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이상의 책. 잘 쓰여진 청소년 소설이 웬만한 성인 소설보다 훨씬 더 멋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작품은 1939년에서 1943년 전쟁이 한창이었던 독일을 배경으로 하는, 힘겨운 시절을 책읽기로 버텨낸 소녀 리젤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을 그냥 유별나게 책을 좋아하는 소녀의 이야기로만 생각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13세 소녀의 눈에 비친, 전쟁으로 미쳐가는 세상의 모습도 정말 치밀하게 잘 나타나있고 소녀의 섬세한 감성도 살아있다. 양아버지 한스와의 정, 남자친구 루디와의 우정, 양아버지가 지하실에 2년간이나 숨겨준 유태인 맥스와의 우정 등등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 많다. 공교롭게도 '더 리더'와 시대적 배경이 같은데 '더 리더'에서는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평범한 독일 여성이 생계를 위해 기계적으로 나치에 협력하게 되는 상황을 그려 가해자도 결국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면, 이 작품은 양아버지 한스를 통해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페인트공에 불과한 독일 시민도 끝까지 양심을 지켜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한스는 자신이 많이 배우지 못해 글읽기를 잘 못하면서도 정말 자상하게 리젤에게 글을 가르쳐준다. 죽은 동생 꿈을 꾸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항상 밤에 아코디언을 연주해 주고 함께 책을 읽고 친아버지보다도 더한 사랑을 베푼다.) 주인공 리젤과 책과의 인연은 남다른데, 양부모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남동생이 죽고 난 이후에 책을 훔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폭격을 피해 방공호에서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 원수지간이었던 옆집 여자에게 귀한 커피 레이션을 받고 책을 읽어주는 일, 유태인 맥스가 만들어준 책, 양어머니의 세탁일로 알게된 시장 부인과의 인연 등등. 결국 그녀는 밤에 혼자 지하실에서 글을 쓰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폭격에도 유일하게 살아남게 된다. 양부모의 죽음 이후에는 시장 부인의 도움을 받고. 결국 책과의 인연으로 어려운 시간을 견디고 목숨까지 건질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 그녀는 책을 증오한다. 책이 없었다면 전쟁도 히틀러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 말이 의미심장하다.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서 한 인간은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우리의 근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 생각이 드는데 2차 대전 때의 독일도 엄청났다. 전쟁없는 시대에 사는 것은 큰 행운이라는 사실은 진부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