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는 없을까?
조나단 에드워즈 지음, 백금산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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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0.5 ~ 1758.3.22)는 18세기에 미국이 배출한 뛰어난 설교자이자 신학자이며 철학자이다. 그는 당대 뿐만 아니라 시대를 뛰어 넘어 교회사에 있어 참으로 위대한 영적 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에드워즈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독창적인 철학적 신학자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위키백과)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는 없을까'

 이 책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직접적인 저작물은 아니다. 그가 남긴 자서전과 결심문, 그리고 일기를 백금산 목사(예수가족교회)가 편역한 책이다.

 본서는 크게 보면 백금산 목사의 해설과 조나단 에드워즈의 저작물 모음, 이렇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원 편집대로 보면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먼저 1부에서는 편역자인 백금산 목사가 에드워즈에 대한 해설과 접근법 등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에드워즈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 설명한다. 그리고 그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를 제공한다. 또한 에드워즈는 어떻게 영적 거인이 되었는지 그의 면면을 분석한다.
 그 다음 2부는 에드워즈의 자서전, 3부는 그의 70가지 결심문, 그리고 마지막 4부는 일기를 담고 있다. 각각의 내용 중 독자가 특히 눈여겨 볼 부분은 3부인 결심문 일 것이다.
 에드워즈의 70가지 결심문은 그 작성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그의 나이 19세를 전후로 작성하기 시작하여 20살 생일 두 달 전에 완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70가지 결심문은 지상 최고의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에드워즈의 인생 목표를 담고 있다. 결심문은 그가 평생에 걸쳐 실천한 행동들에 대한 지침과 마음에 새길 좌우명이다. 그 결심문을 통해 독자는 그가 얼마나 철저한 삶을 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얼마나 치열한 신앙생활을 했는지 엿볼 수 있다.

 일부의 독자들은 에드워즈의 자서전과 결심문, 일기를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길 수도 있다. 지루하고, 쓸모가 없는 것들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반면 다른 독자들은 그 세 가지를 신앙의 좋은 본보기와 도전거리로 여기며 에드워즈의 모습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집중 할 것이다. 부디 후자가 더 많길 바란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짧은 인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안타까움이 든다.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얼마나 더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사람을 그분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만큼만 쓰시고 당신의 품으로 데려 가시기에 그의 빈자리는 단지 인간적인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쨌든 에드워즈와 같은 영적 거인이 한국에서도 탄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에드워즈를 본받아 신앙적으로 더 성숙하길 바란다. 한국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에드워즈가 보여 준 노력과 같이 그리스도를 조금 더 온전히 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과 그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고, 그분의 기쁨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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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열심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조나단 에드워즈 외 지음, 백금산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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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최고의 설교자이며 신학자인 조나단 에드워즈. 위대한 영적 거장인 그는 많은 설교와 여러 저서를 통해 깊은 통찰을 전해 주었다. 뛰어난 철학적 사유와 명료한 신학적 해석을 바탕으로 신앙의 올바른 방향과 방법을 많은 이들에게 제시해 주었다. 하지만 에드워즈의 노고와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그는 국내에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다. 18세기 미국의 1차 대각성 운동의 중심에 있었고, 18세기를 넘어 교회사 최고의 신학자로 꼽히는 그의 공로를 많은 이들이 잘 알지 못하고, 그로부터 유익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이 책은 앞서 간략히 소개한 에드워즈의 명저인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과 이에 대한, 21세기의 뛰어난 목회자이며 신학자인 존 파이퍼의 해설을 담고 있다. 한 권 속 두 권의 책인 본서를 통해 현대의 우리는 고전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먼저, 제 1권인 존 파이어의'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에는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이 요약되어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에 대한 존 파이퍼의 가이드라인이 담겨 있다. 제 1권을 통해 우리는 에드워즈의 열정을 맛볼 수 있다. 에드워즈로부터 신앙에 대한 열심을 배우며 도전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을 읽기에 앞서 그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여기까지는 지도라고 할 수 있고, 그 다음 제 2권은 본격적인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1권을 통해 여행에 대한 준비를 충실히 했다면 이제 제 2권을 통해 여행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이유이자 중심인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목적'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1부는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에 대한 이성적 관찰'을, 2부는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에 대한 성경적 고찰'을 다룬다.
 1부에서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을 이성적으로, 철학적으로 관찰한다. 이 부분을 통해 인간의 이성적 사유의 꽃을 감상할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이성(비록 타락한 이성이지만)의 탁월함과 정연함을 깊이 음미할 수 있다. 문제는, 내용이 어렵다. 이성을 철저히 사용하기 때문에 내용을 단번에 따라잡기 힘들다. 따라서 최대한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아무튼 1부를 통해 독자는 에드워즈가 제시하는 논증을 따라가며 천지창조의 목적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천지를 왜 창조하셨는지 에드워즈와 함께 이성을 최대한, 충분히 사용하여 더 이상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넓게 알고,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에드워즈가 제시한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 자신을 목적'으로 하기 위해,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행복, 그분 자신의 기쁨'을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2부에서는 성경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을 살핀다. 이 부분에서는 다양한 성경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을 알아보고 있기 때문에 내용이 어렵지 않다. 에드워즈는 성경 본문을 통해서 천지창조의 목적은 또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을 말한다.

 본서를 통해 독자는 천지창조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단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간을 비롯한 세상 모든 것이 창조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불합리 하게 보일 것이다. 인간과 천지는 단지 소품과 놀이감이 아닌가라는 모욕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드워즈가 제시하는 천지창조의 목적을 이성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적으로 제대로 알고 충분히 이해한다면 천지창조는 도리어 인간의 기쁨이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천지창조의 목적은 물론 인간이 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즐거워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듣기로 어느 분은 이 책을 일곱 번 읽었다 하고, 아홉 번 읽었다는 분도 있다. 이 책이 얼마나 탁월하고, 가치가 있는지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사실이다. 본인은 이제야 한 번 읽었으니 갈 길이 멀다.
 이 책은 본인에게는 어려운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 어렵다는 것은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많은 유익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큰 기대를 하며 본인 또한 이 책을 평생 품에 품고 다독을 하기로 다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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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 조나단 에드워즈 박사학위 논문 시리즈 1
이상웅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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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반, 오순절 운동을 시작으로 은사주의 운동, 그리고 제 3의 물결 등의 성령 운동이 연이어 일어났다. 이들 운동으로 성도들의 관심은 성령님께 모아졌다. 성령 운동들 덕분에 이전까지 간헐적으로 진행되던 성령님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성령님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교회는 성령님에 대한 축적된 지식이 성부와 성자 하나님에 비해 적었다. 교회사적으로 성령님에 대한 연구가 이제 막 본격적으로 시작 된 까닭에 학자들 간에 이견이 발생하였다. 더 큰 문제는 성도들이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불균형적 접근을 하였다는데 있다. 성도들은 성령님에 대한 지식과 체험, 이 양자에 균형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거의 대부분 체험에만 집중 하였다. 성령님에 대한 부족한 지식을 체험으로 벌충하였다. 그러다 보니 비성경적이고 불건전하며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적으로 연출 되었다. 이것은 비단 미국 교회만의 사정이 아니라 한국 교회도 동일하게 겪고 있는,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문제이다.
 한국 교회에 만연되어 있는 영적 혼돈에 바른 길을 제시 해줄 건전한 성령론을 찾을 수 있을까? 당면한 영적 혼란을 수습해 줄 수 있는 성령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분의 사역에 대한 바른 지식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 ' 

  이 책은 18세기, 아니 교회의 2천년 역사상 최고의 신학자이며 설교자이자 영적 거인이라고 할 수 있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을 연구한 논문이다. 책에 대한 평에 앞서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는 게 좋을 듯하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18세기 미국의 1차 영적 대각성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그 중심에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생생히 목격했고, 스스로 깊이 체험했다. 에드워즈는 성령님에 대한 깊은 체험만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최고이자 최후의 청교도 신학자로서 체험을 올바로 평가하고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어 줄 성령님에 관한 넓고도 깊은 성경적이며 신학적인 지식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생생한 체험과 그것을 진리의 빛으로 균형 있게 해석한, 누구보다 바르고 뛰어난 신학자이며 목회자였다. 에드워즈는 누구보다 균형 잡힌 성령론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에드워즈를 연구하고, 그의 가르침을 전해 받는 것은 현재 혼돈에 빠져있는 우리에게 매우 시의적절하며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본서는 저자인 이상웅 목사의 박사 논문을 다듬은 단행본이다. 세계적으로 에드워즈에 관한 박사 논문이 많지만 그의 성령론에 관한 논문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국내에는 전무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국내외를 통틀어 몇 안 되는, 그리고 국내에는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에드워즈의 성령론에 관한 연구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에드워즈는 조직신학 책이나 성령론에 관한 저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은 명명백백하게 그 가치를 스스로 입증한다.
 본서는 논문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다소 딱딱하다. 대신 체계적이고, 조직적이기에 여러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단점이 있지만 장점을 충분히 살려 읽는다면 이 책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 책의 본문은 크게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먼저 1장에서는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야기한다. 에드워즈의 중요성을, 국내외 연구 성과 및 현황 제시를 통해 알린다. 그리고 에드워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사를 정리하고, 본서의 주제 및 방향 등을 제시한다.
 2장에서는 에드워즈의 성령론의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본다. 한 사람의 연구 업적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성장 배경과 시대의 역사적 상황에 기인한다. 따라서 2장에서는 에드워즈의 성령론을 살펴보기 위해 그것의 배경이 된 그의 개인적인 성장 배경을 정리하는 동시에 공적인 배경인 목회 현장에서의 체험 등을 정리한다. 에드워즈의 개인적인 회심과 18세기 1차 영적 대각성 운동의 중심에서의 목회 경험을 위주로 살펴봄으로 그런 경험들이 그의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본다.
 3장에서부터 책의 목적에 부합하는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다. 본 장에서는 에드워즈의 삼위일체론을 다룬다. 에드워즈가 기독교의 근본 교리인 삼위일체론을 어떻게 변증하였는지 그의 여러 자료를 통해 살펴본다. 이 책의 저자는 에드워즈의 삼위일체론이 "본체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논증을 전개"한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에드워즈의 삼위일체론은 '일신론'이거나 '삼신론'이라는 등 그의 성령의 위격성에 대한 논증이 의심을 받곤 했지만 저자는 에드워즈의 삼위일체론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 표현된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 세 분의 위격성에 대해 정통적으로 변호하였다고" 말한다.
 4장에서는 에드워즈의 구속사적 성령론을 분석한다. 비록 에드워즈는 '구속 사역의 역사'를 책으로 남기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의 "설교 원고와 그 후에 저술을 위한 예비 작업을 담은 노트들로부터 구성된 구속 사역의 역사를 대본으로 읽을 수 있다."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4장에서는 구약에서의 성령의 사역을 에드워즈가 나눈 여섯 시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즉, '에노스 시대에 처음으로 성령을 두드러지게 부어주심', '광야 2세대에게 성령의 부어주심', '사사시대와 사무엘 시대', '다윗의 시대', '분열왕국시대', '바벨론 포로후기', 이렇게 에드워즈가 여섯 시대로 나눈 "시대 구분을 따라 가면서 각 시대마다 성령의 사역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그리고 독특성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그 외에 예수님의 사역에서 나타난 성령님, 그리고 구속사의 제 3시기라 할 수 있는 오순절 강림 이후부터 교회사, 천년왕국시대(에드워즈는 후천년설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에 유의) 및 재림과 심판, 천국까지의 시기에 나타나는 성령님의 사역을 살펴본다.
 5장에서는 구원론을 중심으로 성령의 사역을 살펴본다. 먼저 철저하게 칼빈주의적인, 구원의 시작과 과정과 완성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라는 에드워즈의 구원론을 살펴본 후 회심과 중생, 믿음과 칭의, 성화와 영화로 이어지는 구원의 과정을 통해 에드워즈가 분석한 성령의 사역을 정리한다. 에드워즈의 구원론에서 한 가지 특징은 개혁주의 입장에 충실했다는 것 외에 회심, 중생, 회개, 부르심을 동의어로 사용 했다는 점이다.
 6장은 개인적으로 본서에서 가장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 된다. 왜냐하면 몇 년 전 2007년을 앞두고 1907년 평양 대부흥의 재촉발을 수많은 교회가 크게 염원 했고, 한국 교회는 부흥회를 아직도 여는 등 부흥에 대한 열망이 다른 나라 교회와 남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교회는 제 3의 물결을 넘어 '수도원적 관상신학' 등의 영성 운동을 통해 개인 신앙의 부흥 무척 갈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본질에서 점점 멀어지고, 잘못된 부흥관을 바탕으로 엉터리 부흥을 바라는 게 우리의 현주소이기에 누구보다 건전한 부흥관을 제시해주는 에드워즈의 부흥론, 본 장을 반드시 집중하여 봐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본 장에서는 에드워즈가 제시한, 참된 부흥의 분별 기준과 참된 부흥에 대하여 취하여야 할 바른 자세와 위험한 반응, 그리고 부흥을 촉진시키기 위해 피하고, 부흥을 진작시키기 위해 해야 할 일 등의 건전한 부흥관을 요약 분석한다.
 마지막 7장은 결론으로 앞선 논의들을 정리하고, 에드워즈의 성령론의 한국 교회에 기여 가능성, 그리고 본서의 한계와 남은 과제 등을 제시한다. 

 독자로서 이 책을 평가한다면 유익이 많은 책이라 하고 싶다. 본서의 목적과 논의의 방향 상 제한적인 면이 있지만 에드워즈의 삶을 약술한 2장을 통해 신앙에 도전과 자극을 받을 수 있다. 그의 삼위일체론을 통해 삼위 하나님의 위격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성령님께서 구약과 신약 시대 및 오늘날의 역사 과정을 가운데서 어떠한 사역을 하시는지 등을 살펴봄으로 지난 역사의 연장선과 도래 할 정점의 중간에 있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개인 구원의 시작과 과정과 완성의 서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그토록 열망 했고, 이제는 각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열망하고 있는 신앙 부흥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얻어 한국 교회에 유행하고 있는 잘못된 영적 기류를 바로 잡을 수 있다.
 본서는 이렇게 장점이 많지만 아쉬운 점 또한 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에드워즈의 성령님과 그분의 사역에 대한 직접적인 분석과 언급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분은 어떠한 분이신지, 그분은 어떠한 사역을 하시는지 등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각 장의 제목에는 '성령'이라는 단어가 삽입되어 있긴 하지만 실제 내용에는 에드워즈의 성령론에 대한 직접적이며 실제적인 연구는 없고, 대신 성령님의 사역과 관련이 있는 내용들만 담겨 있다. 본서는 제목과 달리 개혁주의 성령론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존 오웬의 성령론과 아브라함 카이퍼의 성령론과 같은, 에드워즈의 성령님과 그분의 사역에 대한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분석과 깊은 연구가 담겨있지 않다. 물론 이것은 앞서 에드워즈가 조직신학서나 성령론과 관련된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는 데 연유한다. 에드워즈의 성령론을 살펴보려면 그의 설교와 다른 저서들에 녹아 있는 성령님에 관한 자료들을 끌어 모아야 한다. 문제는 그러한 과정은 방대한 작업이 될 수도 있다. 본래 원했던 바에 가장 가까운 결과물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시간과 자료를 탐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다른 성령론에 관한 책들과 같은 체계적인 자료를 기대하기 힘들다. 겨우 얻을까 말까 하다. 이러한 분리한 조건을 생각한다면 이 책의 장점이 어느 정도 이해 된다. 또 다른 단점으로는 저자의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이것은 저자 본인도 고백하는 부분이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기에 앞서의 단점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일 것이다.
 어쨌든 본서를 통해 에드워즈가 이해한 성령님과 그분의 사역에 대한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 책 속에 담긴 내용들을 통해 오늘날 한국 교회가 처한 영적 상황의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단초를 얻을 수 있다. 비록 몇 가지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러한 아쉬움은 장점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에드워즈의 객관적이며 주관적인, 지식적이며 체험적인, 이처럼 균형 잡힌 그의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디 현장에 전해져서 긴급한 영적 필요들이 채워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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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신학의 특성들 - 간결하게 풀어 쓴 개혁주의 신학
신복윤 지음 / 합신대학원출판부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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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한국 교회가 말이 아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무척 불안해 보인다. 외부에서는 이단이 계속적으로 교회를 흔들어 놓고 있다. 교회는 이단들의 강력한 도전을 지속적으로, 점점 더 거세게 받고 있다. 교회 내부에서는 각양 미혹이 판을 치고 있다. 거짓된 진리와 잘못된 경건이 성도들을 바른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 만인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가장 거룩해야 할 목사들의 일부가 누구보다 타락하여 대내외적으로 파란을 일으키며 앞장서서 교회를 더럽히고 있다. 한국 교회는 현재 총체적 난국과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위기와 어려움의 때를 이겨내고, 벗어나려면 교회는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까? 당연히 거룩을 회복해야 한다. 목사들은 물론 성도들의 삶이 거룩해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성령님의 은사로 교회를 온전히 섬기는 한편 성령의 열매를 자신의 모습과 그 삶에서 맺을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진정한 신학을 되찾아야 한다. 바른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거룩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적인, 바른 앎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교회는 지금 신학, 교리의 부재에 빠져있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따르는지는 대충 알고 있으나 어떻게 믿고,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는 전혀 모른다. 그래서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 이러한 무지와 오류로부터 벗어나려면 바른 신학을 교회의 주춧돌로 심어야 한다. 그렇다면 바른 신학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성경을 바로 해석하고, 그 가르침을 성도들에게 온전히 전하며 성도들로 하여금 성경을 따라 흠 없이 살게 하는 신학일 것이다. 과연 그러한 신학이 있을까? 본인은 그것을 감히 개혁주의 신학이라 말하고 싶다.

 ’개혁주의 신학의 특성들’

 본서는 개혁주의 신학의 특성들을 가르치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 다시 말해서 칼빈주의 신학의 대표적 특성은 보통 칼빈주의 5대 교리(TULIP)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교리라는 한정된 부분에서의 특성일 뿐 그 신학 전체를 드러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칼빈주의 신학,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개혁주의 신학의 전체적인 특성들을 정리 한다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 본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개혁주의 신학의 특성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들고 있다. 성경의 권위, 하나님의 주권, 구원의 전적 은혜성, 성례, 교회의 의회 정치. 이러한 특성들은 가히 개혁주의 신학의 대표라고 할 만하다. 그러면 각각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성경의 권위. 이것은 근본주의자들을 통해 오용되고, 세대주의자들에 의해 남용되며 자유주의자들에게 거부되는 특성이다. 성경은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유기적 영감으로 각 저자들을 통해 씌어졌다. 이것은 66권 중 어느 한 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66권 전 권에 해당하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경은 어떠한 오류도 없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분은 이신론자들의 주장과 같이 단지 창조만 하시고 당신의 피조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계신 분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와 의, 그리고 인간의 운명과 자연의 법칙" 등으로 자신의 창조물, 피조물을 다스리신다. 그분은 "모든 영역과 모든 관계에서 당신의 통치권을 행사"하신다. 그러한 통치권을 바탕으로 한 작정과 섭리로 피조물들을 이끄시고, 특히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셨고, 구원으로 이끄신다.
 인간의 구원은 성부 하나님의 단독 사역이 아니다. 그것은 성부 하나님의 계획과 성자 하나님의 십자가에 달리심과 부활,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확증(엡 1:3~14)이라는 성삼위 하나님의 공동 사역이자 합작품이다. 택자들은 자신의 어떠한 노력도 없이 삼위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사역으로 속죄를 받았다. 그리고 영원한 아들 됨을 보장 받았다.
 거룩한 예식인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이 성례는 말씀과 더불어 그리스도를 깊게 체험 할 수 있는 은혜의 방편이다. 중생한 성도들은 세례와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약속을 보증 받는다. 거듭난 성도들은 성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혜택과 은혜를 체험하고, 적용 받는다.
 개혁파는 대의 정치라는 장로교 고유의, 그러나 성경에 근거한 정치 형태를 갖고 있다. 이 정치 체제는 "신자들이 선거한 모든 직원들은 권위에서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이 정체는 치리 장로를 대표자로 선택하여 그들과 목사가 함께 대의 정치를 행하게 한다." 이러한 정치 체제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정치 조직을 통하여 순종의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셨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한다. 또한 "신학은 그것이 표현하는 형식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교회의 성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서 교회는 "존재 자체를 위해서 교회 생활의 규칙"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사실들에 연유하여 개혁파 정체는 중요성을 갖는다.

 한국의 개혁주의 신학은 교회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국내에 들어온 선교사 중 많은 이들이 장로교에 속해 있었다. 그들을 통해 전파된 개혁주의 신학은 장로교회의 토양이 된다. 그렇게 교회의 밑거름이 된 개혁주의 신학은 20세기 초 중반에 첫 위기를 맞이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도전과 신사참배의 강요로 교회는 무너진다. 역사적 상황 속에서 개혁주의 신학은 교회의 분열이라는 뼈아픈 시련을 막지 못했다. 이후 개혁주의 신학은 해방과 6.25 전란, 그리고 경제 성장 등 여러 차례의 극적인 상황에서 명맥을 잘 유지한다. 하지만 70~80년 대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잘못된 경건주의와 신비주의, 그리고 세대주의 및 자유주의 신학 등의 계속 되는 공격과 교회의 분열로 성장에 제동이 걸린다. 그 도전과 위기를 방어하는데 온 집중을 쏟은 까닭에 개혁주의 신학은 지속적인 발전을 하지 못한다. 여기에 한국 개혁주의 신학의 과제가 담겨 있다.
 바른 신학이 사라지고, 다른 신학과 잘못된 신학이 교회를 장악하여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는 지금. 개혁주의 신학이 바른 대안과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본인은 감히 그렇다고 확언한다. 물론 개혁주의 신학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일한 대안은 오직 성경이고, 가장 바른 대안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해석과 가르침이 각각 다르고, 매우 혼탁한 작금의 현실에서 개혁주의 신학은 가장 성경적이고, 따라서 가장 바른 길이라 확신한다.
 개혁주의 신학이 바른 대안이라고 확신하는 까닭은, 그것은 초대 교회와 교부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 및 청교도들로 이어지는 정통신학, 성경에 대한 바른 초점과 해석 및 적용의 맥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신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한다고 하여 다 바른 것은 아니다. 개혁주의자들 중에도 개혁주의 신학을 하지 않거나 혹은 잘못되거나 편향된 개혁주의 신학을 하는 이들이 있다. 어쨌든 균형 잡힌, 그리고 정통에 갇히지 않고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힘쓰는, 바꿔 말해서 늘 개혁에 힘쓰는 온전한 개혁주의 신학에 국한하여 이것이야 말로 현재 한국 교회에 최선의 대안, 유일한 희망이라 확신하며 개혁주의 신학이 빛과 소망을 잃은 한국 교회에 진리의 밝은 빛을 다시금 비춰주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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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자의 생활
김홍전 지음 / 성약출판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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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거듭남, 다시 말해서 중생 혹은 신생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중요한 표지이다. 중생은 불신자에서 신자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이것은 집을 나간 탕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품에 안겼다는 것을 뜻한다.

 ’중생자의 생활’

 이 책은 고(故) 김홍전 목사의 강설을 담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총 10개의 강설을 통해 독자는 중생자의 상태와 중생에 대한 여러 정보 및 사실 등을 얻을 수 있다. 1강에서 4강장까지는 중상 전의 상태와 중생 후의 생활 등을 알려준다. 그리고 나머지 5강부터 10강까지는 중생자의 구체적인 생활 방법 등을 가르친다.
 중생이란 무엇인가? 중생과 관련하여 김홍전 목사의 말을 들어보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지만 사람은 범죄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한 자가 당연히 받을 죄의 형벌이 있고, 죄로 말미암은 우리의 본질상 타락의 상태가 있습니다(15-16p)."

 사람은 하나님께 지음 받은 존재이지만 그분께 범죄하여 타락하고, 벌을 받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속죄하셨다는 사실은 첫째, 죄로 말미암아 받을 형별의 값을 대신 치르심으로 우리는 형벌에서 제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 둘째는 나에게 자유를 얻게 하셨다는 사실인데, ...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범죄의 결과만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30P)."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속죄로 형벌을 면제 받고, 새생명을 얻게 되었다. 한 마디로 중생은 죄사함 받고, 새생명을 얻은 것을 뜻한다. 하지만 중생자라 하더라도 여전히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흐려 놓는다. 따라서 중생자는 말로만 중생했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중생의 중요성을 깨닫고, 중생한 자의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속죄가 헛되지 않도록 중생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과 도리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성령을 더욱 붙들어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자극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 범죄한 인간은 그분의 크신 은혜와 그리스도의 극적인 대속으로 죄를 사함 받았다. 마침내 새생명을 얻게 된 택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특권, 다시 말해서 중생은 또 다른 말로 성령님을 날마다 의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생은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거기에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것(39p)" 을 통해 드러난다. 결국 중생자의 삶은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주님만 부여잡고, 자기는 전적으로 무능한 것을 알고 나아가는 생활(55P)"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삶이다. 이러한 중생자의 삶을 통해 택자들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한편, 성령님의 도움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마땅히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분께 세세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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