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간된 '코리언 티처'는 한국어학원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고학력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몇 년 전에 화제가 되었던 '나는 지방시다'는 지방대학에서 차별을 겪은 비정규직 고학력 남성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도 미국에서 4년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학에서 한국어 시간 강사로 일하면서 비슷한 것을 겪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들을 비단 한국의 갑질문화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한국이라서, 고학력 여성이라서, 지방대라서 그렇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 미국의 경우는 명문대일수록 강사들 처우가 나쁘다. (물론 교수들의 처우는 다르다. 그런데 교수들도 말이 교수지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수십 가지 종류가 있어서 그 종류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결국 이것도 다 차별이고 그냥 사람이 아니라 도구로 보는 것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냥 저렴한 고학력 소모품.) 왜? 처우가 나빠도 네임밸류 때문에 자신의 이력서를 명문대학교 이름으로 채우려는 지원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리안 티처'의 작가도 호주 어학원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단다. 미국도 코로나 여파로 ESL 강사부터 시작해(그들이 바로 미국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영어를가르치는, 바로 한국어학당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 사람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다. 소위 굶는과-국문과-가 미국에서는 영문과인 것이다.)서 다른 외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들까지 어느날 갑자기 조용하게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몇 년 전부터 내가 일했던 대학에서 가장 낮은 직급에 속하는 시간 강사들이 비밀리에-학교가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탄압해서- 노조를 결성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코로나 여파로 유야무야되었다. 그전부터 소위 비인기 외국어과 강사들은 개강 전날 가르칠 수업이 없어지거나 생기거나 했다. 그리고 아주 적은 보수를 받고 일해야 했다.) 그들이 여자든, 남자든, 미국에 있든, 한국에 있든 사정은 오십보 백보다. 


대학이라는, 자본이라는 논리가 교육에 들어왔을 때(하긴 다른 분야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다. '코리안 티처' 에서도 나왔듯이 고학력 한국어 강사들은 점점 많이 쏟아져서 나이가 들면 경력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박사학위가 없으면 도태되고 마는데, 이런 사람들이 미국으로까지 잡서칭을 나서지만 미국의 한국어 강사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더 심하다. 외국인 영어 전공자(영어 전공 한국인)가 내국인 영어 전공자(소위 미국 토종 영문학도)와 겨루기는 쉽지 않으므로 다들 외국인을 위한 영어교육(TESOL)이나 한국어교육으로 눈을 돌리고(그러니까 엄밀히 말해 영어전공자들이 한국어를 가르친다. 딜리버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영어를 유창하게 해야하고 한국어는 그냥 한국 사람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어 좀 되는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나는 왜 못 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경쟁이 치열하고, 게다가 '갑질'이라는 특유의 문화를 갖고 있는 한국인이 미국에 있다고 해서 그들의 성향이 더하면 더 했지 달라지지 않아서, 미국에서 한국어강사 분야가 가장 더티한 잡마켓으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코리안 티처'를 읽으면서 나의 경험과 너무나 많이 겹쳐지는 걸 느꼈었다. 


이러한 이유로 '코리안 티처' 를 헬조선의 근거로 삼는 비평을 경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어디나 그렇다. 이놈의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다만 노동강도는 더 셀 수 있다. 한국이.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에 높은 퀄리티를 제공하려면 거기에 적은 보수로 과도하게 열심히 일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쉽게 간과한다. 요즘의 각종 스윽 배송이니 샛별배송이니 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저렴하고 편하게 집에서 물건을 받아보지만 한편에서는 적은 보수를 받고 그렇다고 직업 안정성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샛별을 보며 스윽 물건을 배달을 해야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쉽게 잊는다. 아니 외면한다. 비싼 학비나 학원비는 다 대학이나 재단으로 들어가고 강사들의 처우는 매우 좋지 않으며 그들의 직업 안정성은 매우 낮다. '지방시'에도 나온다. 지방대학 시간강사에게는 맥도날드에서도 제공되는(맥도날드가 좋은 직장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4대 보험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미국은 이 정도는 아니다. 박봉에서 무지막지하게 보험료를 떼어간다. 하지만 그래도 대학 보험이 그 중 낫다. ㅠ)


'코리안 티처'는 정말 한국소설의 소재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전형화된 캐릭터가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리네와 닮은 여러 인간 군상들이 나와서 그들이 다 이해되고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이상하게만 보여도 다 그들만의 사정이 있는 것이었다. 물고 물리는 그들의 먹이사슬이 서글펐다. 


피라미드 맨 아래에 있는 한국어학당 강사들. 그 피라이드 맨 아래에서도 얽히고 설키는.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배움도 열정도 있는데 다만 마음 편히 일할 곳이 없다니 마음이 아프다. 우리 사회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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