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김수현 지음 / 놀(다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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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이쪽이 일방적으로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
사람과의 교제에서는 모르는 척 거짓 둔감이 필요하다.
말은 가능한 한 호의적으로 해석해야 하며,
상대를 소중한 사람인 양 대하되마치 상대보다 둔한 감각을 가진 듯이이것이 사교의 요령이며, 사람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다.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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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100만 부 기념 클래식 에디션)
김수현 지음 / 마음의숲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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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관계 속에서 질식할 것 같으면서도 고독한 낱개의 개인들만 남은 것.
개인주의가 뿌리내린 서구사회보다도 공동체가 훨씬 빈약하다는 것이다.
그 의미는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있는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타인의 시선에 맞춰 행동하지만,
그 시선에 어떤 신뢰나 유대는 없다는 뜻이다.
그 사실이 우리를 힘겹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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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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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한다는 것. 자신의 발로 선다는 것.
그것은 힘들지만, 누구나 동경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무슨 일이 생겨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내 힘으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자유고, 그것이야말로 멋있는 일이다.
자립이란 결국 내 힘으로 먹고 사는 일이다.
그리고 그 힘은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다.
그 힘을 내버려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모두 요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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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일기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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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여러 번 느꼈지만 영어를 전혀 못 하면 인생의 범위는 60억분의 5천만, 즉 120분의 1로 줄어든다. 달리 말해 전 세계의 범위가1이라면, 인생을 살며 분노를 느끼는, 좌절을 겪든, 정부에 불만이쌓이든, 혹은 주머니에 돈이 쌓이든 간에 상관없이, 그저 120분의1의 세계에만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영어를 그럭저럭 구사하면 자신이 머무를 수 있는 세계의 범위는 2분의 1로 확장된다. 스페인어까지 하면 5분의 3, 그 외 불어, 독어, 이태리어까지 하면 자기 세계의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는 셈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은 고단한이방인의 삶이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애석하지만 이것이 현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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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작가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많이들 있겠지만 왠지 내게는 폴 오스터와 황정은이 떠오른다. 


어디서였던가 어느 미국 작가가 말했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폴 오스터의 팬인데 정작 폴 오스터의 작품 판매 부수는 아주 적다고. 이 말을 듣는? 읽는?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순간 떠오르는 작가가 있었다. 바로 황정은. 황정은이 폴 오스터보다는 자국에서 대중성을 더 많이 획득한 것 같긴 하지만 전문가(?)들에게 더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다는 면에서 이 둘은 매우 비슷하다. 


폴 오스터는 내 친구들도 광팬이 많아서 나도 한글번역본으로 많이 시도해 보았지만 좀처럼 친구들이 왜 열광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의 원서를 읽고 나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그의 요설체는 번역으로는 다 읽히지 않았던 듯 하다. 적어도 내게는. 내 친구들은 번역본만으로도 그의 매력에 빠질 수 있는 극 감수성을 가졌지만, 나는 폴 오스터의 그 길고 긴 아름다운 영어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장에 몽환적으로 빨려들어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야기는 어느새 끝나있고, 멍하니 작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최근작들이 좀 많이 바뀌어서 실망스러운 면도 있지만 아직도 나는 폴 오스터의 뉴욕 삼부작 표지만 봐도 설렌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폴 오스터 작품 판매 부수는 놀라울 정도로 적고 거의 모든 작가들의 작품이 다 비치되어 있는 미국 지역 도서관에도 그의 작품들이 비치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봤다. 비치되어 있더라도 작품 종류가 형편없었다. 오히려 한국의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폴 오스터 번역본의 종류가 더 많을 정도여서 충격이었다.  신간이 나와도 도서관에 비치가 되지 않았다. 정말 작가들의 작가라는 말이 실감나던 순간이었다. 마니아들은 많으나 대중성은 극히 떨어지는..


한편 황정은은 처음부터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애초에 한국문학에 이런 문체의 작품이 있었던가. 이렇게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작품이 있었던지 생각나지 않았다. 황정은의 작품은 처절하게 다 좋지만 그 중에서도 '계속해보겠습니다'가 가장 좋다. 첫 만남이어서 더 강렬했을 수도 있다. '백의 그림자'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황정은의 일련의 작품들이 개중의 사람들에게는 계속되는 비슷한 분위기의 변주로만 읽혀지는 것도 같다. 하지만 그 변주만으로도, 그 처절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그 아름다움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확실히 대중성은 황정은이 훨씬 높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도 꽤 오래 있었고.)


이러한 이유로 지인 몇에게 대화 도중 성심성의껏 황정은을 추천해 주었는데, 전공자는 열광했고 비전공자는 어려워했다. 그 순간 떠오르는 생각. 아..황정은이 비전공자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구나, 폴 오스터구나 싶었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황정은은 전공자인 내가 비전공자에게 추천받은 작가였다. 왠지 궤변같다...결국 전공자든 비전공자든 문학 마니아라면 문학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부분 황정은에게 열광한다는 것이다. 폴 오스터처럼. 


폴 오스터와 황정은을 떠올리면 괜히 웃음이 실실 나오면서 왠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행복한 순간이다. 멋진 작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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