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미소 자리에 걸려온 전화를 대신 받아준 것 113번,
엄미소 담당 주문건을 대신 발주처리한 것 31건, 대신반품 처리해준 것 58건, 입구가 다 벌어진 발송 물품 봉투를 대신 다시 봉합해준 것 12건, 공동 담당자인데 회의에 나 혼자만 참석하고는 그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일 4건, 난로를 대신 꺼준 일 2건, 지각이 표가나지 않도록 자리에 내 가방을 대신 놓아준 일 1건.......
이것들을 사소한 일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마음속에서는 아니었다. 너무 무거워 바람의 길에서조차 날아오르지 못할 만큼 묵직한 짐덩이들이었다. 그러고도 엄미소는 저렇게 아침부터 테이블에 앉아 빵을 먹어대는 것이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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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등생의 자리에서 세계를 바라보던 승주는 버들치의 자리에서 세계를 바라볼 수도 있게 되었다.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승주. 위기가 없진않았지만 승주에게는 위기를 극복할 또 다른 무기들이있었던 덕분에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조현웅의 호의도 큰 몫을 해주었고...) 무사히 두 세계를 넘나들 수있게 되었다. 겪어왔던 바와는 영 딴판인 세계가 자신을덮쳐올 때, 또 다른 무기를 갖추지 못했거나 무기를 제때 뽑아 들지 못한 사람은 원래 머물던 세계의 기반마저도 한순간에 위태로워지기 일쑤였지만 승주는 달랐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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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씨는 승주가 회사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말을 터놓는 동료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미소 씨는 질문하는사람이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도 하루를 보낼 수 있구나 싶을 때쯤 미소 씨의 물음표가 날아들면 승주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들까지 내뱉게 되었다. 얼기설기 쌓아올린 참호가 속절없이 허물어져 결코 남들에게 내보이지 않겠다 여겼던 비밀들까지 쏟아내고 말았다. 물론누군가와 끊이지 않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좋은일이다. 회사 동료와의 대화라면 더욱 그러하다. 나지금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기분을 들게한다. 그러나 승주는 의지와 상관없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바닥을 구르는 비밀들을 바라보기가 어려워졌다. 게다가 미소 씨에게서 이상한 번쩍임을 목격한 뒤부터는더욱......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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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빠의 슬픔은? 아빠는 자신의 슬픔을 아주큰 것처럼 다루었다. 슬픔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은 나와 같았지만 그것이 작고 시시하기 때문이 아니라행성만큼 거대해서 스스로도 그 주위를 거닐며 실체를파악중이기 때문에 말을 아끼는 것이었다. 아빠를 한번이라도 만나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빠가 슬픔주위를 맴맴 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빠 지금괜찮나요? 이런 말로는 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돌멩이조차 주워 올릴 수 없을 테니 나도 질문을 아꼈다. 아빠의triste는 enojado로 솟구치는 법도 몰라서 늘 고요했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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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멧돼지들이 그럼 그렇지 텃발 야채들 죄다 먹어치우려나봐, 할머니 일어나! 깨우려는데 할머니는 새미의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받고 싶은게 있으면 그 마땅한 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들을 모두 떠맡아 하는 바보가 아니라 누구보다 뛰어난 어른 같았다. 이게 어른들의 대화구나, 원하는 것을 분명히 말하지 않아도 서로넌지시 통하는 대화법이다. 값을 치르고 그 대가를 받고. 새미는 왠지 풀이 죽어 가슴팍에 놓인 할머니 손을치우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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