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우화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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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신경숙작가의 <풍금이 있던 자리>라는 책을 사서 읽고 누군가에게 빌려 줬다 돌려 받지 못했다.  인터넷도 없는 시대여서 신인작가의 작품을 읽을 기회는 신춘문예와 같은 문학상이라는 신문광고란을 통해서였는데 아마도  나는 그때 우연히 알게 된 제목에 이끌려 서점에 갔던 것 같다.

 

  다 읽어 가기도 전에 전부터 내 책에 관심이 많던 이들로부터 다 읽으면 빌려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또  여러 사람이 동시에 그랬기에 더더욱 누가 먼저 가져 갔는지 기억이 안나는 이유가 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누군가에게 책이 아니더라도 빌려주게 되면 꼭 메모를 하곤 한다.

 

 정작 신경숙작가의 이름을 또렷이 기억나게 하는 그녀의 작품을 들자면 나는 <리진>을 꼽는다. 그 뒤에 여러 베스트에 오른 작품중에 <엄마를 부탁해>도 있지만 세월이 흘러도 리진을 읽었을때 찡했던 그 때가 떠올라 혹시 다시 읽어 싶어도 아껴두고 있다.

 

  작가의 20대 때 쓰여진 처음의 작품을 일부러 찾아 읽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희망으로 밝은 싱그러움을 느끼고 싶었다. <겨울우화>(2012.12 문학동네)는 신경숙작가의 작가로 만들어준 고마운 첫작품이기에 더 기대에 차 읽었다.

 

  총 11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소설집에서 단연코 나는 <겨울우화>와 <외딴 방>을 꼽는다. 첫 등단작품이라는 의미도 있고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이 드러나는 작가의 성격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주인공 명혜는 애인인 혁수가 교통사고로 감옥에 가게 된 사실을 대신 어머니께 알려주기 위해 가는 기차안과 밖 풍경을 비롯해 가르치는 아이가 보내 준 편지와 함께 이미 이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혁수모와의 대화까지 마치 풍경화 한 편을 보고 있는 착각을 느끼게 해준다.

 

 작품에 등장하는 학생운동으로 숨어 지내는 오빠, 자식들 걱정과 남편의 구박을 감내하는 전형적인 어머니의 모습, 술과 죽은 자식을 가슴에 품은 아버지의 모습까지 조금 겹쳐지는 부분이 많이 있어 한 편을 읽고 잠시 숨을 고르고 읽는 것이 나름 방법이 이 책을 읽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외딴 방>에서  주인공인 희재언니와의 이야기는 고통 그 자체다. 소름이 돋기도 했다. 다른 작품들과 확연히 다르게 다가 오는 결말이기도 하고 그녀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데 말줄임표가 유난히 다 하지 못한 언니와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같기도 해서다. 서른 일곱개의 방이 있던 집, 마주치려고 해도 만나지지 않는 사람들틈에서 알게 된 희재언니, 신지도 못하고 선반 위에 올려 놓은 하이힐과 교복도 모두 그녀가 갖고 있는 얼마 되지 않은 재산이자 희망이었다.

 

  책의 맨 뒤에는 작가의 1판과 2판, 이번에 다시 발행된 3판의 에필로그가 나란히 수록되어 있다. 20대의 그녀가 어느새 5대가 되어 다시 펼쳐보는 자식과도 같은 작품들을 대하는 작가의 느낌과 독자들에게 건네는 당부처럼 들린다.

 

  다른 작품들에서 다소 희미하게 보이는 인물들이 갈수록 명확하게 보이는 것은 다만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닐게다. 유난히 기차, 추운 겨울, 마당에 비치는 눈부신 밝은 햇빛에 대한 작가의 지나치리 만큼 세밀한 묘사가 익숙하지 않아  늦은 오후같아 얼른 깜깜한 밤이 되길 바랬는지 한 편 한편을 다 읽을 동안 길게 느껴지는 것은 이미 빠른 전개와 자극적인 묘사에 길들어져 있는 나를  되돌아 보게 했다.

 

  p147

 

    해안으로 들어가는 차단기 앞에 지나 갈 기차처럼 그가 서 있다.

 

  p 157

 

    갑자기 그녀 자신 안에 있는 그에게 물이 스며들어 미래는 눅눅했고, 추억에는 이끼가 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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