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독서가 언어를 매개로 하지만 역설적으로 언어 이상의 것을 감각하게 하는 행위라는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독자로서, 외국어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모국어가가진 문법 규범과 언어 체계 안에는 결코 포착되지 않는 무언가를 느끼고 발견해내는 순간, 그것은 외국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끝내 경험할수 없는 마법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원서로 책을읽는다는 것은, 표지와 경계가 뚜렷한 해수욕장을벗어나 저 멀리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것과 비슷하다. 외국어로 쓰인 원서의 페이지를 넘기는 사이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것만 같지만 그 끝이 점점 멀어질 뿐인 광활하고
짙푸른 바다다. 모국어의 경계 밖에서 헤엄치는일은 매우 험난하고, 때로는 위험하며, 나를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도전의 연속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흥미진진한 모험이다. 외국어를 읽는 동안 나는 가닿을 수 없는 수평선처럼 그곳에 있는, 누군가의 모국어와 내 발을 묶고 있는 나의 모국어 사이 어딘가에서 대양을 가로지르는 은빛의 물고기처럼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