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제사음식은 주로 내가 먹는다. 냉장고에서 꺼낸 그대로 밥의 온기에 녹여가면서, 혹은 나물만 따로 꺼내 비빔밥을만들어 먹기도 한다. 보통은 제사가 끝나면 의뢰인 가족이 드실 수 있게 잘 담아두고 나오지만, 전날처럼 제사음식을 못먹는 종교인 고객의 경우는 별수없다. 의외로 자주 음식이 남는지라 기부할 만한 곳을 여기저기 알아보기도 했는데 시설에 기부하기에는 양이 애매하다고 하고, 남의 집 제사음식이라며 꺼림칙해하는 경우도 많아 그냥 속 편히 내가 처리하는것으로 정했다. 아무렴 멀쩡한 음식인데 버리는 것보다는 낫고 말고. 예전에는 제사상에 올라가는 밥과 찬이 예사 음식보다 나아서 제삿날이 모처럼 좋은 걸 먹는 날이었다고도 하는데. 제사 때문에 마련한 좋은 음식을 이웃과 나누는 것 역시 자연스러웠을 테니, 제사는 일종의 잔치 같은 역할도 하지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제사음식을 꾸역꾸역 처리한다. - P15
성냥을 지그시 눌러 불을 옮긴다. 불이 옮겨붙으면 상체만 돌려 성냥을 끄고 자세를 고쳐 술병을 기울인다. 투명한 술 줄기가 표표히 날아오르는 연기와 교차하여 아래로 떨어진다.어쩌면 그 엇갈림이 삶과 삶 너머의 것들이 어떻게 갈라지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같다. 무게를 가진 것은 아래로 무게를잃은 것은 가볍게, 가볍게 위로. - P9
이 책을 추천 받고, 읽기 시작했을 때
하루에 한 챕터씩 숙제처럼 읽었다.
식물을 좋아하고
나무를 사랑하고
숲에 가서 산책하기를 즐겨하지만
항상 나(인간) 중심이었다.
이렇게 온전히 나무 중심인 글은 처음 읽었다.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이
몇 백 년을 살아가는 나무 앞에서 겸손해진다.
그리고 나무의 존엄에 대해 생각한다.
작가의 바람처럼 나무의 언어가 해독 되는 기적을 바라본다.
20230325
숲은 우리 집 대문 앞에 남은 마지막 자연이다. 아직 모험을 경험할 수 있고 비밀을 밝혀낼 수 있는 그런 자연이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어느 날 정말로 나무의 언어가 해독되어믿기 힘든 놀라운 이야기들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질지. 그때까지는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도 좋다. 아마도 당신의 상상이 현실과 그리 멀지 않을 테니. - P299
그럼 안전은? 몇 달에 한 번꼴로 고령의 나무가 저지르는 사건 사고가 뉴스를 장식한다. 산책길을, 오두막을, 주차해 둔 자동차를 덮친 부러진 가지와 나무줄기... 분명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인공 삼림의 위험성은 그보다 훨씬 더 높다. 폭풍 피해의 90퍼센트 이상이 불안한 농장에서 자라는 침엽수의 몫이다. 풍속이 시속 100킬로미터만 돼도 못 견디고 쓰러진다. 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오래된 활엽수 숲이그런 태풍의 해를 입었다는 소리를 나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없다. 그러니 내가 외칠 수 있는 구호는 이것뿐이다. 조금만 더용기를 내어 야생으로 돌아가자! - P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