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리즈 중 하나인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30번째 작품 '초급 한국어'를 읽었다.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에 대한 이야기라면 무조건 반가웠다. 나도 4년간 했던 경험이기에. 몇 달 전 읽은 '코리안 티처'도 떠올랐다. '코리안 티처'는 주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보다는 교사들의 처우에 주목한 작품이었다. '초급 한국어'는 어떻게 다르고 얼마나 비슷할까.


'초급 한국어'는 살짝살짝 이것저것 가볍게 잘 버무린 경장편 소설 같다는 느낌이었다. 미국에서의 외국인 노동자 생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알게 되는 것들, 미국의 한인교회 이야기 등은 꽤 심각하게 말할 수도 있는 것들도 많지만 문지혁은 가볍게 가볍게 서술해 나간다. 심각해질 뻔하면 얼른 멈춘다. 그의 세계에서는 영주권을 보장받는 풀타임 렉쳐러 자리를 노린 비인간적 경쟁은 없고 운이 좋게 후보가 됐다가 당연한 듯 (영주권이 없는 사람을 뽑을 경우 경제적 지원 명목으로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커미티 동의를 구하지 못해 자리를 잃고 귀국하게 된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느끼는 애환은 없고 그저 객관적으로 한국어를 바라보고 가르치며, 학생들의 과제나 활동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언급하며 오히려 그와 관련된 자신의 상념에 집중한다. 몇 안 되는 동료와 친구들과도 살짝살짝 만나고 헤어진다. 늘 거리가 있다. 그가 제시한 수업 중 활동이나 예문, 과제(미국 학생들이 잘 틀리는 대목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들이라 재미있었다.)를 보노라면 작가가 본인의 경험을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마이클은 오후에 수업이 없어 리사와 테니스를 쳤다'는 예문을 보고 빵 터졌었다. 나도 셀 수 없이 반복했던 문장이었기에. (요즘 학생들은 테니스 같은 것은 안 치는데 오래된 교재에 나오는 학생들은 늘 테니스만 친다.)


비슷한 소재를 어찌 이리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새삼 생각했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애틀랜틱 시티에서 순식간에 몇 백불을 잃는 이야기, 중간중간에 나오는 짧은 소설들, 이웃 마이클을 뷰잉(미국식 장례 절차)한 이야기, 2세대 3세대 한국 학생들 이야기, 미국에서 나서 자란 조카 이야기(삼촌'가' 나를 티즈했어 등등-교포 아이들은 정말 이렇게들 말한다. 조사가 어렵다. 그리고 주요 단어는 영어를 쓴다.) 미국에서의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다. 


어느 쪽이 더 좋은가. 심각한 이야기를 가볍게 골고루 하는 책과 정면 고발하고 있는 책. 결론은 둘 다 좋다는 것. 한국 문학의 영역이 이렇게 확장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재미있다. 



+ 어릴 때는 다들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다가 성장해 가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우리 모두는 다 비슷하다는, 다들 평범한 사람들로 작아진다는 의미를 담은 작품 서정인의 '강'이 인용되어 인상깊었다. 나도 이십대 때 이 소설에 특히 공감을 했었는데 작가도 그랬던 듯 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요즘은 잘 안 읽힐 듯. 


++ "소설 쓰기란 본래 그리 고상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소심하지만 유명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일에 불과하다. 제임스 설터의 말처럼, '남들에게 존경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칭찬받기 위해, 널리 알려지기 위해 글을 썼다고 말하는 것이 더 진실할' 것이다." (100-101쪽) 문지혁이나 제임스 설터나 다들 용감하게 솔직하다.


+++ "우리는 아이온에 둘러싸인 채 크로노스 속을 살아가는 존재다. 무심하지만 규칙적으로 흐르는 크로노스를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시간 감옥의 죄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삶에는 가끔씩 카이로스가 찾아오는데, 이를테면 화살이 날아가거나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전과 이후가 갈라지고, 한번 일어나면 결코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127-128쪽) 나에게 카이로스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되짚어 보게 하던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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