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타국 생활을 마치고 미취학 자녀 둘을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가는 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서울에 딱히 연고가 없어서 어느 지역을 골라 귀국할지 궁금했다. 결국 그들이 고른 곳은 '잠실'이었다. 그들은 엄마의 직장이 가깝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누가 봐도 그들이 그 곳을 왜 골랐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잠실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하는 궁금증으로 시작했으나 역시나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 과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다가는 큰 오산이 되겠다 싶었다. 이 소설은 미친 사교육의 현장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소설이니 '스카이 캐슬'과는 다르겠지 하는 기대로 끝까지 읽었으나 사교육을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그들의 삶을 끝까지 엿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장강명 작가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고 바란다'는 평을 해서 그런지 이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책 '당선, 합격, 계급' 이 떠올랐다. 객관식 평가로 줄 세우기를 하는 것은 정말 시대착오적인데 우리 나라에만 전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이 시스템이 고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었다.

김이나가 그의 저서 '보통의 언어들'에서 우리 나라에만 있는 단어가 재벌, 갑질, 애교가 있다고 지적했지만 (특히 그는 '애교'에 방점을 찍었었다) 장강명은 이 책에서 '입사 동기'라는 단어를 들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괄적으로 해마다 회사에서 신입 사원을 뽑는 우리와 같은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같은 해에 회사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한 단어로 묶어 서로의 친목을 도모하는 사람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나라는 우리의 청춘들을 객관식 시험으로 줄 세워서 대학에 보내고 회사에 보내고, 공무원을 시킨다. 이 시대의 청춘들은 객관식 문제풀기에 몇 년의 청춘을 쏟아 붓는 것일까. 암담한 생각이 들어 부러 심윤경의 '설이'를 떠올렸다.  

 

'설이'에도 사교육 이야기가 참으로 많이 등장하지만 판타지를 더 많이 넣었다. 그래서 골치가 덜 아플 수 있다. 같은 사교육을 환타지라는, 허구라는 프레임을 어떻게 씌우느냐에 따라 이렇게도 다른 느낌의 소설이 나온다. 작가들은 모두 천재다. 


'잠실동 사람들'은 르포 느낌이고 '설이'는 환타지 느낌이다. 르포가 골치아픈 사람들은 '설이'로 환타지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면 '잠실동 사람들'을 읽으면 되겠다. 이렇게 저렇게 따져보지만 그래도 내 마음에 제일 드는 책은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이다. 갑툭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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