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있는 사형수를 사랑하게 되어 그와 결혼을 했는데 운 좋게도 남편의 누명이 풀려 남편과 자유롭게 살게 되었지만 결국 아내는 남편이 누명을 쓴 것이 아니라 원래 범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과연 그 아내는 어떻게 할까. 이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최신작에서 여러 가지 사례 -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 를 들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전 여자친구를 죽이려 해서 여러 정황만으로 봤을 때는 꽤 중형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깊이 반성하는 자세를 높이 인정받아 금방 풀려나게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애초에 본인이 죽이려 했던 그 전 여자친구를 살해했다는 사례이다. 만약 기계나 인공지능 뭐 이런 것들이 형을 내렸다면 그 전 여자친구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결국 초범이라거나 깊이 반성하는 태도 등이 재판관이나 배심원의 감정을 흔들어 살인을 막지 못했다는 것. 이 작품의 1/3은 이런 내용이다. 구체적인 증거 없이 소녀 살인범으로 몰려 사형까지 받게 된 데니스에게는 빛나는 그의 외모 덕에 많은 팬이 있고 팬들이 끈질기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그의 무죄를 주장하던 와중에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어 무죄로 석방된다. 무죄 판결 전에 사만다와 결혼도 하게 되고. 만약 그가 누가 봐도 범죄자의 인상착의를 하고 있었더라면 이런 상황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알투나, 뉴욕, 레드 리버로 배경이 세 번 바뀌는데 뉴욕 파트까지는 전형적인 미국의 모습들이 많이 나온다. 미디어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고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모습들 말이다. 그래서인지 2/3 정도는 대체로 지루하고 평이하게 읽혔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으로. 하지만 모든 걸 알게 된 그 아내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에 대한 호기심 하나 때문에 마지막 부분을 초집중해서 읽었는데 끝까지 실.망.이.었.다. 그래서 혹시 작가가 남자인가 재삼 확인해 보았다. 이 작품에 나온 여성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남성의 시선에서 쓰여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아내라는 제목이 붙은 책들이 많다. 파일럿의 아내, 시간 여행자의 아내, 헤밍웨이와 파리의 아내, 완벽한 아내, 더 굿 와이프, the zookeeper's wife 등등. 그 중 이 책이 제일 실망스러운 작품이 아닌가 싶다. 데니스를 끝까지 지원해준 캐리, 데니스의 제한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와 편지를 주고받다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고 끝까지 남편에게 끌려다니는 아내 사만다, 주체적이지 못하고 데니스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기만 하는 린지. 정상적이지 않은 남편의 애정을 갈구하고 끝까지 기다리고 그리 따스하지 못한 손길에도 기뻐하는 여성상은 도대체 어느 시대의 여성상인지 구태의연하기 이를 수 없다.
미국의 모든 소설은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다는 말처럼 이 작품도 읽는 내내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읽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소설이든 영화든 보고나면 그리 썩 유쾌해지지 못하는 그런 작품이다. 물론 결국 누명과 오명은 벗겨지고 진실이 밝혀져 인과응보로 끝나는 결말이지만 그것이 항상 유쾌한 결말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고 한다면 너무 앞서간 것일까. 마지막에 임신하게 된 사만다의 태도가 마음에 걸려서 그렇게 느낀 것인가. 용두사미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고, 무죄 판결을 받게 된 남편이 진범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내의 태도가 상당히 진부하고, 부부 관계이지만 결코 평등한 관계에서 갖게 된 아이도 아니고 남편이 다시 무기 징역을 받게 되는 데도 의연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 등등 앞뒤가 맞지 않다거나 뭔가 설명이 누락된 부분이 많은 듯한 느낌이 든다. 갑자기 무죄의 결정적 증거가 나온 것도 석연치 않고 뭔가 그에 대한 내막이 나올 듯 하다가 그냥 없어져 버리기도 하고. 도대체 사만다는 여전사인가, 무대책인가, 애정결핍인가. 도대체 앞뒤를 잴 수 없는 특이한 여자 주인공 캐릭터인데 가장 놀라운 것은 이런 캐릭터를 여자 작가가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진취적인 여성상은 아니더라도 뭔가 innocent wife 라면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싶다. 하긴 innocent 라는 단어가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소설을 읽고 분개했다. 오랜만이군.
+ 빨리 기분전환할 다른 책을 찾아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