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해서 이국생활 때 커피먹는 양만 늘었었다. 한 잔에서 두 잔으로, 두 잔에서 세 잔으로. 쇼트는 톨로, 톨은 벤티로 먹어야 먹은 것 같았다. 그러다가 역시 탈이 났다. 진한 콜드브루와 밀가루 음식을 즐겨 먹으며 이국 생활의 스트레스를 달래던 차에 걸린 위궤양 덕분에 커피를 못 먹게 되었다. 통증 때문에. 그러다가 조금 나아졌다 싶으면 다시 마시고 마시다 보면 또 많이 먹게 되고 그러다가 다시 위궤양이 재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 악순환도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커피를 포기해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팍 왔다. 아예 끊지 않으면 영원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함이 온몸으로 느껴지던 차에 발견한 이 책.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될 바에야 그냥 커피 지식이나 쌓아야지 하고 읽은 책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커피 지식은 덤이고 이 책의 주된 골자는 '열정'이었다.
'천 개의 파랑'에서 휴머노이드 '콜리'가 말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생명체는 눈이 빛나고 몸이 떨린다고. 그 떨림을 위해 콜리는 자신을 두 번이나 희생했었다. 바로 그 떨림을 시종일관 느낄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특히나 코로나로 50일간 과테말라에서 머물게 되면서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하는 대목이 마음에 들었다. 역시나 유배에는 공부만이 살 길인지 저자도 밀린 스페인어 공부도 하고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게 된다. 늘 들르는 까페와 성당을 오가며. 저자에게는 나름 곤혹스러운 시간이었겠지만 그것마저도 의미있게 보내는(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내게는) 서필훈 커피리브레 대표가 멋졌다.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이 이런 파란만장한 인생이라면..물론 위궤양보다는 낫겠지만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인생은 아닌 듯 하다. 그릇이 아주 커야 할 것 같다. 열정을 갖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삶의 끝판을 보여준 저자 서필훈. 멋진 인생, 멋진 분이다. 그의 열정이 계속 꽃필 수 있기를. 왠지 커피 산지의 현지인들이 걱정된다. 그들이 무사하기를. 경제적 타격이 크지 않기를 바래본다. 역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