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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대지 - 간도, 찾아야 할 우리 땅
오세영 지음 / 델피노 / 2024년 6월
평점 :
"큰일입니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삼천리금수강산이 OO의 먹이가 될지도 모릅니다." (19p)
소설 속 이 문장이 콱 박히듯이 들어온 것은 지금 우리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위기 의식 때문인 것 같아요.
《잃어버린 대지》는 오세영 작가님의 역사소설이에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잃어버린 땅, 간도라고 할 수 있어요. 엄밀하게는 간도 영유권을 소재로 한 역사 소설이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나 비어 있는 틈들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낸 이야기예요.
첫 장면에서 역사기록 속 한 문장을 발견하는 부분이 짜릿했어요. 독일 훔볼트 대학에서 역사지리학 박사 과정 중인 윤성욱은 논문 주제를 「리히트호펜이 동양지리학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로 정하고 자료를 검토하다가 리히트호펜이 동북아시아 조사 때 '동쪽에서 온 지리학자'로부터 큰 감명을 받았다는 내용을 읽게 됐고, 그가 바로 조선인 지리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네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와 그의 제자 양기문, 그리고 흥선대원군까지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의 등장으로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 그때 그 순간 속으로 빠져드네요.
"일전에 두만강을 답사했을 때 녹둔도가 연륙되어 있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신속하게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녹둔도를 아라사에게 빼앗길지 모릅니다."
김정호는 퍼뜩 연전의 일이 떠올랐다. 두만강 하구의 작은 섬 녹둔도는 이순신 장군도 주둔했던 적이 있는 국경방어의 요충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바닥이 퇴적되고, 강줄기가 마르면서 북쪽 강안에 붙어버린 것이다.
"두만강 너머의 간도는 본시 고구려와 발해의 땅입니다. 그리고 녹둔도는 북방을 지키는 전초 기지입니다. 절대로 잃어서는 안 되는 땅입니다." 김정호는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절감했다.
"그렇습니다. 간도는 고려의 윤관 장군이 9성을 쌓고, 아조로 들어와서는 김종서 장군이 6진을 개척하면서 지킨 우리의 땅입니다."
(20p)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김정호가 백두사 주변을 상세히 조사하고 기록했던 여정과 현재 남아 있지 않은 지리지인 대동지지 제26권 '변방고'를 추적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토문강이 두만강이 아니고 오도백하라는 사실을 밝히면 간도가 조선 땅이 되는 것입니까?"
"오도백하는 송화강의 지류이니 송화강 이동은 조선 땅이라고 봐야겠지. 석퇴를 찾아서 다행이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토퇴를 찾고, 땅 위로 솟구치는 물줄기를 확인해야 토문강은 송화강의 지류라는 사실이 분명해질 것이다."
(62p)
중국은 2002년 1단계 동북공정을 시작하면서 중점과제들을 선정했는데 간도 등 국경과 영토 문제의 비중이 매우 컸고 지금도 간도가 중국 영토임을 정당화하기 위해 치밀한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어요. 간도 영유권 분쟁의 실상은 백두산 일대의 간도 지역에 대한 영유권 분쟁인 동시에 정치적 분쟁인데 간도 분쟁의 핵심지역인 간도 영유권의 범위 규정이 선결 문제라고 하네요. 청은 러시아의 강박에 의해 1860년 북경조약을 맺고 봉금되어 온 연해주를 러시아에 불법 할양하였는데 당시 조선은 조약체결 사실을 몰랐다고 해요. 애초에 한 · 중 간에 완전한 국경선을 결정하지 못한 상태라서 양국 간에 광활한 무인지대가 존재한 것이고, 이 무인지대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에서 한국·중국·러시아·일본이 개입된 정치적 분쟁이 된 거예요. 조선은 청이 개간에 착수하기 수년 전에 이미 지방관이 지권을 발급하여 개간을 허용하였기 때문에 이때부터 중립의 성질을 상실했어요. 간도 지방에 한국인이 거주한 것은 오랜 역사이고, 영토의 취득방법에서 선점의 원칙에 의거하여도 간도 지역은 한국의 영토임이 분명하다고 볼 수 있어요. 간도 영유권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에요. 사실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모른 채 외면했을 우리 땅, 그동안 잊고 지냈던 시간들을 되돌려 생생한 이야기로 들려준 작가님에게 감사하며, 현 시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네요.