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국어로 읽었을 때랑 느낌이 거의 비슷하다. 모두 번역이 되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는 주인공들의 미세한 감정의 떨림을 잡아낸 '키친'. 하지만 역시나 그녀의 소설에는 가족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고, 돈 문제가 없다. 한마디로 현실감각이 없다는 건데 그래서 일본소설이 인기라니 그동안 우리에게 가족에 대한, 현실의 삶에 대한 강박관념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소설을 여러 번 읽다 보면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도 오락가락하게 되고, 전부 비슷비슷하게 느껴져 흥미를 잃게 된다. 그래서 평론가 강유정은 그녀의 첫 평론집 '오이디푸스의 숲'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오리나 바나나, 그리고 에이미(모두 내가 좋아했던 작가들이군.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질렸다.)는 실연(사랑하는 이의 죽음도 포함되겠지)이라는 것이 단지 개인의 우울한 기억이 아닌 누구나 있을 법한 인생의 흔적이라고 넌지시 가르쳐준다. 문제는 그들은 단지 사랑과 실연에 대해서만 가르쳐준다는 사실이다. 인생의 국면에 사랑이나 실연만 있지는 않을 테지만 그녀들은 끊임없이 실연과 불륜, 어긋난 사랑만을 탐색한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들의 소설에는 서사가 아닌 유사 반복적인 사건의 연속만이 있을 뿐이다. 이는 다른 말로 그녀들의 소설에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나 심오한 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그녀들이 구축한 쿨의 라이프 스타일은 삶의 실체가 아닌 포즈로 전락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