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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Stories (Hardcover)
Porter, Andrew / Univ of Georgia Pr / 2008년 10월
평점 :
김영하의 팟캐스트 '책읽는 시간'에서 듣고 감동을 받아 바로 원서를 찾아 읽다. 김영하의 작가안내나 작품소개를 듣는 것도 좋지만 거두절미하고 아름다운 한 편의 소설을 읽어주는 것도 참 좋다. 이름하여 '책읽는 시간'이니..
우리나라에 알려진 미국 단편소설 작가로는 존치버나 레이먼드 커버가 있는데 존치버는 잘 모르겠고(투 올드했음) 레이먼드 커버는 깔끔하고 위트있고 유머러스하지만 뭔가 차가운 스타일의 작품을 쓴다. 참으로 이성적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그 이성이 철저한 서구의, 미국의 이성이라 우리에게 착착 감기는 맛이 없다. 반면 앤드류 포터는 이들의 대를 잇는 미국 단편문학의 샛별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포터의 작품도 심플하고 깔끔하지만 잠재되어있던 감성을 일깨우는,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그런 면에서 나와 가장 코드가 맞는다. 단편은 한 편의 잘 짜여진 멋진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지만 특유의 긴장감으로 인해 장편처럼 술술 읽히는 맛이 없다. 그래서 단편소설은 각광받지 못하고 수입도 보장받지 못해 단편소설작가로서의 입지가 높지 않고 단편소설작가들은 장편 창작의 권유를 많이 받는단다. 그러나 아름다운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이 소설집의 표제작이고 대표적 단편소설상인 오코너 상 수상작이다.
아침에 국어로 번역된 글을 듣고 다음날 밤에 원서를 읽었는데 25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분량 속에 이런 심정을 표현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재되어있던 감성을 깨운다는 면에서 충격을 받았는데 과거에 문학은 나에게 있어서 도피처였으며 안식처였는데 이제는 안일하게 살고 있는 나에게 잠재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뭔가 불행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문학이 더이상 도피처가 아니고 불행에 가까운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인데 그런데도 거기에 카타르시스가 있어서 문학을 다시금 찾게 되지만 문학을 통해서 느끼는 감정들이 꼭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미묘한 인간의 무수한 감성을 불러일으켜서 문학이 우리에게 하려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번역도 잘 되어있어서 무난했다. 하지만 원서의 분위기를 따라올 수는 없겠지..
Guilt is the reason we tell our lovers these secrets, these truths. It is a selfish act, after all, and implicit in it is the assumption that we are doing the right thing, that bringing the truth out into the open will somehow alleviate some of the guilt. But it doesn't. The guilt, like any self-inflicted injury, becomes a permanent thing, as real as the act itself. Bringing it out into the open simply makes it everyone's injury.
죄의식은 자초하여 입는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나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이나 생생해진다. 그것을 밝히는 행위로 인해, 그것은 다만 모든 이들의 상처가 될 뿐이다.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a woman second-guesses her choice between a soul mate and a comfortable one. 이 설명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교수 로버트와 의사남편 콜린. 소울메이트라지만 성적 긴장감이 있었기에 그 관계가 유지되었던 면도 있었고 그러면서도 콜린과 결혼해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희생하는 나 헤더..구구절절 줄거리를 얘기하기에는 이생각저생각이 물밀듯 밀려온다. 그런데 왜 제목이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일까..시점을 얘기하는 걸까..
+ 나머지 단편들도 다 읽고 싶은데 마음이 앞서서 리뷰를 남긴다. 문장도 아주 아름다워 오정희 소설 이후로 베껴쓰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아름다운 소설을 읽었다.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다고 해도 그것으로 인해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끼므로 인간은 매번 소설을 찾아드는 것일거다.
++ 존 치버의 소설은 올드해서 별로였다.
** 앤드류 포터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소설의 그 시간, 그 장소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느낌은 참으로 섬광같은 순간의 느낌이긴 하지만 놓칠 수 없는 소중한 느낌이다. 한 편씩 한 편씩 다 읽고 난 느낌은..미국 중산층의 삶을 주로 다룬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냥 다들 먹고 살만 해서 느끼는 느낌같다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겠다. 다들 그렇다. 아버지가 어릴 때 돌아가셔도 아버지가 남긴 재산으로 잘 살고..아버지가 오래 아파도 그래서 이렇다할 돈벌이를 못해도 아버지가 어릴 때 사놓은 주식으로 어찌저찌 살아갈 수 있고, 의사의 딸로 태어나 부자들이 가는 대학에 가서 또 의사를 만나 결혼하고..부자 자제들만 가는 사립대에서 학교 안에서는 히피처럼 살면서 다들 자신의 고급차를 숨겨놓고 사는 아이들이 나오고..다들 먹고 살 만 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 인생의 모든 순간순간의 느낌이 사치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왠지 미국 중산층의 삶에 갇힌 느낌이다. 포터가 그렇게 자라와서 그것밖에 그리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편 소설의 한계인 것인가..미국의 남자 정이현 같기도 하다. 물론 정이현 작품보다 훨씬 멋지지만..
섬광과도 같은 묘사, 쉽고 평이하지만 깔끔한 문체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뭐든 직접 말하지 않지만 메세지가 명확하게 느껴지는 소설..그 특유의 분위기..그의 장편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