 거슬러야 한다. 그렇지 않은 교회는 참 모습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것이다. 올바른 개혁을 추진하지 않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지 않는 교회는 자신의 열심에도 불구하고 결국 진리에서 일탈하여 장차 하나님 앞에 서거나 주님이 오셨을 때에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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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와 성찬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개혁신앙강좌 4
고재수 지음 / 성약출판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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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신교회에서 성례, 즉 세례와 성찬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험 할 수 있는 은혜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기록된 말씀이라고 한다면 성례는 보이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성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한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성례의 그 중요성이 오늘날에는 많이 약화된 느낌이다.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성례라는 은혜의 방편을 제대로 누리면 요즘 유행하는 어떠한 집회에서의 은사 경험의 추구는 자연히 하지 않게 된다. 나아가 우리가 말씀을 잘 읽고, 예배를 잘 드리며 그 안에서 성례에 잘 참여하고, 삶 가운데서 말씀을 잘 실천하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 세 가지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 다른 은혜의 방편에 대한 필요성은 상실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은혜의 핵심적인 방편들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기에 다른 데서 대신 그 만족을 찾아 누리려 한다.

 

 '세례와 성찬'

 

 이 책은 앞서 말한 세례와 성찬이라는 은혜의 방편에 대한 몇 가지 의문과 의미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총 4장으로 구성된 본문 중 1장에서는 세례의 근거를 살펴본다. 특히 유아 세례가 과연 합당한지 다른 예식문과 종교 개혁자 칼빈,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작성한 우르시누스, 그리고 성경을 순서대로 살펴보며 그 근거를 찾는다. 2장에서는 개혁교회의 세 일치 신조 중 하나이자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제기한 5가지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작성된, 칼빈주의 5대 강령의 원안(原案)인 도르트 신경 제 1장 17조를 중심으로 유아 세례에 대한 확신을 알아본다. 그리고 3장에서는 주님의 만찬인 성찬의 의미와 상징성을 살펴본다. 마지막 4장에서는 성례의 성격을 나타내는 '표'와 '인'이라는 표현의 배경과 근거를 찾아본다.

 이 책은 얇다. 각 장의 내용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네덜란드 개혁교회 출신으로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고신대학원에서 수년 간 후학을 양성 했던 고재수(N.H.Gootjes)의 뛰어난 안목과 논리 정연한 전개를 통해 유아 세례와 성례의 문제를 핵심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유아 세례와 성례 문제를 더 포괄적이고, 깊이 있게 알아보려면 성경을 바탕으로 여러 책을 참고하여야 할 것이다. 대신 핵심만 살펴보고자 한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오늘날 종교개혁 신앙을 그대로 물려받은 장로교회조차 성례의 의미와 중요성을 그리 크게 강조하는 것 같지 않다. 그 중요성을 애써 무시하는 것 같다. 장로교회는 물론이고, 수많은 교회들이 많아야 한 달에 한두 번 성례를 실시하지 않을까 싶다. 몇몇 교회를 제외하고는 이 은혜의 방편의 귀중함을 상실한 것 같다. 성례가 왜 중요한지 교육하지 않고, 또한 단지 연례행사처럼 실시하니 성도들은 은혜의 공급처를 잃은 동시에 은혜를 공급 받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성례의 귀중함을 알 도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의 일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본다.

 따라서 개신교회는 성도들의 일탈을 방지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은혜를 추구하지 않도록, 왜곡된 신앙을 갖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은혜를 추구하고, 그것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개신교회는 먼서 신속히 성경 중심의 설교를 회복하여 말씀을 바르게 선포해야 한다. 동시에 예배가 방정 맞은 쇼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엄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엄숙하고 장엄하며 경건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그 중심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성례의 중요성을 거듭 인식시키고, 그것을 자주 시행해야 한다. 성도들이 자신의 삶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한 모습을 실천하는 가운데 매일 주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교회는 잃어버린 말씀과 잘못된 예배(성례를 포함한)의 정상을 되찾아서 성도들이 은혜를 마음껏 누리고, 그것에 감사하며 실천을 통해 세상에 발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교회는 말씀과 예배(그리고 그 안에서의 성례)와 실천, 이 세 가지의 회복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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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러 - 신앙의 빛으로 우주를 신비를 밝히다
성영은 지음 / 성약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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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플러, 내가 들어본 이 이름은 우주 망원경을 통해서다. 그것을 통해 케플러는 천문학자이겠거니 막연히 생각했다. 그게 전부이다. 정확히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 등 그에 관해서 따로 들어본 적이 전혀 없다. 과학 시간에 졸았는지 그 유명한 케플러의 법칙이라는 것을 들어본 기억도 없다. 내 기억으로 그와 나는 일면식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이번에 우연찮게 그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케플러, 신앙의 빛으로 우주의 신비를 밝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케플러를 처음 만났다. 내가 만난 케플러, 이 책에 담긴 그를 정리하면 이렇다.

 

 케플러는 말하자면 과학자인 동시에 평신도 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루터와 칼빈 등 1세대 종교 개혁자들이 생을 마감한 후 그 다음 시대에 활동한 과학자이다. 케플러는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개신교 학교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튀빙겐 대학에서 수학하며 집중적으로 종교교육을 받았다. 케플러는 집안 내력과 그가 받은 교육으로 인해 목사가 되려고 하였다. 그러나 대학 교육의 마지막 과정을 남겨두고 뜻하지 않게 당시 시대 상황으로 인해 수학 교사가 되었다. 그는 교사는 잠시일 뿐 꼭 목사가 될 것이라 다짐 했다. 하지만 결국 그의 인생은 다짐과 다른 방향으로 향하였다. 하나님은 그를 다른 길로 이끄셨다.
 케플러는 신교도로서 구교도 세력의 압력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지켰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구교도 세력으로부터 개종하라는 압력을 끊임없이 받았다. 그리고 성찬식과 관련해 칼빈의 해석이 더 성경적이라 여기며 그것을 고수하자 다른 신교도인 루터교도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다. 이 두 가지로 인해 케플러는 늘 손해를 보고 어려움에 처하였다. 그는 내외부로부터 동시에 압력을 받았지만 양자를 상대로 한 자신의 신념을 죽는 그 순간까지도 굽히지 않았다. 이렇게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동시에 자신의 연구에 매진한 케플러는 결국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더욱 발전시키는 과학적 쾌거를 이루어냈다. 그는 비록 목회자가 아닌 과학자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신앙의 빛 안에서 매순간,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았다.

 

 이 책에는 일반에 알려진 과학자로서의 케플러는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신앙인으로서의 그의 삶과 신앙이 담겨 있다. 그의 놀라운 과학적 쾌거와 함께 굳건한 신앙의 지조(志操)를 엿볼 수 있다. 그가 지킨 신앙으로 인한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고, 그것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열정을 어떻게 불태웠는지를 생생히 볼 수 있다. 확고한 신앙을 바탕으로 그가 자신의 전(全) 삶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높여드렸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큰 도전을 받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케플러가 보여준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 일반 학문(오늘날 과학과 신학은 전혀 다른 분야이다. 하지만 당시에 과학은 신학에 종속 되어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관점으로 본다면 과학을 오늘처럼 일반 학문이라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을 하며 일반 사회에 머물며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모습,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그의 신앙의 절개 등 평신도로서의 그의 삶을 통해 오늘날 한국의 성도들은 같은 평신도로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당시 중세 유럽의 생활과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각 독자들의 삶의 현장과 케플러가 매진했던 분야는 다르겠지만, 그의 삶과 신앙을 통해 독자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며 높여 드려야 하는지 방향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는 이가 있다면, 그리고 평신도로서 이 세상에서 사는 가운데 자신의 신앙에 도전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읽어 볼 것을 자신 있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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