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도시 - 우리 시대 예술가 21명의 삶의 궤적을 찾아 떠난 도시와 인생에 대한 독특한 기행
오태진 지음 / 푸르메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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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이 난다.   큰 아이가 3살 때 등에 업힌 아이와 힘겹게 차에서 내려 다른 차로 갈아타려고 하는 나에게 시댁에 가냐고 묻는 어떤 아주머니가 계셨다. 아니오. 집에 가는 길이라는 말에 다소 의아한 모양이다. 결혼을 하고 지방에 직장을 가지게 된 남편을 따라 생전 처음 키워준 부모와 뚝 떨어진 곳에서 살게 된 뒤 한동안 적응하기도 벅찻다. 그렇잖아도 적응하기 어려운데 첫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어지간히 힘들었는지 얼굴에 그려져 있었던가 보다.

     지금 사는 곳이 어디든  그곳이 정이 들면 고향이야.

   태어나 살았던 곳에서 거의 살았던 나 같은 이에게 낯선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이에게도 아무렇지 않은 일이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된 일에 무조건 따를 수 밖에 없는 경우에 누구에게 원망아닌 원망을 하고 있던 터라 처음 보는 아주머니의 그 말한마디가 어찌나 위안이 되었던지 모른다.

   예술가 21명의 도시에 얽힌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의 인생의 궤적을 따라 가는 길을 보여준 <내 인생의 도시>(2011.6 푸르메)는 이름만 들어도 아 거기라고 할 만한 곳뿐아니라 그곳이 어디든 지금 사는 곳, 바로 그곳이 고향이랄 수 있는 삶과 추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영화감독 곽경택에게 부산은 영화의 배경에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숙명과도 같았으며 그 안에서만이 자신의 영화가 완성된다는 운명의 도시였다.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광장시장이의 맛있는 냄새가 느껴지는 전골목에서 생생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자라 살아 움직이는 그림을 그려낸 사석원, 굿을 보고 싶어 강릉을 제집 드나들듯 하다가 결국 터를 옮기기까지 하면서 강릉을 사랑하게 된 민속학자 황루시교수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진솔함을 엿볼 수 있다.

   시인 유홍준(잠시 다른분과 착각을 했던)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시인이라기 보다 인간극장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온갖 직업을 거치고 시를 쓰는 작가의 삶의 애환이 담긴 시를 찾아 읽어보고 싶게 한다. 죽어서 뼈가루로 도자기를 빚어 달라고 할만큼  말하는 화가 이원종의 제주사랑까지 느끼게 한다. 작가의 사는 곳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구석 구석을 돌아보고 온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낯선 시인들의 시골생활과 시로 탄생되는 일화와 좋아하는 조경란작가와 봉천동, 은희경작가의 일산까지 시골 ,도시를 넘나들면서도 자연스럽게 작가들의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펼쳐져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까지 정겹다.

   소개된 분들 중 다수를 차지하는 시인들의 시한편 한편을 읽다보니 나 같은 시에 문외한인 이도 노곤한 여름밤을 풍요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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