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에 이런 소설이 있었던가. 읽어내려가면 읽어내려 갈수록 폴 오스터의 'City of Glass'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의 도시'에서도 문득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때문에 모든 일이 시작되는데 이 소설에서도 우연히 발견한 청첩장 덕에 모든 일이 시작된다. '유리의 도시'는 폴 오스터의 대표작 '뉴욕 삼부작'의 첫 번째 작품으로 이 그래픽 노블버전으로 나는 폴 오스터에게 입문하게 되었다.
폴 오스터하면 떠오르는 것이 '미로'이다. 그가 이끄는 대로 이야기의 미로를 무작정 쫓다보면 어느새 이야기 마지막 장을 펼치고 있게 된다. 디어 랄프 로렌이 폴 오스터의 어떤 작품이랑 가장 비슷할까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저것 많은 작품이 떠오르지만 그 중에서 딱 하나를 고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유리의 도시'를 꼽았는데 '달의 궁전' 같기도 하고 'The Brooklyn Follies' 같기도 하다. 다 다시 읽어볼 수는 없고 옛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렇다.
각설, 한국 작가 중에 이런 스타일의 작품을 쓴 사람을 본 적이 처음인 것 같아서 새로웠다.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빨아들이는 능력은 폴 오스터 쪽이 훨씬 출중했지만(초중반부가 좀 지루했다) 도대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맺게 될 것인가가 상상이 되지 않아 끝까지 읽게 되었다. 어쩌면 누구나 예상했던 흐지부지한 결론을 맺는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읽는 내내 작가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해 나갈지 궁금해지는 이야기는 근래에 보기 드물었으므로 출간된지 꽤 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 혼자 괜히 설레었었다.
한국문학도 정말 다양해지는구나. 특이한 작가가 나타났다. 뒤늦게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