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항공사 직원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엔 안도감부터 지나갔다. 다행이었다. 오래 걸려야만 했다. 쉽게 도착할 수 없어야만 했다. 쉽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파리는 내게 그런 곳이었다. 쉽게라니. 짧은 시간에 쉽게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면, 파리에 가지 못해 그토록 오래 방황했던 시간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22년을 그리워하다 가는 곳이라면, 그에 합당한 시간을 써야만 했다. 티켓에는 ‘PARIS‘라는 지명이 무심하게 적혀 있었다. 이 무심한 도시를 나는 실향민처럼 오래도록그리워하고, 방금 실연당한 사람처럼 애틋하게 기억했다. - P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