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의 유행을 몰랐다. 먼슬리 에세이 시리즈가 좋아 우연히 '자기만의 (책)방'을 읽게 되었고 읽으면서 이 책으로 저자가 '밑줄서점' 운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밑줄서점'은 경기 남부에 있어서 지리적으로 멀어 직접 방문은 못 하겠고 독립서점에 대해 뒤늦게 검색해 보다가 '니은서점'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친 김에 집에서 가까운 '니은 서점'을 지난 주말에 다녀오게 되었다. 일요일에는 4시간 밖에 영업을 하지 않는데 그 틈을 타서 책도 사고 사인도 받았다.
자기만의 (책)방은 일일권이라는 대여 개념이 좋았다. 나같이 책에 대한 소유욕이 없는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인데 '밑줄서점'이 멀어서 좀 아쉬웠다.
니은 서점은 가깝지만 실제로 가보니 아쉽게도 책이 많지 않았다. 공간도 아주 좁았다. 책을 읽어보니 모두 개인돈으로 먼저 구매해서 진열해 놓아야 하기 때문이라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사고 싶었던 책이 한 권뿐이라 따로 주문을 하면 무료로 배송해주신다고 하셨지만 뭔가 번거롭게 느껴져 그냥 다른 책을 하나 사고 말았다. '이러다 잘 될지 몰라'는 10퍼센트 할인, 5퍼센트 적립, 무료배송에 굿즈, 리커버 에디션 등으로 중무장한 대형서점이라는 골리앗과 맞서 싸우는 독립서점 다비드들의 고충이 많이 나와있었다. 적어도 내가 갔던 지난 일요일에는 내가 책을 샀으니 빵책데이(?) - 아무도 책을 사지 않은 날-이 아니라서 다행이구나 싶었다. 좁아서인지 책을 사야한다는 압박도 좀 있었던 것 같다. ㅠ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말을 나도 정말 싫어하는데 그 면에서는 작가와 내 생각이 일치했다. 사람은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든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다. 하지만 책의 물성에 대한 생각은 좀 달랐다. 작가를 돕기 위해 책을 구매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만은 없지만 좀 아쉬웠다. 그리고 책값이 비싸지 않다고 항변하는 것도. 내가 보기에 책값은 좀 비싸보인다. 아니 책을 불필요하게 비싸게 만드는 것 같다. 싸게 만드니 오히려 안 팔려서 그 시리즈를 접었다는 사례도 있어서 단언하기는 좀 어렵지만 말이다. 나는 그저 만원 한 장으로 책 한 권 휘리릭 사 보던 때가 그리운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만원으로 '아무튼'시리즈 밖에 못 산다. 두 시간이면 다 읽는 그 책들을 말이다. (그런데 니은 서점에는 이 아무튼 시리즈도 몇 종류 뿐이었다.ㅠ '아무튼, 반려병'이 있었으면 샀을 텐데 없었다. 근처 '연신내문고'에는 있었다. 오히려 '연신내문고'가 아직 문을 닫지 않아서 기뻤고 동네 교보문고보다 더 좋아서 기뻤다. 비록 독립서점은 아닐지라도 이런 지역서점이 오래오래 계속 영업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근처의 알라딘 중고 서점도 내가 좋아하는 스팟. 책 구매를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여기서만큼은 책을 두둑히 집어 계산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책의 적정가격이 중고서점의 책가격이 아닐까 싶다. ㅠ) 니은서점이 베스트셀러를 팔지 않는 이유가 공룡서점과의 차별화를 위해서라는데 베스트셀러 중 좋은 책은 좀 팔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 와중에 '이슬아' 작가 책은 눈에 띄었다.)
정말 사람들이 책을 그렇게 안 읽을까. 정말로? 내가 보기에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예전보다 더 많이 읽고 안 읽던 사람은 더 안 읽게 되는, 독서계에서도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책은 읽어야 하는걸까? 그리고 그 책을 꼭 사서 봐야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사람들이 책에 대해서 좀 더 가벼워졌으면 한다. 책을 쓰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모두. 책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부터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게임처럼 쇼핑처럼 영화처럼 음악처럼. 그냥 가볍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나는 그저 내 행복을 위해 책을 읽고 책은 일단 내 책이든 남의 책이든 훔친 책이든 빌린 책이든 그냥 내 손에 어찌저찌 들어와서 나를 재미있게 간혹 감동적이게 해주면 그만이다. 물성이니 뭐니 밑줄이니 뭐니 하면서 소장이니 뭐니 하는데 그냥 나는 '이러다~'에 언급된 '절대 책 안 사는 사람'으로 치부돼도 좋다. 책을 사랑하고 모두가 책을 많이 사.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명우 교수도 비행기여행을 하면 넷플릭스를 다운받아 간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평상시에는 거의 책을 사서 읽지 않는 나는, 비행기여행 때만 되면 종이책을 사고 전자책 목록을 점검한다. 비행시간에 종이책을 다 읽고 시간이 남으면 전자책을 읽는다. (아. 내 루틴을 쓰다보니 비행기 여행이 너무 그리워진다.) 요는 그냥 각자 취향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독서든 그 무엇이든.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것은 없다. 같은 이유로 근래들어 한국 책시장에서 오디오북과 큰글자 도서가 보편화되는 것 같아 매우 기쁘다. 특히 오디오북 시장이 점점 더 커지길 기대해 본다.
책 읽는 자, 책방주인, 책 쓰는 자 모두 그들의 엘리트 의식을 벗어던지지 못하면 책은 우리에게서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책이 그 물성을 강조하는 순간 대중들은 책에서 멀어지게 된다.
독립서점이든 독서공간대여점이든 중고서점이든 지역서점이든 공룡서점이든 그냥 뭐든 많이많이 생겨서 공기처럼 우리 곁에 늘 있었으면 한다. 다양한 형태의 책들이. 오디오북, 큰글자도서도 더불어 말이다. 쇼핑과 게임과 영화와 음악과 티비와 함께 말이다. 더불어 전자책이 더 보편화되고 더 저렴해지면 좋겠다. 암튼 내가 제일 무서운 것은 독립서점이 망하는 것도 종이책이 더이상 안 읽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읽을 것들이 없어지는 것이다. 내 손 안에서. 내 주위에서. 내가 접근 가능한 지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