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북 - 아웃케이스 없음
피터 패럴리 감독, 마허샬라 알리 외 출연 / 노바미디어 / 201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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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상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처럼 느껴지게 깔끔하다. 이 영화 감독은 아카데미 평단들이 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1시간 30분짜리 영화가 가장 완벽하다고 믿는 내가 2시간 10분 동안 지루해할 틈도 없이 영화는 쭉쭉 나아간다. 


클럽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토니는 흑인 피아니스트의 운전사로 고용된다. 뉴욕에서 최남단까지 콘서트 투어를 함께 해 줄 사람으로. 토니도 뉴욕 브롱스에 정착한 이탈리안 이민자로 주류가 아니지만 그 역시 백인인지라 흑인에 대한 혐오가 가득하다. 하지만 돈 때문에 일을 하기로 한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형식은 영화에 흔히 나오는 풍경이지만 1960년대 흑인 피아니스트와 함께 하는 남부 콘서트 투어는 남다르다. 더군다나 그가 마초에 레이시스트라면. 


1950년대 흑인으로는 최초로 냇킹콜이 연주를 하려고 했을 때 백인 음악을 연주한다며 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영화 속에 나오는데 이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라고 해서 크게 바뀐 것은 없는 것 같다. 흑인도 백인도 아니고 재즈 뮤지션도 클래식 뮤지션도 아닌,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을 그대로 토니에게 드러내게 되는 피아니스트 닥(닥터 돈 셜리이지만 토니는 닥이라고 부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면서 그들 앞에 놓여진 각종 난관들을 헤쳐나가는 로드 무비 형식의 이 영화에서 결국 자신이 연주할 식당에서 연주는 하기로 했지만 연주 전에 식사를 할 수 없는 것을 알고(흑인은 규정상 식당 내에서 식사할 수 없고 대기실도 창고 같은 수준이다. 그 전 연주에서는 실내 화장실을 쓰지 못하게 해서 왕복 1시간 거리의 숙소-그것도 흑인이 묵어도 되는-에 다녀온 적도 있다) 연주 계약을 파기하고 그들이 소개해준 흑인 식당에 가서 클래식 연주(그는 클래식 연주를 배우고 연습했으나 백인 음악이라 흑인이 연주하는 것을 백인들- 닥 음악의 주 소비층-이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음반회사의 권유로 정통 클래식을 연주하지 못한다)를 하는 닥. 그 장면에서 눈물이 찔끔나왔다. 닥터 돈 셜리는 어떤 심정으로 그곳에서 클래식 음악을 연주했을까 싶어서 말이다. 


한국에서야 흑백갈등은 늘 그런 거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미국에서 보면 정말 이것은 뿌리깊은 무엇인가이다. 미국에서 흑백갈등에 가려져 동양인은 저 밑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거나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뉴욕에서 피츠버그가 첫 콘서트 장소로 나오는데 그것과 관련된 말장난, 남부 어느 곳에서 나신으로 붙잡힌 피아니스트가 나오는 두 대목 때문에 PG 13이나 중학생 아이와 함께 봐도 되는지 망설여진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매우 교육적인 영화이다. 교육적이나 매우 감동적인. 게다가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라니 더더욱 그렇다. 화장실 문제는 '히든 피겨스' 영화에도 잘 나온다. 이제는 이렇게 대놓고 하는 차별은 없지만 오히려 교묘한 인종차별 때문에 더 골치가 아프게 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니길 바래본다. 


영화 말미에 크리스마스까지 집에 도착하길 바라며 눈길을 헤치며 밤길을 운전하다가 역시나 경찰에게 다시 걸리는데. 비오는 남부 밤거리에서 이미 한 번 레이시스트 경찰관에게 된통 걸려 고생을 한 경험이 있어 두 남자들이 심한 기시감을 느꼈으나 다행히 이 경찰관은 이성적으로 차 타이어가 펑크난 채 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상징적인 영화적 장치라고 볼 수 있는데 (그래도 세상은 살 만 하며 모든 경찰관이 인종주의자인 것은 아니라는 메세지)현실에서는 또다시 죄없는 그들을 차에서 나오게 해서 비와 눈을 다 맞게 하고 각종 시비를 걸어 철창으로 가게 만들었을 것 같은 이 느낌은 뭔가. 


그래도 꽃은 피듯이 그들의 우정도 피어난다. 그것이 우리네 삶이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P.S. 제목의 그린북은 흑인이 거친 남부를 무리없이 여행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가이드북릿(booklet)이다. 제목 자체가 상징적이다. 흑인만 가는 숙소, 식당이 있던 시절이었으니. 흑인은 잘 차려입어도 부잣집 집사로만 보고 백인 운전수를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다. 심지어 술 마시러 바에 갔는데도 집단폭행을 당해 토니가 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참으로 참혹한 시대였다. 흑인의 인권을 지나치게 주장한다 싶을 때도 많지만 이런 과거가 있으니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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