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 작가의 소설은 믿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보장이 된다는 것. 하지만 최신 트렌드를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인공의 연령대가 다양하긴 하지만 스타일이 정통 순수 소설에 가깝다. 무엇이 정통이고 무엇이 순수냐 질문한다면 명확하게 답변하기는 곤란하지만,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하면 상상이 될까.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살짝 올드한 느낌일 수 있다는 뜻. 이 작품집은 작년에 한국 소설가들이 뽑은 2021년 최고의 한국소설이어서 읽게 되었다. 11개의 단편이 모여있는데 2편 정도는 읽었던 적이 있었고(2018 문학동네 수록작, '나의 할머니에게' 수록작) 나머지는 모두 새로운 작품이었다. 


처음 네다섯개의 작품들은 화자가 모두 노년에 접어든 여성이고 작품 분위기가 매우 우울해 그만 읽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모두 다 눈감아 버리고 싶은 노년의 우울, 외로움 등이 가감없이 노출이 되어 읽기 괴로웠다.


하지만 중반부 이후부터는 윤성희 작가 특유의 재담가적 성격이 작품 속에서 물씬 풍겨 나오면서 몰입감있게 이야기 세계로 빨려들 수 있었다. 가장 압권은 역시 '날마다 만우절'이 아니었을까. 작가는 작품집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사람들 마음에 뚫린 구멍을 들여다보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다정해지고 싶었다' 고 했다. 작가의 의도처럼 용기를 주고, 괜찮다고 말하고, 다정해지고, 덜 외로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삶에, 마음에 정말 많은 구멍이 있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는 것만은 뚜렷하게 알겠다. 신산스러운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면서도 미로와 같은 이야기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 맛이 달콤하거나 감미롭지는 않다.  

 반면에 '코스트 베니핏'이라는 책은 젊은 2,30대 작가들의 작품 모음집이다. 소위 최신 트렌드가 눈에 보이는 작품들. (제목 '코스트 베니핏'이 '가성비'라는데 딱 가성비가 떠오르지는 않는 표현이다. '베니핏'은 효율성과는 좀 어감이 다르기 때문인 듯하다.)  암튼 '가성비'로 번역된다는 이 작품집은 절친대행부터 공짜여행블로거(소위 블로거지), 결혼을 앞둔 부부, 2005년생 고등학생(비대면 수업으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한), 인공지능과 함께 생존하는 지구인 등을 주인공으로 하면서 우리의 현재와 근미래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두 작품집을 읽어나가면서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었다. 동시대에 쓰여지고, 소설이라는 같은 갈래의 글들인데 말이다. 소설이라는 것이 그리 효율적인 갈래는 아니라고들 하지만 분량 대비 내포하는 의미를 고려한다면 과연 그럴까 싶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축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윤성희 작가의 작품들은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충격적이었고(아직도 이런 솜씨를 발휘하는 작가가 있구나!), 노년의 신산스러움이 유독 눈에 띄었다. '코스트 베니핏'에서는 조영주 작가의 '절친대행'이 가장 충격적이었고(친구란 무엇이고, 친구대행을 어느 정도까지 이용하고 어느 정도까지 의존하면 되는 것일까, 그 조절이라는 것이 인간 관계에 있어서, 감정에 있어서 가능한 것일까 등등), 정명섭의 SF도 인공지능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면서 경쟁한다는 발상이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김의경의 '두리안의 맛'이나 이진의 '빈집 채우기'는 장류진 작가 이후에 그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 많아졌구나 싶었고,  '90년대 생이 온다'에서 따왔을 '2005년생이 온다'는 온클(온라인 클래스) 세대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이 주제로 코로나가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어떠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영향을 주었는지를 더 깊이있게 보여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과 극의 소설들을 읽어가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할 수 있어서 새롭고 재미있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을 맞으며(올해는 유독 비가 적고, 봄바람 치고는 서늘한 바람이 자주 부는, 전형적인 미국날씨) 멋진 책을 읽는 재미가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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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데 읽힌다.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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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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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접어든 여성들의 이야기.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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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문학도(?)나 문자광(?)에게는 영원한 화두이기도 하고, 현대인에게는 특히나 리터러시로 최근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대단한 화두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상상했던 이 책은 나의 기대를 보기 좋게 벗어났다. 그것도 아주 많이. 


'서발턴'이라는 개념을 이 책에서 처음 보았고(나는야 철학, 영미문학 문외한) 영미문학과 문학사, 철학, 역사 등등이 골고루 섞여 있어서 내가 얼마나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본다는 입장으로 다 읽었다. 결과는 회의적이지만. 하지만 다 읽고 나니 서발턴으로서의 영어인이 글로벌 영어를 대하는 방식의 미묘한 차이 등이 궁금해졌다. (이것이 최소한의 긍정적 효과?)스피박은 철학과 문학을 구별해야 한다는 요청이 있었다면서 거기에 '전 알지 못해요'라고 답을 했다고 한다. 스피박이 철학과 문학을 종횡무진해서 매우 난해한 편이라 그런 요청이 있었나 본데 역시나 친절하지 못하다. 본인은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스피박도 서발턴으로서(?) 뭔가 글로벌 영어와 인도 영어 간의 미묘한 관계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면 흥미롭겠다 싶었는데 나오려다 마는 느낌이었다. 구술 문화, 문자 문화의 이야기도 나오려다 말고. 그냥 철학과 문학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다는 느낌인데, 독자들을(이 책은 강연집이라니 그러면 청자들)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고려 대상에 들지 못했다고 떼를 쓸 수는 없겠지만 더 잘 이해해보고 싶었다.)


내가 상상하던 바로 그 '읽기'에 대한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은 바로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였다. 


한국인은 번역서를 추앙하는 경향이 있다.(스피박의 '읽기'도 마찬가지이겠다. 일반인이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싶지만, 전공자들에게서는 극도의 추앙을 받는 듯하다.) 하지만 한국인이 쓴, 양질의 인문학 책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아무리 번역을 잘 해도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의외로 크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는 한국 저자가 쓴 인문학 책 중 손꼽힐 만한, 정말 양질의 책인 듯 하다. 리터러시의 초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물론 문해력을 단시간에 키우려는 팁을 기대했다면 큰 실망을 할 테지만 말이다. 


'읽기'라는 주제가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두 극단의 사례를 두고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본다. 과연 '읽기'란 무엇인가. 어떠해야 하는가. 현대 사회에서 '읽기'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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