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
술라이커 저우아드 지음, 신소희 옮김 / 윌북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암과 처절하게 맞서다가 장렬한 죽음을 맞는 이야기를 서구 사람들은 좋아하고 그런 내용을 담은 책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 눈물없이 볼 수 없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이지만 그들의 결말은 모두 죽음이었다. 그런데 생존자가 암을 극복한 이후에는 어떻게 사는가는 또 다른 문제로 그 이후의 삶이 동화 속 happy ever after 결말처럼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을 듯 한데도 이를 다룬 책은 드문데 이 책을 만나게 되어 허겁지겁 구매해 읽어 보았다.

저자는 ˝인간은 모두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 두 곳의 이중국적을 갖고 태어난다...우리는 좋은 여권만을 사용하길 바라지만, 누구든 언젠가는 잠시나마 다른 쪽 왕국의 시민이 될수밖에 없다.˝는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의 구절을 인용하며, 본인은 그 중간지대에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책은 시작된다. 원서 제목 Between two kingdoms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

전반부는 말그대로 대학 졸업 후 창창한 미래를 앞둔 저자에게 급성 백혈병이라는 갑작스러운 고난이 찾아오고 이를 위해 온 가족과 연인이 힘을 합해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나온다.
후반부는 35퍼센트의 생존 확률에 당첨되어 살아남은 이후에 진짜 제대로 지옥문이 열리는 상황이 나온다. 암이라는 싸워야 할 대상이 분명할 때는 그걸 위해 맹렬히 싸우면 되지만, 암은 제거되었지만 모든 것을 걸고 암과 싸웠기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일도 사람도 - 상황에서 저자는 길을 잃고 방황한다. 아무도 그에게 그 이후의 삶을 안내해주지는 못했다. 저자는 방황하다가 자신에게 각종 경로를 통해 연락을 해온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로 하고 미국 전역을 돌며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며 자신의 삶의 경로를 정하려 노력한다.

나도 미국에서 혈액 관련 질병 때문에 골수 검사를 받았고 호중구니 림프종이니 혈액 관련 정보에 익숙하다. 골수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병동에 있던 사람들의 나이나 상태 등에 대한 기억이 저자가 묘사하는 상황과 너무 유사해 놀라웠다. 생존률이 워낙 낮은 병이라 대부분 살아남는 것이 목표이지 살아남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안내하는 자료는 거의 없어 저자와 같은 방황하는 생존자가 있을 것 같고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이 책이 나와서 그 존재감이 빛을 발한 것 같다.

읽어가면서 젊은 나이에 난치병에 걸려 나와 내 가족의 일상이 무너지고 뿌리째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새삼스럽게 내가 이제 이 병에서 멀어진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고, 비슷한 경험을 조금이라도 해서 그랬는지 읽는 내내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읽어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저자의 고통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고통을 뚫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술라이커. 원래 인생은 힘겨운 것이니 뚜벅뚜벅 걸어나가야 한다. 우리 모두!!

저자 술라이커 저우아드가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이라는 두 왕국 사이의 중간 지대에서 꿋꿋이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그럼에도 빛나는 인상깊은 구절들..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 고통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다. 207
살아남는 데에는 대가가 따른다. 250
삶이 우리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더라도 선택할 여지는 있다. 287

건전한 고민 해결 방법 382
1. 인생에서 감사한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2. 궁둥이 들고 나가서 바깥을 산책하고
3. 혹시 식이장애가 찾아오면 끝내주게 맛난 초콜릿과 진한 커피를 자신에게 대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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