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형의 삶 (양장) - 김민철 파리 산문집
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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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항공사 직원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엔 안도감부터 지나갔다. 다행이었다. 오래 걸려야만 했다. 쉽게 도착할 수 없어야만 했다. 쉽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파리는 내게 그런 곳이었다. 쉽게라니. 짧은 시간에 쉽게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면, 파리에 가지 못해 그토록 오래 방황했던 시간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22년을 그리워하다 가는 곳이라면, 그에 합당한 시간을 써야만 했다. 티켓에는 ‘PARIS‘라는 지명이 무심하게 적혀 있었다. 이 무심한 도시를 나는 실향민처럼 오래도록그리워하고, 방금 실연당한 사람처럼 애틋하게 기억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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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형의 삶 (양장) - 김민철 파리 산문집
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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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20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파리로 두 달여행을 떠났다.‘ 이 문장 뒤에 이어질 문장은 무엇일까? 나는오래도록 궁금했다. 두 달의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나는, ‘그토록 원하던 무정형의 삶에 도착했다‘라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이 문장을 쓰기까지 참으로 오래걸렸다. 간절히 쓰고 싶었던 그 문장을 이제야 쓴다.
우선은, 떠나보자.
나의 오래된 꿈속으로.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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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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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이 언니가 세상을 떠난 건 10년 전이었다. 집안 내력인지는 모르나랑이 언니도 폐암이었다.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베토벤과 살던 집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롤라행 유심을 가지고 병문안을 갔다. 원한다면 기꺼이 건네줄 생각이었다. 랑이 언니는 거절했다. 자신에게 그런 요망한 물건을 떠넘기지 말라고 했다.
"자기야, 삶이 소중한 건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이야."
내가 잠자코 바라보자 랑이 언니는 깔깔 웃어댔다.
"뭘 또 그렇게 존경스럽게 봐? 내 생각이 아니라 카프카가 한 말인데." - P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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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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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석되는 말이었다. 누군가를 다시 만나고자 롤라에 왔으나, 누군가가 오히려 고통이 되었다. 해석이 맞다면, 그도 나처럼 누군가를 가뒀을 것이다. 대신 시끄럽지만 감정을 견딜 만한 공달과 살아왔을 테고. 내가 매번 제이 대신 여우를 불러내는 것처럼. 억겁을살아도, 모든 것이 가능한 천국에서 살아간다 해도 인간은 달라지지않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안의 고통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감정적 존재였다. -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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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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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등의 통증은 등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내 의견을 베토벤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일흔두 살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문제가 있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얘기 같았다.
"알고 받아들이기와 모르고 지나치기는 다르지 않겠어요?"
베토벤은 코웃음으로 내 말을 받았다.
"넌 네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 다 알고 싶냐? 나는 모르고 싶다."
가만히 생각해봤다. 나도 모르고 싶을 것 같았다. 다 안다면 과연열렬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열렬하게 산다는 건 내가 인생을 존중하는 방식이었다. 그 존중마저 없었다면 나는 험상궂은 내 삶을 진즉에포기했을 터였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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