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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사의 멸종 -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ㅣ 한승태 노동에세이 3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24년 6월
평점 :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한승태 노동에세이 3
전국을 돌며 양돈장, 양계장, 꽃게잡이배 등에서의 노동 기록으로 유명한 한승태 작가가 이번엔 도시에서 얻을 수 있는 직업들을 경험하고 돌아왔다. 쓰기 위해 일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는데 엄연히 그는 살기 위해 노동하고 그것을 기록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지방이 아닌 도시라서 더 우리와 가까운 이야기로 읽혔다.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사라질 확률이 높은 직업들을 골라 경험했던 것 같다. 전화받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 쓰다 순으로 되어 있어서 콜센터, 물류센터, 부페주방, 빌딩에서 일한 경험을 기록했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직업군으로 선택한 것 같은데 20 여년 후에 이런 동사와 이런 직업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직 상상하기 어렵다. 최상층과 최하층의 직업만 남는다고 하는 말과 상통하는 것이긴 한데 챗지피티 이후 변화의 속도가 일취월장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일이년 후도 예상하기 힘드니 이십 년 후를 어떻게 예상하겠는가.
콜센터는 내용이 너무 우울해 읽다가 물류센터로 넘어가 읽다가 그것도 우울해 부페 주방으로 넘어가니 아무래도 요리라는 주제가 흥미로워 읽는 데 속도감이 붙었다. 절대 웃어넘길 일이 아닌데도 한승태 작가의 입담에 피식피식 웃어가며 읽었다. 극한직업 체험도 아니고 정말 이렇게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이라니 경악스러우면서도 앞으로 부페는 가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앞섰다.(위생상태나 조리방법, 원재료 등의 고발도 이어져 입맛이 절로 떨어졌다.) 이어서 빌딩 청소를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콜센터, 물류센터를 섭렵하고 마지막 ‘쓰다‘챕터로 넘어가서 독서의 대장정을 마쳤다. 빽빽하게 400페이지가 넘으니 대장정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입담은 이런 식이다. 보통 젊은 사람들이 일하는 곳에 가면 개인적인 질문을 ‘여자친구 있어요, 결혼했어요‘ 이런 정도로 물어보는데 60대 이상이 주로 일하는 빌딩 청소 일을 했을 때는 이러한 개인적인 질문을 어떻게 할까요 와 같은 퀴즈가 있고 답은 한 20페이지 너머에 있다. 이런 심각한 르포에 퀴즈 정답을 확인하기 위해 20페이지 너머를 들추는 웃픈 상황에서(그러나 궁금해서 답을 먼저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답을 확인하고 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정답은 ‘양친은 살아계신가?‘였다. 너무나도 상상이 되는 질문이어서 빵 터질 수 밖에 없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으로는 작가가 말하는 은퇴를 받아들이는 5단계(무슨 매슬로우의 5단계도 아니고)로 그것은 ‘퇴직-절망-재구직-냉대-청소‘라고 하니 정말 이 말이 맞아 무릎을 치게 되면서도 그 지적이 너무나 날카롭고도 정확해 뒷맛이 매우 씁쓸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작은 예시에 지나지 않고 이 이외에도 빵빵 터지는 그의 입담은 이루 다 열거하기 힘들다.
누구나 이런 직업을 경험할 수는 있어도 이렇게 세세하고도 위트있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승태 작가 뿐일 것 같다. 남다른 경험, 세세함, 위트, 통찰력, 시대를 읽는 능력 등이 매우 탁월하다.
이제는 한승태 작가도 십여년 전의 첫 책을 냈을 때와 달리 가정도 꾸린 것 같은데 언제까지 극한 노동을 해가면서 작가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을까. 언제까지 젊지도 않을 것이고 말이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궁금하다. 이런 르포 더 많이 나와서 이 사회가 한층 인간을 위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